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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1(3화)
제1장 마법사 로렌스(3)


한 시간 정도 흐르자 벨렘 제국군이 전부 쓰러졌다.
수십 명의 기병들이 죽거나 부상을 입었지만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제 벨렘 제국군의 보급 부대가 보유하고 있는 짐수레의 식량만 전부 불태우면 되었다. 짐수레를 좀 더 가까이 끌어 모아 전투마법사들이 파이어 볼을 펼치면 식량을 전부 불태울 수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선임기사 아드론이 이 식량을 전부 2군이 있는 곳으로 끌고 가자는 것이었다. 만약 여의치 않은 상황에 처하면 그때 식량을 불태워도 된다는 것이었다.
‘이, 이런, 공에 눈이 먼 놈 때문에 큰일 났구나.’
로렌스는 화가 치밀었지만 이번 비밀 작전의 대장은 선임기사 아드론이었다.
폴란 기병대장과 로렌스는 아드론의 곁에서 도와주기만 하면 되었다. 폴란 기병대장도 선임기사 아드론의 편을 들고 나섰기에 로렌스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살아서 2군으로 돌아갈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의치 않으면 나만이라도 빠져나가야겠어.’
3만 대의 짐수레에 말을 다시 묶는 게 보통일이 아니었지만 기병들이 나서서 일을 끝마쳤다. 이제 들키지 않고 벨렘 제국군을 피해 레나 왕국군의 2군으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공에 눈이 먼 선임기사 아드론과 폴란 기병대장에게 말해 봐야 소용없어 보였다.
짐수레에 식량이 가득 실려 있었기에 이동속도는 아주 느렸다.
날이 밝았을 때 천여 명의 벨렘 제국군의 추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로렌스와 전투마법사들이 나서서 간단하게 쓸어버렸다. 그러나 이번에 추격해 오는 벨렘 제국군은 기병 만 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젠장, 이럴 줄 알았어.’
로렌스는 화가 치밀었지만 이미 쏟아진 물이었다.
역부족을 느낀 로렌스는 짐수레에 실려 있는 식량을 불태우기로 했다. 이번 로렌스의 결정에는 기병대장 폴란과 선임기사 아드론도 찬성했다.
마법으로 짐수레에 실린 식량을 불태웠는데 놀랍게도 윗부분만 밀가루였고 나머지는 모래가 들어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건 말도 안 돼!”
“벨렘 제국군에 속았구나.”
로렌스는 그제야 비밀 작전이 석연치 않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벨렘 제국군은 가장 골치였던 로렌스를 끌어내기 위한 음모였다.
푸욱!
“크으으… 당신이 배신을?”
느닷없이 로렌스의 등 뒤에서 선임기사 아드론이 칼로 찔렀고 깊은 검상을 입었다.
백 명의 기사들은 아드론 곁으로 모여 들었다.
“흐흐흐… 배신이라니? 난 벨렘 제국의 첩자다.”
선임기사 아드론과 백 명의 기사들은 전부 첩자였다. 다만 기병대장 폴란과 기병들, 30명의 3서클 전투마법사는 첩자가 아니었다.
“그럼 혹시 알리오프 백작도?”
“그렇다. 넌 너무 늦게 알았어.”
뭔가 석연치 않았던 의문들이 한꺼번에 다 풀려 버렸다.
비록 검상을 입었지만 로렌스는 얼마든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큰 착각이었다.
벨렘 제국군 소속의 전투마법사 백 명이 불쑥 나타났다.
그들은 로렌스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즉시 협력하여 강력한 마력장을 펼쳤다.
백 명의 전투마법사들이 한꺼번에 펼치는 눈에 보이지 않은 기운이 내리누르기 시작했기에 30명의 3서클 전투마법사들은 마법을 펼치기가 어려웠다.
벨렘 제국군 기병들과 아드론, 백 명의 기사들은 먼저 무력해진 30명의 3서클 전투마법사들을 공격했다.
“커억!”
“으아악!”
허무하게 전투마법사들이 전부 쓰러졌다.
이번에는 기병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히…힐, 커억!”
로렌스는 치료 마법을 펼치다가 입에서 피를 내뿜었다.
선임기사 아드론은 그제야 씨익 웃었다.
“흐흐흐… 그럴 줄 알고 칼날에 독을 발라 두었었지.”
“크으… 영악한 놈!”
로렌스는 독이 몸속으로 침투하여 머리가 어지러웠다.
혹시나 해서 메모라이즈 해 놓았던 마법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마나여, 나의 의지대로 이루어지게… 아악, 내 팔!”
아드론이 어느새 로렌스에게 접근하여 오른팔을 잘라 버렸다.
“흐흐흐… 잘 가라.”
푸욱!
아드론은 로렌스의 등 뒤에서 칼을 질렀고 칼날이 가슴 앞으로 튀어나왔다.
“흐흐흐… 내가 놈을 죽였다, 죽였어!”
“으으… 이대로 죽기엔 억울해, 부활!”
털썩!
황당하게도 로렌스는 부활이라고 외치더니 고꾸라졌다. 부들부들 몸을 떨더니 잠잠해졌다.
죽은 것이다.
아드론은 황당한 표정으로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부활이라고? 흥, 네놈의 육체를 녹여 버릴 테니 어디 한 번 부활해 봐라.”
아드론은 로렌스의 몸에 박힌 칼을 뽑더니 품속에서 작은 병을 꺼내었다.
병 속에는 노란색 액체가 들어 있었는데 그걸 로렌스에게부었다.
치이이이!
로렌스의 몸은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세월이 흐르면 대마법사의 경지까지 오를 수 있었던 로렌스의 허무한 최후였다.



제2장 부활(1)


“으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 김철호가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손으로 닦으면서 말했다.
“으으… 여, 여기가 어디지?”
철호는 주위를 살펴보니 어느 동굴 속이라 생각되었다. 어떻게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태백산으로 무전여행을 떠났었고 밤에 산길을 걸어가다가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았다. 비를 피할 만한 곳이 보이지 않았기에 혹시라도 지나가는 차가 있다면 얻어 타고 가려고 비포장 길을 걸었다.
느닷없이 등 뒤에서 들리는 트럭의 엔진 소리에 뒤돌아보고는 눈이 커졌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더구나 밤인데도 불구하고 전조등을 켜지 않은 트럭이었다.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고 트럭이 순식간에 다가왔기에 미처 피하지 못하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철호는 몸이 붕 떴다가 땅에 처박히면서 그만 정신을 잃었었다. 그리고 깨어나 보니 어디인지 알 수 없는 동굴 속이었다.
정황으로는 자신이 트럭에 치여 의식이 없었을 것이기에 트럭 운전사가 이곳으로 옮겨 놓고 뺑소니 친 거 같았다.
이상한 점은 트럭에 치였으니 중상을 입었을 텐데도 불구하고 몸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몸에서 알 수없는 엄청난 활력이 느껴졌다. 또한 불빛 한 점 없는 어두운 동굴 속인데도 불구하고 대낮같이 환하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어? 이, 이게 어찌 된 거지?”
철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살펴보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
평소 운동을 잘 안 하기에 살이 많이 찐 그였다. 그나마 키가 193센티미터로 큰 편이었지만 2백 킬로그램이 넘는 몸무게에 배까지 튀어나온 초고도비만의 몸이었다. 그런 철호였기에 미팅을 나가면 항상 폭탄으로 취급 받았고 자신도 살이 찐 몸이 큰 콤플렉스였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낡은 체크무늬 티셔츠에 청바지는 그대로였지만 튀어나왔던 배는 간데없고 배 근육이 잘 발달된 식스팩, 일명 초콜릿 복근으로 변해 있었다. 허벅지를 만져 보니 탄탄하고 팔의 이두박근은 보디빌더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상황에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이, 이건 꿈이야, 꿈!”
철호는 평소 잘 발달된 근육질의 몸을 상상하곤 했었기에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자신의 살을 꼬집어 보고서야 아픔이 느껴졌고 이게 꿈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순간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건 빗속을 달려온 트럭에 치여 기절한 거였다. 그런데 깨어나 보니 2백 킬로그램이나 나가던 자신의 몸이 갑자기 살이 빠져 멋진 근육질의 몸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몸이 크게 변화했기에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사실같이 느껴지지 않아서 몇 번이나 자신의 살을 만져보고 더듬었다.
“으음…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 나에게 일어났군? 어쩌지?”
고민해 봐도 옆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조언을 받을 수도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을 해 봐도 이건 나쁜 일이 아니라 기연을 만난 것처럼 아주 좋은 일이었다.
그동안 초고도비만의 몸 때문에 사람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았었다.
지난날의 못난 자신을 떠올리자 웃음이 나왔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렇게 멍하게 있을 수만 없었다. 철호의 등에는 여전히 배낭을 메고 있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살펴봐야겠어.”
철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살펴보니 양철 오일통이 너저분하게 흩어져 있었는데 수천 개는 되어 보였다.
그중에 수십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박살이 나 있었다.
양철 오일통에는 아무런 표시가 되어 있지 않았다. 향을 맡아 보니 지독한 냄새가 났다.
“으음… 이건 화공 약품 냄새인데?”
처음에는 동굴이라 생각했는데 천장과 벽면을 살펴보니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다듬어진 인공 동굴이었다. 이곳이 만약 태백이라면 폐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동굴이 길었고 바닥에는 방치된 레일 시설도 되어 있었다. 이곳은 분명 폐광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태백에는 예전에 탄광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채산성이 맞지 않아서 폐광된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중 한 곳으로 생각되었다.
“으음…내가 폐광에 버려졌구나.”
입구로 추정되는 곳에는 가 보니 천장과 벽이 무너져 있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미약한 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공기 정도는 유통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철호는 질식사했을 것이었다.
“이, 이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방법이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근육질의 몸으로 변하였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장비 없이 무너진 폐광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해서 굶어 죽는다고 생각하니 너무 억울했다.
무너진 입구를 노려보면서 돌들이 마음먹은 대로 치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스슷!
느닷없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몇 개의 돌들이 공중을 가로질러 날아가 한쪽에 떨어졌다.
“허엇, 뭐, 뭐야?”
깜짝 놀란 철호는 뒷걸음질쳤다.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조용했다.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가지 하면서 무너진 폐광의 입구를 살펴보니 마치 투시가 되는 거처럼 폐광 밖이 흐릿하게 보였다.
머릿속이 순간 반짝였다.
트럭에 치여 기절했다가 깨어나 보니 근육질의 몸으로 변하였고 거기에다가 활력이 넘치는 몸이었으니 투시 능력이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정신을 집중하여 폐광 밖으로 노려보니 흐릿했던 장면이 점점 뚜렷해졌다.
“으음… 무너진 게 약 20미터 정도 되니 잘하면 빠져나갈 수도 있겠는데?”
정신을 집중하여 작은 돌멩이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다. 그랬더니 정말 돌멩이가 약간 움직였다.
너무 황당하고 신기한 현상에 철호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나, 나에게 염력이 생긴 건가? 어쩌면 순간이동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시도는 해 보자는 생각으로 정신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폐광 밖으로 순간이동한다고 생각했다.
스스슷!
놀랍게도 철호는 폐광 밖으로 순간이동했다.
멍한 표정으로 눈만 깜빡거리던 철호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너무나 눈부신 햇빛이 내리비추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내가 정말 순간이동한 건가?”
생각한 대로 순간이동이 되자 자신도 모르는 능력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두려웠다.
입고 있는 낡은 체크무늬의 티셔츠와 청바지는 흙탕에 뒹굴었는지 엉망이었다.
그래서 등에 메고 있는 배낭을 열어 면 티와 반바지로 갈아입었는데 너무 헐렁했다.
“으음… 이게 내 옷이 맞는데 이상해, 이럴게 아니라 일단 이곳을 벗어나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