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흑천 1권(9화)
第三章 혈귀도마(血鬼刀魔) 대찰영(大刹影)(3)


“귀찮아졌네.”
사우는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살살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나를 잡으러 온 자들이란 말이오?”
대찰영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둘째 치고 지금 저희가 배 위에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하욱은 난색을 표했다.
작은 선박 하나를 구해 북으로 넘어가던 그들은 수적들에게 포위를 당하고 말았다.
‘일단은 저들의 수장과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인데.’
사우와 혈귀도마에게는 모시는 초미 아가씨의 신분이 노출되어서는 안 되었다. 정확하게는 초미의 뜻이었다.
사실 초미 아가씨의 신분을 말하기만 한다면 또는 지금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수적들의 간부가 자신을 알아본다면 주목을 살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하욱은 자신들이 타고 있는 배 주변을 에우고 있는 열 척의 선박을 둘러봤다.
그리고 이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용수채(龍鬚寨)!
새하얀 바탕에 갈색 빛이 감도는 수실로 박힌 글자에는 분명 그리 적혀 있었다.
‘맙소사!’
하욱의 얼굴이 순식간에 똥색으로 바뀌어 버렸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다.
장강수로십팔채에서 수왕 원상의 측근 중 하나인 수풍도(水風刀) 유우량(柳祐良)이 이끄는 휘하 세력이 바로 용수채였다.
열여덟 개의 채주들 중 그 지위가 세 번째로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런 용수채가 직접 주변을 포위하고 있다는 것은 하욱에게 심각하게 다가왔다. 혈귀도마가 북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한 것은 본인이었지만, 수왕 원상은 자신이 내키지 않으면 그 누구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 자였다.
아무리 의형이자 녹림총련의 련주인 초웅천의 수하인 자신이 부탁하였고, 그것도 련주 딸의 뜻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원상이라는 사내는 수하를 아끼는 마음이 애틋하다고 익히 들어왔다. 그중에서 가장 상위권에 속하는 용수채를 움직일 정도로 혈귀도마를 잡아야 할 이유는 그에게 없었다.
‘불길하다.’
냉철한 판단력은 분명 그리 경고하고 있었다.
특히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너무나 위험했다. 배 위에서의 경험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 일류를 넘어섰을 것이라 예상되는 사우와 혈귀도마가 있다고는 하더라도 이들 또한 수전은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이 두 사람을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었다.
반면 저들은 수전의 능통한 자들, 괜한 반항은 엄청난 피해를 입기에 충분했다.
하욱은 지금의 사태를 어찌 풀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수왕이 단지 혈귀도마를 잡아내기 위한 그래서 용수채를 움직인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용수채의 채주 유우량은 자신의 병기인 대도(大刀)를 손질하고 있었다.
오후의 강렬한 햇살 때문인지 커다란 나무 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녹림과의 전쟁이라…….’
사십 대 초반의 그는 학문을 익히는 선비의 모습이 박혀 있었다. 절대로 물 위에서 타인의 목숨을 끊거나 물건을 빼앗는 수적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헌데 눈빛만큼은 노골적으로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깡마른 체격이지만 병기는 제 몸의 두세 배는 무거워 보이는 커다란 도를 들고 다닌다.
‘누굴까.’
그는 너무나 심각한 얼굴로 도면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노려봤다. 눈 밑에 드러난 흉터와 살기 띤 눈빛만 아니라면 참으로 평온한 인상이었다.
‘누가 수왕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수왕 원상이라는 자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유우량 본인이었다. 같은 해에 태어났고 같은 배 위에서 세상의 빛을 본 두 사람이었다.
형제? 아마 친혈육보다 더 깊은 정을 지닌 것이 사실일 것이다. 두 사람을 아는 자들조차 그리 말하고 있었다.
제대로 인격이 갖춰지기도 전부터 알던 원상이었다. 비록 현재는 신분의 차이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두 사람의 우정이었다.
눈빛만 봐도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알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지, 기뻐하는지, 슬퍼하는지 말이다.
녹림의 주인 초웅천의 수하 오호장의 권호 하욱에게서부터 받은 서찰을 본 원상이 명령을 내렸다.
‘가서 녹림의 계집, 그리고 하욱을 산 채로 잡아 와라.’
그때 원상의 눈빛은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용수채는 자신이 거느리는 무리였지만 수왕 원상이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본채를 떠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원상이 독자적으로 움직일 것을 명령했다. 그래서 이백이나 되는 수하들을 직접 이끌고 남하했다. 그리고 하욱과 그가 모시는 초웅천의 딸아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하루 반나절, 드디어 사냥감들이 나타났다.
북으로 향하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수로에 대기시켰던 절반의 수하들이 가지고 온 소식이었다.
물 위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자가 바로 원상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에게 수왕이라는 거창한 별호를 붙여 준 것이고 말이다.
그런 그를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인물이나 단체가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유우량은 수하들이 초미라는 계집과 하욱을 데리고 오는 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현 무림에서 절대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단체는 단 하나였다.
천검무제(天劍武帝) 율천세(律天世)가 맹주의 자리에 있는 남북천맹(南北天盟)이었다.
섬서성(陝西省) 서안(西安)에 똬리를 틀고 있는 그 거대한 군림세력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실질적으로 당금 무림은 그들이 진두지휘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크고 작은 중소방파들은 모두가 남북천맹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뜻을 펼치려고 움직이면 당장이라도 남북천맹의 압력이 들어갔다.
일백 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지배자를 넘어서 보겠다고 머리를 일으켰던 문파들이 한둘이 아니었고 그때마다 처참하게 짓밟히기 일쑤였다.
남북천맹이 생겨난 지 근 오십 년 동안은 피바람의 연속이었다. 그 안에서 수천수만 명의 은원관계가 파생되어 왔고 덕분에 무림은 혼란한 시절을 보내 왔다.
하지만 거의 십오 년 동안은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물론 작은 사건들은 끊임없이 일어났지만 문파 간의 전쟁은 없었다.
‘남북천맹은 아닐 터.’
유우량은 원상에게 접근한 검은 그림자가 남북천맹이 아니라는 데 확신을 두었다.
천하를 아우르는 그 거대한 단체는 자신이 속해 있는 장강수로십팔채는 물론 많은 인력과 힘을 가지고 있는 녹림을 거들떠도 보지 않아 왔었다.
물론 수왕 원상도 그들과 적대시하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고 피하며 지내 오기 바빴다.
“채주, 아이들이 오고 있습니다.”
부채주의 음성이 들려오자 유우량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그는 몸을 일으켜 언덕 아래에서 올라오는 수하들이 보였다.
“반항은 하지 않겠다?”
그의 눈이 이채로운 빛을 띠었다.
오호장의 권호라면 지닌바 무공이 얕지 않은 자였다. 이미 예전에 그의 실력을 경험한 바 있는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하욱을 포위하러 갔던 아이들이 모두가 멀쩡했다.
그것은 하욱이 반항하지 않고 순순히 잡혔다는 걸 뜻했다.
두 가지 추측을 내릴 수 있었다.
하나는 자신이 지켜야 하는 존재가 무공을 익히지 않고 있는데다가 여인이라는 것이 약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원상이 자신들을 산 채로 잡을 것을 명령했다는 걸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용수채의 깃발을 봤다면 어느 정도 예감은 할 수 있겠지만 수왕과 녹림지존 초웅천은 의형제 사이였기에 그런 의심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수하들에게 별다른 피해가 가지 않아 다행이었다.
유우량의 시선이 하욱과 그의 옆에 있는 소녀를 지나 낯선 두 사내에게로 향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낯선 사내들이 동행하고 있다고 들었지만 그리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의 인물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한 자들이었다면 이렇게 순순히 끌려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언제까지 끌려가기만 할 거야.”
언덕 위에 유우량의 모습과 그의 남은 수하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하욱에게 사우의 전음이 들려왔다.
배 위에서는 한판 붙자는 사우와 대찰영이 성화를 부렸지만 배 위인데다가 초미의 안전을 위해 하욱이 반대를 하였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사우는 하욱의 말에 얼굴을 구겼다.
성격 같아서는 대찰영의 뒷덜미를 잡아서 무작정 목적지를 향해 가고 싶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건 대찰영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출발을 하기 전, 성격 급한 사우가 대찰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이다.
배 위에서 자신에게 한 대 맞은 이후 충격으로 마성이 폭발하여 자신이 다시 막아선 것을 말이다.
물론 단둘이 있을 때였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하욱과 초미로부터 대찰영은 왜 그들이 혈귀도마를 찾아 헤매었는지 직접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대찰영은 초미가 찾는 그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빼앗을 당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한 번 마성에 젖으면 당시의 기억들은 잊어버리게 되고 입고 있던 옷들마저 다 걸레 쪼가리가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당연히 그 물건이 어디에 있는지 알 턱이 없다.
전후사정을 모두 들은 대찰영은 깊게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초미는 의외로 훌훌 털어 버렸다.
찾을 수 있었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겠지만 빼앗은 사람이 그 물건을 어디에 둔지 모른다면 그건 찾을 수 없는 것과 다름없었다.
불가능한 일에 집착을 하는 건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배우지 못한 행동이었다.
비록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린 것은 가슴이 아픈 일이지만 성격상 아픈 일은 쉽게 털어 버리는 것이 그녀의 장점이었다.
그래서 초미와 하욱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조금 더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 그리고 사우와 대찰영은 자신들만의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북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헌데,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수적들에게 포위를 당한 것이다.
그때도 사우는 대찰영만을 데리고 도주를 하려 했지만 초미에게 빚이 있는 대찰영의 고집으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대항을 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하욱의 말대로 만에 하나라도 그녀가 다칠 것을 대찰영이 걱정했기 때문이다.
하욱은 불안한 눈빛으로 유우량을 바라봤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뱃사람으로 사는 삶과는 다른 얼굴을 지녔다고 생각이 들었다.
“뭐 하자는 겁니까.”
“뭘 말인가.”
묻는 질문에 유우량은 태연하게 반문했다.
“수왕의 명령입니까. 초미 아가씨를 붙잡아 놓으라고요?”
“내가 그런 것까지 자네에게 보고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많이 참고 있다는 것만 알아 두십시오. 아무리 당신이 용수채를 이끌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수왕이라 할지라도 초미 아가씨를 건드리면 련주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을 거라는 사실 또한 말입니다.”
하욱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왜 수왕이 초미 아가씨를 노리는 것일까. 녹림과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생각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어떤 제삼자의 세력이 녹림과의 전쟁을 시도하려는 의도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록 남의 것을 빼앗는 산적들의 무리가 그 시작이었지만 현재 녹림은 거대 방파의 개념으로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다.
그런 녹림과의 전쟁이라, 그것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결과였다.
하욱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만약 자신의 그런 망상이 현실로 일어난다면 무림은 다시금 피의 전쟁으로 많은 이들의 피를 흘리게 될 것이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빨리 결정해라.”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성질 급한 사우가 짜증이 가득 섞인 음성으로 대찰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하지만 대찰영은 신중한 성격인지라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하욱이 수적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와 눈을 마주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아마도 전음으로 자기들끼리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리라.
“두 분…… 이렇게 폐를 끼치게 되어 죄송합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먼저 사우에게 그다음으로는 대찰영에게 하욱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있었다.
씩씩한 성격이지만 아직 어린 소녀에 불과한 초미가 자신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고 있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진 빚이 있으니 갚을 차례가 되었소.”
대찰영이 자신의 도를 뽑아 들었다.
“오지랖도 넓다.”
사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투덜거렸다.
정말이지 이런 귀찮은 상황은 질색이었다. 마인곡으로 가기 위해서는 저 인간이 필요한지라 참고 있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초미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하욱의 신형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목표는 바로 유우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