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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14화)
5. 스킬 생성(4)
태초에 신은 각 종족에게 조화롭게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을 주셨다. 서로를 친형제처럼 아끼며, 발전해 갔다. 그런 그들의 화합이 깨졌다는 것은, 곧 운명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운명의 종말은 인간들이 가지고 왔다. 각 종족만의 특성을 흡수해서 강력해진 인간들이 종말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다른 역사책에서는 이종족들이 인간들을 버렸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 책은 그 반대. 인간들이 이종족을 버렸다고 한다.
“무엇이 진실이지?”
‘모두가 옳다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거짓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제외할 수는 없어.’
일단 묵묵히 읽어 보자고, 스칼은 생각했다.
암흑시기에는 이종족들의 흔적이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이종족들의 빈자리에는 인간의 탐욕만이 가득하게 되었다. 그것이 현재 인간들과 이종족들이 교류하지 않는 이유다.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캐릭터를 생성할 때 선택할 수 있는 종족들은 꽤 있다.
사실, 현재 이종족과 인간들은 대립하고 있다. 이종족 연합을 만든 세력들과 인간 연합을 만든 세력들 사이에서 잦은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
게임의 오픈 베타가 시작된 지 꽤 시간이 되었지만, 인간끼리의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모두 다 케아스 대륙의 세계관 덕분이다.
급속도로 틀어진 이종족과 인간들의 관계는 동족 간의 전쟁이 아니라 종족 간의 전쟁을 일어나게 만들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잦은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
원래는 형제처럼 서로를 아껴 줬던 종족들이 서로에게 이빨을 드러내며 싸우고 있다는 것은 분명 비극임이 틀림없다.
스칼의 생각 또한 그랬다. 만약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전쟁은 인간이 자초한 것이고, 모든 잘못은 인간에게 있는지도 몰랐다.
현재 기록되고 있는 피의 역사의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후세들이 우리에게 전쟁의 책임을 물어 온다면, 우리는 누구에게 책임을 돌려야 하는가!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타락해 버린 영웅의 후예들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고.
그것이 필자가 말하려는, 주장이려는 것 같다. 역사책이면서 필자의 주장이 강하게 들어간 이 글을 과연 역사책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때! 그의 눈앞에 하나의 창이 떠올랐다.
이것은 대륙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던 추악한 진실입니다. 인간들은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대륙의 역사를 은폐시켰고, 조작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본 이 책은 숨겨진 비밀에 대해 기록해 둔 책입니다.
이제 당신은 대륙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찾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현재 인간들에게 이 비밀을 말해 봤자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그들은 움직이지도 않을 것입니다.
현재 타락한 인간들의 대표와 타락한 이종족들의 대표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의미한 살생은 계속되고 있으며, 대륙은 피로 물들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필자는 독자에게 말합니다. 부디 이 비극을 끝내 달라고. 이 책은 숨겨진 현자의 편지나 다름없습니다. 더 이상 피를 보기 싫은 현자는 이 책을 기록함으로써 마지막 희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희망은 당신에게까지 도달했습니다.
당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은, 숨겨진 대륙 역사를 바로 잡을 중요한 일임과 동시에 1,000명도 되지 않는 유저들에게 주어지는 임무입니다.
마치 퀘스트 정보 따위 같은 것이 아닌 책에 대한 해설 같다. 하지만 그것 안에 담겨 있는 말들은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들이었다. 인간들의 대표와 이종족들의 대표가 이익을 위해서 전쟁을 지속시키고 있다니! 그 때문에 무고한 생명만 죽어 나가고 있다?
스칼로서는 생각할 수 없었던 범위의 것들이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지금 이 일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륙 역사를 바로잡는 일, 그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어쩌면 온 힘을 다하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일지도 몰랐다.
―특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대륙의 역사를 위한 발걸음
내용:당신은 숨겨진 금서와 숨겨진 역사를 다룬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당신은 가히 충격적인 사실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제 2가지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추악한 진실들을 숨기고 다른 이들처럼 살아가느냐, 아니면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나설 것이냐.
세상은 난세이며, 타락해 버린 자들의 세상입니다. 진실은 죽어 버렸으며 더 이상 정의로움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마음은 독이 될지도 모릅니다.
자, 선택하십시오. 진실을 밝히겠습니까, 아니면 진실을 숨기고 다른 이들처럼 살아가겠습니까?
보상: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퀘스트는 한정 퀘스트이며 2가지의 조건을 충족시킨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퀘스트입니다.
“이건…….”
비밀을 밝히는 일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 비밀을 밝히려고 한다면 분명 충돌이 일어난다.
비밀을 숨기려는 자와의 충돌. 현재 비밀을 지키려는 자들의 세력은 강할 것이다. 비밀을 숨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을 정도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퀘스트에 목마른 사람이 아니다. 연산책을 풀면서 천천히 성장해 나가기만 하더라도 충분한 힘을 가질 수 있다.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많은 적이 생겨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적은 그의 성장을 방해할 것이다.
그렇게 귀찮은 일을 스스로 자초할 이유 따위란 없지만, 인간의 호기심이란 건 생각 외로 치명적이어서 스칼은 유혹에 빠졌다.
“위험한 퀘스트다. 너무나도 위험한 퀘스트야!”
금서로부터 시작된 퀘스트였으니, 어쩌면 대륙 역사에 깊이 관여하게 되는 ‘에픽 퀘스트’까지 연결될지도 모른다.
에픽 퀘스트로 연결된다면 분명 엄청난 행운임이 틀림없다.
“문제는…….”
전쟁을 유지하려는 자들과 싸워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문제다. 레벨 11로서 그런 거대 세력들과 맞설 수 있는 방법이란 없다.
그 때문에 그가 망설이고 있는 것이다.
“으아아! 남들이라면 좋다 하고 받았을 텐데!”
그에게는 아버지의 유언이라는 짐이 있다. 홀몸이었다면 흔쾌히 퀘스트를 수락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유언을 수행해야 하기에 이런 큼지막한 퀘스트를 마음대로 받을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앞길에 장애물이 되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두 가지의 길에서 고민하고 있던 그의 눈앞에 하나의 영상이 떠올랐다.
“이종족이나 인간이나 살고 싶어 한다고. 그런데 어째서 전쟁을 계속 벌이는 거야? 당신들도 알잖아! 이런 무의미한 전쟁은…….”
한 엘프 여성이 두 눈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인간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가녀린 그녀의 눈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깝게 만드는데, 영상 속에 나타난 인간들은 자비심을 거세한 것 같았다.
그들의 눈에는 오로지 앞에 있는 대상을 죽인다는 생각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지?”
“전쟁이란 대륙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라고. 이종족이나 인간이나 살고 싶어 한다고? 틀렸어. 너희들은 오로지 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너희들 덕분에 우리들은 굉장한 돈을 번다고! 너 같은 년을 잡아서 노예로 팔아도 제법 짭짤하지.”
“게다가 전쟁은 물자의 소비를 활발하게 만들어 준다고! 그 과정에서 우리들에게 떨어지는 돈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 그런데 그런 전쟁을 왜 그만둬?”
스칼의 눈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이랬다.
돈에 미친 귀신. 그들의 모습은 오로지 돈만을 생각하는 추악한 생명체에 불과했다. 생명을 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는 더러운 족속들.
“이런 미친놈들!”
“죽을 년이 말이 참 많아?”
“너희들이 흘리게 만든 피는 결국 너희들에게 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라. 그것이 자연의 섭리니까!”
엘프 여성은 계속해서 소리쳤다. 이미 복부에 큰 검상을 입고 있는 상태라 얼마 안 가 죽음을 맞이할 듯싶었다.
스칼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모습에서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경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죽어라!”
남자들의 검이 엘프의 목을 베었고, 곧 영상이 꺼졌다.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자극해서 퀘스트를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속셈인가? 만약 그것이 이 영상의 의도라면…… 위력 하나는 확실하군.”
그는 흔들리는 자신을 목격했다. 고작 영상을 잠깐 동안 봤을 뿐인데, 엘프를 죽인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이 생겨났음이 느껴졌다.
한숨을 깊숙하게 내쉰 그는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퀘스트를 받아들였다.
“비밀을 밝히겠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비밀을 밝히는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양심을 자극하는 그 영상을 보고 나자 결심이 확고하게 굳어졌다.
‘나는 같잖은 정의감을 가진 사람은 아니야.’
스칼은 다른 이들보다 수학을 아주 잘한다는 점만 특별하지, 정의감에 불타는 청년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저렇게 의미 없는 살생을 보고 못 본 척할 정도로 잔인한 사람도 아니야.’
그것이 그가 퀘스트를 받아들인 이유였다.
스칼은 다시 한 번 고개를 좌우로 흔든 뒤, 책을 완독하기 시작했다.
6. 결심(1)
“와아! 여기에 있는 책을 벌써 다 읽으신 거예요?”
“2주일 동안 죽자고 달려드니 못 읽을 것도 없더군요.”
“그렇다고 해도, 이건 정말 대단한 일이랍니다. 제가 지금까지 사서 생활을 하면서 스칼 님처럼 독한 마법사는 처음인데…… 흐음. 마법사라면 이 정도는 해야 하나?”
그가 도서관에 입성한 지 어언 2주일. 게임의 시간으로 2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내내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책만 읽은 스칼.
그의 독서 스킬은 중급에 올라왔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게다가 고대의 연산책은 모두를 읽어서, 연산 스킬과 연산력 스텟도 이전에 비하자면 몇 배나 성장할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짭짤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것은 바로 페일 마을의 도서관에 존재하고 있는 역사책들을 모두 다 읽은 것!
페일 마을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비밀을 가지고 있는 책이 꽤 많았다.
케일이 보여 준 책 이후로 이종족과 인간의 역사에 관련된 책을 주로 읽었던 스칼은 하나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현재 지속되고 있는 전쟁의 이유는 각 종족의 수뇌부들에게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그것이었지.”
전쟁의 이유. 그것은 바로 전쟁을 통해서 세력을 불려 가는 것이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전쟁에 참여한 영주들은 전쟁을 구실로 삼아서 사병의 크기를 불린다. 그렇게 되면 국왕도 어쩌지를 못하게 된다.
전쟁에서 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병력을 늘리지 못해서 이종족들에게 밀리면 책임은 누가 지게 될 것인가? 그것은 바로 병력을 늘리지 않도록 한 국왕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것이었다. 귀족들이 세력을 불릴 수 있었던 이유가.
그것은 이종족들도 마찬가지. 이종족들 또한 각 종족만의 왕국이 존재했고, 그들의 실상도 인간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표면상으로 전쟁에 참전해야 하니 군사들을 파견하긴 한다. 다만 그 수가 적을 뿐이지.
그렇게 해서 귀족들은 암암리에 세력을 불려 가고, 국왕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무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현재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생명이 죽어 가고 있어.”
형식뿐인 전쟁이긴 했지만 출혈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몇몇 악랄한 노예 상인들은 전투를 위장해서 노예들을 잡아들인다.
전쟁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피해자가 늘어나는 것이다. 심지어 몇몇 이종족들은 동족들을 판매하는 악랄한 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그것은 모두 전쟁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칼은 그런 무의미한 전쟁을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이곳이 게임의 세계일지라도 이곳 안에서 살고 있는 NPC들에게는 현실이다. 어쩌면 그들은 프로그램의 일부일지 모른다.
하지만 NPC들은 놀랍도록 인간적이라서 현실의 사람들과 구분할 수가 없을 정도.
“이 모든 것이 아버지가 만든 세상이야. 아버지가 무고한 희생을 계속 방관하실 리는 없어.”
자신만큼의 애착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무차별적인 살육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그의 아버지가 지켜보기만 했을까?
답은 ‘아니다’였다. 어머니로부터 들은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도 인간적이고 자비로우셨던 분이라고 했다. 그런 그가 자식 같은 세계에서 일어나는 살육을 방관하고 있었을 리는 없다.
“아버지의 유언이 전쟁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그가 판단하기에는 현재 전쟁은 게임에 큰 위협이 된다. 지금 당장에는 소규모 전투만 일어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쌓여 가고 있는 귀족들의 힘이 게임을 위협하는 존재가 될 터였다. 암흑시기에도 그러했듯이 쌓인 힘은 비극을 낳는다.
암흑시기보다는 문명이 꽤 쇠퇴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진 인간의 힘은 강성했다. 그런데 내부에서 충돌이 일어날 경우 세상은 순식간에 혼란스러워지리라.
그리고 그 혼란은 언리미티드 월드의 문제점이 될 것이 분명했고.
그런 의미로 볼 때 스칼이 퀘스트를 받아들인 것은 아주 적절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