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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5화)
第二章 초미(2)
하욱은 바로 객잔을 나와 도시 일대를 샅샅이 뒤져 가며 적당한 곳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풍림방(風林幇)이라.”
저녁노을이 질 때쯤 하욱의 발걸음이 멈춰 세워졌다. 그의 앞에는 낡지만 고풍스러운 현판이 걸려 있었고 그 이름은 풍림방이라 적혀 있었다.
“아직도 그 녀석이 운영하고 있으려나.”
풍림방이라는 곳은 예전부터 알고 있던 곳이었다.
게다가 그곳을 운영하는 주인과도 안면이 있고 말이다. 하지만 호남성으로 온 것에 대해서는 금시초문이었기에 긴가민가했다.
뒷골목에서 수소문해 보니 이곳이 그나마 가장 나을 것이라고 하여 찾아온 것이다.
하욱은 건물 안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
헌데 좁디좁은 실내에는 사람이 없었다.
좀 더 확실하게 표현하자면 제대로 정신을 차리고 몸도 멀쩡하게 서 있는 자들이 없다고 하는 게 정확했다.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이빨 사이로 뱉어 내면서 새우처럼 등짝이 휜 상태로 자빠져 있는 이들이 다섯이나 되었다.
하욱으로서는 놀랄 만한 상황이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봤다.
반쯤 떨어져 나간 문짝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끄아아악!”
아마 쇠꼬챙이로 거시기를 맞았다고 하더라도 이처럼 처절한 비명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남성의 목소리로 추정되는 괴음이 문짝 안에서 흘러나왔다.
하욱은 조심스럽게 목을 안쪽으로 밀어 넣고는 상황을 살폈다.
“곡양풍(曲陽豊)?”
중년의 남성이 새파랗게 어린 젊은이에게 팔이 꺾여 나무 바닥과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이 하욱의 시선에 잡혔다.
그 중년인은 그가 예전에 알고 있던 풍림방의 주인 곡양풍이라는 자였다.
그 모습이 꽤나 볼썽사나웠는지 하욱의 입에서 혀를 차는 소리가 나와 버렸다.
“누구냐.”
곡양풍의 팔을 휘어잡고 있던 젊은이가 기척을 느꼈는지 하욱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하욱은 젊은이가 바로 얼마 전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다 준 사내라는 걸 눈치챘다.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궁금증이 일어났다.
도대체 저 사내가 왜 풍림방을 이토록 초토화시켜 놨는지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하욱? 자네 하욱 맞는가?”
곡양풍이 고통스러운지 인상을 일그러트리며 하욱을 알아봤다.
“그래, 자네가 알고 있는 그 하욱 맞네.”
“아…… 하하하! 이제 되었네. 어서 이 미친 자식을 좀 어떻게 해 주게!”
저승사자를 보고 놀랐다가 신선에게 도움을 기대하는 표정이 곡양풍의 얼굴에서 숨김없이 드러났다.
“시끄러워, 이 대머리야.”
곡양풍은 나이에 비해 머리가 일찍 까진 남자였다.
그런 그의 머리를 젊은 사내가 짓밟았다.
“이 녀석에게 볼일이 있냐.”
“…….”
하욱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젊은 사내, 사우는 눈살을 찌푸렸다.
“없으면 그만 꺼지고 있다면 조금 뒤에 와.”
그의 얼굴이나 목소리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배어 나와 하대가 당연하게 느껴졌다.
설사 하대에 기분이 나빴다 해도 일단은 이 꼴사나운 상황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공자께서 무슨 일로 이 친구에게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그만 화를 푸시고 말로써 일을 진행시키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공자는 개뿔! 크윽!”
곡양풍이 공자라는 단어에 발끈하여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밟히고 말았다.
하욱으로서는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고 사우에게 말을 건넨 것이다. 그의 신분으로 생각한다면 너무나 예의가 배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상대를 잘못 골랐다.
바로 조금 전 있었던 첫 만남이 결코 거짓이거나 꿈이 아니었다.
젊은 사내는 하욱의 말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있을 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건 한 가지야. 혈귀도마(血鬼刀魔) 그 새끼 어디 있는지 알아내는 거.”
“혈귀도마?”
하욱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리자 곡양풍이 빽 소리를 질렀다.
“돈을 지불해야지, 이 날도둑놈 같은 자식아!”
“이자 쳐서 나중에 준다고 했잖아.”
너무나 태연하게 외상을 하겠다는 사우를 보며 하욱은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깡으로 저런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하기가 힘이 들었다.
‘답이 없군.’
“야 이 미친놈아! 내가 널 오늘 처음 봤는데 어찌 믿느냔 말이다!”
곡양풍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갑자기 새파랗게 젊은 놈이 들어오더니 일하는 부하들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혈귀도마라는 별호를 가진 마인을 찾아 달라는 것이었다.
“미친개 사우, 몰라?”
“……!”
곡양풍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크게 벌렸다.
“설마 그 사우?”
호남성으로 내려와 터를 잡을 때 조심해야 할 인물 첫 번째로 귀가 따갑게 듣던 자가 바로 이 미친놈이라는 것에 기가 막혔다.
만약 정말로 이놈이 그 사우라면 지금의 상황이나 지금까지의 말투와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그만큼 악명이 높았던 것이다.
한마디로 곡양풍으로서는 코 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혈귀도마가 누군데 그러나.”
“왜 있잖나. 요새 호남성 일대를 휘젓고 다니는 살인마 말이야.”
하욱은 사우라는 사내가 찾는 인물이 자신과 초미가 잡아야 하는 인물과 동일인물이라는 것에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묘한 우연의 일치였다.
순간 하욱의 뇌리에 무엇인가가 반짝 스쳐 지나갔다.
“일단 제대로 앉아서 얘기를 나누심이 어떠시겠습니까.”
현재까지의 대화는 모두 하욱이 처음 들어와서 본 그대로의 상태였다.
변한 것은 없었다.
여전히 곡양풍은 엎어져서 사우의 발아래 머리가 밟혀 있었다.
하욱의 정중한 제안에도 불구하고 사우는 요지부동이었다.
“혈귀도마 어디 있냐.”
“돈을 내지 않으면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곡양풍도 고집이 상당한 인물이었다.
고집이라기보다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소신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원하는 금액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절대로 공정한 거래가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불문율이었다.
“네놈의 팔을 부러트릴 것이다.”
사우의 협박에도 곡양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해볼 테면 해보라는 태도였다.
사우는 그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피식 웃으며 서서히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돈 제가 지불해도 되겠습니까.”
조금만 힘이 들어갔다면 곡양풍의 팔은 다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하욱에게로 동시에 꽂혔다.
“저도 그 혈귀도마라는 자를 잡아야 하니까 말이죠.”
“그러니까…… 이 계집애와 같이 동행을 해야 한다?”
사우는 볼을 긁적이며 초미를 게슴츠레한 눈길로 바라봤다.
“말씀이 좀 지나치십니다, 공자. 이분은 제가 모시는 아가씨입니다.”
계집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는지 하욱이 목소리에 살짝 힘을 주며 말했다.
“내가 모시는 아가씨가 아니잖아.”
“…….”
그렇게 말하니 또 받아칠 말이 없었다.
“난…… 잘생긴 사람이 좋은데, 하욱.”
초미가 사우의 얼굴을 뚫어지게 보다가 한마디 던졌다.
“후우. 아가씨.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그러냐. 꼬마야? 나도 너같이 심심하게 생긴 계집애는 별로거든.”
사우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흠, 목소리도 마음에 들지 않아, 하욱.”
초미는 정말로 사우가 마음에 차지 않는 눈치였다.
마치 길을 걷다 개가 싼 똥을 목격한 표정이랄까.
사실 사우의 얼굴은 초미가 투덜거릴 정도로 못난 편이 아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이목구비도 뚜렷한 것이 꽤나 잘난 용모였다.
“죄송합니다, 공자. 아가씨께서 악의가 있어서 그러시는 게 아니니 이해해 주십시오.”
“하욱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괜찮아. 이해하지. 원래 생긴 게 안 되는 것들은 성격도 모나거든. 같이 다니기 피곤하겠어.”
사우는 그렇게 말하며 하욱을 불쌍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그의 어깨를 툭툭 토닥여 줬다.
“하욱! 나 정말 이 사람 싫다니까!”
“아, 아. 다시 말하지만 나도 너 같은 계집은 질색이다. 내 취향이 아니야.”
처음이었다.
초미의 말에 이렇게까지 따박따박 말을 받아치는 사람은. 그렇기에 이 신경전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전혀 파악되지 않았다.
하욱은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
곡양풍은 빠르게 걷던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친개 사우라니.’
자신의 팔을 부러트리려 자세를 잡았던 자가 사우라는 사실에 그는 굉장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뿐만 아니라 그가 사우라는 걸 알고 난 사흘 동안은 심장이 쿵쾅거리는 게 기분이 묘했다.
그가 풍림방의 거처를 섬서성에서 호남성으로 이전을 하자마자 이 업계에서 들은 가장 첫 한마디가 사우라는 놈을 조심해라였다.
오 년 전 호남성으로 처음 온 사우는 어린 나이였지만 어디서 횡재를 했는지 엄청난 재력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와 더불어 개 같은 성격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양한 감정 기복이 말 그대로 미친개라는 별명이 너무나 어울렸다.
곡양풍은 유화상단이라는 곳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는 꽤나 유명했다.
웬만하면 상인들과는 마찰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들은 돈 계산이 철저하며 신뢰를 잃거나 자신들이 소속되어 있는 단체에 이익을 주지 못했을 때의 보복이 너무나 지독했다.
그런 유화상단의 셋째 아들인 백무연과 사우라는 자가 맞붙은 것은 사우가 호남성에 온 지 열흘째였다고 들었다.
그 두 사람이 거주하는 곳에서 가장 유명한 술집에서 사우의 패거리와 백무연의 수하들이 시비가 붙었던 것이다.
당연히 백무연의 수하들은 체계적인 무예 수련을 받은 자들이라 사우 패거리가 머릿수는 많았지만 일방적으로 얻어터질 수밖에 없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우는 처음으로 주먹을 썼고 놀랍게도 일곱 명이라는 적지 않은 상단의 무인들을 때려눕혔다.
그리고 그들의 우두머리인 백무연의 머리를 더러운 오물을 담아 두는 통에 수차례 반복적으로 박아 넣는 것으로 보복을 마쳤다.
한마디로 죽으려고 환장한 짓이나 다름이 없었다.
유화상단의 주인인 백무심이 평소 백무연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 않았다면 그의 목숨은 이미 그때 끊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백무심이 아들이 그런 꼴을 당하고 왔는데도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일개 상단이 보유하고 있기에는 꽤나 많은 수의 무인들을 대동한 채 사우가 머무는 대장원으로 쳐들어가 보복을 감행하려 했었다.
헌데 한낱 파락호 같은 놈이라 여겼던 그가 장원 안에 수많은 기관진식을 깔아 놓을 것을 그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덕분에 절반 이상의 무인들을 잃은 백무심은 수하들을 데리고 다시 유화상단으로 되돌아와야만 했다는 이야기는 그 일대에서 너무나 유명했다.
그 이후로 백무연과 사우는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거렸고 틈만 나면 유화상단에서 살수를 보내어 사우를 죽이려 들었지만 실패만 거듭했다.
곡양풍은 지금 자신이 그런 미친개 사우를 만나러 가고 있다는 사실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걸려도 하필 그런 놈에게 걸렸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생각보다 늦었군.”
약속된 장소에 가니 하욱과 어린 소녀 한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헌데 사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곡양풍이 하욱의 맞은편에 앉았다.
“인사하게, 뫼시고 있는 초미 아가씨일세.”
곡양풍은 살짝 초미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며 인사를 했고 초미도 그런 그의 태도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곡양풍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있었지만 크게 두려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자들만이 부리는 기개라고나 할까.
“그래, 찾았나?”
“그놈이 내 수하들을 반 죽여 놨기 때문에 애 좀 먹었지. 발 빠른 아이들을 구해서 알아봤는데 말이야. 호남성 일대를 설치고 다니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이동 경로를 보면 너무 불규칙하단 말이지.”
곡양풍은 품속에서 지도를 꺼내어 펼쳤다.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사우는 어디 있나.”
왠지 나타나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였다.
“내가 보고 싶었나 보네.”
곡양풍의 어깨를 토닥이며 아무런 인기척도 없이 사우가 나타났다.
덕분에 곡양풍은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공자께서는 큰일을 보고 오셨네.”
“큰일?”
황급히 화제를 돌려 준 하욱에게 속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면서 곡양풍은 되물었다.
“똥 싸고 왔다고.”
큰일에 대해서 못 알아들은 곡양풍을 위해 사우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 줬다.
초미는 불쾌한 얼굴을 하면서 코를 막는 시늉을 해 보였다.
“넌 똥 안 싸냐.”
대놓고 코를 막아 보이는 초미를 보며 민망한지 사우가 어울리지 않게 헛기침을 하며 곡양풍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더니 이내 곡양풍이 펼친 지도를 빼앗아 들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보기 시작했다.
“발바리같이 잘도 싸돌아다니네.”
지도에는 붉은색 줄로 혈귀도마가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냈던 장소들이 그려져 있었다.
“그래서 중요한 건 지금 이놈이 어디쯤 있냐는 건데.”
“그게…… 사실 애매합니다.”
“애매해?”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문을 분석해 보면 호남성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니면 지금쯤 동정호(洞庭湖)를 향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장 근거 있는 이야기들이기에 말하는 거겠지?”
“물론입니다. 자, 보십시오. 지금 현재로서는 혈귀도마가 모습을 드러낸 자리들을 보면 작건 크건 간에 강줄기가 흐르는 곳입니다.”
곡양풍은 자신 있게 말했다.
사우의 눈빛이 반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