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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풍 1권(12화)
제5장 정주지사(鄭州之事)(2)
“꼬맹아! 여기서 뭐하냐?”
명안대의 대주인 검우곤이 무뚝뚝한 표정으로 묻고 있었다.
연호가 아쉬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싸움이라도 난 줄 알고 구경하러 왔는데, 공놀이를 하고 있네요.”
“공놀이? 하긴 축국이 공놀이이기는 하지. 근데 너는 저거 재미없냐? 저거 무지 재미있는데…….”
검우곤이 연병장 쪽을 힐끔거리며 말하자 연호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조는 것 외엔 도통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검우곤이 축국이라는 공놀이에 상당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호는 급히 표정을 바꾸며 다시 말을 건넸다.
“보기에는 무척 재밌어 보이는데요. 전 해 본 적이 없어서요. 대주님은 저거 잘하시죠?”
“나? 그야 당연하지! 내가 한때는 축국으로 이름깨나 날렸지. 꼬맹이, 너도 가르쳐 줄까?”
“예? 저, 저요?”
“흠. 어디 보자. 다리도 길고 허벅지도 튼실하니 제법 날래겠구나. 좋다! 너는 이제부터 우리 명안대의 축국 대표다. 가자, 당장 가르쳐 주마!”
“대, 대주님, 그게요…….”
“왜? 내가 가르쳐 주는 게 싫으냐?”
검우곤이 살짝 인상을 찌푸리고 묻자 연호는 급히 손사래를 치며 급히 대답했다.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저야 대주님께서 가르쳐 주시면 정말 좋죠!”
“그렇지! 가자!”
검우곤은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사람들을 헤치며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연호는 괜한 일에 휘말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검우곤을 따라가야 했다. 그도 이제는 명안대원들이 대주를 두려워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검우곤은 그의 엉뚱한 소리에 누가 반박하기라도 하면 항상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검우곤의 솥뚜껑만 한 주먹이 얼굴을 향해 날아올 것을 생각하면 고분고분 그의 말을 따르는 것이 상책이었다.
연호가 검우곤의 뒤를 따라 명안대의 막사 뒤쪽으로 가자, 그곳에는 부대주 조주한과 오골계 강연추를 비롯한 여섯 명의 명안대 대원들이 모여서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들도 조금 전 연병장에서 본 자들처럼 축국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검우곤과 연호를 발견한 조주한이 먼저 말을 건네 왔다.
“어디 다녀오십니까?”
“한 명이 부족하다고 했잖아.”
“예? 그야 이번 시합이 칠인장(七人場)이니 한 명 부족하지요. 그럼, 꼬맹이를 시키게요?”
“그렇지. 왜 안 되냐?”
“안 될 것까지야 없지만 꼬맹이가 축국을 할 줄 압니까?”
“몰라!”
“예?”
“모른다고! 그러니 니들이 가르쳐!”
“대, 대주님!”
조주한을 비롯한 명안대 대원들이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검우곤을 쳐다보았다. 축국이라는 것이 가르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호는 체격이 작아 상대의 공격을 몸으로 막아 내기에도 힘들었다.
황당하기는 연호도 마찬가지였다. 검우곤 자신이 당장에라도 축국을 가르쳐 줄 것처럼 데리고 와서는 난데없이 조주한 등에게 떠맡기고 있는 것이다.
검우곤이 검미를 찌푸리며 말을 내뱉었다.
“뭐여! 불만이라도 있는 거여?”
“아, 아니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합이 당장 내일모레입니다. 생초짜에게 이틀 만에 축국을 가르쳐서 시합에 뛰게 하기엔 무리가 있지 않겠습니까?”
“그냥 해!”
“그렇지만, 장군님도 이번 시합은 우리 평로군의 자존심이 걸려 있으니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러니까 시합하고 이기라고! 지면 나한테 다들 죽을 줄 알아!”
검우곤은 잔뜩 인상을 쓰면서 으름장을 놓고는 신형을 돌려 횅하니 막사로 돌아가 버렸다.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던 조주한은 검우곤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뭐야! 시박! 우리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젠장!”
“형님, 대주 저 인간 미친 거 아니요? 성덕군 놈들은 어찌어찌한다고 해도, 보나마나 회홀 놈들과 맞붙을 텐데, 코흘리개 꼬맹이를 데리고 뭘 하란 말이요?”
“몰라, 시박 새꺄! 저 곰탱이가 그리 하라는데 나더러 뭐 어쩌라고!”
강연추가 연호를 힐끔거리며 볼멘소리를 하자 조주한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
애당초 축국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연호도 본의 아니게 눈총을 받게 되자 슬그머니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더구나 앙숙인 강연추가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힐끔거리자 더욱 기분이 나빠지고 있었다.
조주한이 연호를 쳐다보며 말을 건넸다.
“연호! 너 이리 와 봐라!”
“예…….”
연호가 쭈뼛거리며 다가가자 조주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짜증이 섞인 어투로 물었다.
“너 축국하는 거 한 번 보기라도 했냐?”
“예? 아, 예. 조금 전에 저기 연병장에서 하는 거 봤어요.”
“끙! 시박 뭘 어쩌란 말이야!”
“근데, 부대주 형님. 축국이란 게 어렵나요? 아까 보니 그리 어려워 보이지는 않던데…….”
연호가 조주한의 옆에서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강연추를 힐긋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조주한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너 축국이 어떻게 하는 것인지는 아냐?”
“그게, 뭐 그냥 발로 가죽 공을 차서 우리 편에게 전해 주면 되는 거 아니에요?”
“하긴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발만 써서 가죽 공을 우리 편과 주고받다가 상대편 구멍에 넣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발만요? 손은 쓰면 안 되고요?”
“그래, 발만! 손은 절대 안 된단 말이다. 쉬워 보이면 한번 해 볼 테냐?”
“그럴까요?”
“호! 만구야! 이 녀석에게 공 한 번 줘 봐라!”
연호가 호기심이 어린 눈빛을 보이며 응하자, 조주한은 눈에 이채를 띠고는 저쪽에서 제기를 차듯이 공을 차고 있는 한만구에게 소리를 쳤다.
슝!
한만구가 찬 공이 바람을 가르며 연호에게 날아들었다.
연호가 몸을 살짝 띄워 날아오는 공을 제기 차듯이 가볍게 차 올렸다.
위로 튀어 오른 공이 머리 높이까지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자 연호가 조금 전 한만구가 하던 동작을 흉내 내며 계속해서 몇 번 공을 차올리자 조주한의 표정이 급변하였다.
가죽으로 둥글게 만든 공에 짐승의 털을 채워 넣은 축국 공은 제멋대로 튀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이 다루기에는 까다로운 물건이었다. 그러나 연호는 처음 공을 만지는 주제에 너무 쉽게 다루고 있는 것이다.
“너, 너 이 새끼! 거짓말했지!”
강연추가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치자 연호는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거짓말이라니, 뭔 소리요?”
“너 이 새끼 축국은 오늘 처음 봤다면서!”
“처음 봤으니까 만구 형님처럼 따라하는 거 아니오?”
연호의 심드렁한 대꾸에 강연추는 말문이 막혔는지 다시 반박하지 못한 채 얼굴만 벌게지고 있었다.
조주한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호! 이 자식이 제법 소질이 있네. 이번에는 만구에게 공을 차 주어라!”
연호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한만구를 향해 공을 차자 정확하게 한만구의 발에 떨어졌다.
“햐! 요놈 요거 신기한 놈이네. 진짜 처음 해 보는 것 맞냐?”
“에이, 진짜라니까요. 제가 뭐하러 거짓말을 하겠어요.”
“그래, 그래. 어쨌든 좋다. 넌 이제부터 훈련이고 식사 당번이고 죄다 열외다. 내일모레 시합까지 축국 연습만 하는 거다!”
“그래도 되요? 사부님께서 뭐라 하실 텐데…….”
“흑 영감님한테는 내가 말을 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저리 가자. 일단 축국 규칙부터 설명해 주마!”
조주한이 염려하지 말라는 듯이 손사래를 치며 말을 건네고는 연호를 데리고 한만구 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강연추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연호의 등을 노려보았지만 곧 그 뒤를 따랐다.
조주한이 설명한 축국의 규칙은 간단했다. 손을 사용하지 않고 발이나 머리로 가죽 공을 주고받으면서 전진하여 상대편의 구멍 여섯 개 가운데 아무 곳에나 집어넣으면 한 점을 따는 것이었다.
연호의 생각에는 별로 어렵지는 않아 보였다. 다만, 방어를 하는 상대가 공을 빼앗기 위해서 대부분 심하게 몸싸움을 건다고 하니 그 점은 주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축국 규칙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명안대원들과 함께 한동안 연습을 해 보자 연호는 공을 제법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그동안 호되게 신법 수련을 한 효과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축국이 생각보다 재미가 있었던 탓인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자신의 몸놀림은 무척 가벼웠다.
그러한 연호의 몸놀림은 평로군 내에서 몸이 가장 날랜 자들이라고 하는 명안대원들도 모두 놀랄 정도였다.
반 시진 정도 뛰고 나서 연습을 마치자 조주한은 연호에게 두툼한 피풍의 한 벌을 던져 주었다. 땀에 흠뻑 젖은 무복을 그냥 입고 있다간 고뿔에 걸리기 쉽다는 것이었다.
피풍의를 등에 걸치면서 연호가 조주한에게 말을 건넸다.
“근데, 훈련은 안 하고 왜 갑자기 축국을 하는 거예요?”
“그야 회홀의 잡놈들이 우리 장군님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지.”
“회홀의 잡놈들이라면…….”
연호는 조금 전 연병장에서 축국을 하던 자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은 모두 회홀족(위구르족)의 병사들이었던 것 같았다.
조주한이 다시 말을 이었다.
“그 회홀의 잡놈들이 이번 반란군 진압에 공을 좀 세웠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지 온갖 개판은 다 치고 다니더니 급기야는 장군님이 듣는 데서 서슴없이 망언을 내뱉기까지 했다지 뭐냐.”
“망언이라고요?”
“그 시박 새끼! 골력문라인가 뭔가 하는 새끼가 고구려가 비록 옛적에는 축국을 잘하기로 소문이 났었지만 이제 나라가 망하였느니 축국을 제대로 할지도 의문이라고 했단 말이지. 그 소리를 전해 들은 우리 이회옥 장군님이 열을 받으신 것이지!”
“그래서 회홀의 병사들과 축국 시합을 하기로 했단 말이네요.”
“그렇지. 근데 시박! 우리가 축국을 해 본 지 하도 오래되어서 걱정은 된다. 회홀 시박 새끼들을 생각하면 그냥 훨훨 날아서 작살을 내 줘야 하는데 말이야…….”
조주한이 착잡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연호가 뭔가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러고 보니, 회홀 병사들의 횡포가 심하다고들 하던데, 왜 다들 가만 놔둬요? 지난번에도 성덕군의 병사들이 회홀의 병사들에게 두들겨 맞는 것을 봤거든요.”
“그거야, 다른 군 새끼들이 전부 병신들이라서 그렇지! 회홀 새끼들이 말을 좀 잘 타고 사납기는 하지만, 그래도 개자식들이 마음대로 설치는데 보고만 있으면 그건 병신 새끼들이지. 만약 우리 평로군에게 그따위로 했다간 개자식들 목줄을 다 따 버릴 거다. 이제껏 내내 돌궐족의 노예로 있다가 얼마 전에서야 겨우 얼어붙은 땅 한 쪼가리 차지한 놈들이 감히 우리 대고구려를 보고 망한 나라라고! 아, 시박! 또 열 받네!”
“아무튼 이번 시합은 반드시 이겨야 하겠네요.”
“그렇지! 시박! 이번 시합에 지면 내가 먼저 돌아 버릴 거다. 그러니 너도 정신 바짝 차려야 된다.”
“예? 제, 제가요?”
“그래, 이놈아! 난 너만 믿는다. 그리고 놈들이 거칠게 나올지 모르니 각오 단단히 하고. 혹시나 놈들이 몰래 손을 쓰거나 하면 팔모가지를 비틀어 버려라!”
“그, 그럴 게요…….”
연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대답하고는 막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불과 한 시진 전만 해도 축국이라고는 전혀 모르던 그가 졸지에 회홀과의 축국 시합을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으니 생각해 보니 황당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