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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18화)
7. 사냥, 사냥, 사냥(2)


레리아가 스칼을 데리고 간 곳에는 총 4명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스칼이라고 합니다. 아직까지는 1서클 마법사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허! 레리아가 마법사를 섭외해 왔구나? 궁수나 섭외해 올 줄 알았는데, 마법사를 섭외해 왔네? 대단할걸. 아, 처음 뵙겠습니다. 전사 직업을 가지고 있는 카란이라고 합니다.”
그가 가입한 파티는 전사 2명, 궁수 1명, 도적 1명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파티였다. 그가 원했던 파티랄까?
체격이 듬직한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카란이라고 소개했다.
그 뒤로, 차례차례 자기소개를 시작하는 파티원들.
“저는 카인. 이 파티의 데미지 딜러를 맡고 있지요. 힘에 스텟을 많이 투자한 전사입니다.”
체질보단 힘에 주로 투자를 한 전사들은 궁수, 마법사와 더불어 데미지 딜러를 맡는다. 어쩌면 근접전에선 궁수보다 확실한 데미지 딜러.
카인이라는 남자는 아무래도 그런 성향의 전사 같았다.
“세라입니다. 도적이에요.”
그를 데리고 온 레리아는 궁수, 지금 자신을 소개한 저 여인의 직업은 도적이다. 이 세계의 도적은 그들만의 기술을 통해서 몬스터들을 각종 상태이상에 빠트리는 직업이다.
2차 전직을 하게 되면 어쌔신이라는 막강한 데미지 딜러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지만, 초반에는 독을 통한 공격밖에 할 수 없다.
마법사 다음으로 힘든 직업이라고 할까?
“그런데 여러분들은 서로 아시는 사이십니까?”
스칼이 궁금했던 점, 그것은 바로 파티원들이 굉장히 친밀하다는 것이다. 게임에서 잠깐 만난 사이라면 저렇게까지 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 가정은 하나다. 저들이 현실에서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같은 동네 사는 녀석들입니다. 제가 게임을 같이 시작하자고 했거든요.”
“운 좋게 가까운 지역에서 시작했네요.”
“저희도 레벨이 20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따로 떨어져서 성장했었습니다. 20레벨이 되고 초보자 마을에서 나올 수 있게 되자 모인 것이지요.”
스칼의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들은 현실에서도 친분을 나누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팀워크 걱정은 필요 없겠어.’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니 손발도 잘 맞을 터. 그렇다면 그만 호흡을 맞추면 된다.
지금까지는 솔로 사냥과 프레이하고만 사냥을 해 왔다. 다른 사람들이랑 단체로 사냥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온통 단체 사냥은 어떤 재미일까, 라는 생각뿐.
파티원들과 스칼 사이에는 그렇게 많은 대화가 흐르지는 않았다. 파티원들이 스칼에게 거리감을 느낀 것일까?
‘시간이 지나면 해결돼.’
사람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되는 법. 사냥을 같이하다 보면 친해질 기회는 찾아올 것이다. 그것을 생각한 그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파티원들 사이로 들어갔다.
당분간은 같이 사냥할 사람들이다. 어쩌면 50레벨까지 같이 사냥할지도.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두겠다고 다짐하는 스칼이었다.

* * *

“카란 형님! 타운트(Taunt:조롱)를 사용해 주세요!”
“알았어. 타운트!”
사냥은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파티에서 탱커 역할을 맡고 있는 카란이 생각 외의 실력자. 전투 센스도 좋아서, 파티원들에게 향하던 몬스터에게 적절히 타운트를 걸어 주었다.
타운트 스킬은 탱커형 전사들이 필수적으로 익히는 스킬로서, 몬스터의 공격 대상을 자신으로 바꿔 주는 스킬이다. 약 2골드에 달하는 스킬이기도 하다.
전사들의 필수 스킬이라서 그런지 2골드라는 약간 비싼 가격에도 자주 팔리는 스킬 중에 하나였다.
그렇지만 타운트를 익힌 전사들 중에서도 못 쓰는 전사와 잘 쓰는 전사가 있다.
그것의 기준점은 타이밍. 적절한 타이밍에 몬스터의 시선을 분산시킬 줄 아는 전사가 제대로 된 탱커 전사라고 할 수 있었다.
그 기준점으로 구분하자면, 카란은 제 몫을 다하는 탱커라고 할 수 있겠다.
카란이 도발을 함으로써 스칼로 향했던 오크의 공격 대상이 변경되었고, 그런 오크에게 퍼부어지는 프리즈.
째앵.
적중되자마자 결빙 효과가 터졌다.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프리즈의 결빙 효과는 숙련도가 높아질수록 확률이 높아진다고 한다.
독서 스킬과 고차원적인 이해 스킬을 통해서 숙련도가 타 마법사와 비교를 할 수 없었던 스칼이었기에 결빙이 자주 떴다.
결빙이 이루어지자마자 레리아의 화살이 날아왔다. 레리아의 레벨은 스칼과 같은 20. 그렇지만 타 궁수에 비해서 비교적 민첩에 많이 투자했기에 공격력이 상당히 높았다.
레리아의 화살은 여지없이 오크의 살을 꿰뚫었고, 그 뒤를 이어 카인의 검과 세라의 단검이 각각 오크의 양쪽 다리를 베었다.
카인의 검은 오크의 근육을 절단시켰고, 마비독이 발라져 있던 세라의 단검은 다리를 마비시켰다.
결빙 상태에 이어 행동 불가 상태에 빠져 버린 오크에게 남은 것은 공격뿐.
“버닝.”
스칼은 프리즈의 효과가 끝나기 전에 버닝을 사용한다. 속성 반발력에 의한 추가 데미지가 오크의 체력을 반이나 깎아 버렸고, 그 뒤를 이어 계속 날아오는 레리아의 화살과 카인의 검이 결국 오크의 체력을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벌써 레벨이 27이네…….’
파티 사냥을 시작한 지 어느새 3일이 돼 가고 있다.
현실에서 친분을 나누고 있는 이들의 접속 시간을 매일 같아서, 스칼만 시간을 잘 맞춰 들어오면 계속해서 같이 파티 사냥을 할 수 있었다.
그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든 스칼. 한 번 호흡을 맞춘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냥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냥과는 사뭇 다르다.
이 파티는 호흡도 척척 맞는다.
세라가 몬스터를 몰아오면, 레리아가 선공을 날리고, 스칼이 프리즈를 걸어서 2차 데미지를 입힌다.
그 과정에서 결빙 효과가 뜨면 카인과 세라가 나서서 위에 나온 것처럼 행동 불가 상태에 빠트린다.
물론 결빙이 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해서 결빙이 떴든 안 떴든 카란의 타운트가 사용된다.
짜임새가 갖춰진 사냥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일까? 사냥 속도가 타 파티에 비해서 월등히 빨랐다.
“계속 생각하는 거지만 스칼 오빠 캐스팅 시간 너무 빨라요.”
오크를 사냥하고 한숨을 돌린 레리아가 말한다.
그녀가 보기에 스칼의 캐스팅 시간은 비이상적이리라. 지금까지 그녀가 보아 왔던 초보 마법사들은 저런 속도를 보여 주지 못했다.
굼벵이 같은 속도로 시전해서 한 방 먹일 뿐, 지금의 스칼처럼 순식간에 캐스팅할 수는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그녀의 질문에 그저 웃어 주는 스칼이었다.
“역시 메데이아 길드원이라서 그런가? 특별해요. 헤헤. 앞으로 자주 사냥하도록 해요, 오빠.”
‘오빠라…….’
사냥을 같이한 지 딱 5시간 후부터 오빠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한 레리아의 붙임성은 실로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귀여운 소녀가 오빠라고 불러 주는 것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스칼은 되도록 성실하게 그녀의 질문에 답해 주고 있었다.
“나야 좋지. 카란 형님 같은 센스 있는 탱커와, 카인과 세라의 환상적인 콤비가 있는 파티라면 대환영이야.”
“에? 저는요. 활 잘 쏘잖아요!”
“으음…… 그건 어폐가 안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일단은 그렇다고 쳐 두지.”
스칼이 수학자로서 살아오면서 사람을 만나는 일은 적었다. 기껏 만나 봐야 수학 연구회 동료들이나 만났을까?
현실에서 외로움을 느꼈었던 그였기에 가상현실에서 그 외로움을 해결하려 활발히 다른 유저들과 대화를 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 레리아라는 소녀 궁수는 말벗이 되기에는 아주 좋았다. 생각하는 것이 순수하고 쾌활해서 주위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칼과 레리아의 대화를 들은 카란이 한마디를 던졌다.
“거 참, 레리아가 스칼의 관심을 받으려고 발악을 하는구나, 아주.”
“으윽! 큰 오빠!”
“알았어. 스칼이랑 계속 놀아라. 세라가 오크 한 마리를 몰아오기 전까지만 말이야.”
어느새 세라는 자리에 없었다. 그녀의 역할인 몬스터 어깅(속칭:몹 몰이)을 위해서 오크 군락으로 간 모양이었다.
이때는 나머지 파티원들의 작은 휴식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마력을 보충하고, 체력을 회복시키는 시간.
아직까지 스칼은 마력을 회복시켜 주는 스킬인 ‘명상’을 습득하지 못했다. 명상은 마법사가 레벨 50을 찍으면 자동적으로 생성되는 스킬인데, 아직까지는 레벨이 27인 그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입맛을 쩝 다신 그는 레리아와 잡담을 나누기 시작한다.
“카인 녀석은 매 휴식 시간마다 왜 저러고 있냐?”
“으음?”
스칼이 손가락을 가리킨 곳에는 카인이 윗몸일으키기를 하고 있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가상현실에서 저렇게 운동을 한다고 해서 근육이 길러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 광경에 레리아는 활짝 웃으며 답해줬다.
“카인 오빠는 태권도 사범님이에요. 이곳의 몸이 마음에 안 든다고 운동하는 것 같은데, 효과가 있긴 있던데요? 복근이 없었던 배에 복근이 생기고, 몸 전체가 탄탄해졌어요.”
“그랬던 건가.”
사실 그는 여기서 운동을 해 봤자 근육이 길러질 것이라곤 생각 못했다.
스텟을 높여야 근육이 길러질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실제로 저렇게 운동을 해 봤자 효과가 없을 줄 알았다.
“싱크로율이 높은 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마련한 시스템인가 보군…….”
“아! 그리고 공격력도 높아졌나 봐요.”
“그럴 수도 있겠네. 언리미티드 월드니까.”
현실의 모든 것을 구현하고자 노력했던 게임이었기에 그럴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
아무래도 그의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았다.
“그러면 저렇게 열심히 할 만하네. 저렇게 꾸준히 운동을 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공격력이 상당히 상승할 테니까.”
“그래서 카인 오빠가 운동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이 세계는 말 그대로 무한의 세계였다. 안 되는 것이 없는 세계! 그 사람만의 행동이 캐릭터를 결정해 주는 세계다.
스칼이 문제를 줄줄이 풀어서 강력한 마법사가 되어 가는 것처럼 카인 또한 운동을 열심히 해서 강력한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 세계의 고수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캐릭터를 육성하고 있다. 그들만의 개성이 진득하게 묻어날 수 있도록.
남들과 똑같이 캐릭터를 키워 봤자 한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부수는 것은 오로지 개개인마다 가지고 있는 특출 난 재능들이다.
그것을 깨달아야만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었고, 스칼은 그 깨달음을 한참 전에 얻었다. 남은 건 그 깨달음을 계속 갈고닦는 것뿐이었다.
스칼은 세라가 오기 전까지 레리아와 대화를 나누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평소 같으면 5분 만에 몬스터를 어깅해 왔을 세라가 감감무소식이다.
“카란 형님,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아, 저기 오는군. 그런데 몬스터가 아니라 유저들을 몰고 왔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세라 얘기를 꺼내자마자 세라가 보였다. 그런데 그녀가 데리고 오는 것은 오크가 아니라 유저, 그것도 12명이나 되는 유저들이었다.
그녀가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가만히 서서 따라오는 유저들을 바라보는 스칼. 느낌상 저자들의 목적은 하나밖에 없는 듯하다.
“자리싸움이겠군.”
사냥터에서 일어나는 유저들 간의 충돌 중에서 가장 빈번히 일어나는 것이 자리싸움이다. 대부분 먼저 자리를 잡은 파티가 이기는데, 저렇게 떼거지로 몰려오면 스칼의 파티 같은 소규모 파티들이 물러설 수밖에 없다.
“야! 여기 우리가 자리 잡을 거니까 비켜라.”
역시 그의 예상대로 파티장으로 보이는 한 유저가 다짜고짜 반말을 날리면서 꺼지라고 말한다.
아무래도 5명뿐인 스칼의 파티가 만만해 보인 모양이다.
스칼은 피식 웃으면서 자리를 뺏으려는 상대편 파티장에게 답했다.
“우리가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뭐라고? 허! 고작 5명밖에 안 되는 주제에 우리한테 덤빈다는 거지? 사냥터에서 사냥하고 싶으면 자리를 지킬 만한 인원으로 하던가. 사냥터에서 그딴 말이나 지껄이고 있으니. 킥. 힘도 쥐뿔도 없는 녀석들이 지랄을 해요.”
전형적인 막가파 파티장을 보여 주는 상대편. 그런 그의 반응에 스칼은 점점 더 비웃음의 수위를 높이면서 대화를 이어 갔다.
“으음. 그런가요?”
“근데 왜 아까부터 실실 쪼개면서 지껄이냐?”
스칼의 비웃음이 눈에 걸렸는지, 저쪽에서 먼저 거칠게 나온다.
“웃는 것도 제멋대로 하지 못하는 세상이라…… 운치가 죽어 버린 세상이로군요.”
“아니, 이 새끼가!”
상대방을 도발하는 스칼의 행동을 레리아를 비롯한 나머지 파티원들은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들로서는 다른 자리를 잡아도 된다. 파티의 규모가 소규모기 때문에 금방 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 없는 충돌은 피하는 것이 상책인데, 스칼이 당당히 맞서고 있는 것이 불안했다.
저러다가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큰일이었다.
그러나 스칼은 그런 그들의 마음을 무시한 채 여유롭게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저는 당신들 같은 무뢰배 족속들을 싫어합니다.”
“너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한 거냐? 고작 5명 가지고 우리랑 싸워 보겠다고? 이거 진짜 미친놈이네.”
아직 저자들은 모른다. 스칼이 어떤 길드에 소속되어 있는지. 처음 파티를 구했을 때를 제외하고 길드 마크를 꺼낸 상태가 아닌 스칼이었기에 아무도 그가 메데이아 길드원이란 사실을 모를 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 그들이 시비를 걸고 있는 대상이 메데이아 길드원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내심 반응을 기대한 스칼은 길드 마크를 머리 위에 띄었다.
“뭘 믿고 이렇게 설치는지. 5명 가지고 도대체 뭘…… 허억!”
“정말 교양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무뢰배 녀석들이야.”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고, 반말을 사용함으로써 불쾌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스칼! 그의 머리 위에는 메데이아 길드의 문장이 떠올라 있었다.
그 문장을 본 무뢰배들은 잠시 동안 입을 벌린 채로 충격에 빠졌다.
설마, 자신들이 건드린 자가 메데이아 길드의 사람이었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