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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4화)
第二章 초미(1)
이제 곧 여름이 다가오는지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특히나 태양 빛이 정점에 다다르는 정오의 날씨는 사람을 미치게 만들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나 하루를 힘차게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리 장애를 주지 못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먹고살기 위해 일터에 머무는 자들은 그저 열심이었다.
시장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오갔고 수많은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닷 냥입니다, 손님.”
여자들이 하는 장신구를 파는 노점의 주인이 상냥한 목소리로 손님이 구입하려는 것의 가격을 불러 주었다.
“비싸네.”
“…….”
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손님으로서 느낀 자신의 감상을 짧게 표현했다.
주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밝게 웃고 있었다.
“그래도 이 주변에서는 저희 가게가 가장 가격이 저렴하답니다.”
소녀는 짙은 눈썹이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고집도 굉장해 보였다.
입고 있는 옷으로 보아 부유한 집에서 자라 온 듯 보였다.
“돈 내.”
소녀는 옆에 있는 거한에게 말하고는 자신이 정한 장신구를 가지고 옆으로 사라졌다.
주인은 어이가 없는 눈길로 소녀의 말에 반응한 거한의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딱딱한 얼굴로 계산을 치르고는 소녀를 따라갔다.
“아가씨.”
“왜.”
거한의 부르자 소녀는 쌀쌀맞게 대꾸했다.
마치 그 작은 대답 하나도 감지덕지하라는 느낌이 묻어 있었다.
“벌써…… 열흘째입니다.”
“나도 숫자는 셀 줄 알아, 하욱(何旭).”
“그럼 이제 그만 그 일은 잊으시고……!”
“잔소리할 거면 하욱 당신이나 먼저 사라져.”
“죄, 죄송합니다.”
거한의 사내는 괜히 본전도 못 찾은 것에 얼굴이 붉어졌다.
“반드시 그 미친 마귀 새끼를 잡아서 내 물건을 찾아낼 것이야.”
소녀는 손에 힘을 불끈 쥐어 가면서 의지를 불태웠다.
“련주께는 보고를 드려야 합니다. 돌아가시기로 한 날보다 한참이나 늦어서 아마 걱정하고 계실 겁니다.”
하욱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난처한 표정으로 선처를 구했다.
그러나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소녀는 그런 하욱의 말과 표정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아버지께 전해. 절대 그 물건을 찾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마귀 놈을 잡기 전까지는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아가씨……!”
애처로운 목소리를 내면서까지 소녀를 부르던 하욱은 그녀가 차갑게 숙소 입구로 향하는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
객잔의 입구를 지나던 소녀는 안에서 나오는 남자의 어깨와 부딪혔다.
신장이 남자보다 작았기에 소녀는 콧등에 사내의 어깨가 부딪친 것이다.
“초미(楚美) 아가씨!”
그 모습을 목격한 하욱이 허겁지겁 달려와 초미의 상태를 살폈다.
“으윽.”
초미는 여성들이 쉽게 내지 않는 신음 소리를 내뱉으며 코를 움켜잡은 채로 몸을 비비 꼬았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욱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어디 감히 아가씨께!”
하지만 너무나 어처구니없게도 사과를 해야 될 그 남자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는 하욱의 동공에 터벅터벅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 저!”
정말이지 하욱은 속에서 열불이 터졌다.
대충 봐도 무림인 같지 않아서 손을 쓰지 않은 것이지 조금이라도 무림인처럼 보였다면 출수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리는 없었다.
“저 녀석 나에게로 데리고 와, 하욱.”
“알겠습니다, 아가씨.”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초미는 씩씩거리며 자신에게 아픔을 안겨 준 파렴치한 남자를 데리고 올 것을 명령했다.
하욱의 몸놀림은 덩치와 맞지 않게 재빨랐다.
순식간에 초미와 부딪친 자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이봐, 젊은이.”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는 꽤나 음산했다.
휘익.
빡!
워낙 빨랐기에 하욱은 자신의 턱이 누군가에게 맞아 돌아간 것을 늦게 깨달았다.
턱이 돌아감과 동시에 상대의 발목이 하욱의 허벅지를 강타했다.
“크윽!”
마치 쇠로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고통이 밀려왔다.
하욱은 순간적으로 이 남자가 무림인인데다가 자신보다 높은 경지에 올랐다는 걸 직감했다.
이런 촌구석에서 만나기에는 거물이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욱 본인의 무공 경지는 중원에서 일류에 속하고 있다는 데 일절 의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콰악!
억센 손길이 목줄기를 움켜쥐고는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조심해라, 형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으니까 말이다.”
하욱의 목을 조르고 있는 이는 놀랍게도 사우였다.
“커억!”
목이 졸려 말은 나오지 않고 대신에 격한 비명만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당장이라도 숨통이 끊어질 것 같은 고통에 너무나 힘이 들었다.
퍼억.
사우는 상대가 위험해지기 바로 직전에 복부를 걷어차며 땅바닥에 내리꽂아 버렸다.
그러고는 미련을 두지 않고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
“지금 장난치는 거야, 하욱?”
겨우 숨통이 트여 헉헉거리며 거칠게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하욱에게 초미가 다가와 코웃음을 쳤다.
자신보다 훨씬 작은 덩치를 가진 남자에게 패대기쳐지는 모습이 너무나 볼썽사나웠다.
“무림인 같지는 않던데.”
초미가 군중들 속으로 사라져 가는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무공을 익힌 자입니다, 아가씨.”
“강해?”
“예.”
하욱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상대에게 당한 것이 얼마만인지 몰랐다. 그만큼 방금 저 사내는 충분히 하욱에게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본련의 오호장(五虎將) 중 하나인 권호가 이렇게 당하는 건 나도 처음 보네.”
초미가 흥미롭다는 듯 중얼거리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방긋 웃었다.
“배고프니까, 우리 밥 먹자!”
코가 아프다고 징징 짜던 조금 전과는 달리 초미는 잘도 웃고 있었다.
그것이 자존심에 상처가 난 자신을 위로하는 차원에 일부러 행동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욱은 몸을 일으키더니 마주 웃었다.
“그나저나 이 마귀 새끼를 어디 가서 잡지?”
초미는 작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성인들도 버거운 양의 음식들을 모조리 먹어 치웠다.
배가 두둑해지자 한껏 따스해진 표정이 되어 버렸다.
“저와 아가씨의 힘만으로는 조금 힘들 듯싶습니다.”
초미의 눈치를 보며 하욱이 말을 꺼냈다.
“아버지한테 보고하자는 말을 꺼낼 거면 시작도 하지 마.”
냉랭한 목소리 때문에 하욱은 그만 입을 다물었다.
“일단은 가진 돈으로 이 동네 유명한 곳에 의뢰를 하자.”
“정보를 구하자는 건가요?”
“뭐, 그런 셈이지. 왜 불만이야?”
“아닙니다. 하지만 생돈 날릴 바에야 본련의 힘을……!”
하욱은 하던 말을 끝내 잇지 못했다. 초미가 아주 불쾌한 얼굴로 가녀린 손가락을 자신의 입에 가져다 댔기 때문이다.
“내 꿈이 뭐라고 했지?”
“련주님으로부터의 독립이라 하셨습니다.”
“그런 내 큰 포부를 밝힌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의 손을 빌리면 되겠어?”
“…….”
하욱은 아무란 반박의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녀의 고집은 세상 그 누구도 꺾을 수가 없었다.
초미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켜봐 온 하욱이 확신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녀가 진정으로 화를 내는 일 중 하나가 가지고 싶은 물건을 갖지 못할 때와 자신이 아끼는 물건을 남에게 빼앗겼을 때였다.
지금 그녀가 찾아 헤매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초미의 물건을 빼앗아 가 버렸다.
목숨과도 바꾸지 않을 만큼 아끼는 물건이 그것이었다.
오 년 전 오랜 시간 앓아 오다 지병으로 인해 세상을 떠난 초미의 모친이 남기고 간 유품이 빼앗긴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 물건을 빼앗긴 것은 바로 열흘 전이었다.
모친의 기일이라 호남성 쪽으로 오던 중 갑작스럽게 등장한 괴인으로부터 기습을 받았었다.
인적이 드문 길인데다가 불시에 받은 공격이었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하욱의 힘으로는 괴인의 공격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도시로 내려와 소문을 들어 보니 요 근래 호남성 일대를 누비는 마인 하나가 출몰한 것이 유명한 상황이었다.
핏빛 무복에 같은 색으로 칠해진 한 자루 도를 들고 다니며 살인을 일삼는 마인인데 지닌바 무공의 경지가 높아 높은 현상금이 걸렸음에도 잡히지 않는다고 들었다.
초미 모친의 유품을 빼앗아 간 녀석과 용모가 아주 흡사했다.
초미의 성격상 그 마인을 잡아야만 했다. 그리고 응징을 한 뒤 자신의 물건을 찾아와야만 했다.
그래야만 이 소녀는 발을 뻗고 편히 잠을 자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집쟁이 아가씨는 편한 길을 놔두고 어려운 길을 돌고 돌아 가려고 한다.
중원 무림 그 어느 곳도 함부로 하지 못할 단체의 수장이 바로 초미의 부친이었다.
그런 부친의 힘을 빌린다면 마인 하나쯤이야 손쉽게 잡아 낼 수 있을 터인데 그렇게는 죽어도 하지 않겠다고 한다.
‘미치겠군.’
하욱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난 좀 쉬고 있을 테니 하욱은 이 근처에서 유명한 정보 단체를 좀 알아봐 줘.”
“혼자 말입니까?”
“나 피곤하다는 말 못 들었어?”
“알겠……습니다.”
수행원이 아니라 완전 수발드는 하인이나 다름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