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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체른의 서 1(4화)
2. 친절. 꿈, 희망(3)
“남자가 나가자 시동은 받아들었던 음식들을 책상에 올렸다. 그러나 그는 한참 동안이나 음식에 손을 가져다 대지 못했다.
“…….”
그는 그저 그것을 내려다보기만 했다.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혹은 아직도 꿈속에 있는 듯한 얼굴로 음식들을 내려다보았다.
주먹 크기의 작은 빵 조각과 접시에 반을 차지한 고깃덩이, 그리고 물을 담은 철제 컵. 어디 가나 볼 수 있는 조촐한 식사였지만 그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으로 받아 보는 자신을 위한 식사. 그는 이 상황이 그저 낯설기만 했다.
“잘 먹겠습니다.”
듣는 사람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의 입은 또다시 감사 인사를 되뇌고 있었다. 그런 감사 인사 말고는 지금 자기 마음을 딱히 표현할 만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그는 포크로 고기를 들어 한 입 베어 물었다.
“큽! 짜, 짜다!”
그러나 갑자기 입안에 퍼지는 그 짠맛에 자기도 모르게 물었던 고기를 뱉어냈다. 마치 소금에 절여 놓은 것 같은 그 맛에 그는 급히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입으로 들이부었다.
“…….”
그는 과연 이것이 무슨 고기인가 싶었다. 아니, 무슨 고기이냐를 떠나서 그 조리 과정이 궁금했다.
“…….”
그는 다시 포크를 들고는 이것을 과연 먹어야 되는가 고민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기를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으로 받은 그 친절을 단지 입맛에 안 맞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좀 너무 짜다.”
그렇게 한참 만에 겨우 고기를 다 먹는데 성공한 그는, 결국 그 짠맛을 참지 못하고 컵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촛불이 꺼지고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웠지만, 낮에 봤던 집안 풍경을 떠올리며 조심스럽게 발길을 옮겼다.
애초부터 가구라고는 없던 집이라 부딪히지는 않았지만, 그로서는 오히려 그것 때문에 방향 감각을 찾기 어려웠다.
“……그……다.”
그렇게 한참을 더듬거리는데 어디선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데 작은 불빛이 문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여보, 아들아.”
소리가 들려오는 곳은 남자의 방이었다.
“……미안하다.”
무언가 슬픔이 가득한 목소리에 시동은 곧바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에게 이토록 친절을 베풀어 준 이의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엿듣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때마침 구름이 걷히고 달빛이 다시 들어왔고, 덕분에 그는 재빨리 물을 찾아 마시고 방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일어났니?”
다음 날이 되자 남자는 또다시 그에게 식사를 가져다 주었다.
아직 채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한 잠결이었지만, 그는 남자가 건네준 식사를 두 손으로 받아 들었다.
“가, 감사합니다.”
그는 얼떨결에 식사를 받아 든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침대에서 식사를 받다니, 꿈에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피곤했나 보구나. 그거 먹고 또 쉬도록 해. 나는 이제 나가 봐야 하니까.”
“아, 저기… 저도 일을 돕겠습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어제부터 자신이 받은 친절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남자는 웃으며 그를 다시 침대에 앉혔다.
“하하! 그럴 필요 없단다. 힘들었을 테고, 또 목적지가 어딘지는 몰라도 또 꽤 많이 걸어야 할 텐데 푹 쉬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는 나가는 남자를 향해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살아 있다는 것에 이토록 감동하고, 다른 사람과 함께한다는 것에 이토록 감사했던 적이 그에겐 없었다.
그에게 타인이란, 자신을 묶고 있는 철쇄였고 자신을 부리는 채찍이었다.
아니, 그전에 그는 자신이 인간이란 것도 어느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이 하루 만에 그 모든 것을 떠올리게 해 준 것이다.
“이런 게 행복이란 거구나.”
어제보다 조금 큰 빵 조각과 물뿐이었지만, 그에겐 진수성찬이었다. 어제 그 짠 고기 영향도 물론 있겠지만 사실 굶어야 한다 해도 지금 그에게 별 문제겠는가.
“자, 그럼…….”
음식을 다 먹은 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쉬라고는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방에서 나온 그는 청소라도 할 생각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후후.”
문득 어젯밤 어둠 속에서 헤매던 게 생각나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 맞다! 책!”
그는 곧 방으로 돌아가 베개 밑에 뒀던 가방을 꺼내 손에 들었다. 잠시 깜박 잊었지만 잘못했다간 저주 때문에 죽을 수 있었다.
“근데 이거 대체 어느 정도까지 떨어져도 되는 거지?”
진심으로 궁금한 그였지만, 차마 알아볼 용기는 없었다. 아무리 궁금해도 목숨이 더 중요하지 않겠는가.
“그냥 청소나 하자.”
구석에 있던 빗자루를 찾아서는 오랜만에 빗질을 시작했다.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노예 시장과 베테르의 연구실에서 질리도록 했던 일이다 보니 청소만큼은 자신 있었다.
“후우. 이만하면 됐겠지?”
한동안 빗자루질을 한 그는 자신의 결과물을 보며 만족스런 미소를 떠올렸다.
고작 한 시간 정도 쓸었을 뿐인데, 집에서는 벌써 광채가 나고 있었다. 하다못해 걸레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빗자루만으로 이런 결과를 내다니.
그야말로 청소에 관해서는 이미 어떤 경지에 오른 것 같았다.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하긴 집이 워낙 좁으니까.”
그는 빗자루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았다. 그리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두 팔을 걷어 올렸다.
“자아, 그러면 이제 설거지를 해 볼까?”
그는 부엌으로 가 접시들이 담긴 물동이를 찾았다.
베테르의 연구소에는 수도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언제든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었지만, 이런 일반 가정집에서는 보통 개울에서 떠 놓았던 물로 설거지를 한다는 걸 그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접시들이 가득 담긴 물동이에 물이 너무 더러운 것이 아닌가.
“윽! 이런 데서는 설거지를 하는 게 오히려 안 좋겠어.”
그는 물동이를 들었다. 개울로 나가 설거지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 물동이를 바닥에 다시 놓았다.
“근데 좀 무겁긴 하네.”
어린아이 혼자서 들기는 조금 버거운 무게였다. 거기다 한손엔 네체른의 서도 들어야 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다.
“…….”
그는 네체른의 서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나?”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나 못해 끈이라도 하나 있다면 등에 매서 묶어 버리면 되는 거였다.
“아!”
그의 눈에 마침 장작을 묶어 놓는 밧줄이 보였다. 장작을 많이 땠었는지 밧줄은 많이 헐렁해져 있었다. 그는 매듭을 풀고 그 밧줄로 네체른의 서를 자기 등에 묶었다.
“됐다.”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그는 물동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어제 남자가 말했던 개울은 다행히 눈에 보일 만큼 가까이 있었다.
그는 무게를 줄일 생각으로 집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에 더러운 물을 쏟아부었다.
“빨래도 가져갈까?”
한층 가벼워진 무게에 자신감이 붙은 그는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뭐,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
사실 가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설거지 이후에도 물동이에 새 물을 떠와야 했고, 물을 먹은 빨래는 꽤 무게가 나가는 법이었다.
“하아. 이제 빨래만 하면 되겠지?”
개울에서 설거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제 빨랫감을 찾았다.
조금 피곤하기는 했지만 아내와 아들이 친척집에 갔다고 했으니 빨랫감은 적을 것이었다.
“음?”
그런데 안방에 들어가 옷장을 연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옷장 안에 든 옷은 거의 대부분이 여자 옷이었다.
거기다 어린아이 옷도 옷장 바닥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다.
“뭐지?”
꽤 오래된 것 같은 그것들에서는 이상한 냄새까지 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도저히 엄두가 안 나는 그 모습에 결국 그는 빨래를 포기하고 방에서 나왔다. 피곤함에 조금 허기가 지기도 했지만, 맘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는 다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몸을 눕혔다.
“좀… 잘까?”
잠깐만 눈을 붙일 생각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
“어?!”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밖에서 들려온 남자의 탄성에 잠을 깼다.
“얘야. 혹시 니가 치웠니?”
남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띠고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 남자의 모습에 그 또한 미소로 답을 대신했다.
“정말 고맙구나.”
그런데 남자의 눈에 그가 어제 그 가방을 등에 매고 있는 게 보였다.
“음? 왜 그건 허리에 매고 있니?”
“아, 이, 이건…….”
“아, 설마 벌써 떠나려는 거니?
“아, 저… 네, 네. 이제 가 보려고요. 더 이상 폐를 끼칠 수는 없잖아요.”
사실 며칠 정도 더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그였다. 자기 전에 베개 밑에 숨기기만 했어도 며칠은 더 편히 잤을 텐데 하는 후회를 하며 그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하, 하지만 이미 늦었잖니!”
그런데 그런 그의 행동에 남자가 당황하며 그를 막아섰다. 그는 그런 남자의 반응에 잘됐다 싶어 못 이기는 척 다시 침대에 앉았다.
“그, 그런가요?”
“그럼! 거기다 사실 말은 우리 마을에는 축제가 유명하단다. 사실 어제도 축제 기간이었는데 니가 너무 피곤해하고, 또 그날이 축제 마지막 날이고 해서 그냥 깨우지 않은 거야. 어젯밤 그 고기 있지? 그 고기도 축제에서 받아 온 거야.”
“축제요?”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직접 참여한 적은 없었지만, 축제 분위기가 어떤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 마을에 도착해 이 집까지 꽤 오래 걸었지만 축제의 기미 같은 건 찾아보려 해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 뭐 축제라고 해도 밤에 모여서 음식이나 나눠 먹는 작은 행사지만 말이야.”
“아, 밤에 했던 건가요?”
“그래. 깊은 밤 숲 속에서 열린단다. 너도 좋아할 거야. 꼭 보고 가렴.”
“…….”
시동은 흥분에 잠시 말을 잃었다. 그는 예전부터 축제에 가고 싶었다.
베테르를 따라 마왕의 무덤을 찾아다닐 때 몇 번이고 축제 기간인 마을에 들른 적은 있었지만, 참여해 본 적은 없었다.
거기다 다음 달에 있을 축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는 것은, 그를 최소 다음 축제 날까지 이 집에서 재워 주겠다는 말. 그는 당장이라도 펄쩍 뛸 듯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