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네메시스 1(13화)
5. 스킬 생성(3)
케일과 스칼은 동시에 그 책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곧 그 생각이 부질없음을 깨달았다.
“금서의 비밀을 우리가 쉽게 알아낼 수는 없어요. 자, 이제 퀘스트를 시작해 보도록 할까요?”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독서―고대의 연산책
내용:페일 마을의 도서관 사서는 당신에게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에게 고대의 연산책을 보여 줄 것이고, 당신은 그 책들을 읽음으로써 연산에 관련된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의 연산책을 읽기 위한 준비는 모두 끝났으므로 어서 독서를 시작합시다! 독서는 당신을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보상:한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드디어 연산책을 읽을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고작 3일 만에 독서를 중급으로 올리고, 새로운 스킬을 습득할 수 있었던 스칼은 연산책을 열심히 읽으리라고 다짐했다.
눈앞에 나타난 기회를 놓치는 것만큼 미련하고 바보 같은 짓은 없다.
그것이 강해질 수 있는 기회라면 더더욱.
“연산책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드릴까요?”
가만히 서 있던 케일이 스칼에게 물었다. 그는 그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연산력 노가다…… 라는 표현이 적당하려나?”
그랬다.
지금 스칼은 마음속으로 연산력 노가다를 하기로 작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에는 불타는 의지가 넘실거린다.
노가다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하진 않지만, 그는 강해지는 것이 즐거웠다.
스칼은 그저 강해지는 것이 즐거울지도.
아버지의 유언을 받드는 것은 나중 이야기다. 지금은 게임의 즐거움에 흠뻑 빠져 보고 싶었다.
그것이 스칼의 속마음.
살며시 웃은 그는 케일을 따라서 고대의 연산책이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 * *
책 이름:고대의 연산책―4서클 마법 공식에 대한 이해.
내용:마법이 극도로 발달했던 시기에 8서클 대마법사가 남긴 4서클 마법 공식에 대한 풀이 과정이 써져 있는 연산책이다. 4서클 마법에 등장하는 것은 미분, 적분에 관련된 공식들. 그것들 중에서도 상당한 난이도를 자랑하는 문제들인데, 이 책을 보면 왠지 문제를 잘 풀 수 있을 것만 같다.
―연산력 스텟이 2 증가합니다.
“이 정도 풀이 방법이라면 8서클 대마법사의 머리도 그리 좋지는 않은 것 같네. 이런 풀이는 내 동료 녀석들도 충분히 할 거야.”
고대의 연산책을 덮으며 중얼거린 스칼.
연산책에 나와 있는 풀이 방법은 그가 이해하기 쉬운 것이었다. 그에게는 힘들지 않은 풀이라서 그랬던 것일까? 속으로 풀이 방법을 쓴 마법사를 비웃었다.
책을 덮은 스칼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었다.
‘아브락사스. 아마 어디선가 많이 본 단어였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설마 그 뜻으로서 아브락사스를 썼던 것일까?’
어린 시절 그가 탐독했었던 책에서 나왔던 단어. 아마 그 책에서는 아브락사스가 신의 이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비상하는 새, 아브락사스. 괜히 금서의 이름이 아브락사스일 리는 없다.
‘도대체 그것이 2차 전직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대륙 4대 금서의 이름이 어찌하여 그것일까?’
연산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스칼은 한 가지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이 책의 비밀은 전직이 끝이 아니다.
‘무엇’인가가 더 존재하고 있다. 다만, 지금은 짐작할 수 없을 뿐이다.
“나머지 4대 금서도 찾아서 읽어 보고 싶군. 그것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4대 금서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비밀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아브락사스. 그렇지만 나머지 금서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들도 만만치 않은 비밀들일 것이다.
4대 금서 모두를 읽게 되면 신기한 일이 일어날 것 같기도 하다. 숨겨져 있는 비밀들을 알게 되면, 그 비밀은 곧 무기가 된다.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것을 혼자만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비밀은 밝혀져서는 안 되기에 비밀이다.
그리고 비밀들 중에서도 위험한 비밀들이 4대 금서 안에 숨겨져 있다.
“현실이나 게임이나 비밀은 중요한 법이지.”
비밀이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하다. 비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죽을 수도 있는 세상 속에서, 비밀의 가치는 무궁무진하다.
다만, 그것이 누구에게 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
나중에 시간이 허용된다면 4대 금서의 비밀을 찾으러 다니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과정은 순탄치 않겠지만, 결과물은 만족스러울 테니까.
“휴우…….”
고차원적인 이해를 습득한 스칼은 아주 빠른 속도로 연산책을 읽어 나갔다. 고대의 책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된 그였기에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책에 써져 있는 풀이 방법은 그에게 있어서 쉽다고 할 수 있는 난이도였다. 그 덕분에 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연산책을 읽을 때마다 연산력이 1에서 2 정도가 상승했다.
연산책이 꽤 두꺼워서 읽는 데에 시간이 많이 소비되기는 했지만…….
“열심히 읽으시는군요?”
“또 할 일이 없으시나 보네요. 끄응.”
그가 접속해서 책을 읽을 때마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불청객, 케일. 오늘도 케일이 찾아왔다. 도서관에 손님이 뜸할 때면 대뜸 그에게 와선 수다를 늘어놓는 그녀의 존재는 스칼에게 귀찮은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뭐, 가끔씩은 유용한 정보를 들고 오기도 한다.
오늘은 무슨 정보를 들고 왔을까? 스칼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이제는 얼굴 보는 것도 지겹네요…….”
그러자 케일은 배시시 웃으면서 책 한 권을 건네주었다.
“앞으로 필요할 것 같아서요. 4대 금서를 읽으셨으니, 이 책도 읽으시는 것이 좋을 걸요? 많은 도움이 된답니다.”
“이게 무슨 책입니까?”
“암흑시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가 정리된 책인데,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던 역사를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이라고 전임 사서님에게 들었어요.”
“전임 사서님도 계셨습니까?”
“예. 그분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셨죠. 60세에 마법사가 되겠다고 뛰쳐나가셨는데, 밖에서 무뢰배들에게 칼 맞고 돌아가신 듯…… 아, 이건 잡담이었어요.”
케일의 말을 듣자 하니 전임 사서가 괴팍했던 모양이다. 60세라면 임종을 맞이할 나이인데, 마법사가 되겠다고 뛰쳐나가다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책을 건네받았다.
‘암흑시기로부터 시작된 두 번째 세상’이라는 제목을 가진 책이었는데, 제목부터 어려울 듯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 책은 유명한 책이지요. 독서가들 사이에서는 필독서로 불리는 책이지만, 또 이해하기가 난해한 책이기도 하답니다. 고차원적인 이해를 할 수 있으셔서 읽을 수는 있겠지만, 지루해서 그만둘지도 몰라요.”
백문이 불여일견.
케일의 말을 들으며 책을 읽기 시작해 본다.
케아스 대륙은 모든 종족의 피가 깃들어 있는 대륙. 지금 인간이 이룩해 놓은 문명은 진보가 아니라 퇴보의 의미가 더욱 크다. 암흑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인간은 이종족들과 함께 문명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종족의 단점을 보완했었다. 하지만 암흑시기 후, 인간들은 이종족들과의 교류를 줄였다. 그 결과, 찬란했던 인간의 문명은 퇴보했다. 겉으로 보기엔 이전보다 발전했을지는 몰라도, 사실상 인간의 문화는 퇴보한 것이다.
“이종족들과 관련된 책인가요?”
서장을 읽은 그가 케일에게 물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세상에서는 엘프들의 관용이 사라졌다. 드워프들의 호쾌함도 사라졌다. 오크들의 우직함도 사라졌다. 다른 종족으로부터 빌려 왔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과연 물질적 발전이 진정한 발전일까? 정신적으로 퇴보해 버린 이 세상에서, 물질적 발전이란 필요한 것일까? 필자는 독자들이 이 책의 내용을 보고 깨달은 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이들이 기록했던 역사와는 또 다른 역사니까. 이것은 인간이 잊어버린 이종족과의 화합에 대한 글임과 동시에 사라져 버린 각성의 길에 대한 글인 것임을 명심하길 바란다.
“각성의 길!”
그제야 스칼은 케일이 왜 이 책을 건네주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아브락사스와 관계가 있는 책, 그것이 이 책의 정체인 듯싶었다.
“어째서 제게 책을 보여 주는 건가요?”
그는 그것이 궁금했다. 케일이 도대체 누구기에 자신에게 이런 정보를 건네주는 것일까? 호감이 있다는 이유만으론 베풀 수 없는 호의는 스칼로 하여금 부담을 갖게 만들었다.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요.”
“뭐가 말입니까?”
“비밀을 찾아다니는 마법사가 한 명쯤은 있어도 괜찮을 것 같더군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 마법사가 어째서 접니까?”
그런 마법사가 필요했다면 굳이 자신이 아니어도 되지 않았던가?
이어진 케일의 말은 굉장히 어이없는 한마디.
“당신이 특별해 보이니까요. 강해지는 것을 즐기면서도, 강해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리고…… 매력적이에요. 후훗.”
“고작 그겁니까?”
“고작이라니요? 여자에게 있어서 잘생긴 남자란 매우 중요한 요소란 말이죠. 저도 여자랍니다.”
굉장히 맥이 빠지는 소리다. 매력적이라니…… 그것 때문에 이런 과도한 호의를 베풀었던 것일까?
아니, 아니다. 스칼도 알고 있다. 그녀가 왜 자신에게 이 책을 건네주었는지. 어디까지나 짐작이겠지만, 아브락사스를 본 자에게 이 역사서를 전달하는 것이 그녀의 임무일 것이다.
“아브락사스를 본 유저 2명에게도 보여 주셨겠죠.”
움찔.
“하하…… 어떻게 아셨어요?”
“이런 시골 마을에 4대 금서가 숨겨져 있다는 말은, 곧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말이 됩니다. 설마 제가 그런 것도 예측하지 못하리라고 보셨습니까?”
“역시 대단하시네요! 앞선 유저 2명은 눈치채지 못했는데.”
‘눈치를 못 챈 것이 아니라 일부로 아닌 척한 거겠지.’
분명 앞선 유저 2명은 케일의 수다에 놀아나기 싫어서 말을 하지 않았으리라. 솔직히 말해서 케일의 수다는 굉장히 짜증 나고 거슬린다.
할 일 없으면 옆에 와서 쫑알쫑알거리며 집중을 방해하는 케일을 때리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여자에다가 가끔씩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오기 때문에 참았을 뿐, 그녀의 쉴 새 없이 떠드는 입이라면 1달 안에 노이로제에 걸리게 만들 수 있다, 라고 스칼은 생각했다.
“감사합니다.”
“뭘요. 책 다 읽으시면 제게 반납해 주세요. 그거 다른 사람이 읽으면 꽤 곤란한 책이거든요.”
“물론이죠. 저도 이런 책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케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스칼은 곧 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연산책을 이해하면서 충분히 여유를 취했던 그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책의 내용을 집어넣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