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흑천 1권(10화)
第三章 혈귀도마(血鬼刀魔) 대찰영(大刹影)(4)


짜증난다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사우는 자신에게 덤비는 사내의 목을 가볍게 꺾어 버렸다.
별로 듣기 좋지 않은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무너져 내린다.
아마 싸움을 할 때 사우처럼 저런 표정을 짓고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육체의 한계가 와서도 아니었고 까다로운 상대를 만난 것에 대한 것도 아니었다. 단지 귀찮을 뿐이었다.
사실 예전의 신분이었다면 이런 하찮은 놈들과 대화조차 섞을 일이 없었다. 아니 같은 하늘 아래 있다는 것마저도 불쾌했을 것이다.
그게 사우의 옛날 신분이었다.
황제도 부럽지 않았던 그때.
그런 자가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왔으니 만사가 권태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이 진짜!”
사방에서 몰려드는 날파리들을 떨쳐 내느라 사우의 몸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리 달려들어도 안 되는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멍청하게 몰려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우의 등 뒤에 있는 자는 바로 초미였기 때문이다. 수장의 명령에 그녀를 잡아야만 했다.
그런데 꼬질꼬질하게 생긴 매가리 하나 없게 생긴 사내놈이 커다란 벽이 되어 그녀를 지키고 있었다.
몸놀림이 어찌나 빠른지 형체가 보이지도 않았다.
빠드득.
뼈가 부러짐과 동시에 동료였던 사내들의 스산한 비명 소리가 고막을 후벼 팠다. 두려움에 뒷걸음도 치련만 그들은 불꽃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과도 같았다.
유우량이 평소 수하들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모습들이었다.
허나 그런 그들의 노력은 너무나 허무하게끔 보이고 있었다. 사우의 무력은 그들을 무력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까.
한껏 귀찮다는 표정을 그대로 유지하며 사방에서 몰려드는 자들의 목과 팔다리를 인정사정없이 부러트리는 그의 모습은 전귀와도 같았다.
사우가 그렇게 초미를 지키고 있을 때 하욱은 유우량과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용호상박이라는 표현이 적당할까?
하욱과 유우량은 서로가 서로의 빈틈을 노리며 그것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악을 쓰고 있었다.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주먹 하나로 지금의 자리에 있는 사내 하욱과 아버지의 유품인 도 하나로 용수채를 이끄는 유우량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두 사내의 싸움은 극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무기가 없는 하욱으로서는 유우량의 품으로 자꾸만 파고 들 수밖에 없었다.
유우량이 휘두르는 팔을 잡고는 그의 명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뻐억!
뭔가 둔탁한 뼈가 쪼개지는 소리와 함께 유우량의 몸이 휘청거린다. 드디어 틈이 생긴 것이다. 하욱은 그 순간을 놓치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릎을 향해 공격해 들어오는 유우량의 도 때문에 승부를 보지 못했다.
보법으로 황급히 피한 하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빠진 숨이 폐를 찢어 놓는 듯했다.
그럴수록 이상하게도 정신은 또렷해지고 있었다.
유우량은 내심 의외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었다. 녹림의 오호장 중 그 실력이 가장 낮다고 평가받고 있는 자가 바로 권호 하욱이었다.
허나 오늘 직접 이렇게 손을 섞어 보니 생각 외로 강하다고 판단되었다.
하욱은 목숨을 걸고 치열하게 수련을 해 왔다. 그것도 자신의 장단점을 잘 아는 오호장들에게 처절하게 짓밟히면서 말이다.
그렇게까지 강해지려 하던 것은 바로 녹림의 왕인 초웅천이 그에게 직접 초미의 호위를 맡겼기 때문이다.
녹림을 떠나오기 전이 아니라 초미가 아장아장 걸음을 배울 때였다. 그에게 있어서 초웅천은 하늘이었고 그런 초웅천이 내린 명령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더 강해질 필요가 있다는 신념으로 힘을 키운 것이었다.
유우량이 놀라고 있는 건 자명한 일이다.
게다가 유우량은 지금 심리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지니고 있었다. 상상하지 못했던 변수가 표면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나는 사우였고, 또 하나는 대찰영이었다.
그 두 사람으로 인해 이미 주변은 푸른빛 잔디 본래의 색을 잃은 지 오래였다.
온통 핏빛으로 물들어 버렸다.
유우량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서서히 피 묻지 않은 도를 들어 올렸다.
쨍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시간이었다.
이마는 물론 옷 안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어 버렸다. 이토록 긴장을 하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몸이 천천히, 그리고 순간적으로 확 튀어 나가 버렸다.
반면 하욱은 여유롭게 호흡을 가다듬고 유우량의 공격을 막을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몸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만이 들었다. 상대 쪽에서 마음을 제대로 먹고 공격해 들어올 듯한 기세였다.
상대는 무기를 들었고 자신은 맨주먹이었다. 그랬기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했다.

하욱의 무릎이 푸른 잔디 위에 닿았다.
어깻죽지가 찢겨져 나가 뼈가 육안으로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자신은 목숨을 건졌고 상대는 죽었다.
유우량의 죽음.
결코 작은 사건이 아니었다.
하욱은 고통스러운 순간에서도 앞으로 다가올 그 무엇인가에 몸서리를 쳤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고 있었다.
음성이 들려왔다.
초미의 비명 섞인 목소리였다.
비록 좋은 상황에서의 음성은 아니었지만 살아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하욱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친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아끼는 소녀를 위해 지금 이 고통을 체감하고 있는 것이리라.
허나 아깝지는 않았다.
“하아…… 하아.”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의 시선이 복부가 터져 버려 내장이 흘러나온 상태에서 쓰러져 있는 유우량의 시신에 고정되었다.
마지막 일격으로 인한 결말이었다.
“지저분하게도 죽였네.”
사우가 혀를 끌끌 차며 다가왔다.
동시에 초미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곤 다친 부위를 보고는 혹여 자신이 아파할까 봐 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그녀의 칭얼거림이 시끄러웠는지 사우가 점혈을 가했다.
고통이 점차 희미해지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반나절 쉬면 괜찮아질 테니 푹 쉬라고.”
“감, 감사합니다.”
힘들게 그 말을 내뱉은 하욱의 몸이 스르륵 무너져 내렸다.


第四章 은원(1)


새하얀 피부로 인해 사내인지 계집인지를 구분 못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짙은 눈썹은 길게 뻗어 있었고 콧날 또한 날카로울 정도로 솟아 있었다.
이름 모를 나무와 꽃들이 즐비한 정원 한가운데 서 있는 하제량은 냄새만으로도 취할 정도로 향내가 가득한 그곳에 한참을 서 있었다.
“원주, 은조(隱鳥)입니다.”
또랑또랑한 여성의 전음이 하제량에게 전해졌다.
하제량은 몸을 돌려 한참이나 떨어진 정원 밖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주 느긋하게 걷느라 꽤나 시간이 걸렸음에도 그를 기다리는 여인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흔들림이 없었다.
이내 하제량이 정원 밖으로 나왔다.
“무후(武后)의 사신이 도착했습니다.”
자신을 은조라 말한 그녀의 미모는 굉장했다. 우습지만 사내인 하제량과 같이 있으니 그 아름다움이 깎이기는 했지만 절세미색을 겸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전음을 쓸 줄 아는 무림인들 외에는 대화가 되지 않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은조.
그녀는 하제량의 그림자였다.
비록 여인의 몸이었지만 어떤 사내들보다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인물이었다. 또한 하제량의 뜻을 잘 살필 줄 아는 자이기도 했다.
“넌 어찌 생각하느냐.”
외모와는 다르게 굵고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무후라는…… 그녀는 믿기 힘듭니다.”
“꼭 그녀뿐만이 아니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인간들은 모두가 믿지 말아야 할 존재들이란다.”
하제량은 미소를 머금고는 말했다.
“사신을 들여보내라.”
은조는 소리 없이 사라졌다.
하제량은 자신의 거처로 들어가 평상시에는 잘 입지 않는 예복을 갈아입고 사신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열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삼십 대 초반, 인상이 좋고 왠지 모를 여유가 묻어나는 인물이었다.
“패천문(覇天門) 주인이신 철혈대제(鐵血大帝) 철대악(鐵大岳) 문주님의 제자 신도천(申屠天)이라 합니다.”
정식으로 정중하게 자신의 소개를 한 신도천은 하제량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 그 유명한 묵창(墨槍)이 바로 당신이군요.”
사천성에서 묵창 신도천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일단은 가장 영향력이 강하다는 패천문주의 제자라는 뒷배경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무위를 본 자들은 그런 비아냥거림은 생각지도 못한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었다.
무후의 사신치고는 꽤나 거물급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하제량은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겁니다.”
“천기원이라는 곳…… 생각 외의 장소에 있더군요.”
“아마 당신이 우리 식솔이 아닌 외부인으로서는 최초일 겁니다.”
신도천은 유심히 하제량이라는 사내의 눈빛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그의 외모를 살폈다.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피부는 물론이고 특히 선홍빛 입술은 절세미녀가 울고 갈 정도였다.
하지만 신도천은 하제량의 눈빛에 살짝 주눅이 든 상태였다.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힘들지만 하제량의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벌거벗은 몸뚱아리가 된 느낌에 사로잡히는 듯했다.
자신의 속이 모두 하제량이라는 사내에게 빨려 들어가는 착각마저 들었다.
‘역시 천기원의 주인이 된 사내답구나.’
세상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천기원은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집단이었다. 어쩌면 지금도 천기원이라는 곳이 전설상에만 존재하는 단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분명히 있을 수 있었다.
그만큼 신비에 가려져 있는 곳이 바로 천기원이다.
사실 신도천은 지금 자신이 천기원주와 마주 앉아 있다는 것 자체도 믿기지 않았다. 꿈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차 한잔 얻어먹을 수 있겠습니까.”
하제량이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시비가 끓인 차를 가지고 들어왔다.
“드시죠.”
신도천은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찻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채 식지도 않은 그 뜨거운 것을 한 번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어 버렸다.
혓바닥과 입안 전체가 뜨거운 온도에 데어 버리는 건 물론이고 식도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신도천의 온몸을 감싸고 돌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자신의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생각을 상대방이 갖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런 그의 행동을 지켜본 하제량 또한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단지 흥미롭게 지켜볼 뿐이었다.
“아십니까. 믿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기분을. 지금 제가 뜨거운 찻물을 들이켰을 적에 느꼈던 고통은 그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사마련의…… 원한을 말하시는 겁니까.”
“아뇨. 사마련 이전에 패천문의 감정입니다.”
눈가에 경련이 일어나는 모습이 하제량의 눈에 들어왔다.
패천문 문주의 제자 신도천.
그가 왜 이토록 흥분하는지 하제량은 잘 알고 있었다.
현재 천하를 아우르는 남북천맹은 하나의 집단이 아니라 여러 방파들이 합친 연맹의 개념이었다.
패천문 또한 과거에는 남북천맹이라는 이름 아래에 존재했었다. 사천성을 지배하는 거대 방파 패천문의 위상은 남북천맹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세했다.
특히나 패천문주 철대악과 남북천맹의 맹주는 각별한 사이였다. 하지만 이십 년 전 패천문이 남북천맹에서 퇴출당하는 바람에 두 사람의 사이는 극히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