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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6화)
2. 돈을 내시면 무공을 배워드리지요(3)


성도사패(成都四覇). 성도를 장악하고 있는 네 개의 큰 세력이라는 뜻이다. 이름으로만 들으면 성도 안에 있는 제법 큰 무림문파를 생각나게 하지만 실상은 거리가 멀다.
성도사패는 성도를 크게 네 개의 권역으로 나눠 그곳을 장악하고 그 지역의 상점이나 주루, 객잔의 주인들에게 일명 보호비라는 명목으로 은자를 뜯어가는 저잣거리 왈패들의 모임이다.
성도사패가 만들어진 것은 오십여 년 전, 비록 왈패들의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제법 오래된 뿌리를 간직하고 있었다.
청룡맹(靑龍盟).
성도사패의 하나.
성도의 북동쪽을 장악하고 있는 왈패들의 모임, 그 세력권 중심에 청룡가(靑龍街)가 있어 그들은 스스로를 청룡맹이라 칭했다.
“정말 두 사람이 붙는 거야?”
“그렇다니까 그러네. 그나저나 자네는 누가 이길 것 같은가?”
“글쎄, 두 사람 다 어디 보통 인물이어야지.”
청룡맹 정문 앞은 오가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는 곳인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활짝 열린 청룡맹 정문 안쪽에 몰려 있었다.
두 사람이 삼 장 정도의 간격을 두고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장유심이다. 그리고 그를 마주 대하고 있는 이십대 후반의 사내는 청룡맹 맹주 고유발(高臾髮)이다.
고유발이 이곳 성도에 들어온 것은 십여 년 전이다. 거지나 다름없는 몰골로 들어섰지만 그는 불과 십여 년 만에 성도사패의 하나인 청룡맹 맹주 자리에 올라섰다. 그렇게 빨리 맹주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뛰어난 싸움 실력 덕분이다.
출신 내력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단순한 싸움꾼이 아니었다. 그는 권법, 각법, 장법 등 거의 모든 무공을 터득한 무인이었다. 무공 실력으로만 본다면 성도사패 패주들 가운데 최고였다. 특히 전임 청룡맹 맹주와의 싸움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칼 솜씨가 명문정파 제자들에 뒤지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사실 그는 유심이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도 몰랐다. 그저 갑작스럽게 “고유발―!” “고유발 나와―!” 하는 고함 소리를 듣고 방에서 뛰쳐나왔을 뿐이다.
유심을 바라보는 고유발의 눈에서는 당장에라도 유심을 박살낼 것 같은 무시무시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러나 노려볼 뿐 손을 쓰지는 않았다. 마음 같으면 한 주먹에 유심의 머리통을 박살내고 싶었지만 보는 눈들이 너무 많았다.
‘이것들이 호랑이 간이라도 처먹었나?’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이곳에서 돼지 멱따는 소리가 나도 사람들이 몰려들지는 않는다. 공연히 관심을 가졌다가 자신에게 무슨 변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별다른 소란이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아니, 자신이 “고유발 나와―!”라는 고함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을 때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뚱땡이, 모처럼 일 제대로 했다.’
유심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고유발은 알지 못했지만 이 모든 것은 유심의 작품이었다.
처음 유심이 무신장을 찾을 때까지만 해도 유심의 계획은 간단했다. 관무백의 위세를 빌어 외상값을 받는 것이다. 이름하여 호가호위(狐假虎威) 전법. 그러나 관무백을 만나고, 아니, 관무백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된 후 계획을 바꿨다. 관무백은 자신이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계획을 바꾼 후 유심이 가장 고민한 것은 자신의 안전이었다. 불한당잡배명부에 기록된 인물들은 하나같이 위험 인물들이었다.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고 무작정 달려들었다가는 그날이 제삿날이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고민 끝에 나온 것이 지금의 ‘사람을 모으자.’다.
아무리 권세가 높고 악명이 자자한 인물이라도 사람들의 눈이 있는 곳에서는 어쩔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심은 뚱땡이에게 그 일을 맡겼다.
녀석은 사기꾼이라 불릴 정도로 언변이 좋다. 더구나 용호각에서 호객꾼으로 일하고 있으니 사람을 모으는 일에 그보다 적임자는 없었다. 물론 꺽다리가 있었지만 그는 언변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그가 할 중요한 일은 따로 있었다.
이제 안전은 어느 정도 확보됐으니 본격적으로 일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열 냥!”
오랜 기다림 끝에 흘러나온 한마디 치고는 간단했다.
짧은 한마디. 그것이 고유발을 더욱 자극했다. 청룡맹주에 올라선 이후 지금까지 그에게 이렇게 말을 짧게 뱉은 사람은 없었다.
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유발의 미간이 종잇장 구겨지듯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름과 동시에 경련이 일었다. 어느새 떨림은 얼굴을 넘어 손끝까지 이어졌다. 시뻘겋게 변한 얼굴에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모습은 야차와 같이 무시무시했다.
그러나 유심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 모습을 빤히 보고 있었다. 입가에 언뜻 미소까지 스치고 지나는 것이 겁은커녕 지금의 상황을 즐기는 듯 보였다.
“나 바쁜 사람이거든. 줄 거야, 말 거야?”
다시 입을 열며 오른손을 앞으로 들이밀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 뭉치 하나가 들려 있었다.
종이 뭉치. 그것은 호걸주가 악덕 외상 장부 불한당잡배명부였다. 그제야 고유발은 유심이 자신을 찾은 이유를 알았다.
어이가 없었다.
성도에서 장사하는 놈이 그것도 술집을 하는 놈이 자신에게 외상을 받겠다고 사람을 보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클클클, 왕가 놈이 뒈지고 싶어 환장을 한 모양이구나.”
“이봐,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이 장부는 이제 아저씨하고는 상관없어. 오늘 아침에 나, 장.유.심이 샀거든.”
장유심이라는 세 글자에 유난히 힘을 줬다. 고유발에게 결코 내가 만만한 놈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켜 주기 위해서다. 유심의 작전은 일단 성공인 듯 보였다.
밖에서 긴가민가 지켜보던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더욱 커졌다. 그와 동시에 고유발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를 놓치지 않았다.
“열 냥이라니까”
외상 장부를 턱밑까지 바짝 들이밀었다.
고유발의 강철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다른 놈 같으면 반쯤 죽여 놓으면 된다. 그렇지만 사천전충은 완전히 죽여야 끝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더 큰 골칫거리가 된다.
반쯤 죽이는 것과 완전히 죽이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사실 뒷골목에서 폭력은 일상이다. 단순히 영역을 넘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수십 명이 병신이 되는 것이 이 바닥이다. 죽지만 않는다면 든든한 뒷배를 이용해서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다.
죽일 수 없다면 해결할 방법은 딱 하나, 외상값 열 냥을 갚는 것이다.
사실 고유발에게 은자 열 냥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체면이 걸린다. 지금 등 뒤에는 부맹주, 허두삼(許豆三)을 비롯한 부하들이 지켜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청룡맹주 고유발이 사천전충에게 은자 열 냥을 내줬다.’라는 말이 성도 바닥에 돌면 성도사패 다른 세 놈에게 두고두고 술안주거리가 되고 만다.
‘그럴 수는 없지.’
고개를 힘껏 가로젓고 고개를 돌리며 수하들에게 말했다.
“치워!”
“죽일까요?”
빠악!
애꿎은 부맹주 허두삼에게 주먹을 날렸다.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진 두삼이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유발은 더욱 큰소리를 질렀다.
“개새끼, 누가 죽이래? 치우라고 말했잖아.”
“예!”
고유발이 더욱 큰소리로 명령을 내리고는 몸을 뺐다. ‘모르면 손 빼라’ 지금 상황에서는 그 말이 진리였다. 뒤쪽에 있던 왈패들이 고유발의 뒤를 쫓으려는 유심의 앞을 막아섰다.
툭!
누군가 뒤에서 유심의 어깨를 건드렸다. 유심이 얼굴을 찡그리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언제 일어났는지 허두삼이 그를 보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봐, 벌레! 좋은 말할 때 꺼져.”
“싫다면…….”
휘익!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두삼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조금 전 억울하게 맞았던 것까지 갚겠다는 듯 제법 날카로운 공격이다.
재빨리 몸을 숙였다. 이미 허두삼의 기습을 예상하고 있었다.
부웅!
두삼의 주먹이 허공을 가름과 동시에 유심은 주먹을 날렸다.
“크흑!”
두삼은 신음과 함께 배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났다. 유심이 뒷걸음질 치는 두삼을 향해 다가서려는 순간, 왈패들이 유심의 등 뒤에서 일제히 달려들었다.
유심은 두삼을 계속 공격하는 대신 몸을 피하는 길을 택했다. 돈을 받으려고 온 거지 싸우려고 온 것이 아니다. 꺽다리가 이곳에 도착할 때까지 시간만 끌면 된다.
꺽다리의 걸음으로 볼 때 길어야 일각이다. 물론 싸우면서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는 이십여 명. 아무리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두르는 왈패들이라 하더라도 모두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였다.
더구나 그들의 우두머리는 장안에 소문이 자자한 성도 제일의 싸움꾼이었다. 지금이야 부하들에게 맡겨두고 있지만 마지막에는 그가 직접 나설 가능성이 높았다.
“어딜!”
왈패 한 명이 몽둥이를 들고 몸을 피하려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생각이고 뭐고 없었다.
녀석의 턱에 주먹을 틀어박았다.
빠악!
타격 소리와 함께 녀석은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놈이 떨어뜨린 몽둥이를 주워 들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휘이―잉!
몽둥이가 바람을 갈랐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가오던 왈패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모든 왈패들이 몸을 피한 것은 아니다.
“크아악!”
퍼억 소리와 함께 미처 피하지 못한 왈패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머리를 맞았는지 쓰러진 놈의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이런!”
유심이 놀란 듯 흠칫 몸을 떨었다.
만약 놈이 죽기라도 한다면…….
꼼짝 없이 감옥에 갇히고 만다. 아니, 사람을 죽였으니 잘못하면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다. 그깟 돈 몇 푼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은 없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듯 녀석은 몸을 꿈틀거리며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토했다.
잠깐의 방심이 위기를 불렀다. 유심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왈패들이 일제히 달려들며 몽둥이를 휘두른 것이다.
빠바―박!
왈패들의 몽둥이가 유심의 온몸을 두드렸다.
“크흑!”
유심이 신음을 토하며 비틀거렸다.
아무리 맞는데 이골이 난 유심이라도 사방에서 날아든 몽둥이를 맞고는 견딜 수 없었다.
“클클클.”
부맹주 허두삼이 괴소를 흘리며 유심에게 다가왔다. 그의 손에는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허두삼의 등장에 왈패들이 일제히 길을 터줬다.
놈의 눈에 살기가 번뜩였다.
맹주의 명이 있으니 죽일 수는 없어도 최소한 사지는 모두 부러뜨릴 생각이었다.

“대장군!”
관무백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심의 계획에 따른다면 지금은 나설 때가 아니었지만 위기에 처한 유심을 그냥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관무백의 옆에 있던 사내가 천천히 청룡문 정문으로 걸어갔다.
한쪽 팔이 잘린 초라한 모습의 사내. 그렇지만 청룡맹으로 걸어가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도는 범상치 않았다.
마장군(馬將軍) 운지학(雲智鶴).
겉으로 보기에는 중년의 사내로 보였지만 그는 환갑이 넘은 노인이었다. 기마대 장군으로 관무백과 함께 전장을 누빈 백전노장이 바로 그였다.
관무백이 현역에서 물러날 때 그의 나이 오십, 아직 충분히 장군으로 전장터에 나설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는 장군의 인을 반납하고 관무백의 뒤를 따랐다.
“멈추지 못할까―!”
쩌렁쩌렁한 호통이 그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뭐래? 저 병신!”
“몰라, 우리가 언제 성한 놈 안 성한 놈 가렸어? 까불면 그냥 까는 거지.”
“하긴 그렇지?”
“암, 그렇고 말고.”
“그냥 죽여.”
“우와아―!”
꿩 대신 닭.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던 차. 유심을 허두삼에게 빼앗긴 청룡맹 왈패들이 몽둥이를 치켜든 채 고함을 내지르며 안으로 들어서는 운지학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운지학을 구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매타작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이 밀려온 까닭이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운지학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향해 달려오는 왈패들을 연민의 눈으로 보았다.
앞쪽에서 달려오던 녀석들이 일제히 몽둥이를 휘둘렀다.
쌔액! 쌔액!
사방에서 몽둥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들었지만 운지학의 눈빛에는 여전히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가장 먼저 날아든 몽둥이가 떨어지려는 찰나.
운지학의 발이 움직였다.
스르륵!
몽둥이는 운지학의 잔영만을 가른 채 허망하게 허공을 갈랐다. 간단히 공격을 피한 운지학의 한 팔이 움직이며 조금 전 자신을 공격했던 사내의 팔목을 움켜잡았다.
“크흑!”
그저 움켜쥐기만 했을 뿐인데 녀석의 입에서 신음이 나왔다. 운지학이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녀석의 몸뚱이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바닥에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달려드는 꺽다리에게 관무백이 펼쳤던 금나수, 비응나연(飛鷹拏燕)이 운지학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많이 달랐다. 간신히 일어난 왈패의 손목 부위는 부러진 듯 덜렁거리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관무백은 일 푼의 공력도 싣지 않았지만 운지학은 삼성이 넘는 공력을 실었다.
“죽여!”
쌔앵!
왈패들은 더욱 악다구니를 쓰며 달려들었다.
“이놈들이!”
운지학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시작이었다.
“타앗!”
처음으로 기합을 토하며 왈패들 한복판 속으로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