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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2화)
1.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덕분에(2)


유심이 향한 곳은 성도 외곽의 허름한 헛간이었다.
그가 들어서자 세 사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내 두 명, 여인 한 명, 사내들 중에는 조금 전 왕가주점에서 헤어졌던 꺽다리가 포함되어 있었다. 또 한 명의 사내. 세상에 이렇게 살찐 사람이 있을까 싶다. 키는 오 척이 간신히 넘을까 말까 한데 족히 백오십 근은 나갈 듯싶었다.
헛간에 있는 유일한 여인.
우물(尤物)이다.
반달 같은 눈썹 아래 자리한 호수 같이 맑은 눈. 마늘쪽을 엎어 놓은 듯 적당히 솟은 코, 앵두 같은 붉은 입술과 그 사이로 드러나는 순백의 치아. 그리고 삼단결의 칠흑 같은 머릿결이 길게 늘어진 것이 그야말로 미인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얼굴도 몸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오 척 다섯 치 정도의 적당한 키에 터질 듯한 가슴 그리고 한 손으로 감싸 안을 수 있을 것 같은 세류요, 그리고 옷 밖으로 드러난 섬섬옥수, 그야말로 뇌쇄적이라는 말은 지금 헛간에 있는 이 여인을 두고 하는 말인 듯싶었다.
만약 지금 헛간에 있는 여인을 보고도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그는 죽은 시체이거나 차가운 피를 가진 냉혈한일 것이다.
여인은 자신의 몸매를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몸매가 은은히 비치는 얇은 비단 옷을 걸친 채 안으로 들어선 유심을 보며 눈웃음을 치고 있었다.
“눈웃음, 어지간하면 몸 좀 가리고 다녀.”
“호호호호! 왜, 오라버니도 다른 마음이 생겨서 그래요?”
여인이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웃음을 토하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여인의 모습에 유심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다른 마음은 무슨 다른 마음. 눈웃음, 네 옷 꼬라지를 보니까 내가 추워서 그래.”
“흥!”
여인이 콧방귀를 뀌며 미소를 거뒀다. 그와 동시에 화사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리지고 한기가 풀풀 날렸다. 같은 여인의 몸에서 어떻게 이런 다른 느낌을 갖게 하는지 그야말로 불가사의했다.
뚱뚱보 사내가 입가에 진득한 미소를 지으며 토라진 여인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이봐, 눈웃음. 형님은 네 몸뚱이에 관심이 없는 것 같으니 나에게…….”
“닥쳐! 이 사기꾼 새끼야!”
여인의 입에서 차가운 일갈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손이 가슴으로 들어갔다가 번개처럼 빠져나오며 한 줄기 섬광을 일으켰다.
쌔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시퍼런 날이 번뜩이는 비수 한 자루가 날아갔다.
비수가 향한 곳은 뚱뚱보 사내의 목 한복판!
“헉!”
사내가 헛바람을 토하며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핑!
비수는 사내의 정수리를 스치듯 지나가 반대쪽 기둥에 틀어박힌 채 몸을 바르르 떨었다.
“휴우!”
뚱뚱보 사내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사내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만약 조금만 늦었다면 비수는 헛간 기둥이 아니라 자신의 목에 틀어박혔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모골이 송연했다.
“눈웃음, 죽을 뻔했잖아.”
“뒈지라고 던졌는데 죽지 않다니. 사기꾼 새끼가 목숨 하나는 더럽게 질기네.”
“뭐? 이 기생 년이 보자보자 하니까.”
뚱뚱보가 얼굴을 씰룩이며 여인을 향해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그만!”
유심의 한마디에 뚱뚱보가 급히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이 화가 나도 보통 난 것이 아닌 듯 보였지만 유심의 말은 거역치 않았다.
“눈웃음, 오늘 형님 때문에 목숨 구한 줄 알아.”
“흥, 사돈 남 말하시네.”
두 사람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서로를 등졌다.
“지금부터 연구 좀 해 볼 테니까 떠드는 놈은 죽는다.”
협박과 함께 유심이 품에 있던 불한당잡배명부를 꺼내 펼쳤다.
명부를 살피는 유심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졌다.
유심, 그는 신중한 사내다. 그가 몸을 움직이는 경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찾았을 때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현재까지 목숨을 부지하지도 못했다. 그에게 돈을 벌게 해준 이들 중에는 그의 목 하나쯤은 쥐도 새도 모르게 베어 버릴 만한 인물들이 수두룩했다. 그렇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피보다 귀중한 은자 한 냥까지 날려가면서 구한 불한당잡배명부였지만, 유심은 외상을 받아낼 방법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냥 어떻게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왕평상에게 장부를 넘겨받았을 뿐이다.
무모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달리 방도가 없었다. 오늘까지 무조건 오십 냥을 마련해야 했다.
품속으로 손을 가져갔다.
두툼한 가죽 주머니가 만져졌다.
지난 아흐레 동안 매품을 팔아가며 어렵게 마련한 은자 삼십 냥.
부족한 은자 이십 냥.
그것이 유심을 이렇게 무모하게 만든 이유다.
“망할 놈의 인간.”
들릴 듯 말 듯한 독백과 함께 그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 얼굴이 떠올랐다. 입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손으로 막으며 연신 어깨를 들썩이는 파리한 모습의 사내.
아버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기는 했지만 지금 아버지의 모습이 어떤지는 유심도 몰랐다. 그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오 년 전. 그의 나이 아홉. 첫 번째로 돈을 벌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다.
그 이후로 오 년이 흘렀지만 유심은 아버지의 모습을 지금껏 보지 못했다. 한집에 살지만 아버지 장연걸은 방으로 들어선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 뒤에 마련된 그만의 공간에 아버지는 홀로 머물렀다. 천막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아버지는 자신의 공간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열흘에 한 번씩 구해다 놓은 약초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알 수 없을 아버지다.
오늘이 바로 약초를 구해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그냥 갈까?’
특별한 말은 없었지만 자신이 약초를 구해주지 않으면 그날이 바로 아버지 제삿날이라는 것을 유심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유심의 입가에 쓴웃음이 번졌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에게 고생만 시키고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는 자신에게 뼈와 살을 준 아버지다. 아버지 때문에 개고생을 하고 있지만 아버지 덕분에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잡념을 털어내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는 다시 불한당잡배명부를 뚫어져라 살폈다. 그렇게 한 시진을 흘려보냈지만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미치고 환장할 노릇.
“후우―!”
입에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지금은 일단 답답한 가슴을 진정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인기척에 놀란 세 녀석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형, 방법을 찾았……!”
유심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꺽다리가 입을 열다가 황급히 닫았다. 살짝 일그러지기 시작한 유심의 얼굴에서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너희들은 필요 없으니 돌아가!”
“…….”
“…….”
꺽다리와 뚱뚱보 그리고 눈웃음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보았지만 유심은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헛간을 나섰다.

성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동풍로(同風路)를 따라 성도 외곽을 향해 걸었다.
정해진 곳은 없었다.
성도를 벗어나면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이 산이었기에 정해진 곳 없이 터덜터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유심이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일 장여 앞에서 검은 무복의 사내와 허름한 마의를 걸친 여인이 마주본 채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인이 몸을 오른쪽으로 움직이면 사내 역시 발을 움직여 오른쪽으로 움직였고 여인이 반대로 방향을 바꾸면 사내 역시 반대로 방향을 바꿨다.
“세월 좋네.”
관심 없다는 듯 혼잣말을 내뱉고 다시 걸음을 내디디려는 순간, 다급한 음성이 귀를 파고들었다.
“도와주세요.”
그제야 유심은 검은 무복의 사내가 여인을 희롱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유심의 머릿속은 오직 불한당잡배명부에 기록된 화상들에게 외상을 어떻게 받아낼까 하는 생각뿐이었기에 여인의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했다.
반응을 보인 것은 유심이 아니라 사내였다. 여인을 보며 히죽거리던 녀석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무복 한복판에 천(天)이라는 한 글자가 쓰여 있었다.
사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놈은 강호 신흥방파 흑천문 사천지단의 하급무사였다. 그것은 그의 가슴에 보이는 ‘천’이라는 글자가 수를 놓은 것이 아니라 붓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었다.
하긴 무공이 높은 자라면 무공도 익히지 않은 유심이 등 뒤 일 장여까지 접근할 때까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놈의 허리에 달려 있는 검은 진검도 아닌 목검이었다.
‘흑천문(黑天門) 졸개 새끼로군.’
“꺼져. 애송이!”
유심이 평범한 아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내가 언제 긴장했었느냐는 듯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가소롭다는 듯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뱉었다.
녀석의 실수였다.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다. 그러나 ‘애.송.이!’라는 한마디가 유심의 발을 붙들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녀석의 얼굴을 살폈다.
“어쭈, 이 새끼 봐라. 너 장님이야? 눈깔에 이거 안 보여.”
사내는 자신의 가슴 한복판에 새겨진 ‘천’이라는 글자를 주먹으로 두드리며 허세를 부렸다. 자신이 흑천문 무사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겁을 주겠다는 수작.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멋지게 통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상대는 유심이었다. 사천성 돈벌레로 살아가면서 지금과 같은 수작은 수도 없이 겪었다. 아니, 흑천문 하류무사 같은 놈의 협박은 그에게 애들 장난이었다.
한마디로 녀석은 오늘 임자 만났다. 그것도 제대로 만났다. 그렇지만 유심은 곧바로 몸을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전에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은자 닷 푼.”
“예? 그게 무슨……?”
유심의 갑작스러운 말에 여인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유심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기분이다. 외상!”
“……?”
말을 마치자마자 유심은 득달같이 녀석을 향해 달려들었다.
번개처럼 달려들었지만 그것은 일반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일이다. 아무리 하급무사라고 하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몸, 녀석은 유심의 돌진에도 당황하지 않고 허리에 차고 있던 목검을 빼 들었다.
휘익!
발검(拔劍)과 동시에 녀석은 유심의 쇄골을 향해 목검을 내려쳤다. 인간의 뼈 중에 가장 약한 뼈가 바로 쇄골. 목검이라 하더라도 정통으로 맞는다면 그대로 부러지고 만다.
황급히 어깨를 틀었다. 그렇지만 목검을 온전히 피할 재주는 없었다.
퍼억!
날카로운 격타음(擊打音)과 함께 목검이 떨어졌다.
어깨를 튼 덕분에 쇄골이 아니라 견갑골 즉, 어깨뼈였다. 비교적 단단한 뼈. 눈물이 찔끔거릴 정도로 고통이 밀려왔지만 부러지지는 않았다. 거기에 매를 맞는 일이 일상인 그의 인내력은 일반인과는 달랐다.
이를 악물며 그대로 내달렸다.
“이이…… 이런 개새끼!”
녀석이 당황하며 휘둘렀던 목검을 회수했다.
두 사람의 간격은 지척. 이제 녀석의 목검이 빠른가, 유심의 주먹이 빠른가로 결정된다.
아무런 변수가 존재하지 않는 순수한 속도의 대결.
녀석의 입가에 흐릿한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무리 하급무사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정식으로 무공을 익힌 자신이었다. 마빡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에게 속도에서 뒤질 리가 없었다.
‘크크크크, 네놈은 뒈졌다!’
“이야……, 커―헉!”
호탕한 기합 소리는 처절한 비명 소리로 변했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뚱이는 나가떨어졌다.
바닥에 널브러진 채 간신히 목을 가눈 녀석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거대한 폭발 뒤에 웅덩이가 파이듯 녀석의 얼굴은 푹 꺼져 있었다. 부러진 코뼈 아래로 코피가 흘렀고, 이까지 부러졌는지 입에서도 쉴 새 없이 피가 쏟아져 나왔다.
“휴우―!”
유심은 한숨을 내쉬며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쓸어내렸다. 만약 자신의 판단이 늦었다면, 아니, 자신의 오른팔이 멀쩡했다면 바닥에 쓰러진 것은 흑천문 하급무사가 아니라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놈과의 사이 지척.
유심은 녀석이 생각한 것처럼 주먹을 쓸 작정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처음 어깨뼈에 일격을 맞았을 때 탈골이 되어 버린 것이다. 주먹을 쓰기 위해 이를 악물었지만 손은 올라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생각한 것이 이마였다. 손을 올리는 대신 이마로 놈의 얼굴을 찍었다.
임기응변이었지만 그것이 유심을 승자로 만들었다.
잠시 숨을 고른 뒤 유심은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흑천문 무사에게 다가갔다.
“무무, 무슨 일이냐?”
“무슨 일은? 남은 일이지.”
녀석이 다가오는 유심을 향해 손사래를 쳤지만 유심은 눈 하나 깜짝이지 않고 녀석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한쪽 무릎을 꿇은 후 성한 왼손으로 놈의 망가진 얼굴을 받쳐 들었다.
“네, 네, 네놈을 흑천문이 가만히 놔둘 것 같으냐?”
“됐어. 내가 흑천문이라면 쫄 줄 알았어? 아저씨, 정신 차려. 나 장유심이야. 사천전충 장유심”
빠악!
유심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몸을 돌려 어깨로 녀석의 턱을 강타했다. 그나마 정신을 유지하던 흑천문 무사는 바닥에 큰대자로 뻗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유심은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조금 전 타격으로 탈골된 어깨뼈가 잘 맞춰졌는지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 봐가면서 협박을 해야……!”
유심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안정을 찾은 여인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유심과 비슷한 또래, 여인이라기보다는 소녀였다. 유심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처음 이곳에 걸어올 때까지만 해도 가득하던 수심은 눈 녹듯 사라졌다.
여인이 예뻐서?
아니다. 드디어 방법을 찾았다.
“크하하하하! 기분이다. 은자 닷 푼도 탕감해 준다.”
휘리릭!
유심이 몸을 돌리더니 성도를 향해 미친듯 되돌아갔다.
“이이, 이봐요!”
소녀의 목소리가 동풍로에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