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히어로 1(9화)
제4장 아르바이트(3)


뿔테 안경을 쓰고 콧수염을 기른 스탭은 최상혁이었는데 이 스튜디오에서 일한 지는 2년에 불과하지만 이런 업계에서 일한 지는 10년이 넘은 노련한 경력자였다.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에서는 최 부장으로 통했다.
그는 철호를 반갑게 맞이해 주면서 오늘 촬영에 관하여 알려 주었다.
웨이크 팬츠와 삼각, 사각 수영복을 번갈아 입고 멋진 포즈를 취하여 찍는 것과 비키니를 입은 여자 모델과도 함께 찍는 것도 있었다.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어 보였다.
철호는 탈의실에서 옷을 벗고 삼각 수영복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철호가 삼각 수영복만 입어서인지 멋진 근육질의 몸이 다 드러나 눈부셨다. 주위에 있는 모델들과 스탭들까지 눈이 커졌다.
“우와, 멋지다.”
“너무나 완벽한 바디야.”
“어머, 너무 멋져!”
사무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그레이스 최까지 놀라서 커피가 목에 걸렸다. 그레이스 최는 그동안 수백 명의 남자 모델들을 상대하고 그들의 몸을 보았지만 철호처럼 완벽한 몸은 처음 보았다.
그레이스 최는 카메라를 들고 나와 예상보다 20분 정도 일찍 사진 촬영이 시작되었다.
철호는 그레이스 최가 요구하는 포즈를 취해 주었고 그녀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스탭들까지 철호의 멋진 모습을 구경했다. 비키니를 입은 여자 모델은 철호와 같이 사진 촬영을 할 때 부끄러운지 얼굴이 붉어졌다.
모델계의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그레이스 최를 만나려고 스튜디오로 들어왔다가 철호를 보고는 눈이 커졌다.
‘허엇, 어디서 저런 자를?’
‘완벽해!’
‘처음 보는 얼굴인데 누구지?’
193센티미터의 큰 키에 잘생긴 얼굴, 거기에다가 보디빌더처럼 근육만 빵빵하게 부풀린 게 아니라 잘 발달된 아름다운 멋진 근육질의 철호를 본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초특급 신인의 출현이었다.
철호는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였기에 약간의 포즈만 취해도 화보였다.
그레이스 최는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평소보다 더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스탭들도 이 분위기를 깨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평소보다 일찍 작업이 끝이 났지만 그레이스 최의 얼굴에는 만족감으로 가득했다. 스탭들도 머리를 끄덕일 정도였다.
철호가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사무실에는 그레이스 최를 찾아온 사람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기에 철호는 망설였다. 그때 그레이스 최가 철호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소파에 앉아 있던 5명의 시선이 철호에게 집중되었다.
4명의 중년 남자와 멋지게 차려입은 세련된 여자 한 명이었다.
이들은 간혹 텔레비전에 얼굴을 보이는 사람들이기에 철호도 본 적이 있었다.
“철호 씨, 인사하세요. 연예계의 큰손들이세요.”
“김철호라고 합니다.”
철호가 머리를 숙여 인사하자 모두들 머리를 끄덕이더니 각자 명함을 한 장씩 건 내었다.
그레이스 최는 철호를 사무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중요한 사람들과 사업상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라서 미안해. 오늘 모델비는 최 부장에게 받아가. 그리고 오늘 내가 제의한 거 잘 생각해 봐.”
“예, 알겠습니다.”
철호는 최 부장에게 갔더니 그가 봉투를 내밀었다.
“오늘 모델비야.”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우리와 일했으면 좋겠어.”
“예, 저도 그렇습니다.”
철호는 최 부장에게 인사하고는 밖으로 나왔다.
봉투를 살펴보니 백만 원권 자기앞수표 두 장이 들어 있었다. 수영복 모델비가 2백만 원이나 되었기에 기분 좋았다.

―어? 어쩐 일이야?
“장미야, 오늘 수영복 모델비를 받았는데 밥을 사려고 전화했다.”
―그래? 그럼 가야지. 어디로 가면 돼?
“여긴 스튜디오 앞인데 헤라에서 기다릴 테니 올래?”
―응, 헤라에서 커피 마시고 있어. 2시간 안으로 갈게.
“알았어. 헤라에서 봐.”
커피 전문점 헤라까지는 멀지 않았기에 철호는 걸어서 그곳으로 갔다.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잡지를 보았다.
장미는 청담 뷰티라인에서 아로마테라피와 전신 마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철호의 전화를 받고는 마음이 설레었다.
2시간이 다 되어서 장미가 헤라에 나타났다.
전신 마사지를 받아서인지 피부에서 빛이 나는 거 같았다.
“많이 기다렸지?”
“괜찮아, 잡지보고 있었더니 시간 가는 줄 몰랐어.”
“나가자. 시원한 냉면을 먹고 싶어.”
“냉면으로 되겠어?”
“응, 난 냉면이면 돼.”
“알았다. 나가자.”
철호와 냉면을 먹으면서 장미에게 오늘 스튜디오에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받았던 명함을 보여 주었다.
“어머, 이 사람들 연예계에서 제법 영향력이 큰 사람들인데 운이 좋았구나.”
“그런가? 나도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보긴 했던 사람들이라 신기했어.”
“잘하면 너 모델로 데뷔할 수 있겠는데?”
“내가?”
“응, 어때 해 볼 생각 있어?”
“내가 이쪽 일은 잘 모르는데 잘할 수 있을까?”
“모르면 배우면서 하면 되지.”
“그건 그렇지만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한 번 도전해 봐. 철호 씨는 잘 할 수 있을 거야.”
턱을 만지작거리던 철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장미와 시간을 보내고 빌라로 돌아온 철호는 편한 트레이닝 바지로 갈아입었다.
거실에서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하려고 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낯선 번호였지만 받아 보았다.
“여보세요?”
―김철호 씨 핸드폰인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누구시죠?”
―난 우먼파워의 편집장인 한소라예요. 오늘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에서 봤을 텐데 기억나세요?
그제야 오늘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에서 보았던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이제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8월호에 나갈 잡지의 남자 모델이 필요해서 말이에요. 한 번 만나서 의논을 하고 싶은데 내일 시간이 어떠세요?
“음… 알겠습니다. 내일 어디로 가면 되죠?”
―용산구에 사옥이 있는데 편집부로 오후 3시까지 오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철호는 얼떨떨했다.
여성 잡지 우먼파워는 인기가 있어서 미혼 여성들이 많이 보는 잡지라고 알고 있었다. 그런 잡지에 나오면 금방 사람들에게 얼굴이 알려진다.
“으음… 이거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다가 일이 커지는데?”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거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했다.
북한산에서 수련할 때보다는 공기 중에 마나의 분포도가 적었기에 아쉬웠다.

용산구 우먼파워 사옥.
철호는 사옥 안으로 들어가 5층에서 내렸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복도의 오른쪽으로 걸어갔더니 그곳에 편집부가 있었다.
목에 사원증을 걸고 있는 여자가 밖으로 나오려다가 철호와 마주쳤다.
“어떻게 오셨죠?”
“편집장님을 만나러 왔는데요?”
“약속되어 있는 분이신가요?”
“예, 3시까지 오라고 해서 왔습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김철호라고 합니다.”
“아…철호 씨였군요. 절 따라오세요.”
편집부 여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편집장실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예, 감사합니다.”
철호가 편집장 실에 들어서자 소라가 책상에 펼쳐 놓은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 어서 오세요. 잠시만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 주겠어요?”
“예, 알겠습니다.”
소라가 자료를 들고 철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번 8월호에는 특집으로 애인과 가고 싶은 여름 휴양지라는 기획을 했어요. 사랑하는 남녀가 발리에서 3일간 보내는 그런 화보예요. 일정은 4박 5일이에요.”
“예? 발리에서 4박 5일 일정이라고요?”
“예, 애인과 3일 동안 발리에서 여행을 하면서 자연스러운 모습을 찍는다고 보시면 돼요. 물론 자연스럽게 의도된 그런 화보지만요.”
소라는 철호에게 발리에서 입을 옷들이 찍힌 사진을 보여 주었다.
편한 반바지와 티셔츠를 비롯하여 제대로 갖추어 마치 파티장에 가는 거 같은 파티복도 있었다.
대충 보아도 70벌은 넘어 보였다.
“이렇게 많은 옷을 입고 찍는 겁니까?”
“호호… 물론이에요. 사실 이건 적은 거예요.”
“으음… 발리까지 가서 3일간 찍는 화보인 줄은 몰랐습니다. 저는 초보 모델이라서 스튜디오에서 간단하게 찍는 것인 줄 알았거든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요. 그냥 편안하게 휴양지에서 자연스럽게 화보를 찍는다고 생각하면 돼요. 여권은 있죠?”
“예,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오전에 출발하여 금요일 밤에 돌아오는 일정이에요.”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걱정 말아요. 철호 씨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항공권과 숙박비를 포함한 경비들은 회사에서 부담하고 모델비는 2천만 원이에요.”
‘허엇, 2천만 원이라고?’
그렇게 많이 받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도 못하였다.
철호가 잠시 생각하고 있을 때 소라가 말했다.
“계약금으로 5백을 드리고 나머지는 한국으로 돌아온 다음 날에 통장으로 입금해 드릴 거예요.”
초보 모델에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모델비였다.
철호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으음…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호호… 철호 씨라면 잘하실 거라 전 믿어요.”
철호는 소라가 내민 계약서에 사인하고 봉투에 계약금 5백만 원이 들어 있는 걸 받았다.
철호는 소라와 몇 가지 세부적인 사항을 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철호 씨, 그럼 월요일 오전 8시까지 김포공항에서 스탭들과 만나면 돼요. 그전에 편집부에서 세부적인 일정 때문에 토요일에 전화를 드릴 거예요.”
“예, 잘 알겠습니다.”
소라에게 인사하고 밖으로 나온 철호는 화장실로 들어가 봉투 속에 들어 있는 걸 꺼내어 보았다.
백만 원권 자기앞수표 5장이 들어 있었다.
돈을 보고서야 실감이 났다.
계약서가 들어 있는 봉투를 열어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고는 머리를 끄덕였다.
2천만 원에 계약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으음… 계약서를 보니 내가 화보 모델이 된 것이 실감나는구나.”
예전의 철호였다면 이런 일은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이었지만 외모가 변한 이후에는 화보 촬영이 적성에도 잘 맞았고 나름대로는 보람도 있었다.
버스를 타려고 걸어가는데 노란색 옷과 가방을 멘 유치원생 두 명이 걸어가는 걸 보니 귀엽게 보였다.
그런데 한 아이의 손에 들려 있던 공을 그만 떨어뜨렸고 그 공이 하필이면 차도로 굴러갔다.
철호는 그걸 보고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승용차가 달려오고 있었고 아이는 그것도 모른 채 공을 잡으려고 차도로 뛰어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걸 보고는 눈이 커졌다.
아이는 절체절명의 위험한 순간이었다.
철호는 아이를 노려보며 염력을 일으켰다.
끼아아악!
급브레이크 소리가 났지만 아이는 어느새 인도로 이동해 있었다.
아이는 놀라서 순간 멍한 표정이었다가 울었다.
승용차에서 내린 운전자가 아이를 친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이가 인도로 이동해 있는 걸 보고는 멍한 표정이 되었다. 자신의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다.
‘휴우, 나의 염력으로 아이를 구해서 정말 다행이야.’
아이는 약간 놀라서 우는 것이지만 이상은 없어 보였기에 모른 체하며 버스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