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히어로 1(16화)
제7장 공공의 적(3)
철호는 일이 없어서 어제와 오늘 빌라에서 지내고 있었다.
푸르스름한 돌이나 오렌지색 돌을 번갈아 가면서 흡수하였기에 수련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내일 정오에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로 가서 명품 P사의 담당자와 만나 계약서에 사인하면 큰돈이 들어올 예정이었다.
이미 모델 활동을 하면서 단기간에 벌어들인 돈이 제법 되었지만 벌 수 있을 때 최대한으로 벌어 놓을 생각이었다.
앞으로 생활비로 써야 하고 내년에는 복학도 할 생각이었다.
지난 2일 동안 집 안에서 수련만 했었기에 산책이라도 하면서 시원한 냉면이라도 한 그릇 먹으려고 빌라의 문을 열었다.
마침 앞집의 보라도 밖으로 나오다가 서로 마주쳤다.
“어? 당신은?”
‘이런 젠장, 들켰어!’
철호는 모른 체하며 말했다.
“절 아십니까?”
“잘 알지는 못하지만 당신이 왜 그곳에서 나오는 거죠?”
“내 빌라이니 나오는 게 당연하지요.”
“예? 당신 빌라라고요? 그 빌라는 뚱뚱한 남자의 빌라였는데 언제 이사 온 건가요?”
보라는 예전에 철호의 뚱뚱한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고, 집안 사정까지도 약간은 알고 있었다.
“한 달 정도 되었습니다.”
“그랬었군요. 어쩐지 그 집 남자가 안 보인다고 했어요. 난 이보라라고 해요. 대학생이고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예, 난 김철호라고 합니다. 이 빌라에서 살고 있죠.”
“무슨 일을 하세요?”
“휴학생입니다.”
“그래요?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주변으로 산책을 나가는 겁니다.”
“나도 산책 가는데 잘되었네요. 같이 가요.”
“예? 같이요?”
“예, 안되나요?”
“그…건 아니지만….”
“그럼 같이 가도 되겠네요. 가요.”
철호는 어쩔 수 없이 보라와 같이 산책하게 되었다.
보라는 170센티미터에 늘씬하면서도 귀엽게 생긴 외모였기에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었다.
철호는 사고 이후 빌라로 돌아와서 우연히 투시력으로 보라의 몸을 투시한 적이 있었기에 그걸 떠올리자 미안하고 왠지 부끄러웠다.
그렇지만 철호는 그걸 내색하지는 못하였다.
‘이 남자 보면 볼수록 잘생겼어.’
보라는 그동안 철호를 찾아 다녔지만 못 만났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마주쳐 앞집에 산다는 걸 알고는 좋아서 죽을 거 같았다. 원래는 개나리 빌라 앞에 있는 슈퍼에서 우유를 한 통 사오려고 했었는데 철호가 주위로 산책 간다고 해서 자기도 따라 나섰다.
보라와 철호가 같이 산책하자 사람들이 쳐다보았다.
갈림길이 나오자 철호가 말했다.
“전 냉면을 먹으러 가야 하기에 여기에서 헤어져야겠습니다.”
“예? 오후 3시가 다 되었는데 아직 점심을 못했어요?”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도 마침 시원한 거 먹고 싶었는데 잘되었네요. 같이 가요.”
“그렇습니까? 그럼 같이 가시죠.”
철호는 어쩔 수 없이 보라와 함께 인근에 있는 냉면집으로 들어갔다.
길가에 승용차 한 대가 멈추더니 조수석에 앉은 남자가 핸드폰을 들었다.
“아가씨, 저 김 대리입니다.”
―미행하고 있나요?
“예, 아가씨. 여대생으로 보이는 여자와 함께 빌라 근처에 있는 냉면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떻게 생겼나요? 예쁜가요?
“예, 제가 보기에는 예쁘고 귀여운 얼굴입니다.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 되고 날씬하고 각선미도 좋습니다. 가슴도 커서 남자들이 좋아할 거 같습니다.”
―그 여자의 모습은 찍었나요?
“예, 얼굴을 집중적으로 찍었고 혹시나 해서 몸매와 전체적인 모습도 찍어 두었습니다.”
―잘했어요. 좀 더 지켜보았다가 빌라에 들어가면 나에게 오세요.
“예, 아가씨!”
핸드폰을 내려놓은 김 대리는 운전사에게 말했다.
“이 주임이 보기에 저 아가씨 외모가 어때?”
“얼굴과 몸매가 죽입니다.”
“그렇지? 아무튼 저놈이 문제야. 우리 장미 아가씨 같은 퀸카를 두고 바람이나 피우다니 말이야.”
“맞습니다. 물론 저 아가씨도 예쁘지만 장미 아가씨에 비하면 비교가 안 되지요. 장미 아가씨 집안이 어디 보통 집안입니까?”
“그래서 내가 하는 말이야. 아무튼 부러운 놈이야.”
“저도 그렇습니다. 저놈은 키 크고 잘생긴데다가 운동을 했는지 근육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철호와 보라는 냉면을 먹고 식당을 나와 개나리 빌라로 돌아왔다.
미행하던 자들은 철호가 개나리 빌라로 들어가는 걸 보고는 그곳을 떠났다.
철호는 장미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미행자들은 보라가 철호가 새로 사귄 여자 친구라 착각했다.
김 대리는 철호와 보라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장미에게 내밀었고 그녀는 사진을 살펴보고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김 대리가 말한 대로 예쁘고 날씬한 게 제법 인기가 있어 보였다.
“냉면 먹고 바로 빌라로 들어갔나요?”
“예, 아가씨. 다른 일은 없었습니다.”
“알았어요. 이 여자를 내일 아침부터 미행해 보고 인적 사항도 조사해 가져오세요.”
“예, 아가씨!”
“좋아요. 그만 나가 보세요.”
김 대리가 밖으로 나가자 장미는 사진 속의 보라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 여우같은 게 나의 남자에게 꼬리쳤단 말이지? 가만두지 않겠어.”
뽀로로롱!
알록달록한 작은 새 한 마리가 베란다에 내려 앉아 지저귀고 있었다.
철호는 로렌스 마나심법을 중지하고 눈을 떠 새를 쳐다보았다. 애완조 같아 보였는데 새의 이름은 알지 못하였다.
‘귀엽게 생겼네?’
새장에 있지 않는 걸 보니 야생이 된 모양이었다.
마침 철호의 머릿속에 매혹 마법이 떠올랐다.
“어디 한 번 펼쳐 볼까?”
츠츠츠츠!
철호는 일단 새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염력으로 붙잡았다.
뭔가 보이지 않는 기운이 누르는 느낌에 새가 놀라 날개 짓하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꼼짝하지 못하였다.
일단 새를 잡아 놓은데 성공한 철호는 매혹 마법을 펼쳤다.
순간 철호의 두 눈에서 기이한 빛이 일렁이다가 사라졌고 새의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손짓으로 끌어당기자 새가 공중을 가로질러 철호의 손바닥 위에 내려졌다. 염력을 거두었지만 매혹 마법에 걸린 새는 도망치지 않았다. 일단 상황을 보니 성공이었다.
매혹 마법은 유효 시간이 하루였지만 시간이 지나더라도 시전자에게 약간의 호감은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게 된다.
새를 쓰다듬던 철호는 쌀을 약간 가져와 내밀었더니 쪼아 먹기 시작했다.
벽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다되었다.
앞집을 투시해 보니 보라가 신경 써서 옷을 차려입고 있었다.
“어디 외출하나?”
보라는 오늘 친구와 약속이 있기에 서둘러서 빌라를 나섰다.
개나리 빌라 근처에서 대기해 있던 김 대리는 보라가 나타나자 즉시 미행했다.
오늘은 2명이나 더 미행에 합류하였기에 마음이 느긋해졌다.
철호는 오늘 정오에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에서 명품 P사 담당자와 만나야 하기에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매혹마법을 펼친 새는 베란다 한쪽에 내려놓았다.
약간 열려진 창문으로 얼마든지 날아갈 수 있기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거 같았다.
개나리 빌라를 나와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청담동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로 들어갔더니 스탭들이 활기차게 일하는 게 보였다. 철호는 스탭들에게 다가가 인사하고는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레이스 최가 서류를 살펴보고 있었는데 소파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아…철호 씨. 어서 와요. 이쪽은 명품 P사의 담당자이니 인사하세요.”
“그렇습니까? 안녕하십니까, 김철호라 합니다.”
“아, 반갑습니다. P사의 기획 2팀장을 맡고 있는 이정훈이라 합니다.”
철호와 정훈은 서로 악수하고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정훈은 그레이스 최와 철호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대표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8월호부터 각종 잡지에 나갈 저희 P사의 신상 고급 시계의 남자 모델로 철호 씨가 적임자라 판단해 이렇게 계약을 하려는 것입니다. 일단 3개월 단발로 5천만 원입니다. 반응이 좋으면 다시 추가 계약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혹시라도 큰 물의를 일으키는 범죄 사건을 저지른다면 손해배상을 하셔야 합니다.”
“혹시 스캔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합니까?”
“스캔들은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캔들은 왜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런 것도 큰 물의라 생각되어서요.”
“아…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형사사건으로 입건이 되지만 않으면 괜찮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그럼 계약서를 읽어 보시고 사인하시죠.”
철호는 정훈이 내미는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어 보니 큰 문제될 것은 없어 보였다. 3개월 단발에 5천만 원이면 신인으로서는 큰 계약이었다. 철호는 계약서에 사인했다.
계약서를 확인한 정훈은 계약금이 들어 있는 봉투를 철호에게 내밀었다.
“계약금 5백입니다. 나머지는 내일 화보 촬영을 한 이후에 입금이 될 것입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정훈은 계약서를 서류 가방에 넣고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레이스 최에게 인사하고는 먼저 나갔다.
철호도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그레이스 최에게 말했다.
“대표님, 이렇게 저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저녁이라도 살까요?”
“저녁보다는 내 부탁 하나 들어주겠어?”
“부탁이오?”
“어려운 건 아니야. 오늘 저녁에 파티가 있는데 파트너로 같이 참석 좀 해 줘.”
“제가 파티 파트너로 말입니까?”
“그래, 같이 갈 파트너가 없어서 말이야.”
“어려운 일도 아니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파티에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어서 어떤 옷을 입고 가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마. 내가 아는 의상실에 협찬을 받으면 돼.”
“예, 알겠습니다.”
그레이스 최가 인터폰을 누르더니 최 부장을 불렀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그래요. 오늘 내가 파티에 가는 거 알고 있죠?”
“예, 대표님!”
“오늘 나의 파트너로 철호 씨가 같이 참석할 것이니 최 부장이 글로리아 의상실에 데려가서 파티에 입을 옷을 협찬을 받아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최 부장이 철호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갔다.
차로 10분 거리였지만 걸어서는 멀었기에 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철호 씨, 오늘 대표님과 파티 참석하는 거야?”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긴장 좀 해야 될 거야. 대표님이 참석하는 파티는 연예계와 경제계에 이름난 사람들이 참석하니 말이야.”
“예? 그럼 어려운 자리가 아닙니까?”
“몰랐어?”
“예, 대표님께서 파티에 가셔야 하는데 파트너가 없다고 하셔서 제가 같이 가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하지만 대표님의 체면을 생각해서 실수하면 안 돼.”
“예, 실수하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