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네메시스 1(17화)
6. 결심(4)
크르릉.
프리즈의 부가 효과인 결빙에 의한 속박이 발휘되면서 두 번째 움직임 봉쇄가 이루어졌다. 확률적으로 터지는 결빙 효과였기에 이번에는 운이 상당히 좋다고 할 수 있다.
프리즈가 정통으로 먹혀 들어갔으니, 이제 사용할 마법은 버닝! 프리즈 못지않게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는 버닝이니까 만만치 않은 데미지를 입히리라.
곧바로 캐스팅을 준비했다.
고요한 녹색 초원 위에서 마력을 끌어모으며 붉은 늑대에 홀로 맞서 싸우는 스칼. 그의 앞에는 얼어붙은 적랑이 존재한다. 연산을 통해 강화된 그의 능력은 마법사의 몸으로 네임드 몬스터와 일대일 전투를 펼칠 수 있는 특권을 선사해 줬다.
노력이 그를 강하게 해 줬다. 연산책을 푼 그의 능력이 지금의 그를 만들어 낸 것이다.
스칼은 비록 레벨이 13에 불과하더라도 상위 레벨보다 뛰어난 전투를 보여 준다. 그야말로 노력의 결과라고 할까?
“버닝!”
그는 캐스팅을 끝내고 결빙이 끝난 적랑에게 버닝을 선사했다.
이번에는 푸른 초원 위에 작은 불이 일어난다. 자칫하면 큰불로 번질 수도 있겠지만, 버닝 마법은 상대방의 내부부터 불태워 버리는 위력적인 마법이었기에 그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좋았…….”
―불 속성에 특화된 적랑이 당신의 속성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습니다.
“뭐라고?”
성공적으로 공격이 먹혀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그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는 실로 충격적.
그것은 바로 그의 버닝 마법이 적랑에게 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는 내용의 메시지였다.
그랬다. 스칼이 간과하고 있었던 사실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몬스터들마다 속성에 대한 항마력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적랑처럼 색깔을 소유하고 있는 몬스터 대부분은 그 색깔의 속성에 대한 강한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굉장히 강한 힘이라면 저항력이 무효화되겠지만, 스칼의 레벨은 13이고, 적랑의 레벨은 14. 현재 스칼의 지능 스텟이 아무리 높더라도 적랑의 불 저항력을 이겨 낼 수는 없었다.
“속성 반발력을 통해서 빨리 정리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프리즈 마법으로 얼린 다음에 버닝 마법을 사용하면 추가 데미지가 들어간다. 그것은 상반되는 속성이 만남에 따라서 각 속성이 반발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적랑은 버닝 마법을 저항했다. 그렇다면 그의 의도와는 달리 속성 반발력을 통한 빠른 사냥이 불가능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부우웅.
스칼이 당황한 상태로 서 있자, 버닝 마법에 저항한 적랑이 빠른 속도로 스칼을 공격한다. 그가 급하게 몸을 틀었지만 이번에는 요행을 바랄 수 없었다.
푸슉.
그의 살갗이 깊숙하게 베이며 출혈 상태에 빠졌다.
―당신은 현재 출혈 상태에 빠졌습니다. 10초당 20의 체력이 빠져나갑니다.
―적랑의 치명적인 공격에 체력이 220 줄어듭니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크리티컬 데미지가 뜨면서 출혈 상태에 빠져 버렸다. 적랑의 발톱이 생각보다 날카로웠던 탓이다.
그래도 목을 물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목이 물렸다면 즉사했었을 테니까.
“인탱글.”
상처가 쓰라려 오는 것을 참고 인탱글을 다시 시전했다. 싱크로율이 그리 높지 않은 덕분에 심각하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체력이다.
빨리 체력 포션을 복용해서 떨어진 체력과 출혈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적랑이 뿌리에 잡힌 동안에 스칼은 서둘러서 체력 포션을 꺼내 반은 마시고, 반은 상처 부위에 흘려 넣었다.
포션에는 체력을 채워 주는 기능과 상태이상을 해복시켜 주는 기능이 있었음으로 스칼의 출혈 부위는 서서히 아물어 갔다.
체력이 차오르는 것을 본 그는 한숨을 돌리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똥개 녀석에게 공격을 허용하다니? 파티 없이 싸우는 것은 무리인가?”
스칼은 선택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는지 잠시 후회를 한다. 그러나 곧 마력이 충분하게 남았음을 확인한 다음, 다시 일어선다.
“2라운드 시작이다!”
캬아아앙!
그가 호기롭게 외쳤고, 그의 외침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적랑이 다시 한 번 고무줄처럼 뛰어올랐다.
허공을 쏜살같이 가르는 붉은 몸뚱어리. 물어뜯기 위해 드러낸 이빨이 보이면서, 녀석의 얼굴 전체에는 살기가 흉흉하다.
그러나 그런 적랑에게 마법을 한 방 먹이는 스칼.
“슬로우.”
상대방의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슬로우에 걸리자 적랑의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스칼이 여유롭게 피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슬로우의 지속 시간은 3초. 그의 숙련도로는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하나 3초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피하고도 남는 시간이다. 슬로우에 걸린 적랑은 스칼이 사라진 허공을 가른다.
슬로우에 풀리고 나서 지상에 착지한 적랑. 그런 적랑에게 쏟아지는 것이 있었으니,
“매직 미사일! 매직 미사일!”
캐스팅 시간이 2초에 달하는 가장 간단한 공격 마법이자 아무런 속성이 없는 매직 미사일이었다.
원래의 캐스팅 시간은 5초였으나 스칼의 연산력과 연산 스킬이 더해지자 기관총 같은 속도를 발휘한다. 비록 프리즈보다 위력이 뒤떨어질지라도, 어마어마한 시전 속도는 적랑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적랑이 딱 그 꼴이었다. 하나하나로 따지면 미약한 매직 미사일이지만, 뭉치니까 강력한 마법으로 변모했다.
늑대를 정신없이 몰아치는 것에서 오는 쾌감을 잔뜩 느끼며, 스칼은 끊임없이 마법을 날려 댔다.
다른 누군가가 그의 전투 방식을 보고 비열하다고 할 수도 있으리라. 도망을 치면서 디버프 마법을 걸고, 공격을 한 다음 다시 도망치고.
그렇지만 이것은 스칼의 전투 방식이다. 연산으로 무장한 스칼만의 독특한 전투 방식이다. 마법사가 뒤에서 데미지 딜러만 할 수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마법사에 한정되어 있는 것.
누구라도 연산 노가다를 한다면 스칼처럼 전투를 펼칠 수 있다. 마력 포션이 뒷받침해 준다는 조건하에서지만.
“매직 미사일!”
이것이 마법사다. 스칼만의 마법사. 그가 생각해 왔던 마법사! 캐스팅 시간이 대폭 줄어든 마법을 통해서 상대방을 농락하는, 스칼이 꿈꾸어 왔던 마법사였다.
현재 그는 그 쾌감에 잔뜩 젖은 채로 적랑을 사냥하고 있었다.
초원 위에 구슬픈 늑대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7. 사냥, 사냥, 사냥(1)
“마법사를 구합니다! 프리즈 마법과 버닝 마법을 배우신 마법사 분이라면 대환영입니다!”
스칼은 끊임없는 사냥을 계속했고, 그 결과 게임 시간 하루만에 7레벨을 만들 수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성장 속도.
그는 지금 초보자 마을에서 나와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케로아 도시에 왔다. 이곳에는 레벨 20 정도 되는 유저들이 모여서 파티를 이루고 있다.
케로아 도시 주변에 있는 산에서 그들이 잡기 적당한 오크들이 출몰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 도시 주변에는 50레벨까지의 사냥터가 마련되어 있어서, 빠르게 성장하기에는 적격인 도시다.
페일 마을을 비롯한 주변의 마을에서도 케로아 도시로 향하니까.
“휴우. 확실히 스케일은 훨씬 크군?”
파티원을 모집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페일 마을과 비교도 할 수 없다는 것에 잠시 감탄한 스칼은 눈에 띄는 파티를 하나 골라잡아서 들어가려고 했다.
‘아, 메데이아 길드원인 걸 나타내라고 했지?’
길드 칭호를 뺏다가 낄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는 언리미티드 월드.
타이에스가 저번에 말했기를, 메데이아 길드원이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대우를 해 준다고 했다.
그것을 떠올린 그는 곧장 칭호를 장착한다.
“됐나?”
그러자 그의 머리 위에 ‘메데이아 길드’라는 단어와 함께 뱀이 감싸고 있는 지팡이 모양의 문장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것이 메데이아 길드의 길드 마크인 듯싶었다.
“허억!”
“메, 메데이아 길드원이야!”
놀랍게도 유저들의 반응이 즉각 나타났다. 스칼의 머리 위에 떠오른 메데이아 길드의 표식을 보자마자 입을 쩍 벌리는 그들.
그들의 반응에서는 메데이아 길드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 길드인지를 느낄 수 있었다.
“메데이아 길드는 레벨 100이 되어야 들어가는 길드가 아니었나? 그리고 레벨 100이라도 들어가기가 굉장히 까다로운데…… 저분 빨리 잡아야겠어!”
“내가 먼저 잡아야지!”
파티 사냥에서는 그 무엇보다 데미지 딜러의 역량이 중요하다. 데미지 딜러가 강하면 강할수록 사냥을 빨라지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모든 파티장들은 강한 데미지 딜러를 원한다.
그러던 와중에 마법사 최고 길드인 메데이아 길드의 사람이 나타났으니, 누구라도 탐을 낼 수밖에 없었다.
적극적인 파티장 몇몇이 스칼에게 다가왔다.
“저기, 메데이아 길드원이신가요?”
“제 위에 떠 있을 텐데요?”
“예. 혹시 파티를 구하시나요? 파티를 구하신다면 저희 파티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 파티로 오세요. 최고의 대우를 해 드리겠습니다. 탱커가 2명에 사냥터에서 좋은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파티 안에 큰 길드의 일원이 존재한다면, 사냥이 굉장히 편해진다. 그 사람이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서, 다른 파티와 분쟁이 일어났을 때, 메데이아 길드 같은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것이다.
메데이아 길드 같은 대규모 길드가 뒤에 서 있는데도 달려들 멍청이 따위는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파티장들이 스칼에게 달려드는 것이다.
“제 레벨은 20밖에 되지 않습니다만?”
스칼이 나지막하게 말하자, 그들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한다.
“레벨 20이시면 충분히 데미지 딜러 역할을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로써 그들이 스칼을 데려가려는 이유가 밝혀졌다. 그것은 바로 사냥터에서 텃세를 부리기 위함이다.
앞서서 말했던 그것 때문에 스칼을 데려가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면서 시선을 돌렸다. 비교적이면 작고 조용한 파티에 가입하고 싶다.
저렇게 큰 파티에 들어가 봤자 귀찮은 일만 많이 생길 테니 말이다.
‘응?’
그의 눈에는 한 소녀가 자신감 없는 눈초리로 자신을 보고 있는 광경이 들어왔다. 눈빛을 보아하니 초대하고 싶은 것 같은데, 큰 규모의 파티들의 장들이 스칼에게 계속 권유를 하니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그녀에게 흥미가 생긴 스칼, 곧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저기요?”
“예, 예!”
“파티원을 구하시는 중이셨나요? 혹시 폐가 되지 않는다면 당신의 파티에 가입해도 되겠습니까?”
갑작스럽게 가입을 신청해 오는 스칼의 말에 당황했는지, 소녀가 잠시 입을 벌리며 말을 더듬었다.
그런 소녀의 반응이 귀여웠던 것일까? 스칼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저희 파티에 들어와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죠!”
―‘레리아’ 님께서 당신을 파티에 초대하셨습니다.
“초대에 응합니다.”
“아아…….”
소녀의 나이는 대충 17살 정도 돼 보인다. 전체적으로 귀염성이 짙은 얼굴이라서, 누구든지 호감을 가질 만한 얼굴이다. 어쩌면 스칼은 이런 귀여운 얼굴에 이끌렸을지도.
“감사해요! 자, 이쪽으로 오세요. 저희 파티원들이 있으니까요.”
‘애는 애인가? 이렇게 갑자기 가입하면 왜 가입했는지 이유라도 물어봐야 할 텐데…… 끄응. 아직은 어려서 그런가 보군.’
때 묻지 않은 소녀라서 이끌린 것 같다.
규모가 큰 파티는 골치 아파질까 봐 들어가기를 기피했었지만, 소녀의 파티라면 나름 소박한 파티일 것 같으니, 그 점이 그를 이끌었던 것 같다.
등에 활을 메고 있는 소녀 궁수 레리아는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고 걸어갔다.
마법사를 섭외했다는 것이 기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