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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체른의 서 1(18화)
7. 고이브누(4)


우우우!
고이브누의 두 팔이 날카로운 검으로 변해서는 프리드의 가슴과 목을 노렸다. 본래 고이브누는 대장장이 신의 그 이름을 따온 크리쳐인 만큼, 그 검은 날카로웠고 그 움직임은 마치 물위를 지나는 그림자와 같이 신출귀몰했다.
“훗.”
하지만 프리드는 자신을 덮치는 그 고이브누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챙!
맑은 금속음이 울렸다. 프리드 자신이 가볍게 세운 검에 고이브누의 두 팔은 그대로 가로막혔다. 그리곤 그대로 그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자 고이브누의 몸이 뒤로 튕겨 나왔다.
“고작 이딴 녀석으로 날 이길 수 있을 것 같나?”
그의 검에 흘러넘치던 붉은 기운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늑대의 송곳니가 피를 취한다!”
붉은 참격이 고이브누를 덮쳤고, 고이브누의 몸은 그 붉은 폭풍에 휘말려 뒤쪽으로 밀려났다.
우우우!
하지만 역시나 3대에 걸쳐 부수지 못한 마검 고이브누. 뒤로 밀려나기는 했지만 작은 흠집 하나 없이 여전히 멀쩡했다.
“쳇!”
프리드는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냈다. 그로서는 단숨에 잘라 버릴 생각으로 날린 참격이었다. 그러나 흠집 하나 나지 않은 상대. 그 모습은 그에게도 슬슬 불안감을 심어 주었다.
“뭘 멍하니 있나! 당장 저놈들을 공격하지 못해! 엘하임 펜릴!”
프리드는 곧바로 멍하니 있는 기사들을 닦달했다.
눈앞의 크리쳐가 만만치 않음을 안 이상, 그 조종사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에, 엘하임 펜릴!”
기사들은 프리드의 고함 소리에 곧바로 카인과 레이나를 향해 돌진했다. 더 이상 두려움이나 불안은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누구인가. 그림 늑대 중 가장 높은 자긍심을 지닌다는 백랑이 아닌가. 비록 그들의 장기인 기마전이 아니라 할지라도, 신의 위엄과 명예를 상징하는 자들 아니었는가. 잠시 고이브누의 이질적인 강함에 압도되었다지만 그대로 무너질 이들은 아니었다.
프리드의 속내야 어쨌든, 지금껏 저항조차 변변히 하지 못했던 그 고이브누를 밀어내는 그 모습은 백랑들에게는 그 마음에서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고 잠시 잊었던 자긍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엘하임 펜릴!”
“키키키. 그럼 이제 내 차례네!”
카인은 기다렸다는 듯 물 만난 고기처럼 기사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이거 조금 귀찮게 되었네.”
“뭐, 그렇네. 그럼 난 이만. 난 저 녀석을 맡아야 하거든.”
장난스럽게 말한 레논은 달려드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며 나무 위쪽으로 몸을 날렸다.
“레, 레논! 내가 정말……!”
“엘하임 펜릴!”
덤벼드는 기사들의 모습에 레이나의 두 손이 허공에 복잡한 문장을 그려 내기 시작했다.
“짙은 생명으로 하늘을 받치고 그 깊은 뿌리로 대지를 지탱하는 세계수 유그드라실이여. 그 아홉 개의 뿌리 중 하나로 나를 보호하소서.”
기도인지, 주문인지 모를 그 말이 끝나고, 허공에 그려지던 문장들도 멈췄다.
“엘하임……!”
기사들이 그녀에게 거의 다다랐을 때, 땅에서 뻗어 나온 새하얀 나무뿌리들이 그녀를 에워쌌다. 마치 고치처럼 새하얀 나무뿌리들은 계속해서 뻗어 나와 그녀를 감쌌다.
기사들이 힘껏 검을 휘둘렀지만 소용없었다. 그저 그 뿌리에 막혀 튕겨 나올 뿐이었다.
“……!”
그리고 그러한 상황에 기사들이 당황하는 사이, 새하얀 나무뿌리 속에서 또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천에 거꾸로 자란 명목(冥木) 모트여. 그 여덟 번째 뿌리를 뻗어 내 적을 휘감으소서. 그대의 양분으로 삼으소서.”
갑자기 그들 발밑에서 검은 나무뿌리가 뻗어 나왔다. 처음 두 명을 사로잡았던 것과는 다른, 마치 안개와 같이 흐물거리는 그 검은 뿌리들은 그들의 몸을 타고 올라가 그 갑옷을 파고들었다.
“아… 아……!”
고통의 신음을 내뱉을 새도 없이, 뿌리에 휘감긴 십수 명의 기사들은 마치 나무껍질처럼 말라비틀어졌고, 그들의 갑옷은 마치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듯 붉은 녹으로 뒤덮여 바스러졌다.
이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지옥의 밑바닥, 저승왕의 정원을 장식하고 있다는 인령수(人靈樹)와 같았다.
“과연 레이나. 황천과 대지, 천상의 모든 신령수(神靈樹)를 부리는 최강의 목술사라니까.”
어느새 높은 나뭇가지 위에 오른 레논은 한 손으로 검을 이리저리 흔들며 고이브누를 조종하고 있었다.
“카인도 오랜만에 기분 내는 것 같고.”
카인쪽도 상황은 비슷했다.
“하하하! 덤벼 보라니까!”
카인은 기사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그의 주먹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기사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고 그들의 검은 그의 옷깃에도 스치지 못하고 있었다.
“뭐 오래 놀려고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불은 안 쓰고 있으니까 레이나 쪽보다는 좀 덜 처참하려나.”
우우!
잠시 그가 한눈을 파는 사이, 프리드의 검이 또다시 고이브누를 넘어뜨렸다.
“엇차! 저놈도 꽤 하는데?”
그는 한쪽 손을 품 안에 넣더니 곧 뭔가를 잔뜩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 웨폰 마스터 레논에게 그 정도로는 안 되지.”
그가 품 안에서 꺼내 든 것은 각종 무기들이었다. 단검과 표창, 그리고 절대 한 손으로 들 수 없을 것 같은 각종 기괴한 모양의 도구들이 그의 손안에서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다.
“웃차!”
그런데 그의 모습이 갑자기 사라지는 듯하더니 그가 서 있던 뒤쪽에 화살이 날아와 박혔다.
“이거 기사들만 있는 줄 알았더니…….”
나무에 박힌 것은 대뿐만이 아니라 촉까지도 완전히 검은 화살이었다.
“이런, 잔재주를 부리는 놈들도 있었나?”
피하기는 했어도 밤의 어둠에 완벽하게 동화되어 소리도 없이 날아든 그것은 레논으로서도 순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안 나올 거야?”
레논의 눈이 향한 곳은 반대쪽 나무 위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둠뿐, 보이는 것은 없었다.
“안 나올 거냐고!”
그가 손을 뻗자 들려 있던 수많은 도구들 중 신기하게도 표창 두 개만이 그곳으로 날아갔다.
스스슥.
표창이 다다를 때쯤 나뭇가지들이 크게 흔들리더니 검은 인영이 레논을 향해 날아왔다. 그는 조금 전 기지의 습격 소식을 듣고 확인 차 달려온 밤까마귀였다.
“…….”
밤까마귀는 검을 뽑으며 그대로 레논을 내려쳤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그 움직임도 움직임이었지만, 무게 싣는 그 무거운 일검은 적어도 막기는 어려워 보였다.
챙!
하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듯 그 검은 너무도 간단하게 막혀 버렸다. 모양부터 크기까지 각양각색의 도구들. 그것을 한 손으로 다 들고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 강력한 일검을 막아 내고도 그의 손안의 도구들 놓치기는커녕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검까지 검다니 꽤나 음울한 놈이군. 너도 펜릴이냐?”
“…….”
“이거 꽤 과묵한데?”
우우웅!
거기다 더 신기한 것은 이러한 상황임에도 끊임없이 한 손으론 검을 움직이며 고이브누를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프리드가 아까의 그 붉은 참격으로 고이브누를 몇 번이나 넘어뜨리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그 몸에는 작은 흠집도 나지 않고 있었다.
“젠장!”
밤까마귀의 개입으로 레논의 고이브누 조종이 다소 무뎌지자 프리드는 그 틈을 타 철문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리곤 있는 힘껏 철문을 두드리며 다그쳤다.
“뭘 하고 있나! 당장 다 나와서 공격해!”



8. 사고(1)


“하아, 하아…….”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기지 안에서는 또다시 주문을 읊어 자신과 인형을 투명하게 만들고, 근력까지 강화시킨 네른이 인형을 들고 낑낑 대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최강, 최악은 무슨… 변변한 물건 옮기는 법도 없잖아.”
결국 효율적인 이동 방법을 찾지 못한 네른이 고육지책으로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덕분에 챙겨 가려고 계획했던 식당의 음식들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대충 바깥에 던져 버리고 폭발시켜 버리면 되겠지.”
한참 동안 고민한 끝에 그냥 자세한 건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한 네른이었다. 어찌 되었든 일단 지금은 여기서 도망치면 되는 거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히 만들지 말고 그냥 도망가는 건데.”
후회막심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버리고 갈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터뜨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하아, 다, 다 와 간다.”
그래도 꽤 오래 고생한 덕분에 네른은 철문 거의 앞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이제 조금만 더…….”
주문의 효과가 떨어져 가는지 이제는 거의 끌다시피 하며 네른은 철문으로 가는 첫 번째 문의 잠금을 열었다.
“……!”
네른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낼 뻔했다. 끌고 오는데 너무 열중했던 탓일까, 문 앞에 서 있을 경비병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
“왜 갑자기 문이 열렸지?”
네른은 반사적으로 몸을 뺐고, 확인 차 문을 연 경비병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이상하다. 아무도 없는데…….”
“걸쇠가 느슨해진 거겠지.”
투명해진 네른을 보지 못한 경비병은 그대로 문을 닫아 버렸다.
“…….”
네른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짜증에 미칠 것만 같았다. 당장 눈앞의 문을 발로 차 버리고 싶은 욕구를 간신히 억누른 그는, 이 무겁기만 한 인형을 지금 폭발시켜 버릴까하는 깊은 고뇌에 빠졌다.
폭발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이런 식으로 사용할 의도로 만들어진 주문이었다. 적어도 이 문 하나와 그 뒤에 서 있는 경비병들 정도는 처리하기 충분할 터였다.
“아니지, 그건 안 될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해 온 노력에 비한다면 너무도 허무한 일이었다. 단지 문을 열거나 경비병을 처리할 거라면 비슷한 주문은 넘쳐 나는데 그 고생을 하며 여기까지 끌고 온 크레이돌을 사용하다니. 그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손해였다.
“어쩌지…….”
그런데 그를 돕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뭘 하고 있나! 당장 다 나와서 공격해!”
밖에서 들려온 프리드의 외침에 경비병의 움직임이 바빠졌다. 다시 한 번 경보가 울렸고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경비병들이 뛰쳐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됐다!”
네른은 경비병들의 발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다시 문을 열었다. 더 이상 경비병들은 없었고 철문도 활짝 열려 있었다.
“자, 빨리, 빨리.”
네른은 그대로 인형을 들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섰다.
“……!”
바깥 상황은 네른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방적이었다. 백랑은 이미 거의 전멸 지경이었고 그 기분 나쁜 지휘관도 이상한 괴물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 내고 있을 뿐이었다.
“…….”
눈앞 상황에 네른은 인형을 그대로 바닥에 놓아 버렸다. 이렇게 된 이상 굳이 죽음을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전투의 승패는 갈렸고, 백랑이 진다면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이는 없었다.
“…….”
네른은 그대로 반대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숲길이나 밤의 어둠 따위는 상관없었다.
그런데,
퍽!
뭔가 어깨에 둔탁한 느낌과 함께 몸에 균형이 깨지고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