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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6화)
第二章 초미(3)


곡양풍의 말대로 빨간 줄이 그어진 곳들을 살펴보면 그 주변은 포구들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사우가 마치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 지도를 하욱에게 보여 주며 물었다. 표정은 시큰둥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가씨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난 그런 거 모르니까 하욱이 빨리 결정해. 벌써 한 자리에서 사흘이나 보냈으니 시간이 없어.”
초미는 혈귀도마가 더 멀리 도망가기 전에 잡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아마 동정호로 향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는 것이 좋을 듯싶네.”
곡양풍의 제안에 하욱은 심각하게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동정호로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있는 곳과 아주 멀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곳은 수적들이 집단으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장강수로십팔채라고 사람들이 부르고 있는 집단이기도 했다.
“흠……!”
심각한 얼굴로 고민을 하는 가운데 앞자리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벌떡 일어섰다.
“출발하지.”
“……!”
하욱이 어처구니없다는 눈길로 사우를 올려다봤다.
“뭐 해, 일어서지 않고. 어이, 꼬마. 너도 일어나자. 목적지가 정해졌으니 빨리 움직이자고.”
초미는 이번에 사우의 말에 별다른 토를 달지 않고 순순히 일어섰다. 그녀 또한 하루라도 빨리 어머니의 유품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싫지만 저 남자의 도움이 필요했다. 자신은 무공을 익히지 않아서 힘들고, 반면 하욱은 무공을 익혔지만 저 정체 모를 남자에게도 꿇리니 아무런 힘이 없었다.
마침 저 사내도 혈귀도마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하니 웬만하면 저 사내의 의견을 따를 참이었다.
그 빌어먹을 혈귀도마를 잡기 위해서 말이다.
하욱은 결국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떠나기 전 곡양풍에게 의뢰비를 지불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말이다.
멀어져 가는 이남 일녀의 등을 바라보며 곡양풍은 금방이라도 악몽에서 깨어난 표정으로 이죽거리고 웃고 있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곡양풍과 헤어진 그날 사우와 하욱, 초미는 바로 출발하지 못했다. 이번에 도시를 떠나면 당분간은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할 시간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사우와 초미가 하욱의 의견을 묵살하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하욱이 바득바득 우겨서 늦은 저녁에 출발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물품은 하욱이 홀로 돌아다니며 구하기로 했다. 초미를 사우와 단둘이 있게 하는 게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각처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이들이 있었기에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사실 초미의 부친이 거느리는 세력이 가지고 있는 독자적인 정보 조직을 이용하면 혈귀도마를 찾을 수도 있었다.
허나 초미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이를 통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했다. 뭐, 마음만 먹는다면 속일 수도 있었겠지만 친조카와도 같은 그녀를 속인다는 건 남자로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시늉으로 끝내지 않고 하욱이 풍림방을 직접 찾은 건 실제로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고수로 여겨지는 사우를 끌어들이는 성과를 올리기도 하였고 말이다.
“천기원주가 죽었다고?”
“예, 그렇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뒷골목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그 가운데 하욱은 누군가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언제 죽었지.”
“사나흘 된 것 같습니다.”
“여우 같은 늙은이, 목숨 한번 질기군.”
초미와 사우의 앞에서 보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하욱이었다.
“마령호에게 물려 독에 중독되고도 오 년이나 버티다니 말이야.”
“련주께서 아주 기뻐하셨답니다.”
“그러시겠지. 하지만 제대로 천기원을 먹어 치우기 위해서는 아직 멀었어. 그래, 하조천의 뒤를 잇는 놈이 누구라더냐.”
“그의 손자인 하제량이라고 들었습니다.”
“하제량?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군.”
“지금 그에 대해서 모든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고 합니다. 허나 아시다시피 천기원에 소속된 자들의 신상은 알아내기가 워낙 힘이 든지라.”
“모르지 않지. 천기원주를 찾아낸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 필요했었으니까 말이야.”
하욱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
“수왕(水王)에게 직접 전하거라. 무슨 일이 있어도 혈귀도마라는 그 마인을 찾아내서 절대로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으라고.”
“수왕에게 직접 말입니까.”
“힘들다는 것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천기원주가 죽었으니 나도, 그리고 초미 아가씨도 본련으로 돌아가야 하니 그렇게 하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보고를 하던 사내가 사라지자 하욱도 천천히 어둠 속에서 나와 분주히 사우와 초미가 기다리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혈귀도마는 왜 찾으려고 그러냐.”
“계집애가 예의가 없구나.”
그녀답지 않게 진지하게 물었지만 사우는 콧방귀를 꼈다. 다른 이들에게 반말은 많이 하지만 자신보다 어린아이에게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영 아니었다.
여자만 아니었으면 당장 얼굴로 손이 갔을 것이었다.
“그쪽이나 아무한테 반말 좀 찍찍 내뱉지 말지. 우리 하욱이 몇 살인지 알아?”
“생긴 거 보니까 꽤 많아 보이던데. 중요한 건 별로 궁금하지 않다는 것이지.”
사우는 조금 늦네, 라고 중얼거리다가 초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는 너는 혈귀도마를 왜 찾으러 가냐.”
“내가 먼저 물어보지 않았나?”
“흠, 그런가? 그 녀석에게 물어볼 말이 있거든.”
“물어볼 말?”
사우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초미에게 자신이 대답해 준 것을 빌미로 왜 혈귀도마를 찾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빌어먹을 천기원주.’
대신 그는 다른 이를 씹고 있었다.
바로 천기원주 하조천이 자신의 돈을 꿀꺽 삼켰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그런 짓을 할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런 치졸할 짓을 할 정도로 돈이 없거나 철이 없는 인물이 아니었다.
분명 마인곡을 찾아 달라고 의뢰한 날, 열흘이면 알아봐 주겠노라고 말했었다.
그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삼 일이면 자신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소식이 전해져야만 했다. 그게 천기원주 하조천이 사우와 거래를 하던 방식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천기원주는 자신에게 아무런 소식도 전해 주지 않았다.
사우는 그의 신변에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분명 그날 봤을 때는 제 목숨이 한 달은 갈 거라 말했었다. 사우 본인이 봤을 때도 그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분명히 하조천은 죽었어.’
사우는 그렇게 확신했다.
마령호의 독에 중독된 하조천을 구한 건, 사우 본인이었다.
마령호에 대해서 지식이 있었고 자신의 내력이면 독을 모조리 몰아낼 수도 있었지만 그를 만났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사우를 만난 덕에 그는 몇 년을 더 살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우였다. 분명 그는 며칠 만에 죽을 몸이 아니었다.
필히 누군가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 확실했다.
‘후우.’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거나 하는 그저 그런 사소한 감정에서 나오는 한숨이 아니었다. 그저 제 돈이 아까웠을 뿐이리라.
겨우 모은 돈 황금 오천 냥을 생으로 날려 버렸으니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혈귀도마를 잡으려 하게 된 건 아주 우연치 않게 흘려들은 이야기 덕분이었다.
호남성 일대에 갑자기 나타난 마인인 혈귀도마가 그 전설상의 마인곡에서 튀어나온 게 아닌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순간부터였다.
그 뒤로 머릿속을 지배하는 건 오로지 그 미친 자식을 잡아 마인곡을 찾는 것뿐이었다. 신빙성이 없는 이야기도 아닐뿐더러 혈귀도마는 마인곡에서 나온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사우는 세상 그 누구보다 마인곡이라는 곳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고향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린 시절 동네 시장처럼 자주 들락거리던 장소였다.
우습지만 그런 곳을 제 발로 찾아가지 못하는 건 그만큼 신비스러운 공간에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고 낯선 자들의 발길을 허용치 않는 성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으로 마인곡에서 나왔을 때는 불과 여덟 살이었으니 정확하게 장소를 알고 있는 것이 말도 되지 않았다.
사우가 알기로는 마인곡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진 지는 벌써 이백여 년이 훌쩍 넘었다고 들었다.
당시 중원 천지는 마공을 익히고 스스로 그 마공에 사로잡혀 살생을 밥 먹듯이 하며 악행을 끼치는 마인들이 활개를 치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마인들의 악행이 그 정점을 향해 치달리는 가운데 나타난 사람이 바로 화월선자(花月仙子)라는 자였다.
그는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경지에 있었다고 했다. 마인들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은 그에게 모두 모여들었고, 그 숫자가 성 하나를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인원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화월선자는 혼자의 힘만으로 마인들을 어느 한 곳에 묶어 버렸다.
그곳이 바로 마인곡의 탄생이었다.
기관진식에 능통한 자들 일백 명과 함께 그들이 다시는 밖으로 나타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뒤로 지금까지 마인곡에서는 그 누구도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하지만 사우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제아무리 강력한 기관들을 설치했다고는 하더라도 벌써 이백 년이나 지났고 깨져도 골백번 깨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다녀왔습니다.”
기다리던 하욱이 도착하자 사우는 혼자만의 상념에서 깨어났다.
“왜 이렇게 늦었어.”
“죄송합니다, 아가씨. 자, 그럼 출발하시죠.”
사우는 잠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귀찮게 일행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필요한 정보도 이미 귀에 담은 상황에서 굳이 함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이다.
괜히 방해만 될 듯싶었다.
하지만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혈귀도마가 북으로 계속 전진한다면 찾는 일이 쉽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수중에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도둑질을 하자니 쪽이 팔리는 일이고, 결과적으로 돈줄을 하나 잡았다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한 일인지도 몰랐다.
꼬마 계집아이가 건방지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한 수준이니 괜찮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그것이 쭉 갈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