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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풍 1권(22화)
제8장 백호의 꿈[白虎之夢](3)


쉬이잉!
불꽃 하나가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저, 저게 뭡니까?”
“엉? 신호전 같은데…….”
목두향이 놀란 표정으로 묻자 강진남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목두향이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외쳤다.
“무슨 신호전이 저렇게 높이 올라갑니까요?”
“그, 그러게. 도대체 어디까지 날아가는 거야?”
강진남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하는 순간, 뒤에서 설영의 다급한 외침이 들렸다.
“기습이다! 즉시 대비하라고 고하라!”
“예에?”
“저것은 연호가 날린 신호전이다. 연호 말고 저리 높이 신호전을 날릴 수 있는 이가 있느냐!”
그제야 강진남은 설영의 말을 이해하고는 급히 목두향과 함께 기습을 알리기 위해 다급하게 움직였다.
쉬이잉!
또다시 한 발의 신호전이 날아올랐다.
‘북쪽? 북문이구나!’
설영의 눈에 기광이 번뜩이며 북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두 번째 날아오른 신호전은 북쪽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둥! 둥! 둥!
갑작스레 북소리가 울려 대자 평로군의 움직임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북소리는 적의 공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적이다! 궁수대 공격! 적이 부교를 놓지 못하도록 하라!”
잠시 후, 청주성의 북문에서 다급한 외침들이 들려왔다. 치주군의 기습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궁수대는 적의 투석기를 공격하라!”
또다시 외침이 들려오기 무섭게 시커먼 돌덩이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꽝! 꽝! 꽝!
어둠 속에서 날아든 돌덩이가 성벽과 평로군 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평로군이 투석 공격에 우왕좌왕하는 사이 치주군은 뗏목을 해자호에 던져 넣고 밧줄로 묶어 부교를 설치하고 있었다.
평로군으로서는 부교가 설치되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아야 했다. 부교만 설치된다면 치주군은 성벽을 쉽게 기어오를 것이다. 특히 북문 쪽의 성벽은 경사가 완만하여 강가의 제방과 비슷한 정도였다.
설영이 북문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상당수의 치주군이 부교를 건너 성벽 위에 오르고 있었다.
설영은 신형을 날려 막 성벽 위에 오른 적군 세 명을 순식간에 베어 버리고는 성루 쪽을 쳐다보았다.
성루는 이미 반쯤 허물어져 있었다. 적의 투석 공격에 완전히 당한 모양이었다.
설영은 이를 악다물고는 다시 적들을 베어 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십여 장을 나아가던 설영의 눈에 북문을 맡고 있던 좌군부장 조인항의 모습이 보였다.
그를 발견한 설영의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조인항은 장창을 휘둘러 대며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지만, 이미 그의 몸에는 적의 화살이 네 대나 꽂혀 있었던 것이다.
설영은 달려드는 적들을 재빠르게 베어 버리고는 조인항의 옆에 내려서며 다급하게 물었다.
“조 장군! 괜찮으십니까?”
“설영! 면목이 없소이다.”
“지금은 그런 말씀을 할 때가 아닙니다. 일단 내성으로 물러나서 치료부터 받으십시오.”
“그럴 수는 없소이다. 저 간악한 후가 놈을 두고 어찌 물러난단 말이오!”
“그럴 수 있소이다.”
설영과 조인항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이회옥이 눈에 정광을 뿜어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자, 장군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한 방 먹었소이다. 하지만, 이 정도에 무너질 평로군이 아니외다. 그러니 조 장군께서는 치료부터 받으시오.”
“그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적의 기습을 막지 못한 자가 어찌 죽음을 피하려 한단 말입니까!”
“기습을 막지 못한 잘못은 내게도 똑같이 있는 것이오. 그러니 내 말대로 하시오. 설영!”
이회옥의 외침에 설영은 조인항의 뒷목을 검병으로 찍어 수혈을 짚어 버렸다.
설영이 병사들에게 조인항을 내성으로 옮기라고 전한 뒤 돌아오자 이회옥이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
“형님이 제법 용감해졌구나. 신호전을 올린 것은 연호였더냐?”
“예, 갑자기 적진을 살펴보고 오겠다고 가더니 신호전을 올렸습니다.”
“역시…….”
이회옥이 말끝을 흐리고는 고개를 좌측으로 돌렸다. 좌측의 성벽을 따라 적을 베어 내며 맹렬하게 돌진하는 자가 있었던 것이다. 바로 연호였다.
“귀검랑이다! 귀검랑이 왔다!”
여기저기서 아군 병사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설영이 피식하고 실소를 흘리며 말을 건넸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녀석이 왔군요.”
“그래, 슬슬 반격을 하자꾸나. 더 이상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아니냐! 가자!”
“예!”
이회옥이 장검을 뽑아 들고 신형을 날리자 설영이 그의 뒤를 따랐다.

“뭣들 하느냐! 아직도 성문을 열지 못하였단 말이냐!”
“평로군의 저항이 너무 거센 것 같습니다.”
후희일이 호통을 치자 원세연이 달려와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후희일이 원세연을 노려보며 다시 말을 뱉었다.
“기습에 성공하고도 여태 성문을 열지 못하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그것이 귀검랑과 이회옥이 직접 성문을 지키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들을 당해 내기가 쉽지 않은 터라…….”
“멍청한!”
후희일은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뱉었지만 그도 이회옥의 무공이 얼마나 대단하지를 알기에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
“화시!”
왕이현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청주성 쪽에서 불이 붙은 화시들이 치주군의 진영을 향해 날아들고 있었다.
후희일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저깟 화시에 뭘 그리 놀라느냐?”
“화시를 날릴 정도면 적이 전열을 정비한 것이 아닐지…….”
왕이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하는 도중에 원세연의 입에서 다시 외침이 터져 나왔다.
“부교들이 불타고 있습니다!”
“이런! 당장 주위의 불을 꺼라!”
후희일이 다급하게 고함을 쳤다. 그는 뒤늦게 화시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사실 후희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평로군의 궁수대였다. 평로군의 궁수들은 모두 맥궁을 사용하였다. 사거리가 훨씬 긴 맥궁은 공성전에서 가장 위협적인 무기였다.
성 근처에 도달하기도 전에 맥궁의 공격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는 반격도 하지 못하고 당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할 때에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고구려 군사의 맥궁이었다.
그래서 후희일이 택한 것이 야간 기습이었다. 어둠 속에서 기습을 하여 평로군이 활 공격을 할 틈을 주지 않으려던 것이다.
기습은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기마대의 진형을 넓게 벌려 세움으로써 간간히 날아오는 활 공격에는 그다지 피해를 입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전열을 정비한 평로군이 화시를 날리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치주군의 진형이 평로군에게 노출되는 것이다. 빨리 주변의 불을 끄지 않으면 평로군의 맥궁 공격에 역습을 당할 수 있었다.
쉬익! 쉬익!
날카로운 소성들이 허공에 울려 퍼지자 후희일과 왕이현 등의 안색이 급변하였다. 그들이 있는 곳과 청주성과는 불과 백여 장의 거리였다. 맥궁이라면 백여 장의 거리 정도는 정확한 조준 사격이 가능했다.
그러한 사실들을 입증이라도 하듯이 날아든 평로군의 화살들은 기마대 병사들을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간 청주성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해 보고 기마대가 전멸을 당할 판이었다.
후희일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기마대를 물려라! 뒤로 물러나란 말이다!”
치주군이 다급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마대가 급히 물러남에 따라 창병들과 검병들도 급히 물러나고 있었다.
청주성을 노려보던 후희일은 아쉬운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이미 기습의 묘는 완전히 사라졌고 남은 것은 정공법뿐이었다. 거의 성공할 뻔하였던 청주성 기습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더욱 아쉬움이 남는 것이었다.

***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큽니다.”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내가 방심을 한 탓이다.”
설영의 말에 이회옥은 대답하며 부서진 성벽과 부상자들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설영이 침통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이 상태에서 다시 이번과 같은 기습 공격이 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형님은 다시 기습 공격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평로군 궁수대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치주군도 맥궁으로 무장을 하려고 하였던 것이고.”
“아니, 그걸 알면서도 나더러 치주군에게 맥궁을 가르쳐 주라고 했단 말이에요?”
연호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이회옥을 쳐다보았다. 이회옥은 뻔히 그 자신에게 해가 될 것을 알면서 그와 같은 일을 시켰다는 말이었다.
이회옥이 피식 실소를 흘리더니 대꾸했다.
“그래서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내가 보기에 너는 욕심이 많아서 절대로 제 것을 남에게 주지 않을 것 같았다.”
“그건 확실히 맞는 말씀인 것 같네요. 어릴 때부터 남의 것만 탐하던 녀석이니 말이에요.”
“엥! 지금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를 하시고 그럽니까? 설영 형님!”
설영의 놀림에 연호가 눈을 부라리며 대꾸하였다.
하지만 설영은 연호의 말을 무시하고는 이회옥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럼 후희일은 사주의 군대가 도착할 때를 기다려 정공법을 취하려 하겠군요.”
“그렇다고 봐야지. 그사이 우리도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예, 하나 수광현의 우군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립니다. 멀리 나가 있는 철기대와 명안대는 그렇다고 해도 우군은 이미 도착을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강진한은 이곳으로 오지 않을 것이다.”
“예에?”
설영과 연호는 일만에 달하는 평로군의 우군을 이끌고 있는 우군부장 강진한이 청주성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에 화들짝 놀랐다. 그가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배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설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강 장군이 배신을 했단 말입니까?”
“쯧! 강진한이 배신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너도 잘 알지 않느냐?”
“그, 그럼 무슨 말씀이신지?”
“그는 지금 치주성으로 달려가고 있다.”
잠시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던 설영과 연호는 뒤늦게 이회옥의 말뜻을 이해하고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회옥은 강진한에게 치주군의 출정으로 무주공산이 된 치주성을 치라고 한 것이다. 당장 청주성이 위기에 처해 있음에도 오히려 적의 근거지인 치주성을 치게 한 이회옥의 배포가 놀라웠다.
연호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니, 그러다 청주성을 빼앗기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이곳을 빼앗기면 군사들과 달아나서 치주성에 가면 되지 않느냐.”
“예? 그게, 또 그렇게 되는군요.”
이회옥의 대답에 연호는 머쓱해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이회옥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던 것이다.
설영이 눈에 이채를 띠고는 말을 건넸다.
“성공만 하면 후희일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수가 있겠군요.”
“강진한이 치주성을 빼앗고, 우리가 형님의 공격을 막아 낸다면 아마도 그렇게 될 것이다. 나는 여전히 철기대와 명안대를 믿고 있다.”
이회옥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연호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이회옥은 강진한에게 치주성을 장악하게 하여 후희일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고립된 후희일은 배후의 습격이 두려워 어느 쪽도 제대로 공격할 수 없게 된다.
또한 치주군이 고립되면 다른 사주의 군대들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후희일이 이길 승산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를 따르는 그들은 한 발 뒤로 물러서서 관망하는 태도를 유지할 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전쟁은 치주군과 평로군 간의 장기전으로 발전될 것이고, 근거를 잃은 치주군은 더욱 사기가 저하될 것이 분명하였다. 거기에 동북 최강의 기마대인 철기대와 명안대가 가세한다면 승리는 평로군의 것이 확실하였다.
다만 그러한 계책에는 반드시 청주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 이회옥은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도박을 한 것이다.
연호는 짧은 시간에 그와 같은 판단을 한 이회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