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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19화)
7. 사냥, 사냥, 사냥(3)


경악과 공포에 빠진 그들의 얼굴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스칼은 그들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숫자만 믿고 설치는 초보자들만큼이나 어리석은 사람들은 없을 거야. 그렇지?”
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어 버렸다.
메데이아 길드라는 이름 하나로, 수적 열세가 단번에 극복되고 저들이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메데이아 길드의 분쟁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길드의 사람이 나쁜 일을 당한다는 소식이 들어오는 즉시, 텔레포트를 사용해서 문제 발생 지역으로 이동해 온다.
그리고 길드의 사람에게 해를 끼친 자들에게 합당한 벌을 내린다.
마탑과 제휴가 되어 있는 메데이아 길드여서 언제라도 텔레포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고, 덕분에 길드의 간부들은 길드원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면 언제나 찾아온다.
간부가 찾아온 다음에 일어나는 상황은 말을 안 해도 알 것이다.
메데이아 길드를 건드린 대가는 지독한 파멸이다. 만약 상대방이 길드원을 공격했다면 정당방위가 성립이 된다.
같은 길드원들에게는 정당방위 공유가 가능해서, 길드원을 공격한 사람을 확실하게 죽여 버린다.
그것이 유저들 사이에서 널리 퍼진 메데이아 길드 식 문제 해결 방법이다.
“어디 한 번 방금 전처럼 시비를 걸어 보시지? 아, 혹시 제가 메데이아 길드원이라서 무서운 거냐?”
“으…… 으. 네가 메데이아 길드원이란 걸 어떻게 믿어!”
그들은 믿기 싫은 모양이다. 하긴, 이렇게 짧은 순간에 상황이 뒤바뀌니 혼란스럽고 무서울 만도 했다.
“이거 정말 이해력이 부족한 녀석들이네. 이 길드 마크를 보고서도 몰라? 너 게임 초보야? 아니, 게임 초보라도 메데이아 길드라는 단어가 내 머리 위에 떠올라 있는데?”
“으으…….”
지금 무뢰배는 생각한다. 앞으로는 이런 소규모 파티에 무턱 대고 시비를 걸지 않겠다고.
한번 생각해 보았더라면 이런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 그렇지만 언제나 후회는 늦는 법이다. 게다가 이런 족속들일수록 쓸데없는 자존심이란 것이 있어서, 조롱을 당하면 당할수록 막무가내로 달려들 가능성이 높다.
“한 대 쳐 봐. 남자도 아닌 녀석들의 주먹이 얼마나 아프겠냐?”
“길드 믿고 설치지 마!”
“머릿수 믿고 설치는 누구보다 나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스칼의 비꼼은 계속되었다.
“후우. 나도 사냥을 하고 싶은데 너희들 때문에 시간 다 뺏기잖아. 그러니까 좋은 말할 때 꺼져 줄래?”
심심하던 차에 찾아온 무뢰배 녀석들에게 굴욕감을 선사해 주는 것은 꽤나 쏠쏠한 재미가 있다고 생각한 스칼이었다.
메데이아 길드를 등에 업은 그에게 아무런 대항도 할 수 없는 무뢰배들.
원래 그들 같은 자들일수록 힘에 굴복하기 쉽다. 자신들보다 더 큰 힘을 만나면 꼬리를 내리고 벌벌 긴다.
힘이 그들의 법이자 규칙이었기 때문에.
“자존심도 없는 녀석들. 쯔쯔. 나 같았으면 한 대 쳤을 거야.”
“쿡.”
스칼이 무뢰배들을 압박하는 모습이 웃겼던지, 레리아를 위시한 나머지 파티원들이 웃는다. 아까 그들에게 시비를 걸 때만 해도 당당했던 그들이 메데이아 길드원인 스칼의 앞에서 벌벌 기고 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상황이 바뀌었으니 웃길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메데이아 길드의 힘인가? 앞으로 편하긴 하겠군.’
대표적인 불량 유저들이 어쩌지 못할 정도의 길드에 가입했다면, 게임이 쉬워지긴 한다. 어디를 가나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처럼 분쟁이 생겼을 경우 수월하게 해결할 수도 있다.
―‘타이에스’ 님으로부터 귓속말이 날아옵니다.
[이야. 벌써부터 분쟁이냐?]
무뢰배들을 앞에 둔 채로 날아오는 귓속말. 그 귓속말의 주인은 바로 타이에스였다.
갑작스럽게 날아온 귓속말이 놀라웠던 그에게 타이에스가 의문점에 대한 답을 해 준다.
[길드 시스템이 분쟁이라고 판단하면 길드장에게 보고가 돼. 난 그 보고를 받아서 네 상황을 보는 것이고.]
[그런 거냐?]
길드장이 길드원 관리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사실, 타이에스는 간만에 일어난 길드원의 분쟁에 신기해서 확인해 본 것이었는데 우연히 그 분쟁이 스칼의 분쟁이었던 것.
[자! 이 몸께서 친히 가 주시겠어. 어차피 사냥 시간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 말과 함께 스칼의 옆에 빛이 생겨난다. 눈이 아려올 정도로 빛나는 그 빛은 곧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내었다.
“저건 텔레포트?”
레리아가 넋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고, 곧 빛이 완전한 사람의 형상을 띤다.
―길드장 ‘타이에스’ 님께서 길드원 ‘스칼’ 님의 분쟁에 관여합니다.
간단한 정보 알림과 함께 나타난 그 사람의 얼굴은 스칼이 알고 있는 현성. 즉, 타이에스의 얼굴과 완전히 일치했다. 다만 다른 점이라면 눈동자가 파란색이고, 머리가 붉은색인 점이랄까? 그 두 가지의 변화가 분위기를 달라 보이게 만든다.
현실의 그는 차분하고 소박한 분위기지만 이곳의 그는 활동적이고 화려하다랄까.
“사람이 참 달라 보이는군. 후우. 방금 전의 것은 마법이었나?”
아무래도 방금 전 사용된 것은 텔레포트 마법이었던 것 같다.
요란하게 등장한 타이에스는 스칼에게 인사를 건넸다.
“벌써 레벨이 27이네? 대단해. 게임에서는 처음 만나는 거네. 후후. 앞으로 넌 우리 길드의 주축이 될 거야.”
“시끄러워. 가입시킬 때 그런 말 안 했잖아? 그런데 여기 왜 온 거냐?”
“응? 말했잖아. 길드원 분쟁 관여하려고. 우리 길드는 분쟁에 관해선 관대하지 않거든. 무슨 일이 있어도 작살을 내지.”
타이에스는 웃으면서 스칼의 앞에 서 있던 남자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
그의 지팡이는 마력 전달이 쉽게 이루어지는 미스릴로 만들어져 있었고, 그 중심에는 마력을 극대화시켜 주는 갖가지 보석들이 박혀져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메데이아 길드의 길드장, 타이에스라고 합니다.”
“메, 메데이아 길드장?”
“우와! 대단하다! 스칼 오빠의 인맥이 메데이아 길드장이었어? 어쩐지. 레벨 100도 아닌데, 메데이아 길드에 가입했더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이 2가지로 엇갈린다. 하나는 공포, 하나는 놀라움.
전자는 이루 말할 것 없이 무뢰배들이었고, 후자는 스칼의 파티원들이었다. 타이에스는 그런 그들의 반응을 즐기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판단을 내리기에는 그쪽 분들께서 먼저 저희 길드원이 사냥하는 자리를 뺏으시려고 하셨더군요?”
그의 말에 무뢰배들이 답한다.
“사, 사냥터에는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군요. 예, 당신들의 말이 맞습니다. 정해진 자리란 것은 없지요. 좋습니다. 그 문제는 잠시 접어 두도록 하지요.”
타이에스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쏟아 내는 무뢰배들. 위기를 넘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쉽게 놓아줄 타이에스가 아니다. 스칼의 친구답게, 수학자답게. 근성 하나는 대한민국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 그는 친구에게 검을 들이밀었던 자들에게 관용을 베풀 정도로 아량이 넓지는 않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아까 전에 저희 길드원 분에게 ‘새끼’라는 단어를 사용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분은 저희 길드가 직접 뽑은 유저시기에, 이분을 욕한다는 것은 곧 저희 메데이아 길드를 모욕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요.”
“…….”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그들의 표정이 새까맣게 죽어 버렸다. 지금 타이에스가 내뱉은 말은 굉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길드를 모욕했다는 것. 그것은 곧 길드를 모욕한 자들에게 합당한 응징을 내리겠다는 말이다.
“저희가 언제 메데이아 길드를 모욕했습니까!”
목숨의 위협을 느꼈는지 그들을 대표하는 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기 위한 발악일지도 모르는 외침을 들은 타이에스가 스칼의 파티원들에게 묻는다.
“여러분들에게 물어볼 것이 있습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저들이 저희 메데이아 길드원 분께 ‘새끼’라는 비속어를 사용하는 것을 들으셨습니까?”
눈치가 빠른 레리아는 타이에스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는 지금 파티원들에게 증인을 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한창 즐겁게 보고 있었던 레리아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들은 스칼 오빠에게 욕을 했었습니다.”
“메데이아 길드를 모욕했다는 것이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렇게 짜고 치는 연극을 통해 원하는 대답을 얻은 타이에스. 그는 지팡이에 마력을 집중시키며 말했다.
“메데이아 길드장인 저는 길드원을 모욕하고, 길드를 모욕한 당신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겠습니다.”
“야! 일 크게 벌이지…….”
―메데이아 길드와 ‘강한 남자들’ 파티 사이에 ‘명예 모독’을 이유로 한 전쟁이 선포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서로를 죽여도 카오틱 포인트가 증가하지 않습니다.
“자! 스칼, 같이 죽여 보자.”
“너란 녀석 참, 길드장의 권리를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거야? 사람들이 뭐라고 할 것 같은데.”
“뭐라고 하든 상관없지. 여기선 힘만 있으면 끝이라니까.”
간단하게 대화를 나눈 그 둘은 앞에 서 있던 ‘적’을 향해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끝마쳤다.
그리고 5초 후.
그들은 멍하니 서 있던 적들에게 마법을 사용했다.
“프리즈.”
“메테오 스트라이크.”
그것이 스칼에게 대들었던 무뢰배들의 최후였다.

* * *

“항상 이런 식이냐?”
“이렇게라도 해야 다른 유저들이 메데이아 길드를 깔보지 않지. 확실한 것이 좋은 거야.”
무뢰배들과의 전투가 끝나고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냉기 마법으로 열려서 죽였으니 얼음 조각들이 남아 있을 법했지만, 그것들은 이미 다 녹아 버려 식물들의 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죽일 필요까지는 없었을 것 같아. 이렇게 해 봤자 늘어나는 것은 길드에 대한 악명뿐이야. 길드원을 욕했다고 앞뒤 따지지 않고 죽이는 길드라는 악명.”
“아, 그런 거냐?”
“도대체 뭐가 ‘그런 거냐’야! 생각 좀 하고 살자! 메데이아 길드 같은 메이저 길드가 고작 무뢰배들 죽였다는 것으로 욕을 들어야겠어? 앞으로는 이렇게 과격한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마.”
확실히 죽이는 것은 과한 처벌이었다.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사망을 하게 되면 현실 시간으로 12시간 동안 접속이 불가능하고, 레벨 1이 다운된다. 게다가 인벤토리 안에 소지하고 있던 아이템들 중에서 3개의 아이템이 드랍된다.
죽음의 페널티가 상당하다고 할까?
어쨌든 다 죽인 다음에야 후회를 하는 스칼의 모습은 굉장히 이상했다. 죽여 놓고 후회를 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이 어디 있을까?
“메데이아 길드는 언리미티드 월드 마법사들의 자존심이야. 그리고 그 길드원에게 욕한다는 것은 마법사 전체를 욕하는 것이나 다름없어!”
타이에스가 강력하게 외치자, 스칼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확대해석 하지 마. 누가 보면 아까 그 사람들이 마법사들의 원수라도 되는 줄 알겠어. 고작 자리싸움한 것 가지고. 젠장. 방금 전에 너 따라서 프리즈 마법을 사용하지 말았어야 했어. 말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인데, 앞으론 대화로 해결 가능한 일이면 가능한 한 대화로 해결하는 쪽으로 해라. 길드장이 되어 가지고 피케이에 맛 들린 살인자가 됐어. 쯔쯔.”
그의 말대로 현재 메데이아 길드의 일 처리 방식은 단순무식한데다 야만적이기까지 하다. 협상 결렬과 동시에 살수를 날리는 그들의 방식이란, 공포 그 자체.
이런 식으로 1년이 지난다면 살인자 길드 되는 것도 순식간이리라.
적어도 살인자 길드원이라고 불리긴 싫었던 스칼은 진심으로 타이에스에게 조언했지만, 타이에스는 건성건성 대답을 할 뿐.
타이에스가 곧 하나도 잘못하지 않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크흠. 어쨌든 길드장 친구가 누구한테 욕 들으면서 게임 하는 건 두고 보지 못한단 말이지.”
“그거 아냐? 과한 간섭은 친구의 성장을 방해한다는 것. 내가 생각해 보니까 길드의 힘만 믿고 설치다간 성장하지 못할 것 같아. 현질에 의존하는 것이랑 다름없는 것이지.”
스칼의 말이 맞다. 현질에 의존하는 것이나 길드에 의존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 둘 다 다른 힘에 기대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 내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강함은 스스로가 일구어 내는 것.
“앞으로는 메데이아 길드인 것을 되도록 숨겨야겠어.”
“네 마음대로 해라. 나 참…… 길드의 힘을 싫어하는 녀석은 처음이네. 아아, 이것 하나만 일러 줘야지.”
타이에스는 무안했는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현실이나 이곳이나 기어오르는 녀석들은 확실하게 밟아 줘야 해. 오히려 이런 게임 속일수록 복수하겠다고 달려드는 녀석들이 많아. 방금 전 그 쓰레기들도 네가 메데이아 길드원이 아니었으면 복수하겠다고 설쳤을 거야.”
그의 말이 맞기는 하다.
무식한 족속들은 그 무식의 깊이만큼의 자존심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자존심을 건드렸을 경우 더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때문에 타이에스는 상대를 죽임에 있어서 자비를 두지 않았다.
더블 캐스팅이라는 고위급 스킬을 사용하면서 마법을 발현시켰고, 아주 묵사발을 내버린 것이다.
그런 방법이 독이 될 때도 있지만, 힘에 굴복하는 이들에게는 확실한 처리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그나저나 더블 캐스팅은 어떻게 배운 거냐?”
“이거 연산력 스텟이 300에 다다르면 주어지더라고. 젠장. 연산력 300을 만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렇다는 말은 네가 직접 연산력 300을 찍었다는 소리네?”
“그렇지. 더블 캐스팅은 마법사의 로망이니까, 마법사와 가장 관련이 깊은 연산력 스텟을 300까지 올리면 스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힘 스텟을 500까지 올리면 ‘전사의 함성’이라는 전사 특수 스킬을 얻고, 민첩 스텟을 500까지 올리면 ‘신속’이라는 특수 스킬을 얻는다.
그것은 보너스 스텟도 다를 바가 없을 터. 그것을 노린 타이에스는 연산력 스텟을 500까지 올리려고 했었던 것이다. 물론 중간 과정에서 ‘더블 캐스팅’이 생성되어서 그만두었지만은.
다른 스텟에 비해 올리기가 굉장히 힘든 연산력이었기에 제작진 측에서 배려를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