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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틱 캐트시 (2화)
내 참, 내 집인데 내가 불편해야 하다니. 난 남자의 눈이 음험하게 빛나는 걸 보고 혀를 찼다. 아무래도 음험한 짐승을 주운 것이 분명하다. 내 항문에 위기를 다시 한 번 느꼈다. 이거야말로 고양이 앞에 생선 꼴 아닌가.
아니, 나까지 저 미친 인간, 혹은 고양이의 망상증에 참여하는 거 같아서 관뒀다. 그저 고개를 붕붕 내젓고는 어젯밤 채 정리하지 못한 마트 봉투에서 찬거리를 꺼냈다. 그리고 익숙하게 참치 통조림을 땄다.
“고양이면 생선 먹지?”
그 물음과 동시에 남자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그런 사고방식은 버려.”
가만히 앉아 있던 남자는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고양이면 생선이다’라는 건 흑백논리에 버금가는 편견이지.”
고대 유물 같은 사고방식을 버리라고 남자가 말했다. 아니, 대화를 나누면서도 이상했다. 워낙 내가 사람과 교류가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대화 자체가 이상했다. 혹시 내가 너무 홀로 있어서 정신병이라도 생긴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 큰 남자 둘이서 나누는 대화가 지나치게 비상식적이었기 때문이다. 남자는 내가 자신을 한낱 고양이 취급하는 것이 기분 나쁜 모양이었다.
“하등 종족과 우리를 빗대는 건 척살감이라고.”
확실히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다. 이 정도면 정말 정신병자 수준 아닌가. 내가 빤히 쳐다보자, 남자가 희미하게 웃었다.
“고양이가 생선을 먹는 건 자체적인 타우린 형성이 어려워서야. 덧붙여, 난 그렇게 열등하지 않아.”
멍하니 쳐다보는 내게 여전히 웃는 얼굴로 남자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애완 고양이 취급하는 건 모욕적인 언사라고.”
네가 네 입으로 고양이라며. 순간 억울해졌지만 귀찮아져서 알았다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말하는 남자의 얼굴에서 묘하게 당당하면서도 태생적으로 대우받고 자란 자의 오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잔뜩 확신이 담긴 미친 소리에 난 그저 담담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정말 고양이처럼 도도한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괴상한 남자였다.
난 부스스한 머릴 긁적이며 대충 시선을 틀었다. 그래, 넌 맘대로 지껄여라, 난 밥이나 볶을게. 대충 기름을 빼낸 참치를 투척하고 김치와 달달 볶았다. 밥까지 넣자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입에 담배를 문 채 연신 볶다 보니까 조금 덥다. 레인지 후드를 켜자 조용한 부엌에 윙윙거리는 소음이 들어찼다. 밥이 다 완성되고 난 테이블에 프라이팬을 내려놨다. 어슬렁거리며 걸어온 남자는 곧 의자에 주저앉았다. 다시 보아도 정말 흔치 않은 외모였다. 검은 머리칼에, 새파란 홍채가 인상적이었고, 피부는 미끈할 정도로 희다. 가만히 쳐다보는 날 보며, 남자가 입술을 달싹였다.
“왜, 꼴려?”
“……뭐, 뭐?”
순간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역시 남자가 말하는 수준은 확실히 외모보다 떨어졌다. 난 그저 신의 공평함에 감탄할 뿐이었다.
저 미친 듯한 뻔뻔함이 이해될 정도로 남자의 외모는 엄청났다. 분명 야성적인 맹수의 느낌이 가득한 데다 위험한 분위기인데도, 도도하고 고혹적인 느낌이 공존했다. 남자는 웃음기를 띤 얼굴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속눈썹이 길어서 눈 아래가 음영이 졌다. 정말 축복받은 얼굴이구나. 밥을 먹던 남자가 문득, 고개를 들고 내게 물었다.
“왜 이름 안 물어봐?”
내가 왜 미친놈과 통성명을 해야 해. 내가 심드렁한 얼굴로 쳐다보자 남자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참, 어이가 없군. 난 조금 귀찮음을 무릅쓰고 물었다.
“이름이 뭐야?”
내 물음에, 남자는 흘끗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표화.”
표화. 마치 마법 주문처럼 착 들어맞는 목소리에 난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표화라, 정말 어울리는 이름이다. 그림 같은 남자에게 어울리는 그림 같은 이름. 옛 조상들은 검은 고양이를 표범 표, 꽃 화자를 써서 표화묘라고 은유적으로 칭하곤 했다. 어쩐지 흑표범 같은 앞의 녀석을 보면서, 난 다시 인정해야 했다.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 난 남자를 보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잘 어울려.”
그 말에 남자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그 눈동자와 마주한 나는 순간 할 말이 없어져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 기묘한 정적이 불편해서, 나는 그것을 회피하듯 내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은 김은중이야.”
평소 통성명을 안 하는 성격인데, 나는 마치 남자의 얼굴에 홀린 것처럼 말했다. 나와 가만히 눈이 마주친 남자는 쉰 목소리로 대꾸했다.
“응, 알아.”
가만히 속삭이듯 대답한 남자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안다고? 순간 내 미간은 찡그려졌다. 난 전혀 이 남자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만사에 관심이 없는 타입이라고 한들, 이렇게 인상적인 외모의 남자를 잊을 리는 없었다. 내 시선과 딱 마주한 남자가 담담한 얼굴로 대꾸했다.
“넌 내 운명이니까.”
아. 소름 끼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남자를 보며, 나는 손에 든 숟가락을 툭 떨어뜨려 버렸다. 애초에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드문 나에게, 운명이란 단어는 너무 오랜만에 듣는 말이었다.
***
식사가 끝났다. 제대로 먹지도 못한 나는 멍하니 프라이팬을 설거지통에 밀어 넣었다.
정신이 복잡했다. 타인과의 교류에 익숙지 않을뿐더러 어둡고 폐쇄적인 경향이 다분한 내가, 타인을 집에 끌어들인 것도 모자라 자연스럽게 밥까지 대접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것투성이였다. 간신히 들어갔던 회사에서조차도 사람들과 접촉하는 게 싫어 은둔하며 다녔던 나였다. 인간 알레르기라고 해도 무방해도 좋을 내가,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괴상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조금 사람 같지 않은 사람, 아니, 정확히는 자신이 고양이라고 우기는 남자를 나는 집안에 들여놓았다.
멍하니 수세미에 세제를 짜내고는, 심드렁하게 기계처럼 설거지하기 시작했다. 잘그랑거리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물소리. 멍하니 그것만 내려다보며 손을 움직이던 나는, 곧 내 어깨에 박히는 통증에 윽, 하고는 움츠러들어야 했다. 어느새 인기척 없이 다가온 남자가 내 어깨에 이를 박아 넣었다.
“저리 안 비켜?”
당황한 것과 다르게 굉장히 무심한 목소리가 나가 버렸다. 당장에라도 내치고 싶었지만 손에 낀 고무장갑에서 물이 떨어지는 게 싫어서 관뒀다. 눈이 마주친 남자는 조심스럽게 손을 떼어 내고는 물러났다. 아랫입술을 핥은 남자가 피식 웃었다.
“미안.”
전혀 미안하지 않은 얼굴로 싱글 웃으며 하는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남자가 말했다.
“너한테서 캣닢 냄새가 나.”
캣닢[Nepeta cataria]. 정확히는 박하 과에 속하는 식물로, 체내에서 Nepetalic acid라는 물질로 대사되어 고양이에게만 흥분, 환각 작용을 일으키는 식물이다. 개박하라고 불리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잘 알고 있는 이유는, 어렸을 적 고양이를 키웠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없이 혼자 지냈던 시절 난 정신병을 앓고 있었고, 그 치료 명목으로 애완동물을 키웠다. 제단에서 날 위해 보조금도 기부해 주었고, 평일에 몇 시간 동안은 가사 도우미가 오기도 했었다.
물론 나의 정신병은 꽤 많이 호전되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독특한 버릇들은 그때 그 잔재였다. 생각해 보면 난 핸디캡투성이었다. 약간의 대인기피증, 어렸을 적 겪었던 자폐증, 편두통, 가끔 현실의 나와 괴리되는 느낌을 받는 이인증, 그리고 내가 전화 상담원을 때려치우게 된 계기인 공황장애.
그래, 난 어울리지 않게 전화 상담원도 했었다. 하지만 모조리 실패. 이 정도면 말 다한 거다. 물론 지금은 다 미약한 수준이지만 좀만 더 심해지면 정신병자 타이틀을 거머쥐기엔 충분하다. 난 근근이 나오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먹고사는 정신병 이력의 남자다.
어쨌든, 어렸을 적의 고양이를 키우던 경험 때문인가, 난 사람보다는 동물을 좋아하고 특히나 고양이를 좋아했다. 고양이와 짐승이 나오는 티브이 프로만 봐도 매번 들떠서 엄지손가락을 빨며 긴장했다. 사람보다 동물이 훨씬 낫다는 지론은 아직도 변치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일정 이상 사람과 붙어 있으면 거부감을 느끼는 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나는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송곳니를 어깨에 박아 넣으며 깨물었는데도. 남자는 멍하게 있는 나를 보며 화사하게 웃었다.
“달콤한 냄새가 나. 꼭 마약 같아.”
남자는 내 목덜미에 다시 닿을 듯 말듯 다가왔다. 정말 이 새끼 약쟁이가 아닐까. 나는 드러그에 코를 파묻고 다니는 정키를 떠올리며, 남자를 묵묵히 응시했다. 남자가 내 목덜미에 코를 묻은 채 속삭였다.
“나, 너랑 같이 살게 해 주라.”
명백한 유혹이 담긴 목소리였다.
***
길바닥에서 살아 있는 생물을 거두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에 관심 없는 내가 무슨 심경에 변화가 생겨서 그랬는지 스스로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고민하지 않기로 맘먹었다. 남자를 내쫒는 것조차 귀찮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뒤에서 끌어안은 채 목에 입술을 갖다 대는 남자-정확히는 자신을 고양이라고 주장하는 자칭 고양이-를 데려온 것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뒤에 딱딱하게 닿는 하반신의 감각에 인상을 찡그렸다. 미친 고양이를 넘어서 발정 난 고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깨닫기 무섭게, 난 발바닥으로 내 뒤의 무례한 녀석의 발등을 짓밟고 뒤통수로 들이박았다.
“윽.”
금세 뒤로 물러나는 녀석을 휙 노려보며 난 수도꼭지를 잠갔다. 이미 설거지를 마친 건조대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만지면 죽인댔지.”
타인과 접촉 따위는 잘 하지 않는 탓에 신체 접촉을 혐오하는 수준인 나는 인상을 구겼다. 평소 무감각한 얼굴이 인상이라도 썼을 때는 굉장히 야차같이 성격 더러워 보인다는 소리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내 흉흉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저 불청객-미친 발정 난 고양이-은 유유하게 웃어 보였다.
“잘못했어. 용서해 줘.”
전혀 반성의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 피식 웃는 모양새가 야살스럽기 그지없다. 골격만 아니었으면 잠시 성별을 헷갈릴 정도로 굉장히 선이 고운 얼굴이었다. 다만, 분위기나 눈빛이나 음성에서 남성스러움이 묻어 나오기에 사실 예쁘장한 얼굴임에도 남자답게 잘생겼다는 느낌이 강하다.
난 놈을 보고 있자니 편두통이 다시 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선반 위에 놓아둔 약통을 꺼냈다.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아니, 다섯 알? 혹시 모르니까 그냥 열 개를 먹자. 채 고민도 없이 알약을 물도 없이 씹어 삼켰다. 그러한 내 모습을 괴이하게 쳐다본 녀석이 물었다.
“맛있어, 그게?”
맛있어 보여? 난 황당한 얼굴로 그를 응시했다. 사실상 강박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정신적인 결함 때문에 먹는 약은 수십 가지였다. 의사는 이제 그 약들을 안 먹어도 된다며 만류했지만, 나는 복용을 멈추지 않았다. 안 먹으면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래, 나는 이 약들에 중독이 되어 있었다. 가끔 시리얼처럼 우유에 말아서 먹거나 과자처럼 먹는 게 습관처럼 굳어 있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쳐다보던 녀석은 이내 휙 내 목을 끌어당겼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놈의 손이 더 빨랐다. 뒷목이 붙잡힌 상태에서 부드럽고 가벼운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찰나 차가운 녀석의 손이 내 피부 표피에 닿자 시원한 기분이 들었고, 금세 입술 새로 비집고 들어온 타인의 혀는 뜨겁고 물컹했다. 곧 거센 해일이 불어 닥친 것처럼 머릿속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순간 이상하게도 난 반항도 못한 채 굳어서 고양이 앞의 생선 꼴이 되었다.
날 지긋이 바라보며 키스하는 시퍼런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크게 확장했다. 파동이 일어난 것처럼 커진 눈동자 안에 파도가 보이는 것 같았다. 보통 인간 같지 않은 시퍼런 눈동자는 거센 바다같이 날 휩쓸었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난 내 입안을 헤집은 요망한 혀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분명 팔다리가 멀쩡했음에도, 침입자의 행동을 수수방관한 꼴이 되어 버렸다. 마취라도 당한 것처럼.
쪽.
경쾌한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떼어졌다. 쓰디쓴 약 맛이 내 입술에서 녀석의 입술로 옮겨 갔다. 쌉쌀한 맛에 살짝 미간을 찌푸린 녀석이 말했다.
“……쓰잖아.”
뻔뻔하게 대꾸하는 얼굴이 묘하게 웃음이 걸렸다. 순식간에 당했단 기분이 들자마자 손을 뻗었다. 명치를 겨냥한 주먹을 재빨리 피한 녀석이 변명하듯 대꾸했다.
“왜 맛있는 것처럼 먹어?”
지금 그걸 내 탓으로 돌리는 거야? 내가 불쾌한 얼굴로 쏘아보자, 자연스럽게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훑어 낸 녀석은 싱긋 웃었다. 이미 때릴 의욕조차 상실한 내가 입술을 벅벅 닦아 내자, 가만히 쳐다보면 녀석이 물었다.
“왜 약을 먹는 거야?”
“정서가 불안해서.”
특히나 방금처럼 타인과 접촉하는 게 진저리 나거든. 네 덕분에 더 정서가 불안해졌다는 말은 입속으로 삼켰다. 놈은 입술을 비틀며 대꾸하는 날 가만히 쳐다봤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시선이 접착제처럼 얽혀 들었다. 그 갑갑한 기분에 또다시 심장이 방망이질을 쳤다. 답답하고 불쾌한 기분에 심장 부근을 쿵쿵 두드리며 심호흡을 하자, 가만히 쳐다보던 녀석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멍들겠다, 너.”
자연스럽게 집안을 차지하고 들어선 불청객은 싫어하는 터치도 서슴지 않으며, 거기에 자연스럽게 반말까지 하고, 또 이젠 내 작은 것들까지 관여하려 들었다. 또한 사생활에 관심이 많았다. 정말 맘에 안 든다. 난 이물질이라도 털어 내는 것처럼 손목에 붙은 손을 휙 떨쳐 내고는 물러섰다.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으면 심장이 안 좋아.”
부정맥처럼 심장이 울렁거리는 것은 사람을 우습게 만들었다. 이 괴상한 중독과 배타적인 성격, 독특한 외모 덕에 나는 평범한 삶과는 거리가 멀게 살았다. 가만히 날 쳐다보던 녀석은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병이 아니야.”
해괴한 소리에 시선을 돌리자, 확고부동하게 입술을 다문 채 녀석이 단정 짓듯 말했다.
“자연스러운 거지.”
무슨 의미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녀석이 덧붙였다.
“질병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일 수도 있고.”
그리고 별 박은 것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로 빤히 날 쳐다보던 녀석이 말했다.
“아니면 환경적인 조건이 원인일 수도 있지. 예를 들어…….”
예를 들어?
“갑작스러운 외부의 자극. 예를 들어 내 농밀한 키스라든지.”
그 말과 동시에 난 얼굴을 완전히 구겼다. 역시 잘못 들여왔다. 그것도 괴상하고 변태 같은 놈으로.
***
미친 고양이, 혹은 남자를 주워 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나는 멍하니 달력을 보면서 편두통으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요즘 더욱더 뒤숭숭해진 꿈 때문이었다.
난 항상 얕은 잠에 들었고, 자는 동안 계속 꿈을 꿨다. 꿈은 악몽은 아니나 일어나고 보면 찝찝하게 만드는 것이 많았다. 복권에 당첨되는 좋은 꿈이라면 모를까, 정말 괴상한 꿈들의 연속이었다. 꿈자리도 뒤숭숭하고, 깨고 나면 머리가 지끈거리는 통에 잠도 자지 못했다. 정말 만성적인 고질병이었다.
습관적으로 침대 옆의 약통을 뒤적거렸지만, 신경안정제는 다 먹은 모양이었다. 틈만 나면 술에는 안주로, 밥에는 반찬 먹듯이 약을 집어 먹었으니 그럴 만했다.
항상 꿈의 시작은 괴상한 나비의 향연으로 시작한다. 그 나비를 쫓아가던 나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꼭 그 앞에 등장하는 것은 시커먼 어둠, 그리고 체셔 고양이의 비웃는 듯한 얼굴이다.
잠에서 깬 나는 곧 정신이 멍해졌다. 어째서 몸이 무거운가 했더니, 내 목덜미 위로 운동으로 단련된 게 분명한 근육질의 팔뚝이 얹혀 있었다. 피부 접촉에 진저리를 치는 나는 정수리 위로 닿는 숨결에 잠이 완전히 깨 버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난 거센 괴력으로 녀석을 밀쳐 냈다. 쿵. 녀석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윽, 뭐야.”
짜증스럽게 구기는 얼굴을 보며 난 차분하게 양 관자놀이를 눌렀다. 킹사이즈 침대를 사 놓기는 했지만 순전히 넓게 자는 게 편해서였을 뿐, 타인과 같이 잠을 자려고 산 것은 절대 아니었다.
“소파에서 자랬잖아.”
짜증스럽게 대꾸하자 가만히 쳐다보던 녀석이 대답했다.
“그렇지만 난 여기가 더 좋은걸.”
그 말에 치가 떨리는 얼굴로 쳐다보다가, 그것도 통하지 않는 뻔뻔한 얼굴에 한숨을 쉬었다. 평소 감정 변화에 무딘 내가 이렇게 극심하게 짜증이 일었던 적이 있었던가. 참 여러모로 대단한 재주를 가진 놈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대다수가 짜증,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문제였을 뿐.
“시발, 짜증나.”
결국 침대 위 콘솔에 올려 둔 담배와 약병을 집어 들었다. 약이 떨어졌다는 건 아까 확인했고, 하필 담배마저도 뚝 떨어졌다. 짜증이 치솟았다. 난 결국 신경질적으로 약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분노 폭발. 새벽부터 신경이 예민해져서 눈을 치켜뜨자, 가만히 보던 녀석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사실, 내가 몰래 약 버렸어.”
뭐? 그제야 어제 마트 들리면서 약국도 들렀던 것이 생각났다. 잦은 약 처방에 기억력까지 가물가물해지는 모양이었다. 난 이상스럽게 비워진 약들의 행방이 어떻게 된 것인지 그제야 알아챘다. 결국 짜증이 극에 달한 난 성난 얼굴을 구겼다. 제기랄, 진짜 짜증나네. 순간 화가 치솟아 노려보자, 녀석이 낮게 대꾸했다.
“성격 나오는 거야?”
“진짜 성격 보여 줘?”
내가 표독스럽게 대꾸했다. 그 말과 동시에 이미 손은 나갔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자, 퓨즈가 나간 것이다. 평소 무감각한 상태지만 한 번 중심을 잃으면 확 돌아 버리는 것이 내 결점이었다.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잘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해고 사유가 상사 폭행이었던가.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그 뚱보 사장을 키보드로 사정없이 후려친 뒤였다.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신경 거슬리는 소리는 꽤 해 댔다.
모친의 약물복용으로 난 태어날 때부터 머리카락색도 흐릿한 회색이고 홍채도 회색이다. 특이한 외모부터 시작해서 비협조적인 성격. 내 스스로도 내가 핸디캡 덩어리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상사가 알지도 못하는 내 가족까지 욕해 대자 나는 아마도 홧김에 후려쳤던 것 같다. 내 부모를 욕한 그 사장은 아마 내가 애라도 가졌다면 그 애까지 욕할 인간이었다.
어찌 되었건, 난 키보드로 후려치고 깔끔하게 잘렸다. 물론 미련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화 상담원이라는 직업은 내게 도무지 맞지 않는 직업이었다. 그전에 직장에서 맡았던 직책이 마약 운반자 행동대장급이었으니, 전화 상담이라는 직업이 나에게 맞았을 리가 없다.
애초에 정상 범위에 드는 사람들의 것을 탐낸 게 죄다. 모친의 약물중독, 그리고 날 임신했단 사실에 살충제를 먹고 자살하려고 했던 행동은 이런 괴물을 낳았다. 아직도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회색 눈동자와 회색 머리에 진저리를 쳤다.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이 질리도록 싫었다. 내 스스로도 내가 싫은데 다른 이는 오죽할까. 가끔 맞부딪히는 무감각한 시선의 홍채는 파충류의 것처럼 차가워 자신도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약물중독으로 죽고 만 엄마의 피를 이어받아 그런가, 결국 나는 비록 마약은 아니었지만 일반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약에 죄다 중독되어 있었다.
쾅!
어느새 내 손에 들린 서랍장이 녀석의 머리로 날아갔다. 서랍장은 평소와 달리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마 맞는다면 사망 아니면 중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