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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1(19화)
제8장 연쇄살인범과의 혈투(3)


뽀로로롱!
어제 느닷없이 날아왔던 알록달록한 작은 새가 베란다에 내려앉더니 지저귀기 시작했다.
가부좌를 틀고 있던 철호는 눈을 뜨더니 손짓으로 주방 한쪽에 놓여진 쌀독 뚜껑을 염력으로 들어 올리더니 한 줌의 쌀을 끌어당겼다.
공중을 가로질러 쌀이 날아오더니 베란다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작은 새는 쪼르르 다가와 쌀을 쪼아 먹기 시작했다.
잠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철호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귀엽군?”
벽시계를 보니 오전 7시가 약간 넘었다.
로렌스 마나심법을 운용하느라 잠도 자지 않고 아침을 맞이했지만 몸은 피곤하지 않고 활력으로 충만했다.
토스트와 우유로 아침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틀어 뉴스를 보았다. 역시나 지난밤에 일어났던 사건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해 보니 느닷없이 정장을 입은 호리한 남자가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의 보닛에 떨어져 연쇄 충돌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중상을 입어야 당연한 상황인데 정장을 입은 남자는 중앙선 넘어 인도로 이동했고, 근육질의 남자 3명이 나타나더니 정장 남자를 추격하였다. 서로 치열하게 싸우더니 결국 근육질의 건장한 남자 2명은 목뼈가 부러져 죽었고 하나는 목에 상처가 심해 피를 많이 흘려 죽었다. 그리고 현장에 출동한 순찰차 두 대도 처참하게 찌그러지고 박살났다. 4명의 경찰관들은 다행히 죽지는 않았지만 중상이었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확보한 경찰에서는 황당한 이야기가 많아서 이걸 믿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목격자들의 진술이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이걸 미루어 짐작해 보면 거짓말은 아닌 거 같아서 경찰은 더 당황했다.
미모의 여자 리포터가 목격자들과 인터뷰를 한 것을 방송했다.

―현장에 있었던 분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어제 밤의 상황이 어떠했나요?
―예, 처음 보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사람이 수십 미터를 순간이동하고 5미터 정도의 높이로 도약하고 그랬습니다.
―예? 좀 황당한데 방금 하신 말이 사실입니까?
―예,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던 것을 말하는 겁니다. 목이 뽑혀 죽은 사람과 정장을 입은 호리한 남자가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데 마치 무협 영화의 고수들이 싸우는 거 같았습니다.
인터뷰를 하는 여자 리포터도 너무 목격자가 황당한 말을 해서 믿지 않았다. 목격자도 그럴 거라 생각하고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제 말이 믿어지지 않고 허풍이라 할 거 같아서 이것을 보여 드리죠.
목격자가 핸드폰을 꺼내었다.
―이거 핸드폰이네요?
―예, 맞습니다. 제 핸드폰입니다. 제가 운이 좋아서 약간의 동영상을 찍었는데 보여 드리죠. 이걸 보시면 믿을 수 있을 겁니다.
목격자는 자신의 동영상을 여자 리포터에게 보여 주었고 카메라맨은 핸드폰의 액정 화면에 나오는 동영상을 찍었다.
놀랍게도 근육질의 티셔츠 남자와 호리한 정장 남자가 서로 싸우는 장면이었다. 동영상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정장 남자가 어디에서 솟아난 괴력인지 근육질의 티셔츠 남자의 목을 잡고 비틀었다.
너무나 생생하고 잔인한 장면에 여자 리포터도 멍한 표정으로 동영상을 보았다.
―아악, 사람의 목뼈가 부러졌어.
―제가 사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믿으시죠?
여자 리포터는 공포에 질려 대답하지 못하고 머리만 끄덕였다.
―더 놀라운 게 있습니다.
―예? 또 있다고요?
―예, 마침 동영상을 찍느라 핸드폰 배터리가 다되어서 보조 배터리를 꺼내었는데 정장 남자가 흘린 물건을 발견했거든요.
―근육질의 티셔츠 남자의 머리를 뽑아 버린 그 정장 남자 말인가요?
―예, 맞습니다. 제가 촬영한 동영상을 보여 줄게요.
목격자는 자신이 찍은 두 번째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인도 한쪽에 떨어져 있는 물건은 고무인이었다. 목격자는 자신의 손으로 그걸 집으려고 하다가 멈칫하더니 가방에서 비밀 봉지를 꺼내어 뒤집어 자신의 지문이 묻지 않도록 하며 물건을 집어 들었다.
놀랍게도 인도에 떨어져 있는 물건은 해골 고무인이었다. 각 구를 돌아다니면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연쇄 강간 살인범 해골이 사용하는 물건이었다.
안 그래도 경찰에서는 연쇄 강간 살인범 해골에 관한 정보가 미흡하여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 해골 고무인이 진짜라면 범인의 지문이 묻어 있을 것이었다.
여자 리포터도 깜짝 놀라며 말했다.
―이건 연쇄 강간 살인범 해골의 그 고무인 같은데요?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확실한 건 조사를 해 봐야죠. 그래서 제가 지금 경찰서에 가서 이걸 전해 주려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물건을 주웠군요?
―예, 그래서 저도 흥분됩니다.
목격자의 인터뷰가 끝이 나고 경찰서에 해골 고무인을 전달하는 모습이 방송되었다. 경찰서의 형사들은 투명한 비닐 봉투에 해골 고무인을 넣었고 이걸 국립 과학수사 연구소에 보내어 감정을 의뢰할 생각이었다. 이 목격자는 동영상과 해골 고무인 덕분에 하루 만에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버렸다.
뉴스를 보던 철호는 어제 밤의 그 정장 남자가 연쇄 강간 살인범 해골이라는 것에 놀랐다.
“으음…이거 보통 일이 아니구나.”
철호는 해골이 순간이동과 염력을 사용할 수 있는 초능력자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걱정되었다. 죽은 근육질의 티셔츠 남자들도 초능력자인데도 불구하고 해골과 싸우다가 결국 다 죽었다. 일반인은 절대 해골을 어쩌지 못할 것이었다.
“해골이 왜 여자들을 강간하고 죽이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결론은 정신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
철호는 어제 협찬 받았었던 턱시도와 벨트, 구두를 최 부장에게 돌려주었다. 최 부장이 알아서 협찬 받았던 곳에 잘 돌려줄 것이기에 철호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철호가 준비된 의상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8월호부터 각종 잡지에 나갈 명품 P사의 신상 고급시계를 끼고 화보 촬영을 하는 일이었다.
철호가 포즈를 취하면 그레이스 최가 사진을 찍었다. 보통 사람들은 멋진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철호는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걸 보니 이런 쪽으로 재능을 타고 난 모양이었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원하는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었기에 3시간 만에 작업이 끝이 났다. 그레이스 최도 아주 만족한 표정이었다.
“철호 씨, 오늘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철호 씨는 똑같은 포즈를 취해도 다른 모델들과는 느낌이 달라. 너무 멋있어.”
그레이스 최의 칭찬에 철호는 기분이 좋았다.
스탭들도 철호가 취하는 포즈가 너무 멋졌다고 난리였다.
철호가 탈의실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고 나와 그레이스 최와 최 부장, 스탭들에게 인사하고는 스튜디오를 나섰다.
철호는 주머니 속에 넣어 놓은 핸드폰이 진동하자 받았다. 발신자 번호를 보니 정아였다.
“정아 씨!”
―오빠, 화보 촬영은 끝났어요?
“조금 전에 끝이 나서 스튜디오를 나왔어요.”
―빨리 끝났네요? 난 광고 촬영 중인데.
“언제 끝나요?”
―어쩌면 늦은 밤까지 찍어야 할지 몰라요.
“광고 촬영은 어디에서 해요?”
―여긴 압구정동의 아트 스튜디오에요.
“난 청담동이니 멀지 않은데 내가 구경 갈까요?”
―정말? 오빠가 여기 올 수 있어요?
“오늘 할 일도 없는데 구경 갈게요.”
―오빠, 그럼 오세요.
철호는 광고 촬영은 어떻게 하는지도 궁금했고 정아의 얼굴도 볼 겸 해서 택시를 타고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압구정동의 아트 스튜디오는 그레이스 최 스튜디오 보다 3배나 큰 곳이었다. 아무나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정아의 코디가 철호가 도착하면 같이 들어가려고 스튜디오 앞에 나와 있었다.
“한수진 코디님, 오랜만입니다.”
“반가워요. 철호 씨!”
“왜 나와 계신 겁니까?”
“철호 씨와 같이 들어가려고 기다리고 있었어요. 허락된 사람이 아니면 아무나 출입할 수 없거든요.”
“아…그건 몰랐었군요.”
한수진 코디와 철호는 함께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갔다.
정아는 피자 광고를 찍고 있었다. 벌써 열 판이 넘는 피자를 먹어서인지 힘들어 보였다.
정아는 구경 온 철호는 보고는 기분이 좋은지 활짝 웃었다.
“20분간 쉬었다가 다시 하겠습니다.”
촬영감독의 말에 모두들 물을 마시거나 하면서 휴식에 들어갔다.
정아가 철호에게 다가오자 생수를 건네었다.
“오빠, 고마워요.”
“한수진 코디에게서 얻은 겁니다.”
“그래도 고마워요.”
철호와 정아가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촬영감독이 다가왔다.
“정아 씨, 이분은 누구시지?”
“예, 아는 오빠인데 왜 그러세요?”
“마스크가 좋아서 말이야.”
“감독님, 그렇죠? 오빠는 휴학생인데 아르바이트로 화보 촬영을 하고 있어요.”
“그래? 어떤 화보 촬영을 했는데?”
“청담동의 그레이스 최 프로 사진작가님과 여러 번 찍었어요. 우먼파워 8월호에도 오빠의 화보 촬영이 나올 거예요. 그리고 오늘은 명품 P사의 신상 시계 메인 모델로 화보 촬영도 했어요.”
“우먼파워나 명품 P사의 메인 모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대단하십니다.”
“아…아닙니다. 운이 좋아서 하는 겁니다.”
“겸손의 말씀이군요. 우먼파워나 명품 P사의 메인 모델은 운만 좋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마침 정아와 호흡을 맞추는 보조 모델이 하나 필요한데 참여해 보는 건 어떻습니까?”
“예? 제가 말입니까?”
“예, 마침 의상도 준비되어 있으니 어떻습니까? 모델비는 드리겠습니다.”
철호는 촬영감독의 느닷없는 제안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데 정아가 같이 했으면 하는지 철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으음…제가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너무 부담가질 필요 없습니다.”
“오빠는 잘할 거예요.”
촬영감독과 정아의 말에 용기를 얻은 철호는 머리를 끄덕였다.
이렇게 하여 철호는 예정에도 없던 광고촬영에 합류하게 되었다. 철호가 의상을 갈아입고 나오자 촬영감독은 머리를 끄덕였다.
촬영감독이 의도하는 대로 철호는 자연스럽게 연출했다. 첫 촬영을 하면 실수가 많은데 철호는 그런 거 없이 경험자처럼 능숙했다.
정아는 철호와 비밀리에 사귀고 있지만 광고촬영에서도 사랑하는 연인으로 나왔다. 정아는 연기를 하고 있었지만 진짜 철호를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연기는 아주 자연스럽고 멋있었다.
촬영감독은 철호와 정아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원래 예정에는 없었던 키스 장면을 집어넣었다. 정아는 약간 부끄러워했지만 철호와 영화관에서 첫 키스를 한 적도 있었기에 속으로는 아주 좋아했다.
광고 촬영은 자정까지는 할 생각이었는데 철호와 정아가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가 되어 예정보다 일찍 밤 9시가 약간 넘어서 끝이 났다.

압구정동 고향 갈비.
지글지글!
불판에 생고기가 맛있게 익어 가고 있었다.
압구정동에서 맛 집으로 알려진 곳이기에 손님이 많은 곳이었다.
정아도 이곳에 몇 번 와 보았던 곳인데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다.
정아와 철호, 코디와 매니저 이렇게 4명이서 각종 부위별로 맛볼 수 있는 모듬구이로 시켜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코디와 매니저는 정아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기에 철호가 서로 사귀는 걸 알고 있었지만 소문이 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정아는 인기가 있지만 아직 신인이기에 스캔들은 인기에 치명적이 될 수 있었다. 그래도 철호가 워낙 멋있어서 속마음은 서로 사귀는 걸 찬성했다.
철호는 광고 촬영에 갑자기 합류하게 되었지만 촬영감독이 모델비로 5백만 원이나 주었다. 철호는 백만 원만 받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돈을 받아서 오늘 식사비는 자신이 내기로 했다.
“오빠, 여기 어때요?”
“좋네요, 고기도 연하고 맛있군요.”
“그렇죠? 나도 가끔 오는 곳이에요.”
“한수진 코디님과 매니저님, 제가 모델비를 두둑하게 받았으니 걱정 말고 마음껏 드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예, 마음껏 드십시오. 여기요, 고기 좀 더 주세요.”
넉넉하게 고기를 더 주문했기에 코디와 매니저는 좋아했다. 고기가 부드럽게 연해서 맛있었기에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어느새 시간이 자정이 다 되었다.
매니저가 철호를 개나리 빌라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기에 정아와 함께 벤을 타고 이동했다. 코디와 매니저 때문에 둘만의 대화는 나눌 수 없었지만 서로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개나리 빌라가 가까워지는데 철호의 초감각에 해골의 기운이 감지되었다.
‘허엇, 놈이 근처에 있었구나.’
이대로 개나리 빌라 앞에서 철호가 내린다면 자칫하면 정아와 일행들이 날벼락을 당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철호는 슈퍼에서 살게 있다면서 3백 미터를 더 지나쳐 길가에 벤을 멈추었다.
“철호 씨, 너무 먼 곳까지 온 거 아닙니까?”
“아닙니다. 조금 걸어서 들어가면 됩니다.”
“오빠, 오늘 잘 먹었어요.”
“다음에도 맛있는 거 사 줄게요.”
“알았어요. 오빠 안녕!”
“정아 씨, 잘 가요.”
정아의 벤이 출발하자 철호는 슈퍼에 들어가 캔 콜라를 하나 구입해 나왔다.
철호는 콜라를 마시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어떻게 연쇄 강간 살인범 해골이 자신의 개나리 빌라를 알고 인근에 숨어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혹시 어제 밤에 놈이 은밀하게 날 미행했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것 말고는 없었다.
어제 상대해 본 해골은 그리 강한 자가 아니었다.
물론 근육질의 능력자 3명을 먼저 상대하느라 지쳤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싸우더라도 자신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