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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7화)
2. 돈을 내시면 무공을 배워드리지요(4)


슈슈슉!
그저 춤을 추듯 가볍게 손을 저을 뿐이건만 그때마다 왈패들은 한 명씩 나가떨어졌다. 눈 깜짝할 사이 십여 명이 신음과 함께 땅바닥을 뒹굴었다.
급히 고개를 치켜들었다.
유심을 향해 몽둥이를 치켜든 허두삼이 보였다.

발을 잘못 내디뎠다.
몸이 흠칫하며 중심을 잃는 와중에 허두삼의 몽둥이가 날아들었다. 급히 허리를 뒤로 젖혀 몽둥이를 피하기는 했지만 몸을 가눌 수가 없었다.
“클클클.”
허두삼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드러누운 유심의 얼굴을 향해 있는 힘껏 몽둥이를 내려쳤다.
유심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몸을 일으켜 피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몸을 일으키는 대신 바닥에서 몸을 굴렸다. 무림인들이 가장 수치스러워 하는 뇌[나]려타곤(懶驢打滾) 수법이다. 그러나 무림인도 아닌 유심이 그것을 가릴 필요는 없었다. 위기에 처한 유심은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고 현재 상태에서는 가장 완벽한 방어법이었다.
퍽!
몽둥이가 떨어진 땅에서 먼지가 피어올랐다.
간신히 피하기는 했지만 위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허두삼은 유심이 일어날 기회를 주지 않고 계속해서 몽둥이를 내려쳤다.
‘꺽다리, 이 망할 자식!’
유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지금쯤이면 꺽다리가 도착하고도 남을 시간이건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운지학의 입에서 당혹스러운 외마디가 흘러나왔다.
마음이 급했다. 그러나 아직 열 명 남짓한 왈패들이 남아 있었다. 공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일합(一合)에 남은 녀석들을 모두 쓰러뜨리지 않으면 유심이 위험했다. 그동안은 녀석들이 큰 부상은 입지 않도록 배려했지만 지금은 손속에 사정을 둘 때가 아니었다.
그때.
“멈추시오―!”
고함과 동시에 포졸 수십 명과 포두 몇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에는 유심이 기다렸던 꺽다리도 섞여 있었다.
“혀엉!”
꺽다리가 유심의 몰골에 깜짝 놀라며 달려와 유심을 일으켜 세웠다.
“새끼, 빨리도 왔다. 죽을 뻔했잖아.”
“미안해. 그런데 하필 왜 이 판관이야? 그 사람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느라 한참 걸렸잖아. 포두, 포졸 놈들은 뭘 잘못 처먹었는지 뭉그적거리기만 하고. 나.원.참.”
꺽다리의 말에 유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꺽다리는 몰랐지만 유심은 포졸, 포두 놈들이 왜 그렇게 꾸물거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떨그럴.’
갑작스러운 불청객의 등장에 가장 짜증이 난 것은 청룡맹 부맹주 허두삼이었다. 허두삼이 씩씩거리며 고개를 돌렸다.
포두 가운데 한두 명은 그도 알고 있는 자들이다.
수하들이 사고를 쳤을 때 뒷돈을 찔러준 놈들이었다. 놈들만 있다면 몽둥이질을 계속해도 상관없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포두와 포졸, 그리고 문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었다. 허두삼이 들고 있던 몽둥이를 바닥에 팽개쳤다. 그와 거의 동시에 관복을 차려입은 한 사람이 거들먹거리며 청룡맹 안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이 판관님 아니십니까?”
청룡맹 맹주 고유발이 황급히 그를 향해 달려오더니 고개를 숙였다. 그런 고유발을 보며 이 판관이라는 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치돈.
성도의 치안을 책임지는 판관. 판관의 생명은 모름지기 공평무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공평무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는 직책을 이용해 성도사패로부터 많은 뒷돈을 받고 있었다. 그는 또한 불한당잡배명부에 첫 번째로 등재된 인물이었다.
“그래, 내 자네 집에 소란이 있다고 해서 왔네. 무슨…….”
이치돈이 급히 입을 닫았다.
그의 입을 막은 것은 바로 운지학이었다.
일반 백성들에게 운지학은 낮선 사람에 불과하지만 성도의 관리들 가운데 상승대장군 관무백의 오른팔이었던 마장군 운지학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재빨리 앞으로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운 장군님이 이런 곳에 웬일이십니까?”
“대장군님을 모시고 이곳을 지나치다가 싸움이 격해져서 나서 봤네.”
“예? 대장군님이요? 그럼 관 대장군님이…….”
이치돈이 말꼬리를 끌며 두리번거렸다.
한 노인이 신선과 같은 흰 수염을 날리며 안쪽을 보고 있었다. 이치돈이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였다.
“처처, 천무신장 과과과, 관 대장군님을 뵈옵니다!”
“천무신장 관 대장군님을 뵙습니다!”
이치돈에 이어 포두, 포졸들이 모두 큰소리로 외치며 관무백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에 어리둥절한 것은 청룡맹 왈패들과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었다. 자신들도 관무백을 향해 무릎을 꿇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냥 서 있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온 관무백이 이치돈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일어나게. 이젠 그냥 농사나 짓는 늙은이 아닌가.”
이치돈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전히 고개는 숙이고 있었다. 비록 현직에서 물러났다고 하지만 관무백의 말 한마디면 자신의 목 하나 날아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대장군님께서 어인 일이십니까?”
“허허허, 나야 바람이나 쐬려고 왔지. 그러다가 이곳에서 소란이 일어서 잠시 보고 있었네. 보아하니 사소한 외상값 시비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이 격해져서 일이 커진 것 같더군. 외상이야 갚으면 되는 일 아닌가? 마침 자네가 왔으니 잘 해결해 주리라 믿네만?”
“그야 물론입니다. 두 사람은 냉큼 가까이 오너라!”
이치돈의 부름에 고유발과 유심이 그 앞으로 갔다.
“무슨 일이냐?”
“예. 저는 성도 시장통에 자리한 호걸주가의 외상을 받으러 온 장.유.심.이라고 합니다. 여기 고 대협께서 거의 일 년 전에 주가에서 술을 드시고 아직 은자를 치르지 않았기에 받으러 왔다가 잠시 오해가 있어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장유심? 호걸주가?”
이치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장유심을 보았다. 장유심이 그를 보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돈벌레, 알고 있구나.’
이치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자신 역시 호걸주가에 이십 냥이라는 외상을 지고 있었다. 만일 그것을 이 자리에서 말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런 일로 파직이야 당할 리 없겠지만 혹여 관무백의 눈 밖에라도 난다면 앞으로의 승차는 기대할 수 없었다. 다른 놈 같으면 판관인 자신에게 감히 ‘외상값 갚아요.’라고 말할 수 없겠지만 사천전충이라면 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참, 그러고 보니 판관님도…….”
급히 말을 잘랐다.
“마마마, 마침 잘 만났네. 나도 호걸주가에 외상이 있는데 그동안 하도 공무가 바빠서 들르지 못했다네. 자, 받게!”
이치돈이 품에서 작은 은자 꾸러미를 꺼내 유심에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유심이 건넨 꾸러미를 빼앗듯 받아들고 자신의 품속 깊이 밀어 넣었다.
이치돈이 고유발을 보며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고유발은 잘 알고 있었다.
‘씹어 먹을 놈!’
유심을 한 차례 노려본 후 품에서 열 냥을 꺼냈다.
“감사합니다. 대협!”
고유발이 손을 내밀기도 전에 유심은 은자 열 냥을 낚아챘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수금에 많은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유심이 두 사람을 향해 넙죽 고개를 숙이고는 휑하니 몸을 돌렸다.
“꺽다리, 가자!”
“예! 형님.”
유심과 꺽다리 두 사람이 문밖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 * *

관무백과 이치돈이 청룡맹을 빠져나가자마자 고유발은 청룡맹에 속한 모든 왈패들을 불러 모았다. 맹주의 호출에 일백여 왈패들이 반 시진도 되기 전에 모두 모였다.
수하들을 바라보는 고유발의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성도의 밤거리에서 황제처럼 군림하던 자신에게 이런 모욕에 찬 패배를 안겨준 놈은 없었다. 더구나 상대는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애송이.
꽈드드득!
이를 악물었다.
용납할 수가 없었다.
“쥐도 새도 모르게 놈을 끌고 와라. 반항하면 사지를 잘라도 좋다. 단, 목숨만은 붙여놓아야 한다. 놈의 목은 나, 고유발의 것이다. 알겠나?”
“예. 맹주님.”
대답과 동시에 청룡맹 왈패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성도 곳곳으로 흩어졌다.
밖으로 나가는 수하들을 잠시 바라보던 고유발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제껏 말없이 고유발을 지켜보기만 하던 부맹주 허두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맹주님!”
고유발이 허두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두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자신을 보는 고유발의 핏발 가득한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괜히 나선 거 아냐?’
후회했다. 입 한 번 잘못 놀리면 목이 잘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그러나 할 말은 해야 했다.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말을 이었다.
“괜찮겠습니까?”
“그깟 애송이 하나 처리하는 게 뭐가 문제야?”
“그그, 그게 아니라 과과과, 관무백이 있지 않습니까?”
“관무백, 그 늙은이 이름이 왜 여기서 나와?”
“그 늙은이가 구해준 아이 아닙니까?”
“이런 병신 새끼! 허두삼! 너 그 늙은이 말 못 들었어? 바람 쐬러 나왔다잖아. 우연히 봤다잖아. 너 설마 그 늙은이하고 벌레 새끼하고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대가리 있으면 생각해 봐! 밑바닥 인생, 벌레 새끼가 어떻게 그런 늙은이와 인연이 있겠어? 안 그래?”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닥쳐! 더 이상 개소리하면 네 목부터 자른다. 알았어?”
허두삼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꺼림칙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삼십 년간 왈패 생활을 하면서 갖게 된 그만의 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감이 그런데요.’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정말 자신의 목이 달아날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됐지?”
허두삼을 한심하다는 듯 노려보던 고유발이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고는 천천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개새끼,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지껄이는 말버릇 하고는…….’
허두삼의 이마 한복판에 내천자가 깊숙이 그려졌다.

* * *

깎아지른 절벽 중간.
산짐승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그곳.
어둠을 뚫고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 발만 잘못 디디면 까마득한 계곡으로 떨어지고 말 위험천만한 절벽 중간을 타고 한 사람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의 등에는 몸보다 더 커 보이는 큼지막한 보따리까지 달려 있었다.
유심이다.
등에 매달린 보따리에는 아버지에게 건넬 약초가 가득 들어 있었다. 산짐승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험한 절벽을 타면서도 그의 발걸음에는 제법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뒤를 따르는 그림자들이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
유심의 뒤로 십여 장 정도.
허리에 칼까지 찬 네 녀석이 땀에 흠뻑 젖은 몰골로 유심의 뒤를 쫓고 있었다.
맹주의 추살령을 받고 유심을 찾아 나섰던 청룡맹의 왈패들이었다. 맹을 나선 왈패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성도를 이잡듯 뒤졌다.
유심, 그야말로 소문이 자자한 유명 인사지만 정작 그의 거처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꺽다리를 비롯한 유심의 부하 세 명도 그가 어디 사는지는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운이 좋은 놈들이었다. 약방에서 약초를 구해 나오는 유심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한적한 길거리에서 유심을 해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았다. 할 수 없이 뒤를 조용히 쫓았다. 그렇게 이곳 호유곡까지 따라오게 된 것이다.
호유곡이라면 대낮이라 해도 사람의 왕래가 없는 곳이다. 어둠이 깔린 호유곡은 짐승들도 출입하지 않는 곳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해치우기에 이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다. 그러나 놈들은 유심의 뒤만 어렵사리 쫓고 있을 뿐이었다. 해치우기 위해서는 일단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한 발 내딛는 것도 버거운 그들로서는 다가갈 방법이 없었다.
“씨팔, 이럴 줄 알았으면 입구에서 처치하는 건데.”
“제길, 누가 이런 곳인 줄 알았어. 그나저나 언제까지 걸어야 하는 거야?”
“낸들 알아. 좌우지간 벌레 새끼 한 마리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이야. 좌우간 내 저 벌레 새끼 곱게 저 세상으로 보내지는 않을 걸세.”
“그야 물론이지.”
걸음을 내디디며 은밀히 나누는 그들의 대화에는 유심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한 시진이 지나서야 유심은 집에 도착했다.
열흘 만에 돌아온 집. 이번에는 은자 오십 냥 모으기가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구해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긴장이 풀리며 온몸에서 힘이 쭉 빠졌다. 등에 지고 있는 약초 보따리가 무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렇지만 유심은 방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약초를 전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이었다.
아버지가 머물고 있는 뒤쪽 숲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