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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메시스 1(24화)
9. 아티팩트(2)


―드랍률 2배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드랍률이 원상 복귀됩니다.
―경험치 2배의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경험치가 원상 복귀됩니다.
“이제 80개를 모았네. 아아, 다행이다.”
“포션도 다 떨어졌어요. 이제 더 이상 포션 사냥은 불가능해요. 게다가 약물중독이라는 상태이상까지 걸렸단 말입니다!”
스칼이 처절하게 외쳤다.
약물중독이라니? 그런 상태이상도 있었단 말인가?

약물중독:포션을 과하게 섭취해서 나타난 현상. 게임 시간으로 하루 동안 체력, 마력의 자연 회복력이 절반으로 줄어들으며 더 이상 포션 섭취를 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포션을 더 섭취할 경우 약물중독 중증으로 상승한다.

별의별 상태이상이 다 있구나, 라고 생각한 스칼은 당분간은 포션 섭취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루 동안 자연 회복량이 반으로 줄어드는데, 포션을 더 섭취해서 그것보다 심한 약물중독에는 걸리기 싫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의 원흉인 카란이 스칼의 등을 두들기면서 달래 준다.
“걱정 마. 살다 보면 약물중독이 될 때도 있어. 나도 한때는 약물중독이었는걸.”
“언리미티드 월드에서 말입니까?”
“아니, 현실에서. 나도 현실에서 소위 말하는 ‘노는 애’였거든. 그래, 그때가 참 내 인생의 암흑기였지.”
‘……도대체 어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기에 약물중독인 거야?’
아무리 노는 애라도 마약 같은 금지된 짓거리를 안 할 텐데, 심히 카란의 과거가 궁금해지는 스칼이었다.
나쁜 짓도 굉장히 스케일 크게 노는 카란의 배포에 감동할 지경이었다.
오히려 미국에서 마약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에서 자란 카란이 마약을 했다니, 정말로 그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궁금해진다.
스칼과 카란의 대화를 잠자코 듣던 레리아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카란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그게 자랑이야? 오빠? 가문의 수치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뭐? 약물중독이었는걸? 그게 다른 사람한테 말해도 되는 거야!”
“미, 미안해.”
레리아의 친오빠인 카란은 레리아 앞에선 아무런 힘도 못 쓴다. 오빠라서 그런 것일까? 레리아의 거침없는 손찌검에 카란은 고개를 숙이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발했다.
하긴, 그 누가 자신의 친오빠가 마약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까?
그런 레리아에게 스칼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말했다.
“누구에게나 비밀은 있는 법이지. 카란 형님을 이해할 수 있어.”
“역시! 너는 사내대장부야. 봐! 스칼도 누구에게나 비밀 한 가지씩 있다고 그러잖아?”
심히 정신연령이 의심되는 발언에 철이 안 든 오빠에 대해 체념한 레리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답했다.
“그래. 누구에게나 비밀 하나씩은 있는 법이지. 그런데 오빠는 떠벌리고 다니잖아! 그게 문제라고. 누가 비밀 없다고 했어?”
그렇게 말한 뒤, 이번에는 로우킥을 날린 레리아였고, 그녀의 로우킥은 자비 없이 카란의 다리에 꽂혔다.
“스칼 오빠에게도 비밀이 있어요?”
친오빠에게 무자비한 로우킥을 날린 레리아가 스칼에게 물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나에게도 있지. 아마…… 카란 형님과 비교도 안 될 비밀일 거야.”
“설마 사람이라도 죽였겠어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종료의 비밀은 아닐 거야. 아직까진 세상의 그 누구도 알지 말아야할 비밀이지.’
스칼이 눈을 감고 조용히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아직까지 자신의 아버지가 강수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안 된다. 아버지를 노린 암중 세력들이 천우가 수혁의 아들이라는 것을 안다면, 분명 강수혁이 천우에게 언리미티드 월드에 대한 정보를 줬다고 가정하고, 그를 덮치려고 할 것이다.
으드득.
아버지를 죽였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들을 떠올리고 이를 한 번 갈아 본다. 언젠가는 도달하고자 했던 아버지를 돌아가시게 만든 그자들에 대한 원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억제해야 할 때다.
이런 데서 감정을 표출시켜 봤자,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까.
“사람은 안 죽였으니 걱정 마. 설마 내가 살인마로 보이는 거야? 응?”
“그건 아니죠. 우리 오빠도 아닌 스칼 오빠가 사람을 죽이겠어요?”
“야! 나도 사람은 안 죽여!”
뒤에서 듣고 있었던 카란이 소리를 질렀지만, 레리아는 들은 척 만 척 다시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했다.
스칼은 그런 그들을 보며 꽤 재밌는 남매지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씨익 웃은 스칼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약간 피곤하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눈을 감는다 해서 피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마음은 한층 편해진다.
‘으응?’
눈을 감고 손을 땅바닥에 내려놓자, 그의 손에 딱딱한 돌멩이 하나가 만져졌다.
―던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기억의 정령이 당신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지금부터 당신의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은 환상이지만, 이 던전의 실제 역사입니다.
눈을 감고 있던 그의 귓가에 들려온 메시지. 무슨 뜻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그의 앞에 영상이 하나 나타났다.

“이 던전에 대한 비밀은 영원히 세상 속에서 사라져야 한다. 알겠나?”
“예, 마법사님.”
로브를 둘러쓴, 마법사라 불린 한 남자가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말한다. 그 남자의 눈에서 번뜩이는 안광은 싸늘했다. 그것은 많은 이들을 죽여 본 자들만이 뿜어낼 수 있는 살기 비스무리한 것이리라.
“여기에 잠들어 있는…… 는 절대로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될 저주받은 것이다. ……가 세상에 나오게 되면 수습하지 못할 혼란이 일어나지.”
“크아아아앙!”
마법사의 앞에 있던 두꺼운 철문 속에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탈출을 갈구하는 짐승의 울음소리가.
소리가 터진 철문을 마법사가 묵묵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런 재앙을 만들어 낸 것은 누구의 잘못이지? 피로써 탄생된 저 괴물을 만든 우리의 잘못인가, 아니면 저 괴물을 만드는 것을 요구한 자들의 잘못인가?”
남자의 혼잣말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봉인하겠습니다.”
하얀색 로브를 입고 있는 신관으로 보이는 자가 말했고, 그의 말에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시여…….”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 웃기는 소리. 만약 그가 진정한 아버지였다면, 이런 세상을 만들지 않았겠지. 이 빌어먹을 세상 속에선 그 누구도 순수할 순 없다.”
마법사는 이를 부드득 갈며 혼잣말을 뇌까렸다. 그의 말에는 지독한 증오와 원망이 담겨져 있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 그 누군가를 향한 피 어린 증오임이 틀림없으리라.
“시련이겠지, 이건. 빌어먹을 신들이 인간들에게 내리는, 알을 깨기 위한 시련.”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이 던전에는 곳곳에 메모리 크리스탈이 박혀 있습니다. 비밀이 묻히기를 바라지 않았던 자들이 남긴 흔적. 당신은 이제부터 비밀을 얻기 위해서 크리스탈의 정보를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특수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메모리 크리스탈의 수집
등급:???
내용:당신은 메모리 크리스탈에 고대의 기억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발견해 냈습니다. 아브락사스가 주는 각성의 기운이 잠들어 있던 메모리 크리스탈을 깨움으로써 잠들어 있던 기억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이 던전 안에 잠자고 있는 비밀을 당신이 과연 발견할 수 있을까요? 메모리 크리스탈을 모으는 것이 비밀에 대한 유일한 답이 될 것입니다. 던전 곳곳을 탐색하면서 메모리 크리스탈을 수집하십시오.
총 10개의 메모리 크리스탈을 다 모은다면, 깨져 버린 기억이 원상태로 돌아오면서 던전의 비밀이 수면 위로 떠오를 것입니다.
보상:대량의 경험치, ‘끔찍한 비극1’의 완료

‘이게 메모리 크리스탈이라고?’
눈앞에서 순식간에 흘러간 영상에 잠시 당황했던 스칼이 어느새 주먹에 쥐어진 돌멩이를 바라보았다.
메모리 크리스탈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기억이 들어 있다는 ‘수정’. 그렇지만 전혀 수정처럼 보이지 않는다. 수정 하면 반짝거리고 아름다운 것을 떠올리지만, 스칼의 눈에 비친 그것은 한낱 굴러다니는 돌멩이에 불과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는 끔찍한 비극의 해결 방법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퀘스트창에 해결 방법이 나와 있지 않아서 얼마나 당황했었는가? 다행히 이렇게 해결 방법을 알 수 있었으니, 됐다.
스칼은 잠시 자신이 보았던 영상에 대해서 생각한다.
‘영상에 나왔던 마법사는 누구이며 계속 들려오던 짐승의 울음소리는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
검은색으로 지워져서 그 괴생물체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심상치 않은 던전임에는 틀림없다, 라고 그가 생각했다.
분명 이 던전은 발정 난 고블린의 던전이 아니다. 고블린의 던전이라면 고블린이 나와야지 가고일이 나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가고일이 나오고 있다. 거기서부터 심상치 않은 던전.
카란은 어떻게 이런 던전의 지도를 얻게 된 것일까?
“형님, 이 던전의 지도, 어떻게 얻으셨습니까?”
“무기점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무기점 주인이 주더라고. 옛날에 한 여행자가 주고 간 거라서 쓸데가 없대.”
“버리기는 아까우니 준 거라는 소리군요.”
여행자의 정체가 심히 궁금해지는 스칼이었지만, 카란에게 물어봤자 그가 알 리가 없었다.
“이제 초보자 마을에도 못 들어갈 텐데…….”
“던전 지도가 중요한 건가 봐?”
“생각해 보세요. 고블린 던전에 가고일이 나오는 거, 굉장히 이상하지 않아요? 게다가 중간 보스가 병마 가우라인데, 일반적인 던전은 아닐 겁니다.”
스칼의 말을 들은 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그래서 우리가 던전 밑바닥까지 가려는 거 아냐?”
“갈 수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조만간 한계에 부딪힐 것 같습니다. 이 속도로 난이도가 상승한다면.”
그의 말대로 난이도가 급속도로 상승하고 있다. 이러다간 그들의 레벨로는 수행할 수 없을 정도까지 상승할지도 모른다.
파티원들이 전멸하면 다시는 던전에 들어올 수 없지만, 스칼만은 아니었기에 그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감돌았다.
후에 지혜 노가다를 한 다음에 와도 늦지 않으리라.
일단 던전에서 죽어도 이 던전에 찾아올 수 있도록 사전 작업을 해 두는 것이 좋기에, 스칼은 카란으로부터 지도를 건네받았다. 핑계는 ‘마법을 사용해야 할 타이밍을 계산하기 위해서’였고, 그 말에 카란은 순순히 납득하곤 지도를 건네주었다.
자신이 스칼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게 해서 던전의 지도를 간단하게 습득한 스칼은 언제라도 던전에 다시 찾아올 수 있도록 준비를 끝마쳤다.
메모리 크리스탈에 대한 정보도 얻었으니 퀘스트는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던전에서 레벨 50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프라임의 퀘스트 완료 시간이 아직은 충분하지만, 최대한 빨리 50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칼은 아브락사스와 이 던전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 보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영상 속의 마법사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걸릴 뿐이다.
알을 깨기 위한 시련.
그 말은 분명 아브락사스와 관련된 것. 그것을 통해 이 던전이 아브락사스와 관계된 던전이라는 것이 확실시되었다.
현재 스칼이 할 수 있는 추리는 그것이 끝이었다. 아직 그가 가지고 있는 정보는 미약해서 자세한 추리는 불가능했다.
“충분히 쉬었죠? 다시 시작해요.”
“쉬었다가, 말았다가. 사냥할 거면 진득하게 사냥 좀 하자.”
레리아의 쾌활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카란의 투덜거림이 이어졌다. 언제나 그랬듯이 카란은 레리아의 말에 딴지를 걸다가 얻어터진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
자리에서 일어난 파티는 사냥을 위해서 전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