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히어로 1(2화)
제1장 마법사 로렌스(2)


로렌스가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카페트 위에 이렇게 특이한 자세를 취하는 건 로렌스가 유일했다. 보통 마법사들이 마나심법을 운용할 때에는 앉거나 누워서 하는 경우가 있지만 로렌스처럼 가부좌를 틀고 하지는 않는다.
로렌스의 주위에는 흐릿하지만 막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 보호막이 적의 기습 공격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역할을 했고 그렇기에 로렌스가 안심하고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로렌스가 감았던 눈을 뜨면서 씨익 웃었다.
“으음… 내가 개발한 마나심법이지만 정말 대단해!”
로렌스는 소모한 마나력을 한 시간 만에 충전했다.
보통의 마법사였다면 로렌스가 소모한 마나력을 충전하려면 며칠은 마나심법에 집중해야 충전할 수 있는 양이었다.
로렌스는 가부좌를 풀고는 일어나 긴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테이블에는 식어 버린 차가 놓여 져 있었는데 그걸 양손으로 움켜쥐자 신기하게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후루룩!
로렌스는 차를 천천히 마시면서 사색에 젖어 들었다.
로렌스는 레나 왕국의 지방 남작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기사 출신의 남작은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검술을 배웠지만 이례적으로 마나친화력을 가진 로렌스는 7살에 왕립 아카데미 마법학부에 입학했다.
9살에 일 서클이 되었고, 13살에 이 서클, 20살에 3서클이 되어 중위권의 성적으로 졸업했다.
로렌스는 지방의 남작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마탑이나 수도의 중앙 귀족가에 들어가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밀리게 되었고 고민을 하던 로렌스는 실전 경험도 쌓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몬스터 파티에 들어갔다.
5년이 흐르면서 마법 실력이 늘었지만 4서클에 오르려면 30살은 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왕립 아카데미 마법학부에서 로렌스는 4서클 마법 3가지와 5서클 마법 한 가지의 주문과 수식을 외우고는 있었지만 훌륭한 스승의 조언과 지도를 해 주지 않으면 수준이 높아지긴 어려웠다. 5서클까지의 각종 마법서는 돈으로 구입할 수는 있었지만 많은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깨달음을 얻어야만 올라설 수 있다는 6서클부터는 돈으로 살 수도 없고, 오직 수제자가 아니면 절대 알려 주지도 않는다. 그만큼 마법사들의 마법주문과 수식, 각종 마법적인 지식은 폐쇄적이었다.
어느 날 몬스터 숲에서 오크 무리에 기습을 받아 파티원들이 다 죽고 부상은 입은 로렌스만 우연히 동굴을 발견해 숨을 수 있었다. 치료 마법으로 지친 몸과 부상을 회복하고 동굴을 나서려던 로렌스는 뭔가 이상함을 느껴 동굴을 탐사했다.
약 30미터 정도 깊이의 동굴에서 해골 하나를 발견했는데 해골이 입고 있던 옷은 너무 낡아 살짝 손을 가져가 대자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서 보존 마법진이 새겨진 마법서를 한 권 발견했다.
마법서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2천 년 전의 7서클 백마법사의 것이었다.
높은 수준의 마법서였고 돈으로도 구입할 수 없는 것이기에 로렌스는 흥분했다.
로렌스는 3서클 마법사였지만 이 마법서를 익히면 빠르게 마법의 경지가 높아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거주지로 돌아가지 않고 동굴에 남아 마법수련에 들어갔다.
로렌스는 마법을 이용하여 마법서에 있는 각종 마법들을 외웠다. 책의 후반부를 살펴보다가 지금까지 마법사들의 생각과는 다른 특이한 마법이론이 쓰여져 있었다.
보통 마법사들은 심장을 궤도처럼 휘도는 서클을 만들고 불순물을 제거한 마나력을 저장해 놓았다가 마법을 펼칠 때 그걸 사용한다. 하지만 이 마법서에는 배꼽 밑과 이마에도 심장처럼 불순물을 제거한 마나력을 저장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마나심법을 운용하였을 때 심장보다 더 많은 마나력을 끌어 모을 수 있다고 했다.
상식이나 고정관념을 파괴하는 그런 마법이론이라서 고민하던 로렌스는 마법서를 믿고 수련해 보았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지 잘되지 않았지만 조금씩 적응하면서 놀라운 걸 경험하였다.
같은 시간으로 배꼽 밑에는 심장보다 배나 많은 마나력을 끌어 모았지만 이마에는 심장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이마에 마나력을 끌어 모으다 보니 특이하게도 머리가 맑아지면서 기억력도 향상되는 거 같았다.
로렌스는 심장에 마나력을 모으는 마나심법과 배꼽 밑으로 마나력을 흡수하는 방법, 이마로 흡수하는 방법이 각각 달랐는데 그걸 연구하여 독자적인 마나심법을 만들었다.
그 마나심법을 로렌스는 ‘로렌스 마나심법’이라 명명했다.
로렌스는 로렌스 마나심법으로 불과 2년 만에 4서클에 올라섰으며, 동굴을 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집에서도 수련을 계속하여 다시 일 년이 지나자 5서클 백마법사가 되었다.
6서클 급의 마법 스승이 곁에 있거나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없으면 30살 이전에 5서클이 되는 건 불가능이라는 게 마법사들의 상식이었다. 하지만 로렌스는 독학으로 28살에 5서클 백마법사에 올랐다.
그런데 벨렘 제국군이 레나 왕국을 침공하면서 로렌스는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마법사들은 학파나 인맥이 크게 좌우하는데 로렌스는 그렇지가 못하였기에 다른 마법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고 결국 일군에서 2군으로 배치되었다.
2군에 있는 마법병단은 3백 명의 전투마법사들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로렌스가 포함되어 301명이 되었다.
2서클이나 3서클 전투마법사가 주류이고 4서클 전투마법사는 3명에 불과했다.
로렌스는 5서클이었지만 백마법사라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과 무시를 받았다. 하지만 로렌스는 조용히 수련할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그런대로 편안한 생활이 이어졌는데 어느 날, 벨렘 제국군이 기습하면서 일군이 긴급하게 후퇴하게 되었고 2군이 나서서 시간을 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군의 마법병단은 느닷없이 나서게 되어 걱정이 태산이었다.
로렌스가 앞으로 나서자 마법병단의 전투마법사들은 속으로 비웃었다.
5서클 백마법사라고는 하지만 자신들보다 공격 마법 수준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경악으로 나타났다.
로렌스가 펼치는 엄청난 위력의 파이어 볼과 7서클의 광역 마법이라고 하는 뉴클리어 블래스터 마법을 펼쳤을 때에는 마법병단의 전투마법사들이 경악했다.
벨렘 제국군도 로렌스의 광역 마법에 엄청난 피해를 입고 후퇴했다.
로렌스도 익히긴 하였지만 제대로 펼쳐보긴 처음이었다. 자신이 펼쳤지만 너무 엄청난 위력이라 잘 믿어지지 않았지만 기분은 최고였다.
다음날, 로렌스는 2군 마법병단의 단장으로 임명되었고 벨렘 제국군과 지난 두 달간의 전투에서 맹활약을 보였다.
벨렘 제국군은 로렌스가 나타나면 공포에 질려 선뜻 진군하지 못하였다.
“단장님, 단장님!”
“으응?”
로렌스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사색에서 깨어났다.

2군 사령관인 알리오프 백작이 불러서 로렌스가 그의 군막으로 들어갔다.
알리오프 백작은 차를 마시다가 들어오는 로렌스를 보고는 말했다.
“로렌스 단장, 어서 오시오.”
“저를 찾으셨습니까?”
“그렇소, 이쪽에 앉으시오.”
로렌스는 알리오프 백작이 권하는 소파에 앉았다.
“로렌스 단장, 오늘밤의 비밀 작전에 참여를 좀 해 줘야겠소.”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알리오프 백작은 나직하게 로렌스에게 비밀 작전에 관하여 설명했다.
설명들 듣던 로렌스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했다.
‘굳이 위험한 비밀 작전에 날 왜 끌어들이려고 하는 거지?’
알리오프 백작의 비밀 작전은 어젯밤 사로잡은 벨렘 제국군의 장교에게서 입수한 정보로 세워졌다.
벨렘 제국군의 본진과 약 50킬로미터 후방에 있는 보급 부대를 습격하여 식량을 빼앗는다는 내용이었다. 벨렘 제국의 보급 부대는 천여 명의 소규모 부대이기에 가능성이 높아보였다.
그동안 레나 왕국은 이런 고급 정보는 입수하지 못하였는데 알리오프 백작은 이 비밀 작전으로 큰 공을 세우려는 모양이었다.
벨렘 제국군의 식량을 차단하여 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간다는 전략이었다.
이번 비밀 작전을 위하여 5백 명의 기병들과 백 명의 기사, 30명의 3서클 전투마법사들을 동원하는데 마법사들의 책임자로 로렌스를 임명한다는 내용이었다.
로렌스는 굳이 이런 위험한 비밀 작전에 참여할 필요가 없었기에 알리오프 백작에게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알리오프 백작도 굳이 로렌스가 이 비밀 작전에 참여할 이유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거부할 수 없는 것을 내어 놓았다.
“로렌스 단장, 나의 비밀 작전에 참여해 준다면 이것을 주겠소.”
“허엇, 이, 이것은!”
로렌스는 깜짝 놀랐다.
알리오프 백작이 꺼내어 놓은 것은 놀랍게도 1캐럿의 S급 블루 마나스톤이었다.
1캐럿의 S급 블루 마나스톤 속에는 6서클 마법사가 보유하고 있는 마나력에 맞먹는 엄청난 양이 들어 있었으며, 마법을 펼칠 때 증폭해 주기에 같은 마법이라도 3배나 큰 차이를 보인다.
오랜 세월 마나가 지리적인 영향으로 집중되는 지역의 땅속에서 마나스톤이 생성되는데 그 등급은 SS급, S급, A급, B급, C급, D급으로 농축된 마나량에 따라 나뉜다.
그리고 불순물의 함량이 적은 즉, 순도에 따라서 블루, 레드, 오렌지, 블랙, 화이트로 나눈다.
마지막으로 크기에 따라서 캐럿으로 나누었다.
알리오프 백작이 꺼내어 놓은 1캐럿의 S급 블루 마나스톤은 작은 크기였지만 S급의 블루 마나스톤이기에 귀한 편이었고 3만 골드 정도는 줘야 구입할 수 있었다.
‘으음… 저것만 나에게 있으면 마법수련에 큰 도움이 될 텐데, 어쩌지?’
어지간한 유혹에는 흔들리지 않는 로렌스였지만 1캐럿의 S급 블루 마나스톤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이기에 로렌스는 고민하다가 결국 비밀 작전에 참여하기로 했다. 여의치 않을 때에는 얼마든지 빠져나올 수 있다는 자신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흐흐흐… 역시 비밀 작전에 참여할 줄 알았다.’

벨렘 제국군의 보급 부대.
3만 대가 넘는 많은 짐수레가 줄을 맞추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세워져 있었다.
비를 맞으면 식량이 눅눅해 질 수도 있었기에 약물처리 된 방수 가죽으로 잘 덮어 두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땅에 말뚝을 박고 말들의 고삐를 묶어 놓았다.
언제든 이동할 수 있어 보였고 정보대로 천여 명의 소규모 부대가 지키고 있었다.
습격하더라도 오합지졸들이라 비밀 작전의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로렌스는 기병대장 폴란, 선임기사 아드론과 함께 땅에 엎드려 보급 부대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드론 님, 어떻게 할 겁니까?”
“일단 마법사들이 마력장을 펼쳐 소리를 차단시켜 주시오. 그럼 기사들과 기병들이 돌격하여 보급 부대를 쓸어버리겠소. 다만 로렌스 단장은 나와 함께 이곳에서 대기하는 것으로 합시다. 폴란 기병대장, 어떻게 생각하시오?”
“으음… 저의 생각도 그게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아드론 님의 작전에 따르겠습니다.”
로렌스도 굳이 싸우는 곳에 들어가는 것보다 안전한 이곳에서 대기해 있는 게 더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작전이 세워지고 모두들 돌격 준비를 하는 동안에 로렌스는 30명의 3서클 전투마법사들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그들은 즉시 벨렘 제국군의 보급 부대 가까이 접근하여 자리를 잡더니 마력장을 펼쳐 소리가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했다.
로렌스가 마력장이 펼쳐진 걸 확인하고는 아드론을 보면서 머리를 끄덕이자 그는 기병들과 기사들에게 손짓했다.
기병들과 기사들은 말을 몰아 돌진하여 벨렘 제국군의 보급 부대를 공격하였다.
기습 공격에 비명을 지르면서 벨렘 제국군이 우수수 쓰러졌다.
전투마법사들의 마력장으로 인하여 비명 소리가 외부로 흘러나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