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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4화)
1.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 덕분에(4)
관무백이 잠시 옛 생각을 하는 사이, 유심의 몸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변해 피를 뒤집어쓴 혈귀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도 유심의 눈은 여전히 관무백을 응시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유심은 칠공(七孔)으로 피를 쏟으며 죽게 될 것이 분명했다. 슬쩍 공력을 거뒀다. 그와 함께 유심이 고목이 넘어가듯 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미련한 녀석.”
말은 그렇게 했지만 쓰러진 유심을 바라보는 관무백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자신이 너무 심하게 한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유심을 향해 한발을 내딛는 찰나.
“야―! 이 똥물에 튀겨 죽일 영감탱이야――!”
천둥 같은 고함 소리가 관무백의 고막을 사정없이 두드렸다. 관무백이 재빨리 소리가 들린 곳으로 눈길을 던졌다. 멀리서 비쩍 마른 녀석 하나가 주먹을 치켜든 채 그를 향해 맹렬히 달려들고 있었다.
“허허허허, 득음한 멸치로구나.”
득음한 멸치, 물론 꺽다리다.
다른 사람들은 사천전충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삼 년 전, 시장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주인에게 들켜 맞아 죽기 일보 직전이었을 때, 거금 은자 두 냥을 들여 무마해 주고 의원을 불러 자신을 살려준 사람이 바로 유심이다. 뿐만 아니라 도둑질하다가 맞아 죽지 말고 잘 살라며 화빈각에 일자리까지 마련해 줬다.
그런 유심에게 큰일이 생겼다는 왕평상의 말을 듣고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가 남촌으로 막 들어선 순간, 유심이 누군가와 대결을 펼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눈이 뒤집혔다.
고함부터 지르고 영감탱이를 향해 미친듯 달려갔다. 한 주먹에 영감탱이의 머리를 박살낼 생각이었다.
“영감! 너 뒈졌어. 이야―앗!”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내려쳤다. 그러나 중원에 명성이 자자한 천무신장 관무백이 그런 마구잡이 주먹질에 당할 사람이겠는가?
매가 참새를 잡듯 관무백은 다가오는 꺽다리의 손목을 가볍게 낚아챘다. 일 푼의 공력도 싣지 않은 가벼운 금나수(擒拏手)였지만 관무백의 움직임은 번개보다 빨랐다.
“어라?”
꺽다리 입에서 놀란듯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머리통을 박살냈어야 할 그의 손이 갑자기 멈추더니 그의 몸뚱아리가 하늘을 날고 있었다.
놀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솟았으니 이제 꺼질 차례다. 정점에서 양손을 퍼덕거리는 움직임도 잠시, 꺽다리는 땅바닥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으아아아―악!”
고함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는 괴성이 남촌에 울려 퍼졌다.
득음을 위해 폭포 앞에서 수련하는 소리꾼이었다면 그야말로 소원성취의 순간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꺽다리는 소리꾼이 아니다. 자신을 향해 점점 다가오는―실상은 자신이 다가가고 있는 것이지만―땅바닥이 두려워 그저 본능에 의해 고함을 토할 뿐이었다.
땅바닥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괴성은 더욱 커졌다.
“음공(音功)을 익히면 딱이겠군.”
무심한 한마디.
관무백의 한마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때까지도 꺽다리는 몰랐다. 아니, 생사의 귀로에 선 꺽다리 귀에는 관무백의 중얼거림이 들리지도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손을 더욱 빨리 펄럭였다.―이러면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휘릭!
관무백이 손을 뻗으며 살짝 흔들었다. 부드러운 바람 한 줄기가 꺽다리의 몸을 감쌌다. 그와 동시에 꺽다리의 추락이 조금은 느려졌다.
쿵!
먼지를 일으키며 꺽다리가 떨어졌다.
“아이고 삭신이야!”
그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관무백이 마지막에 손을 쓴 덕분에 치명적인 부상은 면했지만 온몸에 뼈마디가 흔들릴 정도로 그 충격은 컸다. 그래도 유심을 구하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간신히 일어나기는 했지만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꺽다리――!”
슬쩍 고개를 돌렸다.
‘굼벵이 같은 새끼들.’
그제야 도착했는지 뚱땡이와 눈웃음 그리고 왕평상이 미친듯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자신을 부르며 달려오는 그들이 반갑고 고마웠다.
“새끼들, 왜 이렇게 늦었…….”
휘잉!
세 사람은 그대로 꺽다리를 지나쳐 앞으로 달려갔다. 그들이 향한 곳은 유심이 쓰러진 곳이다.
‘내가 아니야? 씨발, 그런데 왜 내 이름을 부르고 지랄이야.’
세 사람이 향한 곳이 자신이 아니었다는 것이 조금은 섭섭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대신해 유심을 구할 사람이 나타났으니 다행이었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온몸에서 힘이 쪽 빠져나갔다.
간신히 일어났던 꺽다리가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
“내 저 늙은이를!”
눈웃음이 오만상을 쓰며 관무백을 향해 성큼 한 발을 내디뎠다. 관무백은 유심의 상태를 살피는 것이었지만 눈웃음은 그가 유심을 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다. 누군가 급히 그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오만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뚱땡이였다.
“사기꾼, 너 오라버니가 돌아가셔도 상관없다 이거야?”
뚱땡이를 노려보는 그녀의 눈에 살기가 흘렀다.
뚱땡이는 그런 눈웃음을 대하면서도 웃었다.
그는 관무백이 유심을 해하려는 것이 아니라 살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눈웃음은 유심의 안위가 걱정돼 눈이 뒤집혀 있었지만 뚱땡이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있었다.
뚱땡이.
그의 출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그를 그저 세 치 혀나 잘 놀리는 사기꾼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뚱땡이가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한 위장이었다. 그는 어느 정도 학문까지 익히고 있었다.
냉정하고 치밀한 인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유심뿐이다. 물론 유심도 뚱땡이의 출신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에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다는 것은 그를 처음 만난 삼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뭐냐고? 이 사기꾼 새끼……!”
말이 끝나기도 전에 뚱땡이가 눈웃음을 와락 끌어안았다.
눈웃음의 눈이 커졌다. 그런 그녀의 귀로 뚱땡이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넌 그냥 내 품에 안겨서 아양이나 떠는 게 형님 도와주는 거야.”
짜악!
눈웃음이 뚱땡이를 밀쳐 내며 있는 힘껏 뺨을 후려치고는 눈길을 돌렸다.
관무백이 유심을 안아들고 조심스럽게 띠집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뭐야? 이거였어?’
그제야 뚱땡이가 자신을 막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기꾼 새끼,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다시 고개를 돌려 뚱땡이를 보았다. 왼쪽 볼이 벌겋게 부어 있었다.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흠흠!”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렇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새끼야, 그건 날 껴안은 값이야! 흥!”
콧방귀를 날리며 무신장으로 들어갔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던 뚱땡이와 왕평상, 그리고 간신히 몸을 추스른 꺽다리가 그 뒤를 따랐다.
2. 돈을 내시면 무공을 배워드리지요(1)
방으로 들어온 지 벌써 일다경.
그때까지도 관무백은 그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유심의 맥을 짚었다. 관무백은 단순히 유심의 내상을 살피는 것이 아니었다.
관무백은 유심에게 관심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사천성에 소문이 자자한 사천전충에 대한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대결 아닌 대결을 통해 관무백은 사천전충이 아닌 유심이라는 사람에게 관심이 갔다.
일백 년 공력을 받아낸 꼬마 녀석.
어쩌면 자신보다 나라를 위해 더 큰일을 할 수 있는 잠룡이 이곳 성도에서 썩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유심의 몸 구석구석을 찬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모습에 안절부절한 것은 꺽다리를 비롯한 세 명이다. 유심의 상태에 대해서 일언반구도 없으니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눈웃음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앵초(鶯苕)야!”
그런 눈웃음을 막은 것은 호걸주가 주인, 왕평상이다. 꺽다리나 뚱땡이는 이름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눈웃음은 앵초라……는 이름이 있었다. 물론 그것은 본명이 아닌 기명(妓名)이다.
눈웃음이 왕평상을 째려보았다. 왕평상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제길!”
눈웃음이 뽀로통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 와중에도 관무백은 신중하게 유심의 몸을 살펴 나갔다.
다시 일다경이 지났을까 굳게 닫혔던 관무백의 입에서 혼잣말이 흘러나왔다.
“무공을 익혔단 말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심의 몸속에는 십 년 내공이 자리하고 있었다.
십 년 내공.
삼 갑자의 내공을 보유한 관무백이 보기에는 그야말로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런 하잘것없는 내공이다. 그렇지만 이제 열다섯 정도에 불과한 소년이 보유한 내공이라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다섯 살 정도부터 심법을 연마하면서 정식으로 무공을 익혔다는 말이다. 사천전충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소문 중에 그가 무공을 익혔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갈수록 신기한 놈이로군.”
혼잣말과 함께 더욱 집중했다. 혹 자신이 알아내지 못한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기를 얼마, 관무백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집중하고 다시 찬찬히 살피니 역시 일반인과 다른 점이 또 있었다. 그것은 그의 몸이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빨리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 방 안으로 들어온 지 반 시진. 비록 큰 부상은 아니지만 그는 분명 적지 않은 내상을 입은 상태로 방에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몸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회복하고 있었다.
‘누군가 안배를 해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는 지금의 상태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시험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슬쩍 내공을 끌어올려 진기(眞氣)를 넣어보았다.
유심은 거침없이 그것을 빨아들였다. 공력을 슬쩍 더 올려보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의 경맥과 혈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넓게 뚫려 있었다. 누군가 그의 몸에 손을 댄 것이 분명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전혀 해가 될 것이 없었다. 만약 심법을 배워 운기를 한다면 유심은 일반인에 비해 훨씬 빠르게 공력을 쌓을 수 있다. 일반 무인이 좁은 산길을 따라 어렵게 공력(功力)이라는 짐을 옮기는 것이라면 유심은 거대 상선으로 장강의 거대한 물줄기를 따라 공력을 옮기는 것과 같았다.
관무백이 천천히 내력을 거두고 손목에서 손을 떼며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허허허허, 대하(大河)로구나. 거침없이 흐르는 도도한 대하야. 허허허허!”
관무백의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 * *
성도에서 한 시진 남짓거리에 그 높이가 거의 일천 장에 이르는 거산이 있다.
금양산(琴洋山).
일천 장에 이르는 거산이라면 중원에 소문이 자자할 것 같지만 성도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이 산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워낙에 명산들이 몰려 있는 지역이라 그러한 명산에 묻힌 것도 이유 중에 하나지만 금양산이 무명산으로 남겨진 것은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지척에 사는 성도 사람들도 금양산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고개를 저을 뿐이다.
경치가 볼품없어서?
아니다. 금양산은 정말 아름답다.
입구에서 바라본 금양산은 사람들에게 중원 명산으로 널리 알려진 아미산이나 청성산에 비해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풍경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금양산은 워낙 산세가 험해 일반인은 거의 올라갈 수 없었다.
그림의 떡.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런 금양산에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금양산 호유곡(虎遊谷)에는 자그마한 집 한 채가 있었다. 천막이나 다름없이 허름하지만 집인 것은 분명하다.
그 곳에는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