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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10화)
3. 마존(魔尊)의 제자? 개가 웃을 일이로군(2)
중원칠웅(中原七雄).
그들은 현 중원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무인들 가운데 최강자들을 말한다. 물론 그들이 중원의 최강자라는 말은 아니다. 현 중원무림에는 그들보다 무공이 강한 자들로 알려진 절대고수가 무려 열한 명이나 있다.
이존(二尊) 사왕(四王) 오귀(五鬼).
그들 중에는 천무신장 관무백도 있었다.
창왕(槍王) 관무백.
사왕 중에 한 명이 바로 그였다.
본시 군문에 속한 자들은 강호의 인물로 취급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것은 관과 무림은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기도 하지만 강호인들이 그만큼 군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오직 관무백만이 예외였다. 그는 군문은 물론 강호무림인들에게도 절대고수로 인정받는 유일한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관무백이 현직에서 물러났듯 이미 강호를 떠나 은거에 들어간 전대 고수들이다. 하여 현재 활동하는 강호인들 가운데 최고 고수를 말하라면 누구나 중원칠웅을 꼽는다.
노인은 바로 그들 중 한 명인 사천당가의 부가주, 암웅(暗雄) 당소강(唐昭剛)이었다.
소강이 희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쾌섬(快閃)이다.”
“예에?”
당희의 눈이 동그래졌다.
당희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다른 당가 무인들 역시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쾌섬. 그것은 당희도 잘 알고 있는 말이다. 그것은 무공 이름인 동시에 사람 이름이었다.
이존 가운데 한 명인 쾌섬마존(快閃魔尊)이 펼치는 절대 쾌검. 본래 쾌섬이라는 무공은 이름이 없었다. 그런 무명 무공이 쾌섬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은 그것을 펼치는 인물이 무림이존 가운데 한 명인 쾌섬마존이었기 때문이다.
“수수, 숙부님, 마존은 이미 강호를 떠난 사람이 아닙니까?”
“그래. 그는 분명 강호를 떠났다. 그리고 만약 살육을 벌인 인물이 마존이라면 난 그의 십초지적도 되지 못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것은 마존의 작품이 아니다. 마존이 비록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다루기는 하지만 ‘몸을 돌려 도망치는 사람들은 절대 공격하지 않는다.’는 원칙 한 가지만은 반드시 지킨다. 하여 무림인들은 그를 마도에 속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존이라는 칭호를 붙여주었다. 그런데 이자는 도망치려는 자들까지 모두 베었다. 거기다 잘린 단면을 보면 마존에게는 훨씬 미치지 못하는 실력이다. 그렇지만 초식은 분명 쾌섬, 그중에서도 첫 번째 초식이다.”
“숙부님, 그렇다면 마존의 제자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가능성은 있겠지. 그렇다면 강호에 다시 한 번 피바람이 분다는 소리다. 희야, 난 이곳 일을 마무리 짓고 갈 것이니 너는 이 사실을 지금 즉시 본가에 알려라.”
“예, 숙부님.”
대답과 함께 당희의 모습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유심은 문밖에서 관무백이 나타나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던 그의 눈에 관무백이 보였다.
“사부님!”
유심이 재빨리 그 옆으로 달려갔다. 관무백이 그런 유심을 보며 짐짓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부라니? 그게 뭔 말인가?”
“예, 그게 무…….”
관무백의 눈치를 살피며 말꼬리를 늘이던 유심이 즉시 관무백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큰절을 올렸다.
“아!홉!”
자신이 구배지례를 끝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유심은 큰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오냐, 그러고 보니 내 제자로구나. 허허허허!”
관무백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그런 관무백을 보며 운지학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관무백. 그는 웃음이 많지 않은 사람이다. 그것은 생활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냈기에 자연스럽게 생긴 버릇이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쟁터에서 웃을 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또한 일백만 대군을 일사분란하게 지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권위가 필요하다.
권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여 그는 평시에도 부하들 앞에서 거의 웃지 않았다. 언제나 근엄한 표정으로 장군들을 만났고 수하들을 대했다. 물론 그 표정 뒤에는 누구보다 수하 장졸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대했다.
전쟁터에서 아들, 관천호를 잃은 이후에는 하나밖에 없는 혈육, 혜령을 마주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웃음을 볼 수 없었다.
‘달라지셨어.’
확실히 유심을 만난 후 관무백은 변했다.
표정이 밝아졌다. 무엇보다 웃음이 많아졌다. 운지학은 그것이 좋았다.
처음 관무백이 유심을 자신의 제자로 삼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운지학은 그 결정을 달갑지 않게 여겼다.
자신이 하늘처럼 떠받드는 대장군 관무백의 제자는 인세에 찾을 수 없는 특별한 기재(奇才)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지학이 보기에 유심은 무공에 특별한 재능이 있어 보이지도 않고 우국충정도 별반 없어 보이는 그저 그렇고 그런 평범한 아이에 불과했다.
관무백의 웃음을 통해 그 생각이 조금 변했다.
꽤나 괜찮은 녀석으로 보였다. 사십 년 가까이 모시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찾아주지 못했던 웃음을 유심은 단 하루만에 찾아주었다. 어쩌면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특별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슬쩍 고개를 돌려 관무백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유심을 보았다. 그제야 운지학을 발견했는지 유심이 놀란 얼굴로 그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운지학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순간,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자신도 웃고 있었다.
‘이놈 봐라!’
운지학이 스스로에게 놀라고 있는 사이 그들은 벌써 청룡맹 정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대장군께서 이곳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정문 경비를 책임진 포두가 관무백을 발견하고 황급히 달려와 허리를 숙였다.
“소식을 듣고 왔네. 들어가도 되겠는가?”
“물론입니다. 소인이 모시겠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포두가 허리를 숙인 채 앞장섰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졌다.
부지런히 움직인 포두들 덕분에 마당의 시체는 이제 겨우 십여 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 시신들이야말로 죽은 자들 가운데 가장 참혹한 모습으로 당한 자들이다.
배가 갈라진 채 내장을 모두 쏟은 시신들. 피범벅이 되어 반으로 잘린 시신들. 목구멍까지 똥물이 올라왔지만 유심은 되새김질까지 하며 억지로 참았다.
그런 유심을 뒤로하고 관무백은 천천히 발을 움직였다. 그가 향한 곳은 청룡맹 맹주 고유발의 시신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시신을 다시 한 번 유심히 살피고 있는 사천당가 부가주 당소강이다.
“오랜만일세. 부가주!”
관무백의 한마디에 당소강의 얼굴은 일순 얼어붙었다.
아무리 고유발의 시신을 살피는데 정신을 쏟고 있었다지만 중원 최강의 고수라는 칠웅 가운데 한 명인 자신이 인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누구지?’
당소강이 앉은 채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한 노인이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무림말학, 당소강 어르신을 뵙습니다.”
당소강이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관무백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마당에 흩어져 있던 사천당가 무인들이 놀란 듯 소강을 보았다.
무림말학(武林末學)!
그 한마디가 그들에게 주는 충격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자신들에게는 그야말로 하늘과 같은 부가주, 거기다 중원무림에 위명이 자자한 칠웅 중에 한 명이 스스로를 그렇게 칭했다.
그들 모두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서로를 보았다.
‘저 사람 누구야?’ 라고 서로 묻는 것이지만 그들 중에 관무백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기에 입을 여는 자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의문은 오래가지 않았다.
“창왕 어르신을 이곳에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차차, 창왕!”
“아니, 그럼 저분이 천무신장 관무백 대장군이란 말인가?”
이곳저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창왕은 무슨? 그냥 하릴없이 세월만 축내는 노인네에 불과한 것을. 그래 뭐 좀 알아낸 것이 있나?”
“어르신, 아무래도 마존의 제자가 나타난 것 같습니다.”
“마존?”
“예, 시신을 한 번 살펴보시겠습니까?”
“내가 보면 아나. 난 마존이라는 자도 그의 무공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네. 그래 조치는 취해두었는가?”
“예, 지금쯤 본가의 제자들이 중원 전역에 이 소식을 알리고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본가에서 회의가 있을 것 같은데 어르신도 참석하시겠습니까?”
“난 무림인이 아니지 않은가? 물론 청룡맹을 이렇게 만든 자를 만난다면 가만 놔두지는 않을 생각이네. 비록 이들이 무뢰한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폐하의 백성이 아닌가. 그럼 이만!”
관무백이 소강을 향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성도 시내 입구에 도착할 때까지도 유심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허허허, 날아가는 참새 속곳이라도 보았느냐?”
“사부님은 속곳 입은 참새 보신 적 있으십니까?”
“뭐? 이런 고얀 놈이 있나. 이놈! 하늘 같은 사부에게 어디 감히 꼬박꼬박 말대답이냐.”
관무백이 짐짓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유심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콧노래까지 불러가며 시내로 들어섰다.
기분이 좋았다.
관무백이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무림인들에게도 이런 대접을 받는 사람일 것이라고는 유심도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그 사람들은 사천성뿐만 아니라 중원에서도 콧대 높기로 유명한 당가의 무인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기분은 좋았다.
“사부 하나는 잘 뽑았군.”
“뭐? 지금 뭐라 하였느냐?”
“아아, 아닙니다.”
“아니긴, 이놈아 내 방금 네 헛소리를 두 귀로 똑똑히 들었건만 어디서 오리발이냐?”
“솔직히 헛소리는 아니죠?”
“헛소리가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잊으셨습니까? 제가 사부님께 제자가 되겠다고 매달린 게 아닙니다. 사부님이 없는 은!자!까지 퍼 주시면서 제게 제자가 돼달라고 매달리셨죠.”
‘썩을 놈의 자식!’
참으로 고약스러운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관무백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공연히 더 말을 섞어봐야 자기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에 그는 유심 반대쪽에서 따르고 있는 운지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처음부터 확실히 잡아야 할 놈일세. 아주 제대로 다뤄주게. 알겠나?”
관무백의 전음을 받은 운지학이 미소를 지으며 유심을 보았다.
관무백의 전음을 들을 리 없는 유심은 여전히 태평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유심을 보며 운지학은 ‘고생길이 훤하다.’는 말을 되뇌고 또 되뇌었다.
“형!”
시내로 들어선 유심을 발견하고 꺽다리가 달려 나왔다. 그 소리를 들었는지 뚱땡이 역시 황급히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들 눈에는 관무백은 보이지도 않는지 그대로 지나쳐 유심에게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형, 몸은 괜찮아?”
“그래!”
“다행이네. 어? 그러고 보니 이분은?”
그제야 관무백을 발견한 듯 두 사람은 관무백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지만 관무백에 대한 예의는 그것이 끝인 듯했다. 재빨리 시선을 돌려 유심을 보며 말했다.
“형, 그런데 왜 어르신하고 같이 가는 거야?”
“참, 아직 모르겠구나? 나 오늘부터 어르신께 무공 배우기로 했다.”
“뭐 그게 참말이야?”
“응.”
꺽다리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유심이 무공을 익히게 된 것은 참으로 잘된 일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주루 손님을 모으는 밤까지 그는 할 일이 없었다.
“형, 우리도 배우자!”
“야, 인마!”
꺽다리 말에 고함을 지른 것은 뚱땡이였다.
꺽다리는 몰랐지만 뚱땡이는 관무백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나 꺽다리 같은 인물들에게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러나 꺽다리는 달랐다.
날마다 유심과 함께 움직이던 그로서는 자신이 일을 시작하는 저녁까지 혼자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다.
“누가 정식으로 대장군님 제자가 되겠데? 우리는 그냥 대장군님께서 형한테 가르쳐 주는 것 지켜보다가 옆에서 흉내만 내면 되잖아.”
“네 머리로 그게 되겠냐?”
“뭐? 이 사기꾼 새끼가 사람을 뭐로 보고!”
“뭐로 보긴? 돌대가리로 보지.”
“뚱땡이! 너, 이 새끼. 뒈지고 싶어? 엉!”
자신을 무시하는 말에 화가 치솟았는지 아니면 이죽거리는 뚱땡이의 모양새가 고까웠는지 꺽다리가 뚱땡이의 멱살을 바짝 틀어줬다. 그렇지만 뚱땡이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어라! 그러다 치겠다.”
“왜? 못 칠 것 같아?”
서로를 노려보는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만!”
보다 못한 유심이 나섰다. 꺽다리가 슬그머니 손을 풀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 모두 화가 풀리지는 않은 듯 서로를 바라보며 씩씩거렸다.
“눈깔 풀지 못해!”
유심의 고함이 다시 한 번 터지고 나서야 두 사람은 그대로 몸을 돌려 서로를 외면했다.
유심이 슬슬 관무백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부님, 저놈들은 덤입니다.”
“덤? 그러니까 공짜다 이 말이냐?”
“그렇습니다.”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덤이 아니라 혹으로 보이는데.”
“아닙니다. 저놈들도 나름 물건들입니다. 본래 두 놈 묶어서 두 시진에 한 냥은 받아야 하는…….”
말을 끊었다. 아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너무 나갔다.’ 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사실 자신을 가르치려면 은자를 내라는 말도 억지 중의 억지다. 그런데도 그렇게 말한 것은 관무백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은 미련이 그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거절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관무백은 자신의 억지를 받아주었다.
왜?
관무백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에 귀엽게 봐준 덕분이다. 그렇지만 모든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지금 자신의 말은 스스로 생각해도 그 한계를 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