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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3화)
第一章 사우(3)


새롭게 등장한 용상회, 그 뒤에는 사마련이라는 거대 단체가 있다는 걸 무림이 주목한다면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지금 즉시 준비해 줬으면 좋겠는데.”
믿기 힘들었지만 양인홍은 이때다 싶어 수하를 시켜 즉시 사우가 원하는 액수를 내놓았다.
사우는 자신이 챙길 자금을 품 안에 넣고는 작은 종이 하나를 양인홍의 앞에 내놓았다.
“이게 뭔가요.”
“거기에 적힌 곳에 유화상단 주인인 백무심의 부인이 머물고 있다더군. 어차피 제거해야 할 곳 아니었나?”
“하하. 저희도 그 정도 정보는 가지고 있습니다. 조만간 정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사우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소문은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유화상단과 사이가 좋지 않다고요.”
“…….”
사우는 말없이 문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도 도시를 떠날 듯싶은데…… 내 밑에 있는 놈들 그래도 쓸 만하다 싶으면 데려다 쓰도록 해.”
양인홍은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반박하려 했으나 사우가 다시 말을 이었다.
“마지막 충고 하나 해도 될까. 혹여 내가 그 비밀을 발설할까 괜한 쥐새끼들을 붙였다가는 내가 살려 놓은 당신 딸, 눈앞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으니 알아서 잘 판단하도록 해.”
등짝만을 본 채 들은 말이었지만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로 인해 양인홍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으아아아악!”
이른 새벽, 적황은 물고늘어지던 잠기운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날 만큼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한마디로 절규였다.
덜덜 떨리는 그의 손에는 한 장의 서찰이 쥐어져 있었다.

그동안 즐거웠다. 지금까지의 노고를 치하하기 위해 황금 오십 냥 남겨 뒀다. 그리고 앞으로는 용상회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잘 말해 놨으니 그리 알거라.

분명 빌어먹을 사우의 필체였고 이 서찰은 그놈의 방에 남겨져 있었다.
황금 오천 냥을 손에 쥔 놈이 지금까지 고생한 자신에게는 겨우 황금 오십 냥을 남겨 둔 채 떠나 버렸다.
적황은 자연스럽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린다.
“잡히면 뒤진다, 미친개 사우우!”

***
한 달 전.
“그분께서 돌아가셨습니다.”
“…….”
사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신답지 않은 농담인데.”
“사실입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데 자네 목숨을 걸 수 있나.”
사내는 사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에 몸이 움찔했다.
“어차피 주인을 잃은 수족이 사는 데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우는 눈앞에 있는 사내의 말이 진실임을 깨달았다.
슬프다거나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다만 분통이 치밀고 억울할 뿐이었다.
인간인 이상 언젠가는 죽는다.
그게 빠른 사람이 있고 늦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죽었다는 말에 가슴 한구석이 찢겨져 나가는 듯하다.
왜일까? 왜일까…….
질문을 해 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그는 자신에게 있어서 형임과 동시에 언젠가는 넘어야 할 높고 험한 산 같은 존재였다.
치기 어린 나이에 그 산을 넘어서려다 벼랑 끝으로 내몰려 떨어졌다.
목숨을 구했지만 예전의 신분은 박탈당했다.
그래서 이를 갈고 있었다.
언젠가는 그 높은 산을 넘는 것이 아니라 무너트릴 것이라고 말이다.
다짐하고 새겼던 그 마음이 이제는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누구냐.”
“천검무제(天劍武帝) 율천세(律天世)라고 그러더군요.”
“아무리 당신이라 할지라도 지금 내 기분을 안다면 확실하게 말하는 게 좋을 거야.”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내도 그것을 느꼈지만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분이 어찌 돌아가셨는지. 늘 최측근에서 보필하던 저조차도 말입니다.”
가슴에 납덩이 하나가 더 올라간 기분이었다.
“사망총(死亡塚)의 짓인가.”
“모릅니다.”
“그럼…… 용맥(龍脈)이겠군. 예전부터 본 막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으니.”
“모릅니다.”
“그럼 아수귀옥(阿修鬼獄)이겠군.”
이번에도 사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명을 재촉하는군.”
쾅!
사우의 손이 붉은 기류로 덮이더니 사내의 몸통을 가격했다.
“다시 한 번 묻겠다. 누구의 짓이냐.”
죽일 수 있었지만 참았다.
“그분께서 어찌 돌아가셨는지…… 누구의 손에 그리 싸늘한 주검이 되셨는지 저 또한 모릅니다.”
“천검무제는 알겠군.”
“누가 그분을 그리 만들었는지 안다 하더라도 지금의 당신으로는 복수를 하기 힘들 것입니다.”
사우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아직도 오 년 전의 그 핏덩이로 보이나?”
“많이 강해지셨더군요. 허나 그분에 비하면 당신은 아직도 애송이에 불과합니다.”
사내는 사우에게 밀리지 않았다.
내상을 입었을 텐데도 한마디 한마디가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다. 죽을힘을 다해 참고 있을 것이다.
“그래. 항상 그랬지. 난 죽어라 노력해도 그 녀석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이야기를 당신이 또 하는군.”
“그분은 하늘이 내리신 무골이셨습니다.”
“그래서 뒤진 거야.”
사우의 눈은 언제부터인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싸늘하게 내뱉는 그의 음성은 쉽게 녹지 않을 것같이 얼어 있었다.
사우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형이라는 존재가 얼마만큼 강한 존재인지를.
파천의 힘을 가지고 있는 그가 죽었다는 게 쉽게 믿겨지지가 않았다.
“형의 시체를 봤나.”
사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했겠지?”
“확실했습니다.”
사우는 이제 형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신의 선택은 단 하나입니다.”
“……?”
“이대로 숨죽여 사시는 것입니다. 그분을 그렇게 만든 자들이 당신의 존재를 안다면 당신은 그들의 손에 죽게 될 테니까요.”
일종의 경고였고 충고였지만 사우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발언이었다.
“자네는 날 너무나 잘 알아. 그런 자네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내 자존심을 일부러 건드리는 것일 테지. 그 녀석의 복수를 내가 직접 해 주기를 바라는 건가?”
상대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파고드는 건 누군가 가르쳐 줘서 되는 게 아니다.
사우는 그런 것을 타고났다.
“지금의 당신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형을 죽게 만든 자들을 알고 있는 눈친데.”
“마인곡(魔人谷)으로 가십시오.”
“설마 마인곡의 애송이들의 짓이라고 하지는 않겠지.”
“그들은 강합니다.”
“강하지. 당신의 눈에는 그리 보이겠지.”
“그들을 당신의 사람으로 만드십시오.”
“그게 강해지는 방법인가?”
“적어도 시작은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사우는 새하얀 이를 드러내 보이며 웃었다.
“좋아, 네놈의 장단에 놀아 주지. 재밌겠군. 형을 죽게 만든 녀석들을 찾아내는 숨바꼭질 놀이 말이야.”
섬뜩하기까지 한 사우의 미소는 사내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꺼져.”
“…….”
사내는 당장 쓰러져도 모자라지 않을 몸뚱이를 일으켰다.
“이봐, 이풍(李風).”
문 쪽으로 향하는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갈 곳은 있나.”
“그저…… 공기 좋은 곳으로 가서 낚시나 하면서 지낼 생각입니다.”
“그런가. 뭐, 이제 나와는 더 이상 볼 일이 없을 테니.”
“그럼…….”
이풍이라 불린 사내는 문을 열고 나갔다.
‘위험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천무성체(天武聖體)의 주인…… 그렇기에 그분께서 당신을 버리신 겁니다.’

***

하얗게 바랜 수염들이 가득한 얼굴의 노인은 청명한 하늘 아래 너무나 여유롭게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육체는 다 늙었지만 주름진 얼굴 틈에 자리를 잡고 있는 눈에는 아직도 총기가 가득하다.
“흠…….”
노인은 생각보다 고기들이 잡히지 않는지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인내심을 발휘해 낚싯대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사마련(邪魔聯)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가.”
노인의 뒤에는 어느새인가 검은 그림자 하나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노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의 말에 대꾸했다.
“용상회라는 상단을 조직하여 자금을 끌어모을 생각인 듯싶습니다.”
“황금의 힘은 무시할 수가 없는 것이지. 잘만 성장한다면 강남을 손에 쥐락펴락하겠군, 그래. 그 녀석은 뭐라던가.”
“조금 더 지켜보신다 하셨습니다.”
“줄타기를 잘해야 할 텐데 말이야. 앞으로는 나에게 이런 사소한 것까지 보고할 필요는 없어. 조만간 정식으로 그놈을 원주의 자리에 앉힐 거니까 말이야.”
“…….”
“불만이 많은 얼굴인데.”
“아닙니다. 그저 걱정스러울 뿐입니다.”
“나이가 어려서 말인가.”
“아직 원주께서 이렇게 건강하신데 벌써 후계자를 논한다는 게 시기상조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입에 침이나 바르고 그런 거짓말을 하게나.”
노인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검은 그림자를 물렸다.
“오랜만이구나, 싸가지.”
“건강해 보이는군.”
노인의 옆에 나타난 건 다름 아닌 사우였다.
“뭐 겉으로는 그리 보이겠지. 하지만 안은 썩어 들어가고 있지.”
“그때 그 독 때문인가.”
“네놈 덕분에 몇 년 더 살고는 있지만 완전한 해독은 불가능한 모양이야.”
“안됐군.”
눈살까지 찌푸리며 사우는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비아냥거림에 더 가까웠다.
하지만 노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뭔가.”
사우는 대답 대신 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노인의 앞에 살짝 던졌다.
“황금 오천 냥이야.”
“…….”
노인은 낚싯대에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마인곡이 어디 있는지 알아봐.”
“하하하하!”
노인은 갑작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우는 멋쩍고 민망하기도 할 터인데 떨떠름한 얼굴로 귀만 후비고 있었다.
“알아봐 줄 거야, 말 거야.”
“천하의 천기원(天氣院) 원주인 나와 독대를 하는 것만으로도 황금 오천 냥 가지고는 꿈도 못 꿀 일이지. 그 열 배 스무 배를 가지고 온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한 일이란다.”
“알아, 나도.”
“쯔쯧, 돈이 없나 보군. 내가 준 그 돈을 홀라당 탕진해 버렸나?”
“그까짓 돈 얼마나 줬다고 생색을 내고 그러지.”
“허허, 황금 십만 냥은 적은 돈이 아니란다.”
“내게는 적더군. 그때 더 챙겨 갈 걸 그랬나 봐.”
“크큭, 천기원주의 목숨을 구해 준 대가로는 소심하게 챙겨 가긴 했지.”
“그러니까 생명의 은인에게 한 번 더 은혜를 갚는다 생각하고 알아봐 줘.”
“네놈은 이 세상에서 마인곡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자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마인곡.
중원 무림에서 쫓겨난 마인들이 살고 있다는 전설상의 지역이었다.
어디에 있는지, 그곳이 북쪽인지 남쪽인지 아는 자가 전무했다.
“천기원에서 모른다면 포기하려고.”
“우리를 그동안 과대평가하고 있었군.”
“같은 말 자꾸 반복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노인은 잠시 동안 침묵을 지켰다.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이야.”
“흠…… 심각한가 보군.”
“마령호(魔靈虎)라는 독물의 독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그 녀석들 아주 작정하고 덤볐으니 말이야.”
“천기원을 먹어 치우기 위함이었나?”
“뭐, 그런 거겠지.”
“그럼 천기원의 주인이 바뀌겠군.”
“내 손자 놈.”
노인은 짧게 대꾸했다.
“그 손자 놈이 싹수가 있는 놈이라면 할애비를 좀 더 살게 해 준 나에게 뭔가 보답을 하겠지.”
노인은 사우의 말에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녀석 성깔도 보통이 아니니 조심하는 게 좋을 것이야.”
“기대하지.”
사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 대충 한 달 정도면 온몸이 썩어 문드러질 것 같은데 말이야. 죽기 전에 네놈에게 궁금한 것이 하나 있는데.”
“…….”
“도대체 네놈은 누구냐.”
“원초적인 질문이군.”
노인은 처음으로 시선을 돌려 사우를 응시했다.
“천기원의 힘으로도 네놈이 어디 출신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
“곤란한 질문은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지.”
노인은 느꼈다.
사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진득한 살기를.
그것은 일류를 넘어선 노인에게도 감당하기 벅찬 것이었다.
어차피 죽을 몸, 이 젊은 피와 한 번 붙어 보고 싶었지만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열흘이면 될 것이야.”
“다음에 부탁할 일이 있으면 그때는 당신의 손자에게 해야 하는 건가? 이름이라도 알려 주면 좋겠는데.”
“천기원주 천안도괴(天眼道怪) 하조천(何朝天)의 손자 하제량(何濟良)이 그 아이의 신분이란다.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그 녀석은 나처럼 마음이 따뜻하지 않거든.”
“충고 받아들이지.”
사우는 특유의 웃음을 보이며 노인의 곁을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