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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체른의 서 1(6화)
3. 괴식절(怪食節)(2)
“후후후.”
다음 날 아침부터 네른은 밤에 있을 축제 생각에 들떠 있었다.
“축제구나. 후후후.”
빗질을 하는 손길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의 입에서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지금 같아서는 네체른의 서든 저주든 그때 그 푸른빛이든 앞으로도 이와 같다면 그런 것들 따윈 아무 걱정도 할 필요가 없을 것만 같았다.
“룰룰룰!”
방을 쓸고 집안을 청소하면서도 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삶을 통틀어 이토록 즐거워했던 적이 있는가 싶을 정도로 그는 행복해하고 있었다.
마치 처음 사탕을 입에 문 아이처럼 말이다. 그는 행복이라는 그 감정에 스스로 매료되어 있었다.
“아!”
청소를 끝내고 창밖을 바라보는 걸로 시간을 보내던 그는 마침내 해가 지는 것을 보며 작은 탄성을 질렀다. 이제 곧 축제에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 이걸로 준비 완료!”
그의 등에는 작은 가방이 매여 있었다. 평소처럼 약초를 캐러 가기 위해서라고 둘러 댈 수는 없지만, 축제 날 가방을 들고 간다고 이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었다.
“나 왔어.”
나갔던 헨슨이 돌아오고 마침내 하늘에 달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응?!”
그런데 문뜩 하늘을 바라본 네른은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에는 분명 달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토록 불길하다는 푸른 달이.
“준비됐니?”
“네!”
하지만 네른은 곧 고개를 저었다. 푸른 달이면 어떤가. 오늘은 그가 그토록 기다리던 축제 날이었다.
“가자.”
그는 헨슨이 내민 손을 잡으며 축제가 열린다는 숲 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근데 네른. 왜 이 축제를 오늘 하는지 알려 줄까?”
한참을 걸었을 때쯤 헨슨은 물었다.
“네.”
헨슨은 손을 들어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을 가리켰다.
“그건 말야. 푸른 보름달이 뜨는 주기에 맞춘 거란다.”
“푸른 보름달을요?”
네른은 헨슨의 말이 의아했다.
베테르는 푸른 보름달을 두려워하며 마법 의식이나 실험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오히려 그 주기에 맞춰 축제를 벌이다니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 푸른 보름달이 뜨는 체토스, 페로스, 노론. 이 세 달 동안 3번 축제를 연단다.”
“하지만 푸른 보름달은 불길한 거 아닌가요?”
그 말에 순간 헨슨의 발걸음이 멈췄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표정도 살짝 굳어 있었다.
“아, 아 물론 그렇게 보는 사람도 있단다.”
하지만 잠시뿐 헨슨은 곧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미소를 띠며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우리 마을에서는 푸른 보름달이 뜨는 날은 성스러운 날이란다. 하늘에서 위대한 신께서 이 땅에 내려오시는 날이지.”
네른은 그제야 왜 헨슨이 자신의 말에 순간 멈칫했는지 알아챘다.
마왕의 무덤을 찾아 떠돌던 베테르 덕분에 지역에 따라 문화나 법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지역에서는 친절인 것이 어느 지역에서는 금기이며, 어느 지역의 예법은 또 어느 지역에서는 무례임을 그는 그 몸으로 잘 새겼었다.
“그렇군요.”
그는 앞으로 푸른 보름달에 관해서는 말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베테르까지 두려워하고 조심했던 것을 보면 분명 뭔가 이유가 있겠지만, 그딴 늙은이보단 눈앞의 헨슨과 마을 사람들이 중요한 게 당연했다.
“아, 저기 보이는 저기야.”
헨슨의 말대로 수풀 사이로 불빛과 함께 공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어서 가자. 사람들이 널 기다리고 있어.”
“네!”
헨슨과 네른은 축제장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참여하는 축제, 처음으로 가져본 가족. 네른은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더 빨리 발을 움직였다.
왁자지껄.
불빛은 점점 가까워졌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그 소리에 네른은 손을 잡고 있는 헨슨이 곤란할 정도로 전속력을 내며 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축제장에 도착했다.
“……!”
하지만 그곳에 풍경은 네른이 생각하던 축제장과는 조금 달랐다.
서로 친근하게 말을 걸고 즐거운 듯 웃고는 있었지만, 모여 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식칼이나 커다란 부지깽이 같이 무서운 것들을 들고 있었다.
거기다 중심에서 타고 있는 불길 앞에 쌓여 있는 것은 아무리 봐도 새하얀 뼈들이었다.
“헨슨 이건……?”
퍽!
이게 무슨 상황인지 묻기 위해 헨슨을 향해 고개를 돌린 네른은, 자신을 덮치는 무언가와 함께 머리에 가해진 충격에 그대로 바닥으로 쓰러졌다.
“……?!”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네른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는 헨슨을 찾아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이내 다시 날아든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우움……?!”
네른은 뜨거운 열기와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 속에서 눈을 떴다.
“이건…….”
그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몸은 지금 나무 기둥에 묶여 있었다. 그리고 뒤쪽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고, 자신 눈앞에는 새하얀 뼈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아까는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그 모양과 두개골이 드문드문 굴러다니고 있는 것을 보아 사람의 뼈 같았다.
“아, 깼니?”
어리둥절해하는 그를 향해 헨슨이 다가왔다. 얼굴에는 지금까지의 미소가 그려져 있었지만, 그의 손에는 피 묻은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예요? 뭐하는 거예요?”
네른은 본능적으로 헨슨의 눈에 깃든 광기를 알아챘다. 베테르의 눈에서 자신이 늘 봐 왔던 바로 그것이었다.
“자, 장난하는 거죠?”
네른은 믿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가진 가족과 처음으로 느낀 행복. 그것을 무너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앞에 현실에 눈을 돌리려 해도, 잔혹한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있겠니. 성스러운 의식에서 장난이라니.”
그렇게 답한 것은 헨슨의 뒤쪽에 선 타이커스였다.
그의 손에는 늘 들려 있던 군것질거리 대신 삼지창이 들려 있었다.
“왜, 왜 이러는 거예요?”
“네른. 지금 여기 주변에서 뭐 이상한 거 못 느꼈어?”
네른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백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칼이나 부지깽이, 몽둥이 같은 걸 들고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그것만으로도 이상하다는 것은 충분했지만 헨슨이 말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었다.
“…….”
“어서 네른. 한번 아무거나 말해 봐.”
네른이 아무 말도 않자 타이커스는 마치 수수께끼 놀이를 하듯 그를 재촉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시작했지만 네른이 답을 않고 시간을 끌자 결국 고함을 질렀다.
“어서!”
“뼈, 뼈요! 뼈들이 다 작아요.”
네른의 대답에 헨슨은 손가락을 튕겼다.
“잘 맞췄구나! 여기 있는 뼈들은 죄다 작지!”
“그러게. 진짜 맞출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똑똑하구나.”
베테르 때문에 뼈라면 질리도록 봐 왔기 때문에 알 수 있었던 거였다. 거기다 여기 있는 뼈들, 특히 두개골들은 비교적 작은 편이었지. 마치 어린아이들의 것 같이 말이다.
“네른. 아까 내가 말했지? 푸른 보름달이 뜬 날은 위대한 신이 땅에 내려오는 성스러운 날이라고. 그 위대한 신의 이름이 뭔지 아니?”
그 물음에 뒤에 서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한 이름을 외쳤다.
“펜릴!”
펜릴.
네른은 그 이름을 들은 적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은 어떤 고대 마수의 이름이자 동시에 현재 다섯 제국과 일곱 왕국에서 금하고 있는 이백 년 전 존재했던 어떤 사교(邪敎)의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펜릴은 거대한 푸른 늑대로 달의 신 운타스와 유혹의 마수 에르티아젤의 자식이다.
출산 시 그 어미의 배를 스스로 물어뜯고 나와 배덕의 마수라고도 불리는데, 아내의 죽음에 분노한 운타스에 의해 달 깊숙한 곳에 봉인되었다.
다만 일 년에 세 번, 운타스가 신들의 왕국으로 가 있는 체토스, 페로스, 노론 이 세 달 동안 그 봉인은 약해지고, 그때마다 잠시 깨어난 펜릴이 차가운 숨을 뿜어내 푸른 보름달이 뜨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백 년 전 갑자기 이런 펜릴을 신으로 모시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푸른 보름달이 뜨는 날마다 집회를 열며 그 세를 늘려 갔다.
5년 후 결국 사교로 분류되고 다노스 제국군에 의해 강제 해체되었지만, 시골 마을이나 극지방 중에서는 이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것을 믿으며 집회를 이어 나가는 곳도 있었다.
“저 푸른 보름달은 그분이 깨어나셨다는 증거. 그래서 우리 마을은 예전부터 푸른 보름달이 뜰 때마다 그분을 위해 제물을 바치고 그것을 나눠 먹음으로 그분의 일부를 몸에 받아들였단다.”
바로 이 마을도 그 명맥을 잇는 곳 중 하나였다.
“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치게 된 건 얼마 안 되지만 말이야. 거기다 처음엔 오히려 자원했었다고 하더군.”
처음에는 고기 구경하기 힘든 가난한 마을에서 동물을 신에게 바치고 그 고기를 나눠 먹는 일반적인 축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신심이 깊은 노인들이 하나둘 제물이 되기를 자청하기 시작했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들은 신의 일부가 됨으로서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것이 몇 년 동안 반복되자 그것은 어느새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또다시 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부터 마을 사람들은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매번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든 이를 제물로 바쳤고, 그 고기를 나눠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야. 보다시피 너무 작은 마을이지 않니?”
일 년에 세 번이나 있는 의식이었다. 처음에는 노인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물로 바쳐지는 이의 나이는 점점 줄어만 갔다.
“그래서 우리는 제물을 바꿨지. 처음에는 죄인으로, 그리고 나중엔 어린아이로. 솔직히 죄를 지은 놈들은 살아 있을 가치도 없고, 어린아이들도 그만큼 또 낳으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그것은 더 이상 믿음이나 신앙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그들은 배덕을 범하는 묘한 쾌락과 식인 행위에 중독되어 갔다.
“근데 미련한 여자들이 하나둘씩 애들을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하더라고.”
당연한 일이었다. 어머니들과 여자들은 자기 아이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혹은 그 이후가 힘없는 자신들 차례가 될 거란 예상 때문에 마을을 떠나 탈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정작 탈출에 성공한 이는 거의 없었다. 오히려 탈출하려다 잡혀 그 다음 의식 때 제물이 되기 일쑤였다.
“내 아내와 아들도 그랬지.”
헨슨은 가만히 손에 든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순간 네른의 머릿속에 어제 옷장 안에서 본 옷들이 떠올랐다.
“그, 그럼……?!”
“그래. 도망치려 하기에 이 몽둥이로 다리를 부러뜨려 버렸지. 그리고 제물로 삼았어.”
네른은 머릿속이 멍해지는 것만 같았다.
“아, 먹었던 고기는 맛있었니?”
“우, 우욱!”
네른은 갑자기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의 말에 따르자면 그 짜디짜던 고기들은…….
“그래. 그것도 사람 고기지.”
타이커스는 품 안에서 육포 조각을 꺼내 입으로 가져가며 그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