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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풍 1권(6화)
제2장 평로군(平盧軍)(3)
“끙!”
연호는 비지땀을 흘리면서 연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밥을 먹고 난 뒤, 흑 노사는 연호에게 평로군의 군사로서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검술과 간단한 신법과 보법을 가르쳐 주마고 하였다.
시전에서 설영의 무공을 보고 놀랐던 연호로서는 귀가 솔깃해 질 말이었다.
그러나 흑 노사가 무공의 가장 기초 수련이라고 하며 가르쳐 준 마보는 생각처럼 쉬운 것이 아니었다. 반 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팔다리가 후들거려 오고 있었다.
연호는 곧바로 자신이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는 후회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연호의 속내를 짐작했는지 흑 노사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힘들면 그만하여라. 오늘 일은 잠시 꿈을 꾼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아, 아니에요. 할 수 있어요. 끙!”
연호는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이를 악물었다. 아침에 그 난리를 치면서 겨우겨우 평로군에 들어왔는데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흑 노사가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냥 돌아가기는 싫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평로군의 군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힘들면 언제든지 말을 하여라. 곧장 집으로 돌려보내 주마.”
“아, 아니에요. 전 절대 돌아가지 않아요.”
연호는 집을 떠나오던 어젯밤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었다.
흑 노사가 다시 말을 건넸다.
“네 뜻이 그러하다니 한 시진만 버텨 보거라. 평로군의 군사라면 누구나 한 시진은 가뿐하게 버티는 수련이니 너도 할 수 있을 게야.”
“끙! 하, 한 시진…….”
연호는 한 시진이란 말에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 자신은 고작 일각도 버티기 힘들 것 같은데 한 시진이나 마보를 유지해야 한다니 암담한 것이다.
그러나 이대로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았다.
흑 노사는 연호의 표정을 보더니 빙긋이 미소를 짓고는 한쪽 옆에 벌러덩 누워 버렸다.
연호로서는 그토록 인자하게 느껴지던 흑 노사의 미소가 더 이상 인자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시 일각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연호는 전신이 사시나무 떨듯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충권과 양장의 형태를 하고 있는 양팔은 당장에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았고, 두 다리의 허벅지 심줄이 끊어져 나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잠꼬대처럼 중얼거리는 흑 노사의 말이 들려왔다.
“마보는 몸의 중심이 하단전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자세이지…….”
순간 연호는 어릴 적 아버지가 활쏘기를 가르치면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활을 쏘기 전에 들이쉰 숨을 모두 아랫배의 단전으로 몰아넣고 유전을 하는 것은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단전은 사람의 중심이라, 단전에 숨을 가득 담은 채 단전만을 의식하면 비록 강풍이 불더라도 궁사의 손끝은 한 점 미동도 없게 된다.’
혼미해져 가는 가운데 아버지의 말을 떠올린 연호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코끝으로 들이쉰 숨을 모두 배꼽 아래 한 치 세 푼의 자리에 있다는 단전으로 밀어 넣고는 오직 단전만을 의식하려고 하였다.
그렇게 몇 번 들숨을 아랫배의 단전으로 밀어 넣기를 반복하자 사시나무처럼 떨리던 온몸의 진동이 점차 잦아들더니 한순간 거짓말처럼 안정이 되었다. 비록 양팔과 두 다리의 감각은 전혀 없었지만 들숨으로 가득 찬 단전은 확실하게 인식이 되고 있었다.
소란한 소리에 연호가 퍼뜩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명안대의 군막 안에 누워 있었다. 아마도 마보를 하다가 쓰러진 그를 흑 노사가 군막 안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
정신을 추스른 연호가 힘겹게 몸을 일으키려 하자 또다시 주위에서 소란스러운 말들이 쏟아졌다.
“어! 애새끼 깨어났네.”
“병신 같은 놈이 겨우 마보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냐!”
“니미! 나는 마보를 한 채 삼시 세끼도 다 먹을 수 있는데 말이야.”
“애새끼가 그렇지 뭐!”
자신이 반 시진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는 말에 살짝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분한 마음을 달래던 연호는 흑 노사를 찾아보았다.
흑 노사는 한쪽 구석에 앉아 눈을 감고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연호가 엉금엉금 기다시피하여 다가가자 흑 노사가 눈을 뜨고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깼느냐?”
“예……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무에 있느냐. 처음부터 한 시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다만 그 이치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정신을 차렸으니 이제 본격적인 수련을 하도록 하자.”
“보, 본격적인 수련……?”
연호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가장 기초 수련이라는 마보만으로 이미 쓰러졌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본격적인 수련이라고 하니 간담이 서늘해지는 것이다.
잠시 후, 연호를 데리고 강변에 이른 흑 노사는 주위를 둘러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본시 무공이라는 것은 정기신(精氣神)이 일체가 되어야 제 힘이 나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베고자 하는 의념(意念), 강한 기(氣)와 조화된 신체(身體)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궁법으로 따지면 과녁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호흡을 다스린 뒤 올바른 자세로 시위를 당겨야 과녁에 화살을 명중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예…….”
“그래 궁법을 이미 익혔으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정기신을 일치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길러야 하는 것이 체력이다. 올바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보를 가장 기초적인 수련이라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
연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의 눈에는 수심이 가득하였다. 흑 노사가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봐서 보나마나 마보와 같이 힘든 수련을 시킬 것이 분명하였기 때문이다.
흑 노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너도 무공을 익히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무공은 평생을 배워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방대하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인들은 한두 가지 무공을 정하여 그것을 특화시켜 매진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나는 하나의 검법만을 익혔다. 네가 만약 포기하지 않고 수련한다면 나의 검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제가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 검법을 익혀 설영처럼 허공을 막 날아다니고 그럴 수 있는 거죠?”
연호가 기대 가득한 눈으로 묻자 흑 노사는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설영의 재주는 신법이라는 것으로 무인이라면 특화된 무공 외에 기본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너 또한 그러한 신법과 보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우와! 그럼 저도 설영처럼 막 허공을 날아다니고 그럴 수 있는 거네요.”
“허공을 날아다니는 것은 몰라도 너는 나의 제자이니 설영 정도는 가볍게 제압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히!”
연호는 무공을 익히게 되면 무섭게만 보이던 설영을 가볍게 제압할 수 있다는 말에 잔뜩 신이 났다.
흑 노사가 미소를 띠며 다시 말을 건넸다.
“그래, 그러니 절대 포기하지 말거라.”
“예!”
“아무튼 내게서 검법을 익히기 위해서는 먼저 보법 몇 가지와 신법 몇 가지, 그리고 심공을 익혀야 한다.”
“저기 사부님, 심공은 뭐예요?”
“심공은 기를 기르기 위한 수련이다. 호흡을 길게 가져가고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내기 위한 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심공은 나중에 어느 정도 체력이 길러진 후에 가르쳐 주마. 먼저 오늘은 신법만 배워 보자.”
“예, 알겠어요.”
“신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경신법과 유법이다. 경신법은 네가 말한 허공을 날아다니기 위해서 반드시 익혀야 하는 것으로 몸을 가볍게 하여 빠르게 이동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유법은 몸을 부드럽게 하여 상대의 공격을 흘리거나 외부의 충격을 완화하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다.”
연호는 흑 노사의 말을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두 눈을 반짝이며 흑 노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무공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을 잔뜩 부풀어 있는 것이다.
제3장 명안대(明眼隊)(1)
“쓰읍! 으흐! 쓰읍! 으흐!”
연호는 입을 다문 채로 코로 묘한 소리를 내며 배를 들썩이고 있었다. 숨이 가쁘고 힘이 들 때 호흡을 안정시키는 연호만의 방법이었다.
처음 경신법을 익히기 위해 강변의 백사장을 돌고 난 뒤 숨이 가빠진 연호가 허리를 숙이고 입으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자 흑 노사는 불호령을 내렸다. 가슴으로 호흡을 한다는 것이었다.
호흡은 당연히 가슴으로 하는 줄 알았던 연호로서는 당황스러운 질책이었다. 그러나 흑 노사의 설명을 듣고 계속 몸으로 겪어 보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슴을 들썩이며 입으로 호흡을 하게 되면 기가 약해지고 오히려 회복이 느렸다.
반면에 아무리 숨이 가빠도 입을 닫고 코로 숨을 들이쉰 뒤에 단전으로 숨을 밀어 넣기를 반복하는 복식호흡법은 당장에는 힘이 들지만 회복이 빨랐다. 또한 기의 흐트러짐도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한 달이 지난 지금에는 들숨을 몇 번 들이쉬지 않아도 곧 안정을 찾게 된 것이다.
순식간에 안정을 찾은 연호는 자신이 달린 백사장 위를 쳐다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사부인 흑 노사의 말대로라면 경신법을 제대로 익혔다면 백사장 위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데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연호는 사부인 흑 노사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경신법을 가르쳐 주던 첫날 흑 노사가 직접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백사장 위를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낙담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연호는 천천히 걸음을 옮겨 명안대가 있는 군막으로 향했다. 다음 수련인 마보를 비롯한 체력 훈련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아침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식 시간에 늦으면 정말 국물도 없었다.
연호가 조식을 먹기 위해 명안대가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새까만 얼굴에 빼빼 마른 체형의 장한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 다가왔다. 그는 오골계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강연추였다.
“여! 꼬맹이. 산보 다녀오냐?”
“…….”
연호는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강연추는 평소에도 그를 볼 때마다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그의 신경을 긁어놓곤 하던 자였다. 괜스레 대꾸를 해 봤자 그에게서 좋은 소리를 들을 일이 없는 것이다.
강연추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말을 뱉었다.
“니미! 이 새끼가 아침부터 또 말을 씹네. 흑 영감만 아니면, 시파!”
“사부님만 아니면 뭐요!”
연호가 걸음을 멈추고 눈을 치켜뜨며 대꾸했다. 그냥 무시하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왠지 강연추의 말이 유난히 그슬렸던 것이다.
강연추가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주먹을 치켜들면서 말을 뱉었다.
“햐! 요 쥐방울만 한 놈이 눈 부라리는 것 보게. 이걸 콱!”
“때리지도 못할 거면 쓸데없이 힘 빼지 말고 밥이나 처 드시죠!”
“야! 오골계 시박 새캬! 애새끼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연호의 냉랭한 대꾸에 화가 치밀어 오른 강연추가 주먹을 날리려고 하자, 어느새 나타난 구레나룻을 기른 장한이 그의 팔을 잡으며 호통을 쳤다. 장한은 명안대의 부대주인 조주한이었다.
“이거 좀 놔 보슈! 이 개놈의 애새끼가 싸가지 없이 말하잖아요!”
“시발! 당신이 처음부터 말을 거지같이 했잖아!”
강연추가 조주한에게 하소연하듯이 말하자 연호가 눈을 부라리며 대꾸했다. 그동안 명안대에 적응하느라고 애써 누르고 있었던 연호의 성질이 폭발한 것이다.
“뭐! 시발! 이 개놈의 종자가!”
강연추가 조주한의 팔을 강하게 뿌리치고는 욕설을 내뱉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연호는 슬쩍 몸을 뒤로 물려 강연추의 주먹을 피해 버렸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인상이 더러운 강연추가 휘두르는 주먹이니만큼 어린 연호가 겁을 먹을 만했지만, 오히려 여유만만했다. 어릴 적부터 성질이 사나웠고, 싸움에는 이골이 났기 때문에 그 정도에 겁먹을 연호가 아니었다.
조주한이 다시 강연추를 붙잡자 연호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강연추를 노려보았다.
도발적인 연호의 모습을 본 강연추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조주한을 뿌리치며 신형을 박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