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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칼 1(15화)
4. 준비된 기연을 만나다(4)
눈웃음이 들고 있던 보자기를 내려놓고 천천히 풀었다.
“우와―!”
꺽다리, 뚱땡이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보자기에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삶은 닭 한 마리가 큰 그릇에 담겨 있었다.
“고맙다. 눈웃음!”
꺽다리, 뚱땡이의 손이 곧바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다른 한손이 그들의 손을 막았다. 두 사람이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눈웃음이 그들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이런 못 배워 처먹은 새끼들. 도대체 위아래가 없어. 당장 손 치우지 못해!”
눈웃음의 일갈에 두 사람이 아쉬운 듯 손을 치웠다. ‘네가 언제부터 그렇게 위아래를 따졌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그랬다가는 닭털 하나 얻지 못할 것 같은 생각에 꾹 눌러 참은 것이다.
두 사람을 간단히 제압한 눈웃음이 먼저 머리를 뚝하고 끊어내 관무백에게 내밀었다.
“영감님이 가장 큰 어른이시니 머리요.”
“응?”
“빨리 받아요!”
눈웃음이 멍한 표정을 짓는 관무백의 손에 억지로 닭대가리를 쥐어줬다. 그리고는 곧바로 닭을 잡아 뜯으며 공정(?)한 분배를 시작했다.
“작은 영감님은 머리인 어르신을 지탱하는 분이시니 목이요. 너희들은 장차 오라버니의 양 날개 구실을 해야 되니까 날개. 그리고 나머지는 오라버니. 이제 끝!”
눈웃음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관혜령이 ‘큭!’ 하고 실소를 터트렸다. 눈웃음의 분배를 보고 있자니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왔다.
“왜 너도 줘?”
“……?”
“넌 꾀죄죄한 게 꼬라지 자체부터 엉망이야. 그 꼴로 시집이나 가겠니? 모름지기 미인이 되기 위해서는 피부가 좋아야 돼. 그래서 이거!”
눈웃음이 닭 껍질을 쭉 하고 벗겨내 혜령에게 내밀었다.
“이걸 어떻게……?”
“어떻게는 뭐가 어떻게야? 그냥 처먹어. 알았어?”
눈웃음이 손에 든 닭 껍질을 혜령의 손에 억지로 쥐어주었다.
‘여시 같은 년. 그거 먹고 설사나 좍좍 해 버려라!’
* * *
열흘만의 귀가.
호유곡을 걷는 유심의 발걸음은 확실히 빨라져 있었다. 십 년 내공이 활동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덕분이지만 유심은 그저 단순한 기분 문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두 시진 가까이 걸리던 길을 한 시진 만에 도착하고 나서야 유심은 자신이 변했다는 것을 어렴풋하게 깨달았다.
언제나 그렇듯 약초 보따리를 지고 집 뒤, 숲으로 걸어갔다.
유심이 깜짝 놀란 얼굴로 전면을 바라보았다.
마치 폭풍에 쓸린 마을처럼 숲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아니, 앞쪽에는 그럭저럭 풀과 나무가 보였지만 뒤쪽으로는 잡초 하나 없었다.
‘아버지!’
가장 먼저 아버지 연걸의 모습이 떠올랐다.
숲이 이 지경이 되었다면 지난 열흘 사이에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게 분명했다. 만약 아버지가 멀쩡하다면 숲이 이렇게 되도록 가만히 내버려 뒀을 리가 없었다.
“아버지! 아버지이――!”
호유곡이 떠나가라 고함을 질렀다.
“유심이냐?”
‘어라?’
재빨리 몸을 돌렸다. 아버지 장연걸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이제 그 숲은 쓸모가 없어졌다. 차라리 화전이나 일구려고.”
“그럼 이제 집에서 사시는 거예요?”
연걸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내 정신 좀 봐. 이거!”
유심이 그제야 생각난 듯 등에 지고 있던 약초 보따리를 내려놓았다.
“그래,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이제 더 이상 약초를 구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이 아비가 이렇게 나왔으니 약초 정도는 내가 직접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요?”
연걸은 말없이 미소 지었다.
유심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와 함께 그의 입이 개구리처럼 좌우로 길게 찢어졌다. 이제 더 이상 은자를 벌기 위해 악착을 떨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아버지 몸이 약초를 스스로 구할 정도로 좋아졌다는 것이 더욱 기뻤다.
거기에 내일부터는 천무신장 관무백으로부터 직접 무공을 배울 수 있다.
오늘은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다.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버지 잠깐 기다리세요.”
유심이 급히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이것을 잡으려고?”
연걸이 손을 들어 올렸다.
뒷짐을 지고 있던 그의 손에는 토끼 두 마리가 들려 있었다.
“두 마리네요?”
“그래 지난번 보아하니 아주 공평하게 분배를 하더구나. 하여 두 마리를 잡았지.”
“헤헤헤헤.”
유심이 겸연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이 영락없는 열다섯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성도에서는 사천전충이라는 이름을 날리는 유심이었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그저 귀여운 열다섯 꼬마에 불과했다.
“아버지, 제가 잘 구울게요.”
유심이 토끼 두 마리를 들고 부리나케 달렸다.
“또 시작이세요?”
유심이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연걸이 들고 있는 작은 환약 하나를 보았다. 환약이라면 그야말로 질색이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 연걸은 ‘잘 만하면 내다 팔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과 함께 수도 없이 많은 환약을 먹였다.
잘만 하면 시장에 내다 팔아 큰돈을 벌수 있다는 말에 유심은 두말없이―물론 마음속으로는 내가 시험 동물이야라고 골백번 외쳤지만―받아먹었다. 그렇지만 그중에 먹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먹을 때마다 오장육부가 뒤집히는 고통을 맛봐야 했다.
아버지가 재빨리 손을 쓰지 않았다면 죽었을지도 몰랐다.
때문인지 아버지 연걸은 ‘이번에도 실패네.’하면서 환약을 내다 팔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숲에서 나오자마자 또 환약을 먹으라니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유심아, 이번에는 진짜다. 무려 오 년이나 고생하면서 만든 환약이다.”
‘항상 이번에는 진짜라고 말씀하셨거든요.’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 혀 밑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참았다. 모처럼 아버지와 함께하는 자리에서 그런 말로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오 년이나 걸려서 만든 환약이다. 어쩌면 정말 영약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마음 한쪽에서 살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방 한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두 눈을 질끈 감고 아버지가 건넨 환약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호―!’
입안으로 은은히 퍼지는 향기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수없이 많이 먹었던 환약 가운데 이번 것처럼 청량한 느낌을 주는 것은 없었다.
그와 동시에 거대한 기운이 단전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유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하복부로 전해지는 거대한 기운.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전에 건넨 환약들은 먹자마자 내장이 뒤틀리는 고통을 느꼈는데 이번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성공인가…… 성공은 무슨 얼어 죽을!’
생각이 바뀌는데 찰나도 걸리지 않았다.
하복부의 거대한 기운이 갑자기 둘로 갈라지며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고통과 함께 몸에서 불길이 일더니 거대한 불덩이가 배를 타고 목으로 올라왔다. 그와 함께 온몸을 꽁꽁 얼려 버릴 것 같은 무시무시한 한기가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크흑!”
유심의 입에서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급히 약을 토해내려 입을 벌렸지만 이미 약은 그의 목구멍을 넘어가 버려 그럴 수도 없었다.
“유심아, 참아야 한다.”
사실인지 환청인지 알 수 없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를 악물었다. 정신을 잃으면 정말 큰일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연걸이 재빨리 유심의 명문(命門)혈에 손바닥을 올렸다.
연걸의 얼굴을 타고 구슬 같은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불과 일각도 지나지 않아 그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다. 부족한 진기를 억지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진기로 유심의 몸속에서 운기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유심의 몸에 깃든 엄청난 진력은 연걸이 감당할 수 있는 그런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명문혈을 통해 진기를 불어넣었다. 운기는 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유심의 기혈이라도 보호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목숨보다 소중한 아들을 잃게 된다. 그와 함께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은 수포로 끝나고 만다.
“……!”
흐릿해지던 정신이 일순 맑아졌다.
그의 등을 통해 이제껏 느껴지지 않던 새로운 기운이 들어와 그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덕분에 지독한 한기와 열기를 잠시 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하는 듯 보였다. 잠시 잠잠한 듯싶었던 열기와 한기가 다시 그의 몸을 휩쓸기 시작했다.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정신을 모았다.
순간 한 장면이 그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것은 지난 한 달 동안 운지학에게 받았던 수련이었다.
‘좋아, 해보는 거다.’
벌어지려는 입을 굳게 닫았다.
먼저 온몸을 태우고 얼려 버릴 것 같은 알 수 없는 힘의 근원부터 찾아야 했다.
처음 운지학과의 대련에서 유심이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아무 곳이나 마구 두드리는 듯 보였지만 운지학의 결정적 한 방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있다!’
유심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몸 전체를 뒤덮은 열기와 한기. 그것에도 근원은 있었다. 온몸을 불태우는 것 같았고 온몸을 마구 얼려 버리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한곳에서 시작된 열기와 한기였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정작 유심을 놀라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기해(氣海), 석문(石門), 관원(關元)…….
그 힘의 움직임.
놀랍게도 운지학이 자신을 공격하며 이동했던 그 움직임과 정확히 일치했다.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운기라는 것을 정식으로 익히지 못한 유심에게는 기막힌 우연으로 느껴졌다.
갓난아기를 달래듯 아주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중극혈에 힘을 넣으며 정신을 모으자 거대한 기운은 서서히 그곳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결 여유가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전에 비해 그렇다는 말이다. 여전히 온몸이 뒤틀렸다. 자신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유심도 몰랐다. 그저 지금은 이렇게라도 해야 살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있을 뿐이다.
‘이이, 이 녀석이 운기를!’
유심의 모습에 놀란 것은 연걸이었다.
자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유심이 운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자신이 가르친 적이 없으니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배운 것이 분명했다. 그것이 누구일지 궁금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조심스럽게 명문혈에서 손을 떼어내고 방에 놓인 유일한 가구, 농에서 작은 함 하나를 꺼내 유심의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탁’하고 열린 함에는 침이 들어 있었다.
오십여 개의 장침과 백여 개의 단침.
장침 하나를 들어 백회혈에 깊숙이 밀어 넣었다. 그리고 몸의 중심, 임독양맥을 따라 장침을 찔러 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단침을 들어 유심의 몸 곳곳에 밀어 넣었다.
유심의 상체에 백삼십여 개에 이르는 침을 꽂은 뒤에야 연걸은 손을 멈췄다.
그와 동시에 한 덩어리로 똘똘 뭉쳐 유심의 임독양맥을 타고 흐르던 거대한 기운의 일부가 서서히 여섯 가닥으로 나눠져 온몸에 골고루 퍼지기 시작했다.
그를 괴롭히던 고통도 사라졌다.
여섯 가닥으로 나뉘어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기운은 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몸을 보호해 주는 듯 보였다.
다시 정신을 모았다.
천천히 남아 있는 기운을 움직였다.
마치 푹신한 요 위에 누워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이 서서히 걷히며 날이 밝아지고 있는 것이 족히 네 시진은 흐른 듯 보였지만 유심은 여전히 가부좌를 튼 채 운기를 이어 갔다.
“됐어!”
유심을 지켜보던 연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유심의 몸에 박혀 있던 침들이 조금씩 밖으로 빠져나오고 있었다. 반 시진 정도가 흐르자 단침 하나가 바닥에 툭하고 떨어졌다. 이제 더 이상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휴우!”
연걸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젯밤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등골이 오싹했다.
선골청령단(仙骨淸靈丹)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라는 것은 인예의서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인예의서에는 선골청령단의 효능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하여 나름 철저한 준비를 해 두었다.
영약과 침술을 통해 혈도를 일반인보다 서너 배 이상 넓혀 놓았고 그의 몸속에 적지 않은 내공까지 심어놓았다. 그 정도 준비라면 능히 선골청령단의 기운을 감당하고도 남아야 했다. 그런데 선골청령단은 인예의서에 기록된 효능을 훨씬 뛰어넘었다.
유심이 운기를 통해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침을 놓아 임독양맥으로 흐르는 진력을 다른 기경팔맥(奇經八脈) 여섯 곳으로 분산시킬 수 있었다. 만약 유심이 운기를 할 수 없었다면 심맥이 터져 즉사하고 말았을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경황이 없어 잠시 잊고 있었지만 유심이 운기를 어떻게 배웠는지 그것이 의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