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네체른의 서 1(8화)
3. 괴식절(怪食節)(4)


“즐거운 축제지?”
네른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말라비틀어져 있는 시체들과 불길 앞에 쌓여 있는 새하얀 뼈들, 그리고 바닥에 쓰러져 미동도 않는 사람들. 괴기스럽기 만한 풍경이었지만 그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중에 아들이나, 아내를 찾을 수 있겠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헨슨은 쌓여 있는 해골들 중 두 개의 두개골을 가리켰다. 우연인지 두개골 두 개는 서로 꼭 붙어 있었다.
“…….”
네른은 그가 늦은 밤 아들과 아내를 부르며 슬퍼하던 것을 떠올렸다.
푸른 보름달 아래에서 만연하던 광기와 쾌락에 취하기는 했지만 그 마음 속 한 구석에는 분명 인간성이 남아 있었다.
“더는 고통스러워할 필요 없어.”
네른이 손을 들자 헨슨은 시체의 손에 들린 칼을 집어 들었다.
“아, 맞다. 고맙다는 말을 잊었네.”
그는 아까 헨슨이 자기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재현했다.
터져 나온 붉은 핏물이 네른의 얼굴에 튀고, 헨슨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네른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지도 않고, 그대로 몸을 낮춰 그런 헨슨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나를 축제에 데려와 줘서 고마워. 잠시였지만 즐거운 꿈을 꾸게 해 줘서 고마워. 고마워.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깨닫게 해 줘서…….”
네른의 눈이 다시 검은색으로 물들었다.
“아시르 네펜하임 쿤다르니 사토니 헨데스…….”
헨슨의 피가 허공으로 사라져 가고 어디선가 뼈를 얼릴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에 활활 타오르던 축제의 불길이 꺼져 버렸다.
그것은 저승의 바람. 닿는 모든 것의 생기를 뺏는 사신의 숨결이었다.
“펜릴에 차가운 숨결을 숭배하던 이들아. 늑대에 송곳니에 꿰뚫리고 잔인한 만찬에 희생된 이들아.”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그것은 펜릴이란 이름조차 모르던 네른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들이 아니었다.
달그락 달그락.
네른의 목소리를 따라 산처럼 쌓인 뼈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틱스 새터느…….”
새하얀 뼈들이 서로 겹쳐지며 위로 또 위로 올라갔다. 아니, 단지 겹쳐지는 것만이 아니었다. 마치 점토처럼, 뼈들은 서로 붙어 갔고 흙과 돌들이 더해져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해 갔다.
그것은 하늘을 향하는 거대한 탑이었다.
“너희들이 숭배하던 그 달을 나는 땅으로 끌어내리겠다.”
거대한 탑이 완성되고, 거대한 해골의 얼굴이 그 꼭대기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해골이 천천히 입을 벌리자 그 입 속에서 푸른 불길이 타올랐다.
해골의 뻥 뚫린 입과 눈에서 흘러나온 불길은 곧 거대한 해골 전체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거대한 해골 전체를 태우는 푸른 불길에 주변 일대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
주문을 마친 네른이 손을 떼자 헨슨의 시체는 흙이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러나 주문이 끝났음에도 네른의 눈동자는 여전히 검게 물든 채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새 네른의 등 뒤에서 검은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있었다.
“멋지군. 과연 이게 바로 저승 등대라는 거군.”
네른은 손가락으로 하늘에 떠 있는 푸른 보름달을 가리켰다.
“끌어내려라!”
쿠오오오!
소름 끼치는 울음과 함께 해골의 두 눈에서 검은빛이 달을 향해 뻗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 검은빛이 달에 닿았을 때, 보름달은 그 푸른빛을 잃어 갔고 해골을 태우는 불길은 더욱 거세졌다.
“무덤에 흙과 뼈로 탑을 쌓아 혼의 잔재를 태우고, 고대 마수의 숨결을 훔쳐 일으켜 세우리라. 죽어 간 망자들의 차갑게 식어 버린 몸을.”
달에 푸른빛이 사라지고, 해골을 태우던 푸른 불길은 더욱 거세져 탑 전체를 집어삼켰다.
“다시 이 대지를 밟고 서거라.”
탑 전체를 태우던 푸른 불길이 이내 천천히 탑 속으로 스며들었다.
“내 충실한 종들이여.”
푸른 불길이 사라지고, 하늘 높이 솟았던 거대한 탑이 일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위에서부터 넘어지는 게 아니라, 가장 아래층부터 다시 흙과 뼈로 변해 가고 있었다.
“…….”
무너지는 탑을 바라보던 네른의 몸이 순간 휘청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의식을 잃은 듯 그 눈은 감겨 있었고, 몸에서 피어오르던 검은 기운도 사라져 있었다.
이것으로 푸른 달빛 아래에 벌어지던 잔인한 축제는 완전히 끝나 버렸다.
하늘에 떠 있는 보름달은 푸른빛이 아닌 백색으로 변해 버렸고, 하늘을 향했던 거대한 탑도 그저 흙더미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꼭두각시로 변해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고, 펜릴을 대신해 축제의 주인이 되었던 네른도 쓰러졌다.
축제는 끝나고 적막한 침묵이 이곳에 내려앉았다.
“……우.”
그런데 그러한 침묵 속에서 어떤 울음소리가 바닥에 깔렸다.
“……우우우!”
무너진 잔재 속에서 뭔가가 움직였다. 새하얀 두 팔이 흙더미를 헤집고, 이내 검은 천과 그 위를 덮은 쇠사슬로 얼굴이 완전히 묶여 있는 자가 기어 나왔다.
쿠오!
아니, 그 한 명은 시작일 뿐이었다. 잔해들 속에서 팔들이 솟아오르더니 처음 자와 마찬가지로 검은 천과 쇠사슬로 얼굴이 묶인 이들이 기어 나왔다.
크르.
눈은커녕 숨을 쉴 구멍조차 없음에도 그들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몸을 일으켜 주문에 걸린 사람들을 향해 걸어갔다.
“…….”
꼭두각시가 되어 의식이나 이성은커녕 본능조차 없을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움이 있을 리가 없을 텐데도, 그들이 다가옴에 마을 사람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크오!
사슬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그들의 포효성에 사람들의 떨림은 더 심해졌다.
이제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들의 모습에 사람들의 몸이 그들에게서 떨어지려는 듯 뒤로 휘청였다.
그리고 그 순간, 그들의 두 손이 멀어지려는 사람들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들의 얼굴을 묶은 쇠사슬이 저절로 하나둘 풀려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르!
쇠사슬들이 바닥으로 떨어지고 검은 천이 찢어졌다. 마침내 드러난 그들 쇠사슬 아래 얼굴은 너무도 추악했다.
다 썩어 문드러진 피부와 입술이 없어 훤히 드러나고 부서져 어긋나 있는 이빨들. 그것은 차마 마주하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우워어!
그들 추악한 얼굴의 입이 벌어졌다. 썩은 살점이 흘러내리고 혀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것들은 개의치 않았다.
입은 더욱더 벌어지더니 이내 찢어져 잡고 있는 사람의 머리가 들어갈 정도가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된 순간.
덥썩.
그것들은 사람들의 머리를 물었다. 물론 아무리 입을 찢었다 해도 그 머리가 들어갈 리는 없었지만 놀랍게도, 마치 뱀이 자기보다 몇 배나 되는 먹이를 집어삼키듯, 사람들의 몸이 그것들의 입속으로 점점 빨려 들어갔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뱀은 그 집어삼키는 것에 비례하여 그 몸이 부풀어 오르지만, 사람을 통째로 집어삼키고 있는 지금 이것들의 몸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크오…….
사람 하나를 다 집어삼킨 그것들은 다시 걸음을 옮겨 또 다른 사람 앞에 섰다. 그리곤 또다시 그 일을 반복했다.
푸른 달빛이 사라진 밤. 그 괴이한 식사는 그렇게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4. 파장(1)


“……으으응?”
가지들 사이로 부서져 내리는 햇살과 아침 쌀쌀한 공기에 네른은 눈을 떴다.
“정신을 잃었었나?”
네른은 손에 꼭 쥐고 있는 네체른의 서를 보았다.
그는 가만히 어제 일을 떠올렸다. 헨슨의 생명으로 저승 등대라는 주문을 발동한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하지만 왜 그 주문을 발동시켰는지, 그리고 정신을 잃기 전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분명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그가 저승 등대라는 그 주문을 발동한 것은, 그저 헨슨과 그 가족들을 해방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헨슨의 생명과 그들의 뼈로 저승을 밝히는 빛을 불러와 그들의 영혼을 밝혀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배신감과 고마움이 뒤섞인 마음으로 복수와 보답을 함께한 것이다.
그 주문을 발동시키기 직전 어떤 기운이 자신의 몸을 덮쳤다. 자신의 것이 아닌 지식. 자신의 것이 아닌 힘. 그것이 그의 몸을 휘저었던 것도 기억난다.
하지만 도저히 마지막에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
그는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서 보니 새벽이슬로 축축해진 옷은 흙먼지를 머금다 보니 지금 자신의 꼴이 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추위에 몸이 떨렸다.
“…….”
네른은 웃옷을 벗어 던졌다. 쌀쌀하긴 했지만 축축한 옷을 계속 입고 있기보다는 차라리 마을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 중 그나마 제일 괜찮은 옷을 뺏어 입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
고개를 돌린 네른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만 같았다. 수십의 마을 사람들이 서 있어야 할 그곳에 서 있는 것은 십수 명 정도 되어 보이는 기괴한 자들이었다.
그들은 얼굴을 쇠사들로 뒤덮고 있었는데 칠흑같이 검은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는 그 모습은 네른에게 사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뭐, 뭐야?!”
네른은 반사적으로 책을 펼쳤다. 꼭두각시로 만든 마을 사람들이 어디로 갔는지 또 어떻게 됐는지 그로서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
네른은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다 날카로운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그걸로 싸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자신의 몸에 상처 정도는 낼 수 있을 것이었다.
피를 매개로 주문이 발동하는 이상, 꼭두각시가 없으면 자기 몸의 피라도 사용해야 했다.
“…….”
그런데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상대들은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는 조금의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
네른은 용기를 내 그들을 향해 조심스레 걸음을 옮겼다.
“…….”
꽤 오랜 망설임과 돌아서기를 반복한 네른은 결국 그들 바로 앞까지 다가갔다.
“음…….”
네른은 가만히 쇠사슬 안을 들여다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숨구멍조차 없이 칭칭 감겨져 있는 그 쇠사슬 속을 그로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
한참을 들여다보던 네른은 다른 자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한 손에 쥐고 있는 돌을 놓지는 않았다.
다음 사람도, 그리고 그 다음 사람도.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대체 뭐지?”
네른은 더 이상 살펴보는 것을 그만두고는 그들에게서 빠르게 떨어졌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다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보장은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지.”
갑자기 상대가 뛰어온다 해도 어느 정도 피할 시간을 벌 수 있는 거리쯤 되자 네른은 걸음을 멈췄다.
“대체…….”
그런데 순간 그의 머릿속에 저승 등대란 말이 스쳤다.
“아!”
네른은 곧바로 책장을 넘겼다. 저들의 등장과 마을 사람들이 사라진 건 자신이 정신을 잃은 이후. 그렇다면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시전한 저승 등대와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