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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풍 1권(16화)
제6장 전귀(戰鬼)(3)
잠을 자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대원들과 달리 용호결을 운공하며 운기조식을 하고 있던 연호는 치주성에서 전서가 도착했다는 말을 듣자 조식을 멈추었다.
연호는 자신의 옆에 누워 있던 양무오를 깨우고는 검우곤의 곁으로 다가갔다.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전서를 읽고 있던 검우곤은 전서를 와락 구기면서 버럭 소리를 쳤다.
“니미! 미친 새끼들이……. 빨랑빨랑 모여!”
짜증이 가득한 검우곤의 외침에 어슬렁거리던 명안대원들이 후다닥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모여든 명안대원들은 모두 불안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대주인 검우곤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 명령이 내려졌을 때 검우곤이 짜증을 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검우곤은 주위를 스윽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서가 왔다. 우리는 이쪽 회룡산과 건너편 형산에 매복해 있는 궁수대를 친다.”
“미, 미친! 말도 안 됩니다. 적의 궁수대는 한쪽에 오백씩은 되는데 그놈들을 한쪽도 아니고 양쪽을 다 맡는다는 말입니까?”
조주한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입가를 씰룩이던 검우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알아! 말도 안 되는 건 나도 아는데, 까라잖아! 잔말 말고 네가 반을 데리고 회룡산의 놈들을 맡아. 나머진 나와 함께 형산으로 간다.”
“특히 건너편인 형산은 너무 위험합니다. 이쪽 회룡산은 산세가 험해서 궁수대만 어찌어찌 처리하면 되지만, 반대편의 형산은 구릉이 낮아 놈들의 지원대가 바로 산 아래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자칫하다간 놈들에게 포위를 당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간다잖아! 아님 네가 갈래? 잔말 말고 시키는 대로 해! 날이 밝기 전까지는 무조건 놈들을 모두 정리해야 한다. 우리가 놈들을 정리하고 신호전을 올리면 곧바로 철기대가 관도에 주둔하고 있는 놈들의 본대를 쳐서 창천곡의 입구를 열 것이다.”
“입구를 열다니요? 철기대가 놈들을 제남까지 밀어붙이는 것 아닙니까?”
한만구가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검우곤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유는 모르지만 지원대는 철기대만 온다. 아무리 우리 평로의 철기대라고 해도 오천의 병력으로 이만이 넘는 적의 본대를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 그러나 새벽에 기습을 한다면 잠시 밀어붙일 수는 있겠지. 그 틈에 창천곡의 치주군이 철기대와 합류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철기대까지도 위험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창천곡에 있는 치주군은 이번 작전을 모르고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겠지. 그래서 나와 함께 형산 쪽으로 간 놈들은 궁수대를 해치우고는 곧바로 산을 내려가 창천곡의 얼간이들을 데리고 입구를 돌파한다.”
조주한의 물음에 검우곤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 명안대원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어렸다. 양쪽의 궁수대 일천을 해치우는 일만 해도 버거운데, 급기야는 창천곡의 군사들까지 챙겨야 했다.
검우곤이 명안대원들을 둘러보고는 곧바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홀수조는 나를 따르고 짝수는 주한을 따라가. 꼬맹이 너는 나와 함께 간다. 가자!”
명안대원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검우곤과 조주한을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대주인 검우곤의 명령이 떨어진 이상 무조건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명안대였다.
검우곤의 바로 뒤에 붙어 따라가던 연호는 검우곤이 손을 들자 재빨리 신형을 낮추며 검우곤의 옆에 붙었다.
검우곤이 손짓을 하는 방향을 보니 십오 장 밖에 반군으로 보이는 자들 두 명이 번초를 서고 있었다. 드디어 적들이 매복을 하고 있는 곳에 이른 것이다.
검우곤이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이더니 옆으로 손을 흔들었다. 두 명을 동시에 날리라는 의미였다.
연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등에 매고 있던 궁을 풀었다.
쉭! 쉭!
연호가 연이어 날린 두 대의 화살이 번초를 서고 있던 두 명의 반군들 목을 거의 동시에 정확하게 꿰뚫었다.
“가자!”
검우곤이 나직하게 외치고 신형을 옮기자 그 뒤를 연호를 비롯한 명안대원들이 소리 없이 따랐다.
이후 이각 정도를 전진할 동안 연호는 다섯 군데의 번초를 더 제거하였다. 반군의 번초들은 모두 궁을 지니고 있었는데, 아마도 산세가 낮은 형산으로 창천곡에 갇힌 치주군이 올라올까 봐 경계를 하고 있는 자들인 것 같았다.
다시 건너편 회룡산의 능선이 가까이 보이는 지점에 이르자 검우곤이 신형을 낮추고는 앞쪽을 가리켰다.
능선을 따라 어림잡아 사백 명은 되어 보이는 반군의 궁수들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검우곤이 연호를 돌아다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꼬맹이, 화살은 충분히 가져왔겠지.”
“그야 뭐 충분하죠. 게다가 널린 게 궁수들인데…….”
“그렇군. 어쨌든 네놈은 우리가 놈들을 습격하면 거리를 두고 따라오다가 신호전을 날리려는 놈들을 노려. 신호전 하나라도 허공에 오르면 넌 내 손에 죽는다!”
검우곤이 웬만한 사람 머리통만 한 커다란 주먹을 내밀며 협박조로 말했다.
연호는 자신의 머리를 검우곤의 주먹에 가져다 대며 대꾸했다.
“젠장, 크기가 비슷하네. 알겠는데, 나 혼자 처리해요?”
“그래, 너 혼자 해! 다른 놈들은 검수들을 지원해야 한다.”
“쩝! 알았어요.”
연호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검법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해 볼 겸해서 궁수가 아닌 검수로 싸우고 싶었다.
그러나 검우곤은 가급적이면 그를 난전에서 떨어져 있게 하였다. 아마도 사부인 흑 노사나 이회옥에게서 자신의 보호를 부탁받았던 모양이다.
검우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연호를 제외한 나머지 명안대원들도 신형을 낮춘 채 은밀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최초의 기습은 최대한 은밀하게, 이어 기습을 알고 적이 당황하는 순간은 폭풍처럼 밀어붙이는 것이 기습의 묘였다.
스각! 스각!
은밀하게 다가간 검우곤과 명안대원들이 졸고 있는 적의 목줄을 끊어 놓는 미세한 소리로부터 공격은 시작되었다.
뒤쪽에서 지켜보고 있던 연호도 재빨리 살매김을 하고는 앞쪽의 상황에 집중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언제 누가 신호전을 올릴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검우곤의 말마따나 신호전이 오른다면 형산의 아래쪽에 있는 지원대가 움직여 명안대가 곤란해 질 수가 있었다.
쉭!
적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연호가 재빠르게 화살을 날렸다. 삼조에 속해 있는 강연추가 적의 배를 가르는 순간 그의 뒤에서 다른 적군이 달려들고 있었다.
자신의 뒤에서 갑자기 적군이 쓰러지자 강연추는 놀란 눈으로 연호를 쳐다보았다.
연호는 빙긋이 웃으며 손을 들어주었다.
강연추는 눈을 흘기며 연호를 향해 주먹을 내밀어 보이고는 다시 신형을 날렸다.
연호는 강연추가 손짓으로 욕을 하여도 그것이 그 나름대로의 고맙다는 표시라는 것을 알기에 혼자 실실거리며 이번에는 검우곤을 찾았다.
대주인 검우곤은 명안대원들의 선두에서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커다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바람처럼 움직이며 커다란 도로 적들을 베어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본 연호의 얼굴에는 감탄의 표정이 어렸다.
전에는 막연하게 검우곤의 무공이 뛰어나다고 생각했지만, 이제 검을 조금 알고 나서 보니 검우곤의 무공은 정말 대단하였다. 도의 움직임에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쐐액!
검우곤의 무공에 정신을 팔고 있던 연호는 허공을 향해 시위를 당기는 적군을 발견하고는 급하게 화살을 날렸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간 연호의 화살은 적군이 시위를 채 놓기도 전에 그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적을 해치운 연호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자신의 화살이 평소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갔기 때문이다. 마치 한 줄기 뇌전이 허공을 가르는 것 같았다.
잠시 의아해하던 연호는 머리를 가볍게 흔들어 생각을 떨쳐 버리고는 전장을 주시하였다. 검우곤의 무공에 빠져 하마터면 신호전을 날리는 적을 놓칠 뻔하였던 것이다.
연호가 이리저리 재빠르게 움직이며 화살을 날려 댄 지 이각 정도가 지나자 상황이 점차 종료되고 있는 것 같았다.
연호는 검우곤을 찾았다. 그는 자신과 삼십여 장 떨어진 곳에서 적의 가슴에 박힌 도를 뽑아내고 있었다.
도를 뽑아낸 검우곤은 연호를 쳐다보며 크게 손을 돌렸다. 상황이 끝났으니 회룡산을 향해 신호전을 올리라는 지시였다.
연호는 전통에 손을 넣어 대나무로 감싼 신호전을 꺼내 들었다.
쉬잉!
연호가 날린 신호전이 불꽃과 함께 회룡산 저 너머 동쪽 하늘을 향해 허공을 갈랐다.
“가자!”
어느새 달려온 검우곤이 아래쪽의 창천곡을 향해 내달리며 소리쳤다.
연호는 회룡산 쪽을 한 번 힐긋 쳐다보고는 명안대원들과 함께 검우곤의 뒤를 따랐다.
선두에 서서 산을 내려가던 검우곤은 연호가 따라붙자 초조한 표정으로 회룡산 쪽을 쳐다보며 짜증스러운 어투로 말을 뱉었다.
“바보 같은 놈들이 아직도 처리를 못하고 뭐하는 거야!”
“곰 대주님 말을 들었나 보네요. 저기 신호전이에요.”
회룡산 쪽에서 신호전이 올라 불꽃을 내며 동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검우곤이 그제야 밝아진 표정으로 퉁명스럽게 말을 뱉었다.
“하여간 느려 터져 가지고! 근데 곰 대주가 뭐냐? 이 자식이!”
“제가 언제 곰 대주라고 했어요. 검 대주라고 했지!”
연호가 혀를 쏙 내밀며 대꾸하고는 속도를 올려 빠르게 내달리자 검우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실소를 흘리며 연호의 뒤를 따랐다.
***
“철기대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땅바닥에 귀를 대고 있던 강연추가 일어서며 다급하게 외치자 검우곤은 치주군을 이끌고 있는 장수인 원세연을 향해 말을 건넸다.
“갑시다!”
“정말 적의 궁수대가 모조리 제거된 것이오?”
원세연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검우곤의 옆에 서 있던 연호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원세연을 쳐다보았다.
원세연은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아 갑주가 어울려 보였지만 그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불안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검우곤이 답답하다는 듯이 소리를 쳤다.
“이보시오, 원 장군! 우리도 당신들과 같이 나가야 한단 말이오. 위험할 것 같으면 왜 같이 행동하겠소? 그러니 빨리 갑시다. 시간이 별로 없소이다.”
“그건 그렇지만……. 조, 좋소이다. 진군 명령을 내리게!”
원세연이 힘겹게 결정하여 명을 내리자 부관이 급히 앞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