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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20화)
7. 사냥, 사냥, 사냥(4)


“지능이 이동 캐스팅이었지?”
“그래. 지능 500 찍으면 이동 캐스팅이야. 물론 500 찍으려면 레벨이 높아야겠지? 올 지능 마법사라면 금방 이동 캐스팅을 찍을 순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올 지능 마법사는 미친 짓이지.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강해지긴 하는데, 몬스터의 공격에 간접적으로 노출되기만 해도 죽어 버린다니까?”
사람들이 올 지능 마법사를 많이 선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타이에스 덕분에 더블 캐스팅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아까 싸우는 것을 보니 더블 캐스팅을 통해 발현된 마법은 굉장한 위력을 보여 줬다.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타이에스 정도의 강력한 마법사가 될 수 있으리라.
“자, 나는 이만 가 봐야겠어. 분쟁도 끝났으니 길드 업무 처리하러 가야지.”
“굳이 오지 않았어도 됐다만…… 해결해 줬으니 고마워.”
“길드원의 일이니 당연한 거야. 자, 수고해라.”
그렇게 타이에스는 사라졌다. 말 그대로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사라진 것.
타이에스가 떠나자마자 뒤에서 기다리고 있던 파티원들이 스칼에게 달려들었다. 가장 먼저 물어본 사람은 레리아.
그녀는 눈을 빛내며 스칼에게 물었다.
“오빠! 방금 전 그 사람, 메데이아 길드장이에요?”
“그래. 그 녀석이 메데이아 길드장이지.”
“정말요? 와! 대단해요. 오빠! 그러면 인맥이 메데이아 길드장인 거죠? 부러워요.”
나머지 파티원들의 눈들도 부러운 듯한 눈들이다. 하긴, 메데이아 길드장 같은 굉장한 사람의 친구라면 게임이 편하고 쉬울 것이다. 힘든 일이 있으면 친구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으니까.
그런 그들의 생각을 눈치챘는지, 스칼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런 정신으로는 제대로 성장하지도 못하지…….”
타인 의존적인 정신 상태로 강해질 수 있느냐? 답은 ‘없다’였다. 스칼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앞으론 길드 신세를 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파티원들은 한동안 스칼의 인맥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메데이아 길드장의 친구란 것은 굉장한 것이라서, 파티원들에게는 흥미로운 대화 주제가 되었다.
스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한참 대화에 열중하고 있던 레리아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았다.
파티의 정보통은 예상 밖으로 레리아. 인터넷상의 언리미티드 월드에 대한 정보에 대해 해박하게 알고 있는 그녀였기에 대부분의 파티 계획은 그녀가 내린다.
“레리아, 메데이아 길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 있어?”
“어떤 걸요?”
“그냥. 길드가 어떤 길든지, 얼마나 유명한지에 대해서.”
그의 말에 레리아는 꽤 놀랍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런 건 길드원인 오빠가 더 잘 알지 않아요? 뭐, 물어보시면 답을 해 드려야죠.”
아버지에 정보에는 유저의 길드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지 않았다. 개발자의 정보 일지에 개발 후에 만들어진 길드에 대한 정보가 있을 리가 없을 테니까.
스칼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정보보다는 아버지의 정보를 더 많이 습득했기에 메데이아 길드에 대한 간단한 소문만 들었지 자세한 정보는 몰랐다. 그 때문에 레리아에게 묻는 것이다.
“메데이아 길드는 사신이라고 불려요. 길드원을 건드리면 반드시 보복을 하는 길드지요. 지금까지 길드의 간부에 의해서 죽은 유저들만 해도 굉장한 숫자일 걸요?”
“내가 그럴 줄 알았다.”
역시, 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매사에 이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니 악명이 안 생기려야 안 생길 수가 없다. 협상 결렬 후 곧바로 마법이 날아가니, 사신이라는 별칭이 생길 수밖에.
“그렇지만 길드의 힘이 강해서 아무도 막을 수가 없어요. 그것 때문에 유저들이 메데이아 길드원들을 두려워하면서도, 파티에 끼려는 것이죠.”
야만적인 길드 운영 방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니, 이런 식으로 길드를 운영했다가는 어마어마한 원한 관계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메데이아 길드에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연합해서 공격을 해 온다면?
그것이야말로 길드 붕괴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역시 메데이아 길드의 힘이 강하긴 한가 보네.”
“당연하죠. 대륙 전체에 퍼져 있는 마탑과 제휴를 맺은 길드인데, 힘이 약할 리가 없어요. 마탑과의 제휴 하나만으로도 대륙 최고의 길드로 불릴 수 있으니…… 스칼 오빠는 그런 길드의 길드장이 친구라서 좋겠네요.”
‘마냥 좋지만은 않아. 녀석이 현실과는 달리 막무가내로 나가네. 아무리 대리 만족이 목적이 되는 세상이라지만, 이렇게 대책 없이 하다가는 큰일이 날지도 모르지.’
현실의 타이에스는 철저하고 계획적인 사람이다. 대개 수학자들이 그렇듯이 학구열이 강하지만 꽤 과묵한,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이곳의 그는 180도 달라진다.
길드의 일을 화끈하고 단순 무식한 방법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면 현실의 그를 떠올릴 수 없게 만든다.
‘언리미티드 월드가 대단하긴 하네? 그런 녀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을 보면.’
다시 한 번 게임에 대해서 감탄했다. 또 다른 현실을 구현해 냄으로써 현실에서 즐기지 못했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 주는 이곳.
‘아버지의 부탁대로, 반드시 지켜야겠어.’
그 또한 게임을 즐기고 있는 유저 중 한 명이었기에 아버지의 유언을 잊지 않았다.
“자! 이제 사냥을 시작합시다.”
위협이 무엇인지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선 당연히 힘이 필요할 터. 뚜렷한 목표를 되새김한 그는 사냥을 시작했다.
현재 스칼은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중이었다.



8. 첫 던전 탐색(1)


“이게 지도라구요?”
“그래. 이름이…… 으음. 발정 난 고블린들의 던전이로군. 굉장히 흥미가 동하는 이름이지 않냐?”
“카란 형님.”
“커험. 어쨌든 이 던전 지도는 우리가 지난번에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보상으로 얻은 던전 지도야. 적정 레벨이 35부터 45 사이지. 아마 여기서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을 거야.”
파티 사냥한 지 어느덧 2주째. 현재 스칼의 레벨은 27에서 35까지 엄청난 성장 속도를 보였다. 파티원들과의 호흡은 어느덧 최고조를 달리고 있다.
2주라는 시간 동안 파티원들과 많이 친해졌기에 이제는 한 몸과 같이 싸울 수 있게 되었다.
“던전을 탐험하려면 뭐가 필요하죠?”
“원래는 파인더(Finder:탐색자)를 대동해서 가야 하지만, 저레벨 던전에는 트랩 같은 것들이 설치되어 있지는 않을 거야. 그냥 몸만 들어가면 돼.”
지금 파티는 던전에 대한 회의를 진행 중이다. 이전에 카란이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던전의 지도를 습득했다고 하던데, 그 던전의 적정 레벨이 바로 35이다. 그래서 파티에서 가장 레벨이 낮은 스칼과 레리아가 35를 찍었기에 던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회의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리미티드 월드의 던전은 초기 발견자에게 2배의 경험치와 2배의 드랍률을 추가해 준다. 때문에 던전만 잘 만나면 급성장도 노려볼 수 있다.
다만 이름이 좀 걸릴 뿐이다.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
이름만으로도 굉장히 위험한 뉘앙스를 풍기지 않는가? 그냥 고블린도 아니라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이었다.
‘뭐, 이런 던전이 다 있어? 설마 발정 난 고블린들을 격리 수용하기 위해서 만들어 둔 시설인가?’
스칼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생각한다. 네이밍 센스 참 구리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 정도로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은 치 떨리는 이름이었다.
그렇지만 던전에서의 성장 속도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므로 이름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던전 사냥이 좋으리라.
그렇게 파티원들 전부가 만장일치함으로써 그들의 발걸음은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으로 향했다.

* * *

“꺅! 더러워! 죽어!”
“이런 미친 고블린들!”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 입장 30분. 파티원들은 ‘지옥’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느끼고 있었다. 지옥, 아마 지옥은 이곳과 같은 곳이 아닐까?
눈이 시뻘게진 고블린들이 파티의 여성 유저들을 향해 침을 강처럼 흘려 대면서 달려온다.
“이 자식들아! 나조차도 너희들처럼 여자를 적나라하게 밝히지는 않는다!”
카란이 분노에 휩싸인 채로 투 핸디드 소드를 휘둘렀다. 감히 자신의 여동생인 레리아에게 흑심을 품다니? 고작 고블린 따위가!
스칼 또한 눈살을 찌푸린 채로 고블린들에게 마법을 난사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불결한 녀석들이야.”
던전의 몬스터. 즉, 발정 난 고블린들은 말 그대로 발정 난 고블린이었다. 파티의 여성 유저들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스칼은 마법을 날리면서 소리쳤다.
“아니, 어떤 미친 사람이 이딴 던전 만들었어?”
“동감이다.”
“나도, 오빠!”
“징그러워!”
스칼의 외침에 줄줄이 답하는 파티원들. 카인만은 대답하지 않고 싸늘하게 고블린들을 베고 있었을 뿐이다. 왜냐? 자신이 좋아하는 세라에게 찝쩍대는 녀석들에게 줄 자비 따위란 없었으니까.
최근에 안 사실이지만, 카인이 세라를 짝사랑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그 정보는 가장 믿음직한 정보통인 레리아로부터 들은 것이다.
레리아의 정보라면 신뢰할 만한 하니까, 카인의 저런 태도도 이해가 간다.
부우웅.
명백한 살의를 담고 날아가는 그의 장검은 보는 사람도 떨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발정이 난 오크에게는 그리 먹혀들지 않는다.
고블린들이 원하는 건 검이 아니라 레리아와 세라였으니까.
“타운트!”
카란이 급하게 타운트를 사용한다. 일단 레리아와 세라를 향해 달려가는 고블린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타운트를 사용한 카란의 눈앞에 나타나는 메시지가 있었으니.
―고블린들은 현재 ‘발정기’ 상태에 빠져서 타운트에 저항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무슨 이딴 몬스터가 다 있어!”
타운트에 걸려들지 않는 몬스터가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어 본다. 하지만 상황을 따지고 보면 타운트가 걸려들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다.
타운트란 애초에 조롱.
여자에 미쳐 버린 고블린에게 조롱 따위가 먹힐 리가 없으니, 타운트가 안 걸려든 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마자 카란이 소리쳤다.
“레리아! 세라! 이 녀석들에게는 타운트가 먹혀들지 않아! 재빨리 우리 뒤로 와!”
발정 난 고블린들의 제1차 목표 상대는 당연히 여성 유저들이다. 여성 유저들이 강하든, 약하든 그들이 어그로가 되는 것이다. 이 점을 잘만 이용하면 빠른 사냥도 가능하리라.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런 생각을 할 시간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스!”
미끄덩.
“오오! 2서클 마법인 거냐? 대단하다!”
1서클 마법에 비해 캐스팅 시간이 긴 2서클 마법을 준비하고 있던 스칼의 입에서 나온 시전어는 그리스! 상대방의 발이 닿는 곳의 마찰계수를 0으로 만들어 미끄러지게 하는 마법이다.
2서클 마법은 35레벨부터 배울 수 있다. 스칼은 35레벨을 찍자마자 길드에서 지원해 준 2서클 마법서 중 그리스와 파이어 볼의 문제를 풂으로써 그 둘을 습득했다.
메데이아 길드에서는 각 서클당 마법서를 2권씩 지급해 준다. 물론 5서클부터는 마법서를 스스로 마련해야 하지만, 마탑과 제휴가 되어 있었기에 5서클 이전의 마법서는 2권까지 지원해 준다.
2서클 마법 중에서 스칼이 선택한 것은 바로 그리스와 파이어 볼. 공격 보조 마법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는 그리스는 사냥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적이 동료들에게 달려올 때, 그리스를 사용하게 되면 그 적은 여지없이 넘어져서 공격이 무효화됨과 동시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할 수 있게 된다.
파이어 볼이야 워낙 파괴력이 강한 마법으로 소문이 나 있기에 필수 마법이고.
그리스가 시전되자 여자들을 향해 달려가던 발정 난 고블린들이 넘어졌다.
“나이스 그리스!”
“죽여 버리겠어, 이 더러운 자식들!”
파티에 몰려든 발정 난 고블린들의 숫자는 총 4마리. 4마리의 고블린이 그리스에 의해 일시에 넘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런 고블린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자비 없는 무기들.
도망만 치던 세라는 분노하면서 단검을 내리꽂았고, 카인의 반응은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타 고블린에 비해서 공격력은 강하지만, 체력은 약한 발정 난 고블린의 특성상 그리스에 의한 무방비 상태에서의 공격은 엄청난 피해를 입힐 수 있다.
다른 파티원들이 고블린들을 향해 무한한 분노를 퍼붓고 있을 때, 스칼은 조용히 캐스팅을 끝내고 마법을 하나 더 날렸다.
“파이어 볼.”
고차원적인 이해와 중급에 달하는 독서 스킬에 의해 숙련도가 높아진 파이어 볼의 데미지는 강력하다. 동급의 마법사와 비교했을 때 큰 차이를 보일 것임에 틀림없을 그 불의 공은 여지없이 고블린에게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