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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아오 씨! 도대체 여기에 뭐가 있다는 말이야?!”
한참을 바닥부터 벽면을 더듬어 가던 소천이 기어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이왕 말해 줄 거 내실의 위치까지 말해 주면 좀 좋아? 빠른 길 놔두고 왜 쓸데없이 이 고생인지.
능천화야 소천이 내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지만, 죽어라 능천화를 씹어 대는 소천이 그런 걸 곱게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천천히 벽면을 세심하게 더듬어 가는 소천. 아무래도 목숨이 걸려 있는 이상 짜증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한 식경쯤 지나서야 소천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어라? 각도가 좀 다르다? 뭔가 이상한데? 이건가? 아! 찾았다!”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놓은 조사전 벽 한편에 아주 미세하게 각도가 다른 한 곳에 이르자 조목조목 살피던 소천이 그곳을 지그시 누른다.
그러자 미세한 진동과 함께 벽면 한쪽이 열리며 작은 통로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에 크게 기뻐하며 문안으로 성큼 들어가는 소천.
하지만 상황을 살피기도 전에 문은 소리 없이 닫히고 곧 어둠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소천은 무심코 한 발을 내디뎠다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어딘가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흐으에에에엑―!”
엄청 빨리 떨어지는 속도로 보나 둥글게 각도를 트는 걸 봐서는 지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왜? 도대체 조사전에 얼마나 대단한 게 있기에 이런 장치까지 해 놓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또 한 번 몸 안으로 스며드는 강렬한 향과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을 겪으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켁! 어, 엉덩이가…… 아웃, 씨바. 아프잖아! 응? 헉! 이, 이게 다 뭐야?”
소천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사전, 이곳이 진짜 도화문의 조사전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일반적인 조사전과는 다른 모습이랄까.
마치 넓은 공터를 옮겨 놓은 듯한 크기는 그렇다 치고 그보다 더 경악할 만한 건 수많은 형상의 석상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녀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모두 발가벗고 있는 모습.
“도대체 이게……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이걸 배우라고? 저, 저런 것까지? 옴마야, 세상에! 나를 변태로 만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렇다. 남녀의 형상을 한 석상은 모두 도화극락밀전에 나오는 음양화합을 다룬 체위를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기다 기가 막히게도 사내의 양물이나 여자의 음부를 세심하게도 표현해 낸 점이나 쾌락에 젖어 환희에 들뜬 표정까지.
“나보고 이런 걸 하라니. 끄응, 변태도 그냥 변태가 아니고 완전히 미친 변태잖아?”
소천은 갑자기 울컥해지는 마음에 서러워졌다. 실세로도 그렇고 그동안에도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살아왔건만, 어쩌다 천형을 안고 태어나 결국에는 변태로의 길을 가게 된 것인지.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자니 고작 두 해 남은 생명으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잘난 존재라는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해 이대로는 아까워서 못 죽는다는 말이다.
“하아, 일단은 조상님들께 인사는 올려야겠지.”
소천이 맥없이 중얼거리며 한쪽에 있는 제단을 향해 다가가 서른여섯 개의 위패 앞에 향을 피우고 아홉 번의 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었다. 도화문의 정식 문주로 절차를 밟는 것이다.
“도화문 삼십팔 대 문주 능소천 인사 올립니다. 비록 문도라고는 개뿔도 없는 문주이지만, 일단은 제가 문주가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후손을 보고 계십니까? 만약, 보고 계신다면 제 소원 좀 들어주십시오. 보시다시피 모든 면에서 잘난 제가 그 저주받을 천형을 타고 태어나 이곳에 들게 되었습니다만. 에휴! 뭐 솔직히 믿어지지는 않습니다. 딱 까놓고 제가 어딜 봐서 그런 빌어 처먹을 천형에 걸릴 사람입니까? 그렇죠? 조상님들이 보시기에도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과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묻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이지만, 우리 영감! 아니, 잠시 실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삼십칠 대 문주님 말씀으로는 제가 그 염병맞을 거지도 안 걸린다는 천형에 걸렸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안 믿어지신다고요? 그럼요. 저 자신도 안 믿어지는데, 조상님들이라고 쉽게 믿을 수나 있겠습니까? 제가 오죽했으면, 한낱 개꿈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개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고, 어찌어찌 닥친 현실을 헤쳐 나가긴 해야 하는데, 도저히 막막한 게 답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제 마음 이해하시죠?”
이해하기 싫어진다.
“그러니 이 후손을 불쌍히 여기시어 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제가 많이도 안 바랍니다. 그저 웬만하면 저 짓거리 안 하고 무탈하게 불로장생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안 그러면 저요. 그냥 콱! 목매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독약 한 그릇 마시고 한 줌 독수로 녹아 버릴 수도 있고요. 아,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 그건 안 되겠구나? 그럼, 일단 독약은 취소하겠습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조상에게 문주로서 첫인사를 올리는 상황에 다분한 협박성 발언을 하다가도 순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더니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정정하고 다시 위패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각설하고 그리되면 도화문의 위대한 대가 끊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불쌍한 후손을 더 불쌍히 여기시어 그 세 가지 신체 중에 한 놈이라도 좀 만나게 해 주십시오. 아니, 잠깐! 잠깐만요. 능신우 조상님이 태양신맥을 만나고도 사 단계에서 멈췄잖아? 에, 그러면 한 놈 가지고는 택도 없는 소리라는 건데. 그럼, 두 놈은 해야 되겠네? 그렇군. 저기, 조상님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말입니다. 한 놈은 모자랄 것 같고, 최소 두 놈은 주시겠습니까? 한 놈으로는 도화문의 숙원을 못 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러고 있다.
“네? 들어주실 거죠? 안 그러면 위대한 도화문의 대가 끊긴다니까요? 저는요. 지금까지 신비한 척하는 우리 영감탱이밖에는 여자는커녕 사람 구경도 못 하고 살았거든요.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런 제가 여자를 만나서 후사를 보겠습니까? 아니지요. 보고 싶어도 못 보잖아요?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아랫도리도 제구실을 못하는 마당에 제가 덜컥 죽어 보십시오? 그 순간 우리 도화문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거 아닙니까? 능씨 가문의 위대한 대가 끊깁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후손한테 딱! 더도 말고 두 놈만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뒤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후손이 조상님들 한을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릴 테니, 들어주실 거죠? 아니,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안 들어주시면, 저요. 막 나갈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인사보다는 협박에 가까웠지만, 소천은 나름대로 심각하게 열변을 토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단 위에 올려진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바로 능천화가 말했던 도화극락밀전이었다.
책에는 도화극락밀전의 구결과 지금껏 태음빙한지체를 타고난 일곱 명의 선조들의 이름이 올라 있었고, 그 사연 또한 구구절절이 기록돼 있었다.
“이게 문제의 그 도화극락밀전이군. 쳇, 이름만 거창하지, 완전 응응 대법이구만.”
나는 이십오 대 문주 능신우(能宸禹)라고 한다. 도화극락밀전을 배워야 한다면 후손 또한 천형인 태음빙한지체를 타고났다는 걸 의미할 것이고, 천형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대성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 천형으로 인해 말로 못할 고충을 겪었고, 다른 선조와는 달리 태양신맥을 만난 덕분에 비록 생명을 연장하고 사 단계까지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결코 천형의 굴레를 온전히 끊을 수는 없었다.
“내 말이! 한 놈 가지고는 도저히 무리라니까. 적어도 두 놈은 꿰차고 있어야지.”
도화극락밀전은 총 오 단계로, 이곳 조사전에 들기 위해 맡은 향으로 그 일 단계를 이룰 수 있으며 구결을 깨우쳐 몸 안의 음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가 이 단계, 그걸 기반으로 그 단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이곳에 있는 석상의 체위는 도합 사십여덟 가지다.
“힉! 사십여덟?! 그 짓을 그렇게 다양하게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실제 그 체위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이는 없으며 많아 봐야 열한 가지를 넘지 않는다. 단지 이곳에 있는 그 체위를 모두 터득하며 구결을 왼다면 그 단계를 더 빨리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 같은 처지에서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후손은 체위를 알아 두기만 하되 내색해서는 아니 된다. 또 하나 이곳에 들기 전 독특한 향을 세 번에 걸쳐 맡았을 것이다. 그 향은 우리 태음빙한지체만을 위한 고유의 향으로 상대의 양기를 들끓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그 단계가 높아질수록 향이 짙어져 피부의 윤기가 밝아지고 오감이 발달하며 치유능력과 더불어 외모 또한 한층 더 아름다워진다.
“여기서 더 아름다워진다고? 별로 안 반가운데. 이거 불안해.”
다만 단점이라면 일반적인 양기로는 결코 대성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양기는 아무리 취해도 삼 단계에서 멈춘 상태로 요녀나 색마로서 무림공적으로 몰려 생을 마감할 수 있음이다. 그건 또 하나의 천형과도 같은 삶이니 뉘라서 우리의 고통을 알 것인가. 허나 어둠 속에도 길은 있는 법. 만약, 그대가 요행으로 태양신맥이나 극양지체, 태극음양지체를 만난다면 무조건하고 그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본시 태극음양지체는 음과 양을 동시에 다스릴 줄 알고, 그 극성의 힘을 정순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 준다. 또한, 천형을 타고난 극양지체나 태양신맥은 우리 태음빙한지체와는 상극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알고 있는 절맥이나 극음지체를 만나 천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주야에서 열흘간의 방사를 치러야 하지만, 우리 같은 체질을 만난다면 몇 번의 방사로도 그들은 그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흠, 그러니까 극음지체보다 내 음기가 더 지독하다는 건가?”
그만큼 우리가 가진 극빙의 한기는 지독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직 그 세 가지 체질을 만나 꾸준히 양기를 흡수하고 단계를 높여 대성을 이루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이 점 명심하고 후손은 우리의 한을 세심히 살피고 도화극락밀전을 대성해 절대 같은 우(愚)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우리 도화문의 숙원(宿願)을 풀고 무한한 내공과 완벽한 신체를 얻기를 바란다.
“하아, 말이 쉽지. 있는지도 모르는 그 세 가지 신체를 어떻게 만나느냐고? 쳇, 이런 짓까지 하면서 꼭 살아야 하나? 하아, 답이 없구나.”
소천은 한껏 찌푸려진 얼굴로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러고는 남녀 혹은 남남이 얽혀 있는 석상을 보며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짓인지. 무림에 나가기도 전에 별 괴상한 걸로 완벽한 변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천은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아, 쓰벌.”
* * *
“나라는 놈 팔자도 참 기구하지. 인간 구경도 못 해 본 마당이구만. 걷기도 전에 날아다닌다고 방사부터 배워야 한다니.”
소천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금까지 태산 깊은 절지에 처박혀 인간이라고는 가족인 능천화 외에는 구경한 적도 없었다.
하다못해 약초 채집꾼이라도 봤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접한 거라고는 오직 서고를 가득 메운 수만 권의 책자가 전부였다.
그런 마당에 목숨을 놓고 이젠 방사의 기법을 배우고 어떻게 하면 그 기법으로 상대 남자를 옭아맬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하아, 그래, 까짓 거 배우자. 배워서 당당하게 이 더러운 팔자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언제까지고 마냥 처져 있을 수도 없고, 소천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눈앞에 닥친 난관이라면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도 내렸겠다, 소천은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 나갔다. 그런 소천의 손끝에서 마지막 옷자락이 스르륵 떨어져 내리고 이내 백옥 같은 나신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몸이 성장하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빌어먹을 음기 때문이라는 거지? 쳇, 지랄맞네.”
소천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적어도 사내 나이 십육 세면 어느 정도 키도 자라야 하고 근육도 붙어야 정상이지만, 소천의 나신은 소녀의 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모두가 타고난 음기로 인해 일반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소천의 눈빛은 총기가 어려 있어 기품이 넘쳤고, 음기로 인해 깊고 깨끗하면서도 요염한 교태가 넘쳤다.
작은 두상이나 절륜하리만치 빼어난 이목구비의 생김생김은 마치 섬세한 조각을 빚어 놓은 듯해 뻔히 남성의 상징이 보임에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소녀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미인의 상징이라는 탐스러운 붉은 입술, 흑단 같은 머리카락, 깨끗한 흰자위와 흑안은 조화를 이루었고, 길고 가늘게 뻗은 목이나 잘록한 허리는 여성의 곡선만큼이나 유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목과 발목은 가늘고 여려 마음을 동하게 하고, 백옥 같은 피부는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희고 고왔으며 깨끗한 색을 띤 손톱은 윤기가 돌아 섬섬옥수를 더욱 빛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이슬 머금은 백수선화(白水仙花) 같고, 살짝 눈꼬리를 휘며 웃음을 띨 때는 불향 가득한 연못에 피어나는 수단화(水丹花) 같으며 때론 한 떨기의 도도한 흑모란(黑牡丹) 같이.
소천의 몸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순백의 고아함과 요염한 기운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결한 성녀와 음탕한 요부의 기질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듯한 모습인 것이다.
그 모든 건 타고난 태음빙한지체의 순음지기와 맞물린 선천요기(先天妖氣) 때문이다. 선천요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고 참을 수 없는 음심을 솟구치게 만든다. 한마디로 우물이라는 말이다.
물론 딱 하나 흠인 성격은 빼는 게 좋겠다.
“에잇! 씨팍! 생각할수록 성질나네? 진작 말해 줬으면 죽자 사자 찾아다녔을 거 아니야!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만약에라도 내가 잘못되면 이게 다 영감 때문이야!”
그렇다. 아무리 아름다우면 뭐하겠는가. 성질이 이리도 개차반인 것을. 혼자 분에 겨워 한참이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석상들 가운데 있는 작은 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어차피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인 이상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시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자면 구결의 요체를 깨달아 최소한 이 단계로 접어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후우.”
소천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마음을 평안히 했다. 도화극락밀전의 구결은 이미 머릿속에 기억돼 있었고, 극히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집중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한 얼굴에 미세한 표정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 소천은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몸속에 휘도는 음기가 마치 진기처럼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걸 느낀 것이다.
살아 있는 음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생생히 기억할 수 있게 뭉쳐진 음기가 중단전에서 시작해 머리의 상단전으로 휘돌고 백회혈을 거쳐 다시 중단전에 머물렀다가 하단전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은 더욱 빨라졌고 쉴 새 없이 몰려오고 몰려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찌릿하고 은은한 통증까지 느껴지던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운 감각만을 남길 때까지.
이같이 정신이 합일을 이루는 것을 조(助)라고 하고, 기가 맥을 따라 도는 것을 찰(擦)이라 하며 마음을 쏟아 상단전으로 유도하는 것이 용(冗)이라 한다.
용천에 힘을 주고 배로 힘을 더하니 그것이 연(嚥)이고, 끝으로 몸 곳곳으로 그 음기가 퍼져 나가니 이를 반(槃)이며, 다시 뭉쳐져 일주천하니 회(廻)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심에 두고 반복해서 휘돌게 하니 이를 두고 공(空)이라 한다. 이 구결만으로도 능히 삼화(三和)가 일치되고, 오기(五氣)가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도화극락밀전은 음양대법의 총화를 다룬 것으로 음양으로 선(仙)과 도(道)에 이르게 하고, 마지막 오 단계를 대성하면 불사(不死)의 경지에 들 것이다.
어떻게 음양화합으로 이 같은 결과를 낳는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본시 음(陰)과 양(陽)은 삼라만상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걸 토대로 한 쓰임새 또한 다양하다.
음과 양은 보다 고차원의 개념으로 추상화되어 도(道), 무(無), 일(一) 등의 우주 본원이 이를 얻음으로써 만물을 생기게 하는 일종의 중개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가장 간단한 예로 작은 불은 낮의 햇빛 안에선 음이 되고, 밤의 어둠 속에선 양이 되듯 인간의 신체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조화가 깨지면 병을 달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사물의 방향을 정할 때나 주술, 의술이나 팔괘를 기준으로 하는 점술, 천문학이나 병법과 같은 세속에도 음양설이 포함되어 있고, 무공도 마찬가지다.
도를 추구하는 무공은 음양오행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같이 도화극락밀전은 이 음양에 중점을 두고 극강의 음기를 다스릴 수 있는 일종의 내공심법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내공심법과 다른 점은 내공을 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대성을 이루게 되면 천형인 태음빙한지체를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내공 또한 얻을 수 있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일반 무인들이 환골탈태를 거듭하는 역할이 바로 도화극락밀전의 단계를 올라갈수록 겪는 심오함이었다. 그리고 극성에 이르러서는 반로환동과도 같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상대와 같이 단계를 쌓을수록 더 빠른 진전을 보인다. 이같이 진정한 마음의 교감이 진정한 쾌락을 선사하듯 도화극락밀전도 교감으로 인한 성과는 더 뛰어난 것이다.
단지 그 같은 결과를 얻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게 문제다. 세 가지 신체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흡수한다고 해도 생명을 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몸을 하고 있다면 이성인 사내의 양기를 흡수하기가 쉽겠지만, 소천은 불행히도 사내의 몸이다. 과거 도화문의 일곱 명의 선조들 중 네 명은 사내의 몸이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들 또한 타고난 순음지기와 선천요기로 상대의 육체를 사로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마음까지 온전히 사로잡지는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면수심이라 했던가.
타고난 천형에 고통스러워하고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배신과 음모,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뿐이었고, 끝내는 오명까지 덮어쓰고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면, 같은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당연한 이치고 그 같은 참담한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두 번 다시 음모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두 번 다시 더러운 오명으로 수치스럽지 않기 위해.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소천이 과거의 실패를 본보기 삼아 잘해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결을 외며 명상에 잠긴 지 반시진이 흘러가자 몸 안의 향은 더욱 짙어지며 이마에 도화 문양이 떠올랐다.
세 번의 향을 맡음으로 일 단계로 접어들었다면 도화 문양으로 이 단계의 벽을 깬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구결을 운용하는 것으로 역대 누구보다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후우.”
한시진이 조금 지나 소천은 가뿐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그런 소천의 몸을 휘감고 있던 차가운 한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고, 대신 은은한 빛이 어리고 짙은 향이 뿜어져 나오며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완벽한 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로써 소천은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구결을 운용할 수 없더라도 육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양기를 흡수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됐다.
“흐음, 생각한 것보다 간단하네. 어라? 뭔가 쓰여 있는데.”
소천이 단을 내려와 이리저리 몸을 뒤틀다가 남녀, 혹은 남남이 얽혀 있는 석상 앞으로 다가가고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입을 딱 벌린다.
기가 막히게도 각각의 체위를 나타낸 석상 밑에는 그에 따른 방사의 기법이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그 말들을 종합해 보면 대충 이런 뜻이다.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사물은 음양으로 나뉘며 자연의 섭리로 순응하듯 결합하는 것은 매우 신성한 것이다. 특히 음양화합으로 인한 교접은 몸 안에 정기를 쌓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 지향점인 쾌락과 동시에 건강과 장생을 추구한다. 이같이 음양화합의 도를 터득하고 못 하고의 차이는 엄청난 것으로 불로장수와 불로불사에 이르는 도를 얻을 수 있다. 도화극락밀전 또한 그 도에 근간을 둔 것으로 능히 삼화가 일치되고 오기가 조화를 이루며 대성을 이뤘을 시 불사의 경지에 들 것이다.
“거참, 거창하기도 해라.”
천박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비틀리는 자세 하나도 신경 써야 하며 열락에 들떠 흘리는 신음 소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몸짓은 교태롭게, 신음은 간드러지게 하되 감미로워야 하고 입맞춤 하나에도 기교가 있으니 이것 또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또한, 입맞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가볍게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수줍음을 띤 채 맞대는 걸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다음으로 상대의 몸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며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고, 상대의 혀가 들어오면 살짝만 벌린 채 입술에 부끄러운 떨림을 남겨야 한다.
응하고 물러서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수긍하듯 상대의 혀를 휘감아 주되 너무 지나치게 강한 반응은 자제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상대의 몸에 열기가 피어오르고 깊숙이 들어와 거칠게 움직일 때는 호흡을 조절하며 열정적으로 순응하되 그 끝을 살짝 건드려 자극을 가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꾸며 호흡을 뱉는 사이에도 아랫입술을 깨물어 자극을 주는 것으로 상대에게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얼씨구, 입맞춤 한 번에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이야? 하아, 기가 막히네.”
방사를 치르기 전 감각이 둔감해 충분한 전희를 즐겨야지만 성적인 쾌감을 얻는 여자가 있는 반면 남자 또한 성감에 민감한 체질이 있다.
그럴 때는 처음에는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것처럼 작은 자극을 주고 두 번째로는 부드럽게 쓸듯이 감미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좋다.
이같이 성감에 민감한 체질들은 처음부터 너무 지나치게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성감을 찾는 일이다. 성감은 이마부터 눈두덩이, 귓바퀴나 귓불이 예민하고 귀 안을 탐할 때는 조심스럽게, 되도록이면 감미로운 신음과 뜨거운 숨결로 자극하는 게 좋다.
또한, 대체로 부드러운 등줄기나 목, 유두는 민감한 만큼 강약을 조절하고, 배꼽을 지나 특히 옆구리는 자칫 간지러울 수도 있으니 꾹꾹 누르듯이 손끝으로 더듬어 가며 찾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남자의 상징인 음경은 성급하게 틀어쥐어서는 안 되며 쓸어내리듯 하는 것이 좋고, 가장 예민한 옥경은 특히 더 조심을 기해야 한다.
혀끝으로 자극을 가하다가 부드럽게 감싸듯 입안에 품는 것이 좋고, 기둥은 살짝살짝 깨물어 주듯 핥아야 하며 신낭은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듯 자극해야 한다.
“아이고, 나 미쳐.”
여자와 남자는 신체구조가 다르다. 그러나 쾌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누가 더 우월하다는 건 정할 수가 없다.
본시 여자의 음문은 예민한 만큼 작은 자극에도 쾌감을 얻을 수 있지만, 남자는 항문으로 양물을 받아들일 경우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
또한, 수축력이 오히려 여자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자칫 지나치게 강한 조임은 상대까지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조절해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게 좋다.
쉽게 말해 양물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는 부드럽게 풀어 주듯 힘을 빼고 나갈 때는 아쉬운 듯 잡아채 줘야지만, 상대로 하여금 쾌감에 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뿌리는 강하게 압박하고 옥경은 질감 나게 마찰하며 기둥은 움직임에 무리가 없게 빡빡한 느낌을 전해 줄 정도로만 조여 준다.
그같이 따뜻하면서도 뜨겁지 않게, 강하게 조이면서도 부드러움을 간직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 과정만 통과한다면 고통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항문에는 사람마다 다른 위치에 있으나 가장 예민한 부분이 있고, 그것을 찾아낸다면 고통조차 느낄 수 없게 쾌감을 얻을 것이다.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남자는 여자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라는 걸 명시하고 행동 하나에도 조심을 기해 상대의 쾌감을 최고조로 높여 주며 완벽하게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
* * *
“아오 씨! 도대체 여기에 뭐가 있다는 말이야?!”
한참을 바닥부터 벽면을 더듬어 가던 소천이 기어코 소리를 버럭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이왕 말해 줄 거 내실의 위치까지 말해 주면 좀 좋아? 빠른 길 놔두고 왜 쓸데없이 이 고생인지.
능천화야 소천이 내실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지만, 죽어라 능천화를 씹어 대는 소천이 그런 걸 곱게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천천히 벽면을 세심하게 더듬어 가는 소천. 아무래도 목숨이 걸려 있는 이상 짜증만 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한 식경쯤 지나서야 소천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다.
“어라? 각도가 좀 다르다? 뭔가 이상한데? 이건가? 아! 찾았다!”
반질반질하게 다듬어 놓은 조사전 벽 한편에 아주 미세하게 각도가 다른 한 곳에 이르자 조목조목 살피던 소천이 그곳을 지그시 누른다.
그러자 미세한 진동과 함께 벽면 한쪽이 열리며 작은 통로가 드러나고 있었다. 이에 크게 기뻐하며 문안으로 성큼 들어가는 소천.
하지만 상황을 살피기도 전에 문은 소리 없이 닫히고 곧 어둠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소천은 무심코 한 발을 내디뎠다가 괴상한 비명을 내지르며 어딘가로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흐으에에에엑―!”
엄청 빨리 떨어지는 속도로 보나 둥글게 각도를 트는 걸 봐서는 지하로 떨어져 내려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다만 왜? 도대체 조사전에 얼마나 대단한 게 있기에 이런 장치까지 해 놓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또 한 번 몸 안으로 스며드는 강렬한 향과 바닥에 떨어지는 충격을 겪으며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켁! 어, 엉덩이가…… 아웃, 씨바. 아프잖아! 응? 헉! 이, 이게 다 뭐야?”
소천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사전, 이곳이 진짜 도화문의 조사전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단지 이해가 안 가는 건 일반적인 조사전과는 다른 모습이랄까.
마치 넓은 공터를 옮겨 놓은 듯한 크기는 그렇다 치고 그보다 더 경악할 만한 건 수많은 형상의 석상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남녀의 형상을 그대로 본떠 모두 발가벗고 있는 모습.
“도대체 이게…… 그러니까 지금 나보고 이걸 배우라고? 저, 저런 것까지? 옴마야, 세상에! 나를 변태로 만들려고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렇다. 남녀의 형상을 한 석상은 모두 도화극락밀전에 나오는 음양화합을 다룬 체위를 그대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거기다 기가 막히게도 사내의 양물이나 여자의 음부를 세심하게도 표현해 낸 점이나 쾌락에 젖어 환희에 들뜬 표정까지.
“나보고 이런 걸 하라니. 끄응, 변태도 그냥 변태가 아니고 완전히 미친 변태잖아?”
소천은 갑자기 울컥해지는 마음에 서러워졌다. 실세로도 그렇고 그동안에도 자신이 제일 잘난 줄 알고 살아왔건만, 어쩌다 천형을 안고 태어나 결국에는 변태로의 길을 가게 된 것인지.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자니 고작 두 해 남은 생명으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잘난 존재라는 것이다. 즉, 간단히 말해 이대로는 아까워서 못 죽는다는 말이다.
“하아, 일단은 조상님들께 인사는 올려야겠지.”
소천이 맥없이 중얼거리며 한쪽에 있는 제단을 향해 다가가 서른여섯 개의 위패 앞에 향을 피우고 아홉 번의 절을 올린 후 무릎을 꿇었다. 도화문의 정식 문주로 절차를 밟는 것이다.
“도화문 삼십팔 대 문주 능소천 인사 올립니다. 비록 문도라고는 개뿔도 없는 문주이지만, 일단은 제가 문주가 맞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후손을 보고 계십니까? 만약, 보고 계신다면 제 소원 좀 들어주십시오. 보시다시피 모든 면에서 잘난 제가 그 저주받을 천형을 타고 태어나 이곳에 들게 되었습니다만. 에휴! 뭐 솔직히 믿어지지는 않습니다. 딱 까놓고 제가 어딜 봐서 그런 빌어 처먹을 천형에 걸릴 사람입니까? 그렇죠? 조상님들이 보시기에도 너무 아깝지 않습니까?”
과연 대답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묻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이지만, 우리 영감! 아니, 잠시 실언했습니다. 그러니까 삼십칠 대 문주님 말씀으로는 제가 그 염병맞을 거지도 안 걸린다는 천형에 걸렸다고 합니다. 믿어지십니까? 안 믿어지신다고요? 그럼요. 저 자신도 안 믿어지는데, 조상님들이라고 쉽게 믿을 수나 있겠습니까? 제가 오죽했으면, 한낱 개꿈으로 끝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러나 애통하게도 개꿈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고, 어찌어찌 닥친 현실을 헤쳐 나가긴 해야 하는데, 도저히 막막한 게 답이 안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제 마음 이해하시죠?”
이해하기 싫어진다.
“그러니 이 후손을 불쌍히 여기시어 소원 하나만 들어주십시오. 제가 많이도 안 바랍니다. 그저 웬만하면 저 짓거리 안 하고 무탈하게 불로장생할 수 있도록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안 그러면 저요. 그냥 콱! 목매달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독약 한 그릇 마시고 한 줌 독수로 녹아 버릴 수도 있고요. 아, 만독불침(萬毒不侵)이라 그건 안 되겠구나? 그럼, 일단 독약은 취소하겠습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건지. 조상에게 문주로서 첫인사를 올리는 상황에 다분한 협박성 발언을 하다가도 순간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더니 별로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정정하고 다시 위패를 올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어찌 됐든, 각설하고 그리되면 도화문의 위대한 대가 끊기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이 불쌍한 후손을 더 불쌍히 여기시어 그 세 가지 신체 중에 한 놈이라도 좀 만나게 해 주십시오. 아니, 잠깐! 잠깐만요. 능신우 조상님이 태양신맥을 만나고도 사 단계에서 멈췄잖아? 에, 그러면 한 놈 가지고는 택도 없는 소리라는 건데. 그럼, 두 놈은 해야 되겠네? 그렇군. 저기, 조상님들?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말입니다. 한 놈은 모자랄 것 같고, 최소 두 놈은 주시겠습니까? 한 놈으로는 도화문의 숙원을 못 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이러고 있다.
“네? 들어주실 거죠? 안 그러면 위대한 도화문의 대가 끊긴다니까요? 저는요. 지금까지 신비한 척하는 우리 영감탱이밖에는 여자는커녕 사람 구경도 못 하고 살았거든요. 정말 불쌍하지 않습니까? 그런 제가 여자를 만나서 후사를 보겠습니까? 아니지요. 보고 싶어도 못 보잖아요? 어차피 이 상황에서는 아랫도리도 제구실을 못하는 마당에 제가 덜컥 죽어 보십시오? 그 순간 우리 도화문은 영원히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거 아닙니까? 능씨 가문의 위대한 대가 끊깁니다. 이제 아시겠지요? 그러니까 이 후손한테 딱! 더도 말고 두 놈만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그 뒤는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이 후손이 조상님들 한을 속 시원하게 풀어 드릴 테니, 들어주실 거죠? 아니, 꼭 들어주셔야 합니다. 안 들어주시면, 저요. 막 나갈지도 모릅니다.”
확실히 인사보다는 협박에 가까웠지만, 소천은 나름대로 심각하게 열변을 토했다. 할 수만 있다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제단 위에 올려진 책 한 권을 펼쳐 들었다. 바로 능천화가 말했던 도화극락밀전이었다.
책에는 도화극락밀전의 구결과 지금껏 태음빙한지체를 타고난 일곱 명의 선조들의 이름이 올라 있었고, 그 사연 또한 구구절절이 기록돼 있었다.
“이게 문제의 그 도화극락밀전이군. 쳇, 이름만 거창하지, 완전 응응 대법이구만.”
나는 이십오 대 문주 능신우(能宸禹)라고 한다. 도화극락밀전을 배워야 한다면 후손 또한 천형인 태음빙한지체를 타고났다는 걸 의미할 것이고, 천형의 굴레를 끊기 위해서는 대성할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그 천형으로 인해 말로 못할 고충을 겪었고, 다른 선조와는 달리 태양신맥을 만난 덕분에 비록 생명을 연장하고 사 단계까지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결코 천형의 굴레를 온전히 끊을 수는 없었다.
“내 말이! 한 놈 가지고는 도저히 무리라니까. 적어도 두 놈은 꿰차고 있어야지.”
도화극락밀전은 총 오 단계로, 이곳 조사전에 들기 위해 맡은 향으로 그 일 단계를 이룰 수 있으며 구결을 깨우쳐 몸 안의 음기를 다스릴 수 있을 때가 이 단계, 그걸 기반으로 그 단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이곳에 있는 석상의 체위는 도합 사십여덟 가지다.
“힉! 사십여덟?! 그 짓을 그렇게 다양하게 할 수 있단 말이야?”
그러나 실제 그 체위를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이는 없으며 많아 봐야 열한 가지를 넘지 않는다. 단지 이곳에 있는 그 체위를 모두 터득하며 구결을 왼다면 그 단계를 더 빨리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 같은 처지에서는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니 후손은 체위를 알아 두기만 하되 내색해서는 아니 된다. 또 하나 이곳에 들기 전 독특한 향을 세 번에 걸쳐 맡았을 것이다. 그 향은 우리 태음빙한지체만을 위한 고유의 향으로 상대의 양기를 들끓게 하는 효능이 있으며, 그 단계가 높아질수록 향이 짙어져 피부의 윤기가 밝아지고 오감이 발달하며 치유능력과 더불어 외모 또한 한층 더 아름다워진다.
“여기서 더 아름다워진다고? 별로 안 반가운데. 이거 불안해.”
다만 단점이라면 일반적인 양기로는 결코 대성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양기는 아무리 취해도 삼 단계에서 멈춘 상태로 요녀나 색마로서 무림공적으로 몰려 생을 마감할 수 있음이다. 그건 또 하나의 천형과도 같은 삶이니 뉘라서 우리의 고통을 알 것인가. 허나 어둠 속에도 길은 있는 법. 만약, 그대가 요행으로 태양신맥이나 극양지체, 태극음양지체를 만난다면 무조건하고 그를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본시 태극음양지체는 음과 양을 동시에 다스릴 줄 알고, 그 극성의 힘을 정순하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 준다. 또한, 천형을 타고난 극양지체나 태양신맥은 우리 태음빙한지체와는 상극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알고 있는 절맥이나 극음지체를 만나 천형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주야에서 열흘간의 방사를 치러야 하지만, 우리 같은 체질을 만난다면 몇 번의 방사로도 그들은 그 천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흠, 그러니까 극음지체보다 내 음기가 더 지독하다는 건가?”
그만큼 우리가 가진 극빙의 한기는 지독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오직 그 세 가지 체질을 만나 꾸준히 양기를 흡수하고 단계를 높여 대성을 이루는 방법밖에는 달리 도리가 없다. 이 점 명심하고 후손은 우리의 한을 세심히 살피고 도화극락밀전을 대성해 절대 같은 우(愚)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우리 도화문의 숙원(宿願)을 풀고 무한한 내공과 완벽한 신체를 얻기를 바란다.
“하아, 말이 쉽지. 있는지도 모르는 그 세 가지 신체를 어떻게 만나느냐고? 쳇, 이런 짓까지 하면서 꼭 살아야 하나? 하아, 답이 없구나.”
소천은 한껏 찌푸려진 얼굴로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그러고는 남녀 혹은 남남이 얽혀 있는 석상을 보며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황당무계한 짓인지. 무림에 나가기도 전에 별 괴상한 걸로 완벽한 변태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소천은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아, 쓰벌.”
* * *
“나라는 놈 팔자도 참 기구하지. 인간 구경도 못 해 본 마당이구만. 걷기도 전에 날아다닌다고 방사부터 배워야 한다니.”
소천은 절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지금까지 태산 깊은 절지에 처박혀 인간이라고는 가족인 능천화 외에는 구경한 적도 없었다.
하다못해 약초 채집꾼이라도 봤다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과 세상에 대해 접한 거라고는 오직 서고를 가득 메운 수만 권의 책자가 전부였다.
그런 마당에 목숨을 놓고 이젠 방사의 기법을 배우고 어떻게 하면 그 기법으로 상대 남자를 옭아맬 수 있을까를 연구해야 한다니. 정말이지 기가 막힐 일이다.
“하아, 그래, 까짓 거 배우자. 배워서 당당하게 이 더러운 팔자에서 벗어나 보는 거야!”
언제까지고 마냥 처져 있을 수도 없고, 소천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시 한 번 각오를 다졌다. 어차피 눈앞에 닥친 난관이라면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도 내렸겠다, 소천은 망설임 없이 옷을 벗어 나갔다. 그런 소천의 손끝에서 마지막 옷자락이 스르륵 떨어져 내리고 이내 백옥 같은 나신이 드러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내 몸이 성장하지 않은 것도 모두 그 빌어먹을 음기 때문이라는 거지? 쳇, 지랄맞네.”
소천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투덜거렸다. 적어도 사내 나이 십육 세면 어느 정도 키도 자라야 하고 근육도 붙어야 정상이지만, 소천의 나신은 소녀의 몸만큼이나 아름다웠다.
그 모두가 타고난 음기로 인해 일반적인 성장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소천의 눈빛은 총기가 어려 있어 기품이 넘쳤고, 음기로 인해 깊고 깨끗하면서도 요염한 교태가 넘쳤다.
작은 두상이나 절륜하리만치 빼어난 이목구비의 생김생김은 마치 섬세한 조각을 빚어 놓은 듯해 뻔히 남성의 상징이 보임에도 지나치게 아름다운 소녀라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미인의 상징이라는 탐스러운 붉은 입술, 흑단 같은 머리카락, 깨끗한 흰자위와 흑안은 조화를 이루었고, 길고 가늘게 뻗은 목이나 잘록한 허리는 여성의 곡선만큼이나 유려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손목과 발목은 가늘고 여려 마음을 동하게 하고, 백옥 같은 피부는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희고 고왔으며 깨끗한 색을 띤 손톱은 윤기가 돌아 섬섬옥수를 더욱 빛냈다.
가만히 있을 때는 이슬 머금은 백수선화(白水仙花) 같고, 살짝 눈꼬리를 휘며 웃음을 띨 때는 불향 가득한 연못에 피어나는 수단화(水丹花) 같으며 때론 한 떨기의 도도한 흑모란(黑牡丹) 같이.
소천의 몸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순백의 고아함과 요염한 기운이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마치 고결한 성녀와 음탕한 요부의 기질을 한 몸에 지니고 있는 듯한 모습인 것이다.
그 모든 건 타고난 태음빙한지체의 순음지기와 맞물린 선천요기(先天妖氣) 때문이다. 선천요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사로잡고 참을 수 없는 음심을 솟구치게 만든다. 한마디로 우물이라는 말이다.
물론 딱 하나 흠인 성격은 빼는 게 좋겠다.
“에잇! 씨팍! 생각할수록 성질나네? 진작 말해 줬으면 죽자 사자 찾아다녔을 거 아니야! 이 빌어먹을 영감탱이! 만약에라도 내가 잘못되면 이게 다 영감 때문이야!”
그렇다. 아무리 아름다우면 뭐하겠는가. 성질이 이리도 개차반인 것을. 혼자 분에 겨워 한참이나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야 석상들 가운데 있는 작은 단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는다.
어차피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인 이상 물러설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한시라도 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자면 구결의 요체를 깨달아 최소한 이 단계로 접어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후우.”
소천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마음을 평안히 했다. 도화극락밀전의 구결은 이미 머릿속에 기억돼 있었고, 극히 평정심을 유지한 상태에서 집중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평온한 얼굴에 미세한 표정조차 떠오르지 않을 때 소천은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몸속에 휘도는 음기가 마치 진기처럼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걸 느낀 것이다.
살아 있는 음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생생히 기억할 수 있게 뭉쳐진 음기가 중단전에서 시작해 머리의 상단전으로 휘돌고 백회혈을 거쳐 다시 중단전에 머물렀다가 하단전으로 빠르게 내려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흐름은 더욱 빨라졌고 쉴 새 없이 몰려오고 몰려가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찌릿하고 은은한 통증까지 느껴지던 것이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차가운 감각만을 남길 때까지.
이같이 정신이 합일을 이루는 것을 조(助)라고 하고, 기가 맥을 따라 도는 것을 찰(擦)이라 하며 마음을 쏟아 상단전으로 유도하는 것이 용(冗)이라 한다.
용천에 힘을 주고 배로 힘을 더하니 그것이 연(嚥)이고, 끝으로 몸 곳곳으로 그 음기가 퍼져 나가니 이를 반(槃)이며, 다시 뭉쳐져 일주천하니 회(廻)이다.
마지막으로 마음을 정심에 두고 반복해서 휘돌게 하니 이를 두고 공(空)이라 한다. 이 구결만으로도 능히 삼화(三和)가 일치되고, 오기(五氣)가 조화를 이룰 수도 있다.
도화극락밀전은 음양대법의 총화를 다룬 것으로 음양으로 선(仙)과 도(道)에 이르게 하고, 마지막 오 단계를 대성하면 불사(不死)의 경지에 들 것이다.
어떻게 음양화합으로 이 같은 결과를 낳는지는 의외로 간단하다. 본시 음(陰)과 양(陽)은 삼라만상에 모두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걸 토대로 한 쓰임새 또한 다양하다.
음과 양은 보다 고차원의 개념으로 추상화되어 도(道), 무(無), 일(一) 등의 우주 본원이 이를 얻음으로써 만물을 생기게 하는 일종의 중개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상징되기도 한다.
가장 간단한 예로 작은 불은 낮의 햇빛 안에선 음이 되고, 밤의 어둠 속에선 양이 되듯 인간의 신체도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고, 그 조화가 깨지면 병을 달고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사물의 방향을 정할 때나 주술, 의술이나 팔괘를 기준으로 하는 점술, 천문학이나 병법과 같은 세속에도 음양설이 포함되어 있고, 무공도 마찬가지다.
도를 추구하는 무공은 음양오행에 근간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와 같이 도화극락밀전은 이 음양에 중점을 두고 극강의 음기를 다스릴 수 있는 일종의 내공심법과 마찬가지였다.
다만 내공심법과 다른 점은 내공을 쌓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만약 대성을 이루게 되면 천형인 태음빙한지체를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한한 내공 또한 얻을 수 있다.
그게 어느 정도냐 하면 일반 무인들이 환골탈태를 거듭하는 역할이 바로 도화극락밀전의 단계를 올라갈수록 겪는 심오함이었다. 그리고 극성에 이르러서는 반로환동과도 같은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또한, 상대와 같이 단계를 쌓을수록 더 빠른 진전을 보인다. 이같이 진정한 마음의 교감이 진정한 쾌락을 선사하듯 도화극락밀전도 교감으로 인한 성과는 더 뛰어난 것이다.
단지 그 같은 결과를 얻기가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게 문제다. 세 가지 신체를 만나지 못한다면 아무리 흡수한다고 해도 생명을 연장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의 몸을 하고 있다면 이성인 사내의 양기를 흡수하기가 쉽겠지만, 소천은 불행히도 사내의 몸이다. 과거 도화문의 일곱 명의 선조들 중 네 명은 사내의 몸이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들 또한 타고난 순음지기와 선천요기로 상대의 육체를 사로잡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그 마음까지 온전히 사로잡지는 못한 것이다. 한마디로 인면수심이라 했던가.
타고난 천형에 고통스러워하고 도리를 지키고자 했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것은 배신과 음모, 그리고 씻을 수 없는 상처뿐이었고, 끝내는 오명까지 덮어쓰고 유명을 달리해야 했다.
그렇다 보니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반드시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다면, 같은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게 당연한 이치고 그 같은 참담한 결과를 낳지 않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두 번 다시 음모로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 두 번 다시 더러운 오명으로 수치스럽지 않기 위해. 육체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천하무적이라 할 수 있었다.
과연 소천이 과거의 실패를 본보기 삼아 잘해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구결을 외며 명상에 잠긴 지 반시진이 흘러가자 몸 안의 향은 더욱 짙어지며 이마에 도화 문양이 떠올랐다.
세 번의 향을 맡음으로 일 단계로 접어들었다면 도화 문양으로 이 단계의 벽을 깬 것이다. 그것도 단순히 구결을 운용하는 것으로 역대 누구보다 빠른 성과를 보이고 있었다.
“후우.”
한시진이 조금 지나 소천은 가뿐한 기분으로 눈을 떴다. 그런 소천의 몸을 휘감고 있던 차가운 한기가 몸 안으로 스며들고, 대신 은은한 빛이 어리고 짙은 향이 뿜어져 나오며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완벽한 이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이로써 소천은 만약 상황이 여의치 않아 구결을 운용할 수 없더라도 육체가 스스로 자연스럽게 양기를 흡수하고 발전해 나갈 수 있게 됐다.
“흐음, 생각한 것보다 간단하네. 어라? 뭔가 쓰여 있는데.”
소천이 단을 내려와 이리저리 몸을 뒤틀다가 남녀, 혹은 남남이 얽혀 있는 석상 앞으로 다가가고 무심코 중얼거리다가 입을 딱 벌린다.
기가 막히게도 각각의 체위를 나타낸 석상 밑에는 그에 따른 방사의 기법이 얼굴이 달아오를 만큼 적나라하게 적혀 있었다.
그 말들을 종합해 보면 대충 이런 뜻이다.
하늘과 땅 위의 모든 사물은 음양으로 나뉘며 자연의 섭리로 순응하듯 결합하는 것은 매우 신성한 것이다. 특히 음양화합으로 인한 교접은 몸 안에 정기를 쌓을 뿐만 아니라 궁극적 지향점인 쾌락과 동시에 건강과 장생을 추구한다. 이같이 음양화합의 도를 터득하고 못 하고의 차이는 엄청난 것으로 불로장수와 불로불사에 이르는 도를 얻을 수 있다. 도화극락밀전 또한 그 도에 근간을 둔 것으로 능히 삼화가 일치되고 오기가 조화를 이루며 대성을 이뤘을 시 불사의 경지에 들 것이다.
“거참, 거창하기도 해라.”
천박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비틀리는 자세 하나도 신경 써야 하며 열락에 들떠 흘리는 신음 소리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몸짓은 교태롭게, 신음은 간드러지게 하되 감미로워야 하고 입맞춤 하나에도 기교가 있으니 이것 또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또한, 입맞춤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처음은 가볍게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수줍음을 띤 채 맞대는 걸로 시작하는 게 좋다.
그다음으로 상대의 몸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며 부드러운 느낌을 강조하고, 상대의 혀가 들어오면 살짝만 벌린 채 입술에 부끄러운 떨림을 남겨야 한다.
응하고 물러서기를 몇 차례 반복하고 수긍하듯 상대의 혀를 휘감아 주되 너무 지나치게 강한 반응은 자제하며 상대의 반응을 살핀다.
상대의 몸에 열기가 피어오르고 깊숙이 들어와 거칠게 움직일 때는 호흡을 조절하며 열정적으로 순응하되 그 끝을 살짝 건드려 자극을 가한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방향을 바꾸며 호흡을 뱉는 사이에도 아랫입술을 깨물어 자극을 주는 것으로 상대에게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얼씨구, 입맞춤 한 번에 이렇게까지 해야 한단 말이야? 하아, 기가 막히네.”
방사를 치르기 전 감각이 둔감해 충분한 전희를 즐겨야지만 성적인 쾌감을 얻는 여자가 있는 반면 남자 또한 성감에 민감한 체질이 있다.
그럴 때는 처음에는 입술이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것처럼 작은 자극을 주고 두 번째로는 부드럽게 쓸듯이 감미로운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좋다.
이같이 성감에 민감한 체질들은 처음부터 너무 지나치게 밀고 나간다면 오히려 상대를 당황하게 하거나 불쾌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성감을 찾는 일이다. 성감은 이마부터 눈두덩이, 귓바퀴나 귓불이 예민하고 귀 안을 탐할 때는 조심스럽게, 되도록이면 감미로운 신음과 뜨거운 숨결로 자극하는 게 좋다.
또한, 대체로 부드러운 등줄기나 목, 유두는 민감한 만큼 강약을 조절하고, 배꼽을 지나 특히 옆구리는 자칫 간지러울 수도 있으니 꾹꾹 누르듯이 손끝으로 더듬어 가며 찾는 것이 좋다.
그리고 남자의 상징인 음경은 성급하게 틀어쥐어서는 안 되며 쓸어내리듯 하는 것이 좋고, 가장 예민한 옥경은 특히 더 조심을 기해야 한다.
혀끝으로 자극을 가하다가 부드럽게 감싸듯 입안에 품는 것이 좋고, 기둥은 살짝살짝 깨물어 주듯 핥아야 하며 신낭은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듯 자극해야 한다.
“아이고, 나 미쳐.”
여자와 남자는 신체구조가 다르다. 그러나 쾌감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누가 더 우월하다는 건 정할 수가 없다.
본시 여자의 음문은 예민한 만큼 작은 자극에도 쾌감을 얻을 수 있지만, 남자는 항문으로 양물을 받아들일 경우 고통을 동반하게 된다.
또한, 수축력이 오히려 여자들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에 자칫 지나치게 강한 조임은 상대까지도 고통스럽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면, 될 수 있는 대로 몸에 힘을 빼고 호흡을 조절해 몸을 부드럽게 이완시키는 게 좋다.
쉽게 말해 양물이 몸 안으로 들어올 때는 부드럽게 풀어 주듯 힘을 빼고 나갈 때는 아쉬운 듯 잡아채 줘야지만, 상대로 하여금 쾌감에 들게 할 수 있다.
그리고 뿌리는 강하게 압박하고 옥경은 질감 나게 마찰하며 기둥은 움직임에 무리가 없게 빡빡한 느낌을 전해 줄 정도로만 조여 준다.
그같이 따뜻하면서도 뜨겁지 않게, 강하게 조이면서도 부드러움을 간직해야만 한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이 과정만 통과한다면 고통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항문에는 사람마다 다른 위치에 있으나 가장 예민한 부분이 있고, 그것을 찾아낸다면 고통조차 느낄 수 없게 쾌감을 얻을 것이다.
가장 중시해야 할 점은 남자는 여자보다 더 불리한 상황이라는 걸 명시하고 행동 하나에도 조심을 기해 상대의 쾌감을 최고조로 높여 주며 완벽하게 통제하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