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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11화)
3. 마존(魔尊)의 제자? 개가 웃을 일이로군(3)
즉시 시선을 관무백에게 돌렸다.
역시 관무백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았다. 당장에라도 불호령을 내릴 듯 얼굴이 무섭게 변해 있었다. 잠시 관무백의 얼굴을 살피던 유심이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때는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답이었다.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저놈들은 제게 형제 같은 녀석들입니다.”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관무백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유심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명백한 승낙의 표시.
관무백의 모습에 뚱땡이와 꺽다리 입이 길게 찢어졌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자신들이 천무신장의 제자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아니, 아직도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뺨이라도 꼬집어보고 싶었지만 두 사람 모두 꾹 참았다. 흥분에 얼굴까지 벌게진 꺽다리가 뚱땡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뚱땡이, 이게 꿈이냐 생시냐?”
“그건 나도 몰라. 그렇지만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닌 것 같다.”
“그게 무슨 말이야?”
“새끼야! 저 영감 마음 변하기 전에 도장 찍어 둬야지?”
“도장?”
“그래. 도장!”
말을 끝내자마자 뚱땡이는 관무백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제자, 사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큰절부터 올렸다.
그가 말한 도장은 바로 구배지례였다. 자신이 아홉 번 절을 마치고 나면 관무백 체면에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제야 뚱땡이의 말을 이해했는지, 아니면 뚱땡이가 하니까 자신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는 몰랐지만 꺽다리도 ‘제자 사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라고 외치며 관무백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방향이 틀렸네.”
“예? 그게 무슨?”
고개를 숙이고 있던 두 사람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와 동시에 관무백은 운지학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무백은 자신에게 운지학이 있듯 유심에게도 그런 존재가 필요하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꺽다리와 뚱땡이는 이미 그런 사람들로 마음에 둔 자들이었다. 물론 그들에게 자신의 무공을 가르칠 생각은 없었다.
사람의 일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지금이야 형제와 다름없이 지내고 있지만 먼 훗날 서로 칼을 겨눌 수도 있는 것이 세상사다.
관무백은 꺽다리와 뚱땡이의 스승으로 운지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평생 자신을 충성으로 따르며 도왔던 운지학이라면 유심을 따르며 도울 꺽다리와 뚱땡이를 훌륭하게 가르치고도 남을 것이라 믿었다. 또한 아직까지 제자가 없는 운지학에게 제자를 마련해 주는 것 역시 그가 해야 할 일이라 여겼다.
“덤은 자네 몫일세.”
“예?”
운지학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께 인사 올립니다.”
꺽다리와 뚱땡이가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며 운지학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운지학 역시 대단한 위명을 날리는 장군. 처음에 생각했던 관무백이 사부가 아니라는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들에게 감지덕지한 사부라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운지학. 그런 그를 향해 열심히 절을 올리고 있는 꺽다리와 뚱땡이. 그들을 바라보는 관무백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흘렀다.
* * *
두 번째로 들어선 남촌. 그렇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랐다.
어제는 그야말로 목숨까지 내놓을 비장한 각오로 외상값을 받기 위해서였지만 오늘은 천무신장의 제자가 되어 이곳에 들어섰다.
감회가 새로웠다.
사천성 곳곳을 돌아다니며 매품을 팔거나 남의 돈이나 받아주던 자신이 천무신장의 제자가 되다니 다시 생각해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꺽다리와 뚱땡이도 마찬가지인 듯 그들 역시 들뜬 얼굴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관무백은 무심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관무백이 어디로 가는지 궁금했지만 유심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그 뒤를 따랐다.
일다경가량이 지나자 제법 너른 공터가 보였다. 유심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이 자신이 무공을 수련할 장소라고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관무백은 공터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유심아, 어떠냐?”
“좋습니다. 수련장으로는 그야말로 딱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구나. 이보게. 지학이!”
“예!”
“시작하게!”
“알겠습니다. 대장군!”
대답과 함께 운지학이 공터 한복판으로 걸어갔다.
“으아―악!”
비명과 함께 유심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언제부터 이어진 비명 소리인지는 모르지만 그 소리를 듣고 남촌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한복판에 운지학이 있었다.
유심, 꺽다리 그리고 뚱땡이의 몰골은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꺽다리와 뚱땡이는 바닥에 뻗은 지 이미 오래였다.
‘젠장, 이게 무슨 수련이야? 매타작이지.’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수련을 시작한 지 세 시진.
그동안 그가 한 일이라고는 운지학의 무지막지한 주먹질에 얻어터지는 것뿐이었다. 매품팔이라면 사천성 제일, 아니, 중원 제일이라 자부했던 유심이었지만 운지학의 공격은 그로서도 견디기 어려웠다.
두 시진 정도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처음 한 시진은 어머니가 배 아픈 자식의 아랫배를 문지르듯 온몸을 문질렀다. 다음 한 시진 역시 손자가 할아버지에게 안마를 하듯 그렇게 가볍게 두드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세상에 이것보다 편하게 돈 버는 일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불과 두 시진 만에 깨졌다.
안마를 하듯 시원하게 느껴지던 운지학의 손은 “그만하고 패!”라는 관무백의 한마디와 동시에 철퇴로 변해 버렸다.
퍽!
그저 가볍게 내뻗은 것처럼 보였는데 뼈마디가 부서지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운지학의 손은 한 시진도 넘게 쉴 새 없이 그의 몸 곳곳을 번개처럼 두드렸다. 그럴 때마다 기혈이 들끓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남촌이 떠나가라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을 데굴데굴 굴렀지만 운지학은 마을 뒷산에 산책 나온 사람처럼 남은 한 팔로 팔짱까지 낀 모습을 하며 그를 멀거니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겉모습일 뿐이다.
유심은 몰랐지만 지금 가장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운지학이었다. 마구잡이 주먹질처럼 보였지만 운지학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유심의 몸을 두드려야 했다.
한 호흡에 정확한 위치를 찾아 수십 번의 주먹을 내뻗는 것은 아무리 백전노장 운지학이라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그가 내뻗는 주먹에는 일일이 유심의 몸을 보호할 수 있는 보기(補氣)까지 실어야 했다. 만약, 꺽다리와 사기꾼을 한 주먹에 뻗게 만들지 못했다면 외팔이인 운지학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세 시진이 넘어서야 추궁과혈(推宮過穴) 한 번을 끝냈다. 그러나 유심의 뼈와 근육을 단련시키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처음부터 추궁과혈을 이렇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운지학은 관무백의 전음―처음부터 확실히 잡아야 할 놈일세. 아주 제대로 다뤄주게. 알겠나?―을 받고 지금의 방법으로 추궁과혈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곳까지 오면서 관무백으로부터 허락도 받았다. 그렇지만 이렇게 힘이 들 줄은 몰랐다.
간신히 호흡을 고른 운지학이 쓰러진 유심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일어나라!”
듣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운지학의 몸에서 한기가 풀풀 날렸다.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다.
비록 이틀밖에 안 됐지만 유심이 그동안 보아 왔던 운지학은 그저 관무백의 뒤나 말없이 졸졸 따라다니는 별 볼일 없는 인간에 불과했었다.
힘겹게 다시 일어나 운지학을 노려보았다.
손에 칼이라도 쥐어주면 당장 달려들어 반 토막을 내 버릴 것처럼 유심은 살벌한 눈빛을 토해냈지만 운지학은 여전히 차가운 얼굴로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순간.
언제 일어났는지 꺽다리와 뚱땡이가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이 맞지 않을 방법은 운지학을 쓰러뜨리는 길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기세가 제법 흉흉했다. 그러나 그것도 통할 사람에게나 통하는 법이다.
운지학은 이미 두 사람이 등 뒤에서 달려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휘릭!
번개처럼 몸을 돌렸다.
“네 녀석들은 아직 일어날 때가 아니지.”
빠박!
운지학의 주먹 두 방에 꺽다리와 뚱땡이가 달려오던 반대편으로 날아올랐다.
‘씨발, 괜히 일어났네.’
공중에 떠오른 두 사람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 * *
감숙성(甘肅省)에는 서래제일산(西來第一山)이라 불리는 명산 중에 명산이 있다.
공동산(쭧칹山).
높이가 정확히 칠백 장에 이르는 감숙성 제일의 명산이다.
감숙성에는 그보다 훨씬 높은 산이 즐비하다. 감숙성 북쪽에 위치한 기련산만 해도 그 높이가 일천 장이 훨씬 넘는 거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원인들이 공동산을 감숙성 제일의 명산으로 꼽는 것은 경치나 높이로 따질 수 없는 신령스러움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도가제일산(道家第一山).
그랬다. 공동산은 중원 도가의 발상지였다.
도교 최고(最古)의 기인, 광성자(廣成子)가 중원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황제에게 도를 알려준 곳이 바로 공동산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여전히 광성자의 후예들이 살고 있다.
구파일방, 오대검파의 한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공동파다.
세력으로만 따지면 무당파나 화산파 등에 뒤질지 몰라도 중원 도교의 시조, 광성자의 후예라는 남다른 자부심은 그야말로 천하제일이라 할 만한 곳이다.
언제나 조용한 도량.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공동산 곳곳에 흩어져 도를 닦던 공동파의 큰 도인들이 장문인의 부름을 받고 속속 장문인실로 모여들었다.
“장문인, 무슨 일로 우리들을 부르셨습니까?”
장로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장문인실로 달려온 공동파 대장로 운산자(雲山子)가 침묵을 깨고 먼저 입을 열었다.
운산자의 말에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공동파 장문인 운석 진인(雲石眞人)이 눈을 뜨며 모인 장로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폈다.
그들 모두 운석 진인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장로회의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곳까지 오기는 했지만 장문인이 왜 회의를 소집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산 사형, 잠시 기다리시지요. 아직 무허(無虛) 사백께서 도착하지 않으셨습니다.”
‘무허.’라는 말에 장로들이 일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허자는 공동파 전대 장문인인 무애 진인의 대사형으로서 공동파 태상장로를 맡고 있는 문파의 가장 큰 어른이다. 당연히 공동파 도인들의 존경을 받아야 할 몸. 그러나 그 이름만 나오면 공동파 도인들은 고개를 가로젓거나 두 눈을 감아 버린다.
“끄윽! 역시 이 늙은이를 알아주는…… 사람은 장문인 뿐일세. 끄윽!”
일도일속(一道一俗).
봉두난발에 땟국물이 질질 흐르는 도복을 걸친 딸기코 도인 한 명과 그와는 정반대의 신선풍 처사(處士) 한 명이 문밖에 서서 장문인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잔 더해야 하니까 자네는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고 있게.”
딸기코 도인이 처사를 밖에 남겨둔 채 성큼 안으로 들어섰다.
연신 딸꾹질을 해대는 추레한 몰골의 도인.
문제의 인물.
공동파에서 제일 큰 어른임과 동시에 제일 큰 골칫거리인 태상장로 무허였다.
무허자(無虛子).
한때 그는 문파의 내일을 책임질 공동파 제일 영재였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무허자는 불과 삼십의 나이에 공동파의 모든 절기를 익히고 자신만의 무공, 무허육합신공(無虛六合神功)을 만들어 냈다.
그랬던 그가 공동파 제일의 문제아가 되어 돌아온 것은 일 갑자 전이다. 당시 중원에 피바람을 일으키던 마존을 잡겠다며 공동파를 나선 지 십 년 만에 무허자는 주귀(酒鬼)라는 불명예스러운 별호를 안고 이름도 알 수 없는 처사 한 명과 함께 돌아왔다.
공동파의 자부심을 생각한다면 그는 당장 파문당해야 했다. 그러나 공동파는 그를 파문시키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그의 무공이 너무 아까웠다. 비록 도에는 뜻이 없는 망나니로 변했지만 그는 여전히 공동파 최고수였다. 중원의 은거고수 열한 명. 이존 사왕 오귀 중에 한 명이 바로 주귀, 무허자였다.
음주가무에 심취한 귀신이라는 뜻의 주귀라는 별호에 걸맞게 그는 오늘도 술에 잔뜩 취한 모습으로 장문인실에 들어선 것이다.
훤한 대낮임에도 얼마나 퍼마셨는지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람 앞의 촛불처럼 비틀거렸다.
“어허, 이 사람 무허!”
밖에서 지켜보던 처사가 급히 안으로 달려와 쓰러지려는 무허를 급히 붙잡아 세웠다.
“이봐, 가평(嘉平)이! 나 안 취했어. 이거 놔!”
무허가 가평이라 불리는 처사의 손을 홱 뿌리치고 여전히 비틀거리며 다시 발을 움직였다.
그런 무허를 걱정스럽게 지켜보던 가평은 이내 밖으로 나갔다. 공동파 제자도 아닌 자신이 장로회의에 참석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