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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9화)
3. 시작(4)
쩌저적.
푸른 초원 위를 광견병에 걸린 듯 날뛰면서 달려오던 늑대가 투명한 얼음에 의해 동작을 멈췄다. 그것은 스스로 멈췄다기보다는 온몸을 감싼 얼음의 힘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멈추게 되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적합할지 모른다.
“프레이 님, 뒤로 빠지세요.”
말을 내뱉음과 동시에 인탱글을 캐스팅한다. 그러고는 빠른 속도로 시전했다.
초원에 뿌리박고 있던 풀들의 뿌리가 길어지면서 늑대의 발을 사로잡았다. 첫 번째 공격을 통해서 체력이 절반 가까이 빠져 버린 늑대는 속수무책으로 인탱글에 걸려들었다.
마법이 시전됨과 동시에 스칼의 앞에서 늑대의 돌진을 저지할 모션을 취하는 프레이! 이전에 토끼를 사냥했을 때의 패턴 그대로라서 그런지 익숙한 모습이다.
크어엉!
인탱글의 속박에서 벗어난 늑대가 달려왔지만, 스칼은 여유롭게 버닝을 시전하고, 프레이 또한 여유롭게 방어를 준비했다.
“하압!”
늑대가 엎어지면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지자 짧고 굵은 기합성을 내면서 검을 휘두르는 프레이! 프레이의 검은 물어뜯기 위해 뛰어오른 늑대의 배를 갈랐다.
부드럽게 늑대의 배를 벤 프레이의 검은 피를 머금은 채 돌아왔고, 공격을 받은 늑대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쓰러진다.
바스타드 소드였더라면 결코 보여 줄 수 없었던 공격 속도는 늑대로 하여금 강력한 일격에 노출되게 만들었다.
단박에 피가 사분지 일밖에 안 남은 늑대에게 스칼의 결정타가 날아갔다.
“버닝!”
화르륵.
아까와는 반대로 허공에서 불의 기운이 모여들더니 삽시간에 늑대를 태웠다. 위력이 강화된 프리즈와 마찬가지로 상당한 파괴력을 지니게 된 버닝은 빈사 상태에 빠져 버린 늑대의 숨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빈사 상태의 적에게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히셨습니다.
그 말과 함께 대폭 오르는 경험치. 자신의 레벨보다 2레벨이 높은 늑대를 죽이니 상승하는 경험치의 폭이 컸다.
스칼은 삽시간에 재가 되어 버린 늑대의 시체를 보고 떨어진 돈을 줍는다. 그렇게 해서 습득한 돈은 정확히 이등분이 되어 각자의 인벤토리로 들어간다.
“정말 빠른데요! 스칼 님! 누구도 이렇게 빠른 속도로 늑대를 사냥할 수 없을 겁니다.”
프레이의 칭찬. 스칼은 그런 그의 칭찬에 화답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프레이 님.”
“예?”
“……일반인이라면 뛰어오르는 늑대의 배에 정확한 일격을 집어넣을 수 없습니다. 프레이 님의 공격은 마치 숙련된 검사의 가까운, 그러한 공격이었어요. 초보가 보여 줄 검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움직이는 늑대의 배를 정확하게 가르는 장면을 보았던 스칼은 확신할 수 있었다. 프레이가 일반 유저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 특별한 능력이 숨겨져 있음이 틀림없었다.
“하하…….”
스칼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지은 프레이가 습관처럼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제 직업 말인가요? 그냥 사냥하시면 좋겠는데…… 쩝. 원하신다면 알려드리지요, 뭐. 까짓것!”
헛기침을 한 프레이가 스칼의 물음에 답했다.
4. 레벨보다 중요한 것(1)
“정체가 뭐냐고 물어보실 필요까지는 없어요. 누가 보면 제가 비밀 첩보원인 줄 알겠습니다.”
활짝 웃은 프레이는 자기소개를 했다.
“현실에서 검을 수련하고 있습니다.”
“검을 말입니까?”
“예.”
역시 스칼의 예상대로 프레이는 현실에서도 검을 익히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늑대의 배를 저렇게 깔끔하게 베지는 못했을 것이다.
프레이는 계속해서 웃으며 말을 이어 갔다.
“제 이름은 이현우입니다.”
“이현우라…… 어디서 많이 들어 본 것 같은 이름인데…….”
기억이 날듯 말듯 하다. 분명 이현우라는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검을 잘 쓰고, 이현우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머리는 이현우에 대해서 떠올린다.
세계 검술 대회 최연소 우승 타이틀을 거머쥔 사람. 그의 이름이 이현우라고 들었다. 2022년인 지금, 급속도로 과학이 발전했고 삶은 풍요로워졌다. 그에 따라서 사람들은 잊혀져 가던 무술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풍족해진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에 따라서 숨어 있던 검술의 귀재들이 발굴되었고, 곧 ‘세계 검술 대회’를 중국에서 주최함으로써 본격적으로 검사들이 재등장하기 시작했다.
이현우는 혜성같이 등장한 검사들 사이에서도 으뜸이었다. 불과 19살이라는 나이에 제2회 검술 대회에서 우승! 강천우와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한국의 이름을 빛낸 대스타가 되어버렸다.
이현우가 눈앞에 서 있는 프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은 스칼이 잠시 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멈춰 있던 스칼에게 질문을 던지는 프레이.
“스칼 님이 생각하시는 것이 아마 맞을 겁니다. 세계 검술 대회에서 우승한 경험이 있지요.”
“허! 눈앞에서 그런 대스타를 보다니? 믿기지가 않군요.”
본인 또한 만만치 않은 신분이었지만, 막상 유명한 사람을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프레이는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며 스칼의 눈앞에 정보창을 공유했다. 그 정보창에는 이상한 스킬에 대한 정보가 나열이 되어 있었다.
근성의 검술
종류:성장형 패시브 스킬(초급 46/100)
내용:검술을 익힘에 있어서 필요한 것은 근성. 재능도 필요하긴 하지만, 근성의 중요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신은 선천적으로 근성을 타고난 것 같다. 검 베기를 1,500번이나 반복하다니? 그것은 정말 근성의 검술이라고밖에 할 수 없으리라.
효과:스킬 레벨에 따라 물리 공격력이 상승합니다.
“허억!”
뭔가 스칼의 연산과 같은 뉘앙스를 풍기는 스킬이다. 어쩌면 연산 스킬보다 더한 노력을 통해 생성된 스킬일지도 모른다. 스킬 내용에 ‘1,500번 반복’이라는 것이 적혀 있는 것을 보면, 실제로 검 베기를 1,500번 정도 한 것 같다.
프레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게임에 들어오자마자 했던 것이 전사 교관에게 찾아가서 검을 빌려다가 1,500번 베는 것이었죠. 항상 일을 시작할 때마다 1,500번을 휘두르고 시작하곤 했는데, 제 몸풀기를 본 교관이 크게 감동하면서 퀘스트를 줬습니다.”
“세상에…… 1,500번이라니?”
근성도 저런 근성이 없을 것 같다. 제정신이라면 똑같은 동작을 1,500번이나 반복할 수 없겠지.
“특수 능력치에 근성도 있으시겠군요?”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이 스킬과 함께 근성 스텟도 생성되었는데…… 혹시 스칼 님도?”
“아,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근성 스텟은 아닙니다만, 저도 프레이 님 같은 경우니까요.”
스칼은 자신과 프레이가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꼈다. 현실에서 유명인이라는 점과 게임 속에서도 현실의 능력을 이용한다는 점.
자신은 수학 능력을 사용하고 있고, 프레이는 신체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굉장한 우연이었다.
프레이 또한 노력을 하면 할수록 남들보다 훨씬 강해지는 캐릭터다. 그것을 깨달은 스칼이 앞으로 프레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많이 알아 둘수록 후에 사냥할 때 도움이 될 것임이 확실하다.
속으로 계획을 세우던 스칼에게, 이번에는 프레이가 물었다.
“스칼 님은 현실에서 어떤 일을 하시고 계십니까? 제가 볼 때는 수학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 것 같은데요?”
“프레이 님께서 솔직하게 말씀하셔서 꽤 놀랐습니다. 친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이름을 밝히시는 것을 보니, 저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겠군요.”
그의 말에 고개를 한 번 끄덕인 스칼이 말을 이었다.
“제 이름은 강천우입니다. 현실에서 수학자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지요.”
“설마 필즈 메달 수상자 강천우 씨입니까?”
“알고 계시는군요?”
프레이의 놀라움은 스칼이 프레이의 정체를 알았을 때의 놀라움보다 컸다. 자신이 아무리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할지라도 강천우와 비교할 수는 없다.
세계 7대 난제를 최연소 나이에 풂으로써 필즈 메달을 받은 한국인!
한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천재!
그것이 강천우다. 한국인에게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만들어 주는, 그런 사람이 강천우인 것이다.
만약에 프레이가 솔직하게 말하지 않았다면. 아니, 간단히 검술을 배웠다고 말했다면 들을 수 없었을 엄청난 사실에 프레이는 말을 잃었다. 서로에게 한 방씩을 선사해 준 둘은 한동안 서로를 묵묵히 바라보기만 했다.
* * *
“이번에는 두 마리를 몰고 오세요. 레벨 10이니 충분할 겁니다.”
약 2시간을 사냥을 한 프레이와 스칼은 거의 동시에 레벨 10에 도달할 수 있었다. 다른 파티에 비하면 상당한 속도를 보여 주는 이 파티의 비밀은 바로 2명의 데미지 딜러. 탱커로 이용할 목적으로 데리고 온 프레이는 사실 탱커라기보다는 강력한 데미지 딜러라고 볼 수 있었다.
올 힘 전사로 알고 있었지만, 프레이의 말로는 근성 스텟에 능력치 배분이 가능해서 근성 스텟이 생성되자마자 민첩과 근성도 적당량을 나누어서 배분했다고 한다.
그것은 옳은 선택이었다.
무식하게 공격력만 높은 전사가 아닌 적당히 어그로 역할을 해 주는 전사.
프레이의 검술 실력은 그것이 가능하게 만들었고, 결국 스칼의 파티는 투 데미지 딜러로 이루어진 파티가 되어 버렸다.
사냥 방식도 변화를 보였다. 몬스터에게 프리즈로 선제공격을 가하면 프레이가 달려 나가서 데미지를 입힌다. 그다음, 비교적 캐스팅 시간이 짧은 매직 애로우를 통해 마무리!
이런 식으로 사냥하니 스칼에게만 의존하려고 했던 이전의 방식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늑대를 죽일 수 있었다.
그 결과가 바로 레벨 10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