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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8화)
第三章 혈귀도마(血鬼刀魔) 대찰영(大刹影)(2)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몸이 춥지는 않았기에 실내라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하지만 차마 자신이 정신이 들었다는 걸 드러낼 수는 없었다.
‘쪽팔려!’
대찰영은 자신도 모르게 이를 악다물었다.
무공을 배우고 연마한 지는 불과 이 년이 채 되지 않았다. 허나 대찰영의 무공 수위는 일류에 다다라 있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그가 익힌 마공의 특성 때문이었다.
몸 안에 내공이 없는 자에게 일 갑자 이상의 공력이 생기게 되고 노력 여하에 따라 그 두 배, 세 배의 힘을 얻을 수 있게 되는 마공이었다.
투살기(透殺氣)!
누가 창안해 낸 내공법인지는 모르겠지만 투살기는 마공이라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는 그런 내공심법이었다.
어쨌든 그런 대단한 것을 익힌 자신이 한낱 어린놈의 주먹질 한 방에 기절을 했으니 마존이 아는 날에는 수년 동안 놀림 받을 거리가 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대찰영은 자신을 이렇게 눕혀 버린 젊은 놈이 평범한 자는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감각은 이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피해라, 도망쳐라, 위험하다, 라고 말이다.
“야, 야!”
누군가 자신의 다리를 툭툭 건드리기 시작했다.
‘설마.’
자신을 이렇게 만든 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아찔해졌다. 그 녀석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느끼니 심장이 갑자기 빠르게 쿵쾅거린다.
“정신 챙긴 거 알고 있으니까 그만 일어나라.”
대찰영은 그 음성이 악마의 그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소름이 끼쳤다. 왜 무슨 이유로 그러한지는 머리로 판단을 내리기는 힘이 들었다.
“지금 내 손에 쇠몽둥이가 하나 들려 있는데 말이다. 내가 셋을 세기 전까지 눈을 뜨지 않으면 네놈의 거기를 후려칠 테니…….”
사우가 거기까지 말했을 때 대찰영의 상체는 정확히 직각으로 세워졌다.
정말로 협박이 아닌, 이놈은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일어난 것이다.
대찰영이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한 사우는 실내의 문을 열고 밖에서 누군가를 불렀다.
사우의 부름에 들어온 이들은 하욱과 초미였다.
“깨어나셨군요. 걱정이 많았습니다.”
하욱이 먼저 인사치레를 건넸다.
대찰영은 하욱을 살핀 다음 초미를, 그다음에는 사우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사우에게 시선이 닿았을 적에는 눈썹이 일그러졌다.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무명소졸인 하욱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제가 모시는 초미 아가씨입니다.”
대찰영은 다시금 하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육 척은 넘어 보일 듯한 장신의 사내를 올려다보니 목이 뻐근하다.
얼굴 생김새는 산적 두목같이 생겼는데 말투는 굉장히 정중하다는 게 꽤나 특이한 점이었다.
“초미 아가씨를 포함해 저희 일행이 대협께 실수를 범한 점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를 해 주십시오.”
“…….”
하욱이 직접 고개를 숙였다.
대찰영은 눈만 껌뻑거릴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갑자기 생각난 것이 있는지 입을 열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요?”
“악양(岳陽)입니다.”
대찰영의 눈이 뒤집혀졌다. 분명 놀라서 그런 것이다.
악양이라면 자신이 호북성으로 넘어가기 전 잠시 쉬어 가려던 곳이었고 타고 있었던 배의 목적지도 악양이었다.
그런데 그 소요 시간이 하루 반나절에서 늦으면 이틀이었다.
그 시간 동안 자신이 기절해 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먹은 것이다. 겨우 주먹질 한 방에 말이다.
대찰영은 그럴 리 없다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넋이 나간 얼굴을 한 채로 말이다.
“저희 일행이신 사우 공자께서 직접 사과를 드릴 것입니다.”
하욱의 시선이 사우에게로 날카롭게 쏘아졌다.
사우는 그의 눈빛을 피하면서 얼굴을 구겼다.
“미안하다. 내 성격이 워낙 지랄맞아서.”
“어휴.”
하욱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터져 나왔다. 저것도 사과라고 하고 있는 저 인간이 일행이라는 점이 답답했다.
허나 사과를 받는 당사자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혹여 자신이 기절한 이후에 충격으로 마성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허나 그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자신이 한번 마정에 젖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막을 수 있는 자는 전무한 것이 사실이었다.
아마도 배가 침몰했을 것이 분명했다.
“알, 알겠소. 조금 쉬고 싶으니 그만 방에서 나가 주십시오.”
그가 이렇게 사과를 쉽게 받아 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일행은 당황스러웠지만 축객령에 그만 방을 나왔다.
사우와 하욱, 초미는 대찰영의 방에서 나와 자신들의 거처로 향했다.
그리고 둥근 탁자에 셋이 앉았다.
“당장이라도 내 물건을 찾고 싶어 혼났어.”
초미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투덜거렸다.
“잘 참으셨습니다, 아가씨. 그놈은 마공을 익힌 놈입니다. 함부로 건드렸다가는 배 위에서처럼 말썽을 부릴 게 분명합니다.”
하욱은 사실 대찰영과 이야기를 나눌 때 가장 첫 번째로 걱정이 되었던 건 초미였다. 그녀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혹시라도 그녀가 화를 참지 못하거나 표정 변화가 생길까 걱정이 많았다.
하욱은 사우의 얼굴을 힐끔 쳐다봤다.
그의 정체가 너무나 궁금해졌다. 한편으로는 그가 무섭기까지 했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 특히나 무림이라는 곳은 기인이사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사우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는 그런 존재였다.
자신보다 강하다는 건 이미 경험을 해 봤지만 실제 그의 무공은 상상 이상이었다. 특히 배 위에서 대찰영이 폭주를 일으켰을 때는 눈앞이 캄캄했었다.
짙은 마기는 세상을 뒤덮을 것만 같았다.
범상치 않은 그 기운을 막은 건 다름 아닌 사우였다. 하욱은 단언할 수 있었다. 대찰영이 마성에 빠졌을 때 느꼈던 공포는 자신의 주인을 처음 대면했을 때와 똑같았다는 것을.
중원 무림에서 강하기로 따지면 스무 명 안에 들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 바로 자신의 주인임을 상기했을 때 대찰영의 무공은 배 위에 있던 이들의 목숨을 모조리 앗아 갈 힘이 있었다.
그런데 주먹패 우두머리를 했다는 이 젊은 사내는 그런 대찰영을 때려눕힌 것이다.
아직도 대찰영이 폭주할 당시를 떠올리면 소름이 끼치는 하욱이었다.
“얼굴 닳겠다.”
“아, 죄송합니다.”
몰래 훔쳐봤다고는 하지만 딴생각을 하느라 자신의 시선이 사우를 적나라하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
하지만 사우는 하욱에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을 또랑또랑한 눈길로 쳐다보는 초미에게 한 말이었다.
“당신, 정체가 뭐야.”
당돌한 질문이었고 어찌 들으면 예의에 어긋나는 종류였다. 하지만 사우나 초미나 그런 겉으로 드러나는 예법을 중요시하는 자들이 아니었기에 서로 얼굴을 붉힐 일은 없었다.
사우는 당황하지도 불쾌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입가를 말아 올릴 뿐이었다.
대답을 하지 않겠다는 무언의 의미였다.
“저자…… 위험한 사내입니다.”
“호남성 일대에서는 현상금까지 걸려 있다지?”
“그래서인지 주변의 거치적거리는 자들이 따르는 듯싶습니다.”
사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뜻 모를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혈귀도마를 쫓는 자들, 그리고 그 외에 떨거지들도 있지.”
하욱은 그 말의 뜻을 바로 깨닫지는 못했으나 금세 짐작할 수 있었다.
바로 초미의 부친이 심어 놓은 수하들을 뜻하는 말이었다. 하욱은 슬쩍 눈동자를 굴려 초미의 눈치를 살폈다.
사우는 그런 하욱의 태도를 지켜보며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걸음을 옮겨 창가로 다가갔다.
“귀찮아지겠어.”
“…….”
***
“낯선 놈들과 동행을 하고 있다?”
중년인은 수하로부터 받은 보고로 인해 기분이 언짢아졌다.
“아가씨를 주변에서 따르는 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사내 둘이라?”
“예. 그중 한 사내는 한 사흘 정도 전에 배를 타고 이동하는 중에 만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허, 이 개구쟁이 자식 같으니라고.”
자신 몰래 산을 내려간 딸아이가 걱정이 되어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그였다.
비록 강한 것으로는 상위권에 속하는 권호 하욱이 따르고 있었고 딸아이 주변으로 심복들을 심어 놓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무림이라는 곳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하는 세상이었기에 더더욱.
중년인은 방금 보고를 한 사내를 물렸다.
그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내가 들어왔다.
“련주를 뵙습니다.”
삼십 대 초반, 육 척 장신으로 골격이 크며 눈썹이 짙고 각진 턱을 지닌 사내였다.
“어쩐 일이냐.”
부르지 않으면 거의 찾아오지 않던 사내이기에 의구심이 들 만도 했다. 게다가 그가 찾아올 정도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에 살짝 긴장도 되었다.
“하욱에게로부터 직접 연락이 왔습니다.”
“근처를 따르는 아이들이 아니고 말이냐?”
“예.”
딸아이를 책임지고 있는 하욱에게서 직접적으로 연락이 왔다는 말에 중년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말해 보거라.”
“초미 아가씨 곁에 붙어 있는 사내의 무공이 예사롭지 않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사롭지 않다?”
하욱은 지닌바 무공이 그리 높은 사내는 아니었다. 그런 그를 딸아이에게 맡긴 것은 그 아이가 자신보다 하욱을 더 잘 따르기 때문이었다.
하욱의 장점이라면 상황 판단력, 위급한 상황에서의 대처 능력과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잘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
하욱이 인정할 정도의 사내가 딸아이 곁에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지만 사내의 이어진 말로 인하여 중년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정도란 말이냐.”
“주목할 만한 인물은 확실한 듯싶습니다. 아가씨께서 쫓고 계시는 혈귀도마와도 한판 붙었다고 합니다.”
“결과는?”
“그 사내가 압도했다고 하더군요.”
중년인도 혈귀도마에 대해서 소문은 익히 들어 왔던 터였다. 호남성에 갑작스럽게 등장한 마인, 소문에는 그자가 마인곡이라는 곳에서 튀어나왔다고 전해지고 있었다.
그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성격상 소문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눈앞에서 직접 목격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재밌는 사실은 지금 아가씨와 함께 있는 두 사내 중 하나가 그 혈귀도마라는 것입니다.”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내가 잡은 것인가?”
“배 위에서 접전을 벌였다고 내용에 적혀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이 앞섰다. 이제 딸아이가 방황을 접고 돌아올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헌데, 왜 이제껏 돌아오지 않는단 말이냐.”
“아직 찾으시고자 하는 물건을 찾지 못한 듯싶습니다.”
“못난 녀석.”
제 어미가 남기고 간 유품이 소중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너무 그것에 집착하는 게 보기 안쓰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사내들 품에서만 자라 어미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것을 그리워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이제는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이 깊었다.
“하욱은 혈귀도마를 배 위에서 마주할 줄은 몰라 그가 혹시 호남성을 벗어날까 수왕에게까지 연락을 취했다고 합니다.”
“흐음.”
장강수로십팔채의 우두머리인 수왕 원상(元常)은 중년인의 의동생이었다. 허나 지닌바 성격이 올곧고 고집이 세어 자신이 탐탁지 않은 일은 그 누가 부탁을 하더라도 들어주지 않는 자였다.
“그래도 일단은 혈귀도마가 잡혔으니 조만간 돌아오겠지.”
“하욱에게 답을 했습니다. 빠른 시일 안으로 아가씨를 뫼시고 본련으로 돌아오라고 말입니다.”
“잘 지시했다.”
“제가 직접 아가씨를 모시러 내려가 볼까요.”
중년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누구보다 그 아이를 잘 알고 있다. 그 녀석은 누군가가 강요한다고 해서 말을 따르지 않지. 오직 본인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아이다.”
“그런 면은 련주를 쏙 닮으신 것 같습니다.”
“하하! 그런가? 사내아이였다면 내 뒤를 이어 중원 천지 모든 산맥을 다스리는 녹림총련(綠林總聯)을 이끌 아이가 되었을 텐데 말이야.”
녹림총련!
안휘성 구화산에 자신들의 거처를 마련했다. 그곳을 중심으로 그 일대는 물론 중원의 산맥을 지배하는 자들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열세 개의 준독립적인 조직들로 세력을 형성한 뒤 이들의 연합으로 조직된 거대 단체가 바로 녹림총련이다.
그리고 지금 녹색 장포를 차려입은 중년인의 정체가 그 녹림총련의 련주, 그리고 녹림을 총지휘하는 녹림지존(綠林至尊) 초웅천(楚熊天)이었다.
분명 녹림총련의 미약한 시작은 산적질을 하던 무리들로부터 출발했지만 아주 오래전 초웅천의 선조가 녹림을 지배하면서부터는 일종의 거대 방파로서 자리를 굳건하게 만들어 버렸다.
덕분에 현재 무림에서 녹림총련을 우습게 아는 자들은 없었다.
당금 무림에서 가장 강한 무인 열다섯이 있는데, 그중에 초웅천의 이름이 올라 있는 것을 봤을 때 그의 존재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욕심보다는 딸아이의 행복을 바랐다. 그래서 그 아이는 평범한 가정을 꾸리길 원했고 말이다. 물론 초웅천이 아버지라는 이유로 완벽하게 평범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초웅천은 그녀가 그런 삶을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꾸 밖으로 떠돌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벌써 몇 번의 마찰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제 어미의 기일을 어찌 알고는 어머니의 묘를 찾아가겠다고 나섰다. 말릴 수는 없었다.
어미의 기일을 챙기겠다는데 어찌 말릴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믿을 만한 하욱을 붙였고 그 주변으로 실력 있는 수하들 여럿에게 미행을 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사고를 치고 말았다. 물론 그 아이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무림이라는 곳이 워낙 험하여 불안해서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지 오래였다.
초웅천은 사내가 전해 준 소식에서 대부분을 그냥 넘길 수 있었지만 딸아이의 옆에 있다는 혈귀도마를 잡았다던 그 사내에게만큼은 호기심이 생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무인으로서 가진 특유의 직감이라고나 할까.
“흐음…….”
녹림지존이라는 별호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의 얼굴은 너무나 선해 보였다. 농사나 지을 것 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이봐, 투호(鬪虎).”
련주인 초웅천이 아끼는 다섯 사람을 오호장이라 불렀다. 다섯 호랑이, 그중 실력으로 첫손에 꼽히는 사내가 바로 초웅천과 대화를 나누던 자, 투호였다.
“예, 련주.”
“그자 말이야. 혈귀도마를 이겼다는 그 사내에 대해서 좀 알아보거라.”
“명을 받듭니다.”
그가 물러난 뒤에도 초웅천은 쉽게 걱정을 떨쳐 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