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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1(4화)
제2장 부활(2)


태백 시외버스 터미널 부근의 태백 제일탕.
걸어서 태백시로 들어온 철호는 비록 자신이 면 티와 반바지로 갈아입었지만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살이 빠져 헐렁한 게 꼴이 너무 지저분했다. 그래서 대중목욕탕을 찾다 터미널 부근에 있는 태백 제일탕으로 들어왔다.
낮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목욕하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았다.
철호는 옷을 벗고 목욕탕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큰 키에 잘 발달된 근육질의 몸이었으니 부러운 눈으로 보는 건 당연했다.
‘뭐야? 사람 처음 봐?’
철호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철호는 한쪽에 앉아 때 타월에 비누거품을 내서 몸을 문질러 씻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피부 각질이 많이 묻어 나왔다.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약간 당황되었다. 사람들이 볼까 봐서 더욱 비누거품을 많이 내어 씻었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으려 탕에서 나왔다. 전신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변한 몸을 살펴보던 철호는 씨익 웃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은 멋진 몸이었다. 신이 조각한 완벽한 몸이 거울에 비춰졌다. 이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지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중계에 몸을 올려보니 85킬로그램이었다.
예전보다 백 킬로그램 이상 살이 빠졌지만 멋진 근육질의 몸이기에 기분은 최고였다.
한쪽에 있는 키를 재는 기기가 있었기에 키를 확인해 보았더니 예전과 똑같은 193센티미터였다.
살이 빠져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고 멋진 근육질의 몸으로 변하였지만 한 가지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으니 이건 당연했다.
“으음… 미용실에 들러서 최신 헤어스타일로 바꿀까? 아, 아니야. 일단 서울의 집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태백 제일탕을 나온 철호는 길옆에 있는 옷가게로 들어가 몸에 잘 맞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사 입었다.
시외버스 터미널로 걸어가는데 지나가던 여성이나 여고생들의 눈이 커지면서 쳐다보았다. 철호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후후후, 남의 시선을 받는 것도 피곤하군? 하지만 이런 기분은 좋구나.’
시외버스 터미널로 들어가 서울로 가는 표를 구입해 기다렸다. 20분 정도 기다리자 서울로 가는 버스에 탈 수 있었다.
창가에 앉은 철호는 눈을 감고 잠들었다.

“으으음!”
잠에서 깨어난 철호는 창밖을 보니 고속도로였다.
아직 서울에 도착하려면 멀었는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려보니 옆자리에 20대 초반의 여대생이 앉아 있었다.
여대생은 철호가 고개를 돌릴 때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책을 읽었다. 제법 귀엽게 생긴 여대생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철호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불쾌하다는 듯이 쏘아보던 여자들이 이젠 철호가 가만히 있어도 먼저 자신을 쳐다보았다. 시선이라도 마주치면 여자들이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나 여자나 잘생기고 볼일이었다.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주머니에 넣어 놓았던 버스표를 살펴보고는 눈이 커졌다.
‘허엇, 이, 이런 일이?’
버스표의 시간은 2000년 4월 15일 토요일이었다.
자신이 트럭에 치였을 때는 2000년 4월 6일 저녁이었기에 기절에서 깨어난 게 무려 9일이나 지난 시간이었다.
더욱 기이한 것은 5서클의 백마법사 로렌스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는 것이다.
너무나 생생하여 마치 철호 자신이 로렌스가 되어 첩자에게 억울하게 죽을 때까지 살았던 거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상한 일이었지만 철호 자신은 의식이 없는 기절한 상태에서 한 번 죽었기에 알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철호는 달려온 트럭에 치여 폐광에 버려져 생사의 기로에 섰을 때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우선 트럭에 치여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각종 산업폐기물과 방사능으로 오염된 양철 오일통에서 흘러나온 각종 유독가스를 들이마셔 질식사했었다. 그런 철호가 되살아 날 수 있었던 건 로렌스가 죽으면서 펼쳤던 부활 마법 덕분이었다.
기사 아드론이 로렌스가 부활하지 못하도록 육체를 약물로 녹여 버렸었다. 그랬기에 부활하고 싶어도 육체가 사라지고 없어서 부활할 수 없었고 로렌스의 영혼이 부활할 자신과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찾으려고 시공간을 떠돌다가 철호가 태아였을 때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로렌스의 영혼은 너무 지쳐서 어쩔 수 없이 철호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 잠들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철호가 죽으면서 잠재의식 속에 잠들어 있던 로렌스의 영혼이 깨어나면서 로렌스가 죽기 전에 강렬한 의지를 담았던 부활 마법이 다시 펼쳐졌다.
하지만 철호가 있는 곳은 최악의 장소였다. 각종 산업폐기물과 방사능으로 오염된 물질이 가득한 곳이었기에 서로의 기운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부활하려고 유전물질의 복제 과정에서 외부 요인인 각종 산업폐기물과 방사능 물질로 인하여 돌연변이를 일으켰다.
원래는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로렌스의 부활 마법 덕분으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으로 변하였다.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을 철호는 기절한 상태에서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였기에 알 수 없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철호의 영혼과 로렌스의 영혼이 서로 섞이면서 성격도 크게 변하였다.
철호는 거구의 몸임에도 불구하고 소심한 성격이었다.
로렌스는 전장에서 활약한 마법사였기에 많은 병사들을 공격 마법으로 죽였기에 살인에 관한 거부감도 전혀 없었다. 또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로 마법을 익혔지만 동료들의 배신으로 죽었기에 남들을 선뜻 믿지 않았다.
이런 두 가지의 상반된 성격이 혼합된 것이 지금의 철호였다. 다만 그걸 아직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시외버스가 서울에 도착했다.
철호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택시를 타고 강남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다.

개나리 빌라 302호.
짹짹짹!
작은 새 두 마리가 날아와 화단의 나뭇가지에 내려앉아 지저귀더니 날아가 버렸다.
철호가 혼자 살고 있는 개나리 빌라는 강남구에 위치해 있었지만 신축한 지 15년이 넘어서 외관이 제법 낡았다.
철호는 커튼을 젖히고는 창문을 열었다. 휴일 아침이라서 그런지 공기가 상쾌했다.
철호의 어머니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위암으로 돌아 가셨고 아버지는 대학교 1학년 때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혼자 남은 철호는 아버지의 통장에 5천만 원이 들어 있는 것과 이 개나리 빌라가 재산의 전부였다.
고민하다가 휴학하고 육군으로 군 복무를 하여 작년 9월에 만기 제대하였다.
현재 철호의 나이는 24살이었다.
빌라에서 빈둥빈둥 놀다 보니 어느새 새천년이 되었고 이대로 놀고만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무전여행을 계획하였다.
약간의 비상금을 챙겼지만 무전여행이라는 목적대로 돈을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4월 1일 토요일 아침에 무작정 빌라를 나섰고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4월 6일에 태백에서 비 오는 날 저녁에 트럭에 치였다. 그리고 9일 만에 깨어나 4월 15일 토요일 오후에 빌라로 돌아온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는 바로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 잠들었고 다음날 아침에 이렇게 깨어났다.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옷을 벗고는 욕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차가운 물이 쏟아졌다.
철호는 물을 맞으면서 벽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고는 씨익 웃었다.
아무리 봐도 멋있는 근육질의 몸이었고 물이 묻어서인지 더욱 섹시하고 보였다.
기분이 좋아진 철호는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아침을 푸짐하게 만들어 먹고 싶었지만 식재료가 준비된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라면을 끓여 먹었다.
“오늘은 마트에라도 가서 식재료를 사야겠군.”
라면을 다 먹은 철호는 커피를 마시면서 거실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틀었다.
아침 뉴스를 보았지만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
철호는 텔레비전을 끄고는 지난날을 돌이켜 보았다.
4월 6일 태백의 비 오는 날 저녁까지만 하더라도 특별한 건 없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전여행이 힘들고 몸이 피곤했다. 느닷없이 달려온 트럭에 치여 몸이 부웅 떴다는 것만 기억나고 그 다음은 의식이 없었다.
자신이 깨어났을 때에는 태백의 폐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트럭 운전사가 자신을 폐광 속에 버린 거 같았다.
깨어나 보니 살이 빠지고 근육질의 멋진 몸으로 변해 있었다. 또한 작은 돌멩이를 공중으로 들어 올려 이동시킨 것과 폐광 밖을 투시할 수도 있었으며, 마지막에는 순간이동도 가능했었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면 분명 자신은 사고 이후에 초능력자가 된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건 로렌스라는 백마법사의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머릿속에 떠오른 다는 것이었다.
“으음… 일단 내가 염력과 투시, 순간이동이 가능했었어.”
거실 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301호에 살고 있는 여대생 보라가 조깅하고 돌아오는 게 보였다.
보라는 늘씬하면서도 가슴이 크고 제법 귀엽게 생긴 외모였기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있어 보였다.
철호도 한 번씩 그녀와 마주치곤 했었기에 관심은 있었지만 마음뿐이었다. 자신은 너무 살이 많이 쪘기에 보라에게 말을 건다는 거 자체가 욕심이라 생각했다.
보라도 철호를 보고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먼저 돌려 버리곤 했었다.
하긴 그 당시의 철호는 뚱뚱한 남자였으니 보라뿐 아니라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게 일상이었다.
“후후후, 마침 투시를 시도해 보려고 했는데 잘되었군.”
철호는 정신을 집중하여 투시를 시도했다.
츠츠츠츠!
놀랍게도 그리 어렵지 않게 투시가 되었다.
301호의 내부가 들여다보는 거처럼 훤하게 다 보이기 시작하였다. 다만 색깔이 없는 흑백 화면을 보는 거처럼 모든 게 회색으로만 보였다.
땀을 흘린 보라는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고는 샤워기를 틀었다. 보라의 가슴은 날씬한 몸매에 비하여 컸다.
철호가 투시를 좀 더 높이려고 정신을 집중하자 보라의 가슴이 확대되어 보였다.
당황하여 시선을 내렸더니 이번에는 보라의 허벅지와 종아리가 보였다.
즉시 투시를 거두었지만 보라의 탄력 있는 각선미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옆집 여대생의 몸을 너무 적나라하게 본 거 같아서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다고 이대로 투시를 멈출 수는 없었기에 다시 투시를 했다.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거실과 안방, 작은 방을 차례대로 살펴보았다.
작은 방에는 보라의 남동생이 책을 가방에 넣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지만 175센티미터는 되는 거 같았다.
보라의 아버지는 안방에서 정장을 입고 있었고 보라의 엄마는 주방에서 한창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헉헉… 익숙하지 않은 일이라서 그런지 제법 힘들군?”
투시를 거둔 철호는 이번에는 거실 소파에 놓여진 리모컨을 염력으로 들어 올리려고 해 보았다.
리모컨이 약간 흔들렸지만 공중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좀 더 정신을 집중하여 노려보면서 공중으로 떠오르게 하였더니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손짓으로 리모컨을 조작해 보니 의도하는 대로 움직였고 눈동자만으로도 움직이는 게 가능했다.
집중이 순간 흐트러지자 리모컨이 거실 바닥에 떨어졌다.
투시와 염력은 좀 더 노력하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가능할 거 같았다.
이번에는 거실에서 주방까지 순간이동을 펼치기로 하고는 정신을 집중했다.
투시나 염력보다 더 어려운 것이라서 잘되지 않았다. 몇 번이나 시도해 봐도 마찬가지였기에 짜증이 났다.
“젠장, 순간이동은 잘 안 되는군?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오기를 부리면서 더욱 정신을 집중했다.
스스슷!
불과 4미터의 거리였지만 순간이동을 했다.
“하하하… 역시 집중하니까 되는구나. 좋았어.”
철호는 투시와 염력, 순간이동까지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자 자신감이 무럭무럭 피어났다.
무엇이든 하고자 하는 일은 다 가능해 보였다.
순간 머릿속에서 로렌스 마나심법이 떠올랐다. 5서클 백마법사 로렌스가 익힌 것인데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라서 익혀 보면 가능할 거 같았다.
“으음… 정말 마법이라는 게 가능한 걸까?”
예전 같았으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투시와 염력, 순간이동까지 펼칠 수 있는 자신이기에 어쩌면 마법도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 거 같았다.
만약 불가능하더라도 한 번 시도는 해 보고 싶었다.
로렌스가 가부좌를 틀었던 거처럼 철호도 일단 거실 바닥에 가부좌를 했다. 익숙하지 않은 동작이라서 쉽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잘 발달된 신체였기에 의외로 쉽게 되었다.
로렌스 마나심법은 입으로 하는 호흡뿐만 아니라 피부의 땀구멍으로도 같이 펼치는 것이었다.
배꼽 밑의 단전과 심장, 이마, 이렇게 세 곳에 마나력을 끌어 모으는 일이었다.
우선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를 끌어당겼다.
철호는 로렌스 마나심법을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었으며 처음 펼쳐보는 동작이지만 익숙했다. 그래서인지 공기 중에 분포되어 있는 마나가 손쉽게 입으로 하는 호흡과 땀구멍으로 하는 피부호흡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몸속으로 흡수한 마나를 일단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가 높아진 마나로 가공했는데 그걸 마나력이라 했다.
처음에는 미약했지만 계속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하자 단전과 심장, 이마 속에 깨알 같은 마나력이 모여 뭉쳐졌다. 심장을 휘도는 서클을 형성하려면 마나력이 적어도 자두만 해야 했다.
로렌스 마나심법을 거두고 눈을 떴다.
“으음… 정말 공기 중에 마나가 있었구나. 그리고 마법도 환상이 아니라 존재하는 거였어.”
철호는 벽시계를 쳐다보고는 눈이 커졌다.
10분 정도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한 줄 알았는데 3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3시간이 지나간 것도 모를 정도로 로렌스 마나심법에 집중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가부좌를 풀고 일어나자 단전에 뭔가 들어 있는 것이 느껴졌고 심장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마에 모여 있는 마나력 덕분에 머리가 더 맑아져 기분까지 좋았다. 철호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기억력도 더 좋아졌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수련에 임할 생각이었다.
철호는 빌라 인근에 있는 미용실부터 들러 최신 유행하는 헤어스타일로 바꾸었다. 그러고는 마트로 들어가서 라면과 밑반찬, 김치를 구입하여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