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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체른의 서 1(16화)
7. 고이브누(2)


“이제 이건 내가 원할 때 터진다는 거지?”
이제 문제는 어떻게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이걸 터뜨리고 몰래 도망치느냐였다.
“…….”
네른은 멍하니 자신과 똑같은 눈앞 인형을 바라보았다. 급한 마음에 일단 즉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대로 사전 작업을 마치기는 했지만 막상 해 놓고 보니 너무 허술할 뿐이었다.
애초에 아무리 똑같이 생겼다고는 해도 움직이지 않는 인형. 아무리 흑마법사 이야기를 깔아 놓았다 쳐도 그냥 갑자기 터져 버리게 하면 오히려 의심을 살 게 뻔했다. 거기다 어차피 진흙 인형. 만에 하나 파편을 조사하기라도 한다면 금방 들통 날 거였다.
“일단 도망갈 준비나 하자.”
네른은 바닥에 놓아 둔 음식들 중 닭고기와 빵을 종이에 싸 가방에 집어넣었다. 이미 식어 버린 스프는 접시채로 들어 입으로 가져가 들이켰다.
“언제 또 이렇게 먹을지 모르니 미리 든든하게 먹어 둬야지.”
그리곤 그는 인형을 옮기기 위해 인형의 허리를 잡았다. 그러나,
“이건 왜 이렇게 무거워?!”
네른의 생각으로는 재료로 쓴 진흙 양을 생각하면 아무리 사람 크기라고는 해도 무거워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이건 무슨 진흙 공예 같은 게 아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진흙을 매개로 한 주술. 적어도 주문이 풀릴 때까지는 이것은 또 하나의 네른이었다.
“미치겠네 정말!”
네른은 신경질적으로 다시 네체른의 서를 펼쳤다. 그리곤 벌써 3번째인 손가락을 들어서는 다시 똑같이 상처를 냈다.
“해골이 춤을 춘다. 검은 밤길 초록색 도깨비불 아래에서 춤을 춘다. 밤하늘 구름 속 괴물이 웃고, 깊은 숲 악령이 웃는다. 데드맨 댄스.”
단 한 번의 호흡도 없이 읊어 낸 주문. 그에 진흙 인형의 몸이 천천히 들썩이더니 이내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
걷기 시작하는 인형과 함께 방을 나서려던 네른은 순간 손가락을 내려다 보았다. 상처는 이미 완전히 아물어 그 어떤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네체른의 서에 이토록 익숙해진 것일까. 그것은 꽤나 복잡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에겐 그런 시간도 사치였다. 그는 곧 고개를 저으며 문을 열었다.
“자아, 날 따라와라.”
그 명령에 진흙 인형은 부자연스런 모습으로 네른을 따랐다.
데드맨 댄스.
원래는 일종의 함정형 주술로 깊은 밤, 해골이나 꼭두각시가 추는 현혹의 춤을 추게 하여 그것을 본 침입자에게 환술을 거는 무서운 주문이었다.
터벅, 터벅.
그렇기에 이 이상한 움직임은 어쩔 수 없는 거였다. 본래 이 주문에 걷게 하는 효과는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지금 이 인형은 최대한 천천히 발만을 움직여서 춤을 추고 있는 거였다. 당연히 이동이 부자연스럽고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었다.
“자, 어서 들어와.”
네른은 누가 올까 재빨리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 어쨌든 혹시나 복도에 누가 와도 똑같은 2명이 모여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서!”
터벅, 터벅.
하지만 네른으로서는 이 극단적으로 비효율적인 움직임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두 걸음 걷고는 세 걸음 물러났다가 다섯 걸음 앞으로 가는 식의 이 움직임은 그야말로 비효율이었다. 그런데,
꽝!
폭발음과 함께 진동이 요새 전체를 뒤흔들었다.
“뭐, 뭐지?!”
그리고 곧 이어지는 괴상한 경보음과 요란한 발소리가 복도에 울렸다.
“제, 제길!”
네른은 마침 가까이 다가왔다가 다시 돌아가려는 인형을 붙잡고는 그대로 끌어당겼다. 네른은 자기 앞으로 쓰러지는 인형과 함께 바닥으로 넘어졌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켜 문쪽으로 향했다.
그리곤 철그덕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모퉁이에 거의 도착했을 때쯤 아슬아슬하게 문을 닫았다.
“가만있어!”
네른의 명령에 진흙 인형은 넘어지고도 계속하고 있는 그 춤을 멈췄다. 그리고 문 너머로 들리는 다급한 발소리와 목소리.
“제길 공격인가?!”
“적의 규모는? 왕국군인가? 대체 이곳을 어떻게?!”
“잡담은 집어 치워! 프리드 님이 곧 오실 거야! 그때까지 처리 못하면 침입자가 문제가 아니라고!”
발자국 소리와 말소리가 멀어졌을 때쯤 네른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공격이라고?”
네른으로서는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혼잡한 틈을 타면 도망치는 것도 쉬울 것이었고 잘만 되면 갑작스런 폭발도 상대의 주문 때문이라고 꾸밀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이걸 데리고 밖에까지 갈 수 있을까?”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형을 보며 네른은 머리를 감쌌다. 넘어진 충격으로 이미 주문도 풀렸고, 설사 다시 건다고 쳐도 아까와 같은 식으로 한다면 출구까지 몇 시간이 걸릴지도 미지수였다.
“결국 의지할 건 이것뿐인가…….”
그는 다시 네체른의 서와 칼을 꺼내 들었다.

“공격?”
막 잠자리에 들려던 프리드는 부하의 다급한 전달에 짜증 내며 몸을 일으켰다.
“어떤 놈들이냐?”
“그, 그게 아직…….”
짝!
우물거리는 병사의 태도에 프리드는 그 즉시 세차게 병사의 뺨을 때렸다. 애초에 전후 보고도 아니고 지금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 병사는 교전 수칙에 따라 공격을 받은 그 즉시 지휘관에게 알리러 온 것이었다. 적이 누군지 알아낼 시간 따위 있었을 리가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단순히 잠을 방해받은데 대한 화풀이성이었지만 병사는 쓰러진 채 그저 고개를 조아렸다.
“뭐 좋다. 내가 가기 전까지 상황을 정리해 놓도록 해라. 아니면…….”
느릿느릿 옷을 집어 들던 그의 손이 찰나지만 검에 닿자 방 안 전체가 차가운 살기에 압도되었다.
“알지?”
“아, 알겠습니다.”
병사는 그대로 방 밖으로 도망치듯 뛰어갔다.
“정말 하나 같이… 백랑이면 백랑답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가 아니라, 처리했다는 보고를 해야 할 거 아냐.”
그 뒤로 한참만에야 제복을 다 차려입은 그는 마치 산책이라도 나서듯 문을 나섰다.
“어떤 놈들인지는 몰라도 감히 이곳에 발을 디디다니. 성소를 더럽힌 그 죄 그 몸으로 갚게 해 주마.”

“깔깔! 뭐하는 거야? 이게 전부야?”
카인은 온몸에서 붉은 불길을 뿜어내며 웃고 있었다. 이미 요새를 감춰 주던 오두막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산산이 부서진 파편들과 불길에 타고 있는 나무조각, 그리고 바닥에 있는 굳게 닫힌 철문 하나뿐이었다.
“제, 제길!”
“괜한 수고 마세요. 이 철혈목(鐵血木) 뿌리에 잡힌 이상 무슨 발버둥을 쳐도 빠져나갈 수는 없어요.”
오두막 안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두 명은 이미 레이나의 뒤쪽 땅에서 뻗어 나온 검은 뿌리에 온몸이 잡혀 있었다.
“우, 우리를 어쩔 셈이냐!”
“시끄럽다고. 애초에 레이나가 철혈목 뿌리로 당신들을 감싸지 않았으면 카인의 불길에 잿더미가 되었을 거야. 쫑알쫑알거리기 전에 감사부터 해야 될 거 아냐.”
레논의 손에 들린 기다란 검은색 검날에 검. 그리고 검날을 타고 흐르는 푸른색 빛. 그 뒤에는 그 빛에 이끌리듯 온몸을 갖가지 색 천으로 감싼 괴생물이 그 칼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으로 감싸여 그저 윤곽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 괴생물은 비정상적으로 길고 가느다란 팔과 항아리 같은 형태의 길쭉한 몸, 그리고 마치 공처럼 작고 동그란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누, 누가 네놈 말대로…….”
“아니면 내 이 아이의 먹이로 써 줄까?”
케에에!
그가 검을 가볍게 흔들자 뒤에 서 있던 괴생물의 뱃속에서 소름 끼치는 비명 소리가 흘러나왔다. 마치 몇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비명 소리가.
“…….”
“…….”
그 소리에 겁을 먹은 듯 두 명은 곧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 모습에 만족스럽다는 듯 레논은 싱글거리며 검을 뒤쪽으로 뺐다.
“그래. 그래야지. 어이! 카인!”
“응?”
붉은 불길을 휘감은 채 카인은 그들 가까이로 걸어왔다.
“야야, 불길은 거둬야지.”
자신에게 튀는 불똥을 쳐 내며 말하는 레논의 모습에 카인은 깜박했다는 듯 곧 그 불길을 거뒀다.
“미안해, 형.”
“뭐 됐어. 대충 윗부분은 정리했으니 이제 기다리자고. 저쪽에서도 이제 슬슬 태세를 정비하고 반격을 해 올…….”
덜컹!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닥의 철문이 요란하게 열렸다.
“봐. 바로 나오잖아. 근데 생각보다는 좀 빠른데? 기껏해야 정찰대만 올 줄 알았더니…….”
“너희는 누구냐!”
철문에서 나온 것은 횃불을 든 족히 오십여 명은 되어 보이는 백색 기사들. 거기다 아직도 남은 병력이 있는 듯 철문에서는 계속해서 병사들과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원래라면 상대의 역량이나 규모를 파악하기 전에 안전한 요새에서 이렇듯 나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지만, 그들도 곧 도착할 프리드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아니야 레논. 저게 정찰대일 수도 있어.”
카인의 순진난만한 그 말에 레논은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그럼 우리야 좋지. 저 정도 규모가 정찰대라면 그만큼 상대할 수 있는 적들도 많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래. 그렇진 않을 거야 카인. 아무리 그래도 저 정도 숫자는 너무 비효율 적이거든.”
“치!”
그녀의 그 말에 카인은 실망한 듯 툴툴거렸다.
“그럼 이번엔 내가 다 맡을래.”
“누, 누구냐고 물었다!”
자신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상대들의 태도에 백랑은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거기다 모두 공격을 해 온 침입자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려 보였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당황스러움을 알아챘는지 레이나가 한 발 앞서 나오며 입을 뗐다.
“저희는 아울즈. 마법대국 아프로스 소속 국왕 특무대입니다. 그림 늑대 여러분. 지금부터 모두를 체포하겠습니다.”
“체포다 체포!”
“뭐, 그런 거니 순순히 항복하든가 미친 듯이 덤벼 보든가 하라고. 뭐 우리로서는 반항하는 쪽이 훨씬 좋지만 말이야.”
레논이 칼끝을 두 번 땅에 부딪히자 그 뒤에 서 있던 괴생물이 앞쪽으로 나섰다. 그 비현실적인 모습에 잠시 위축될 만도 했지만, 백랑은 아무런 동요도 없었다.
“그래. 우리가 그림 늑대란 걸 안다는 거지?”
그들 태도는 아울즈 입에서 그림 늑대라는 그 말이 나오는 순간 마치 날이 잘 선 검처럼 싸늘하게 변해 있었다.
“그렇다면 살려 보낼 수 없지. 엘하임 펜릴!”
“엘하임 펜릴!”
앞선 자의 선창에 재창하며 백랑은 일제히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에 카인과 레논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래야지.”
“나, 나한테 맡겨 줘 형!”
카인은 금방이라도 달려 나갈 기세로 말했다. 레논은 그런 그에게 미소로 답하며 고개 끄덕였다.
“그래.”
“와!”
“한 10년 쯤 뒤에는 그럴게.”
우웅!
그리곤 레논은 자신의 검을 높이 쳐들었다. 그러자 검은 날을 타고 흐르던 푸른빛이 강해지는 듯하더니 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곤,
우우우!
괴생물체가 낮은 포효를 내며 백랑을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