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흑천 1권(13화)
第四章 은원(4)
안휘성 구화산을 시작으로 강서성 남창까지의 목적지를 둔 거대 행렬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하나는 가던 방향인 남창으로, 또 다른 행렬은 호북성과 호남성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섬으로 방향을 틀어 버렸다.
“십 년 만인가?”
초웅천의 머리카락이 바람으로 인해 어지럽혀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바람을 느끼는 듯했다.
“너무 본채에만 머무신 듯하십니다.”
그의 옆에 있던 투호, 손평(孫平)이 말을 받아쳤다.
“그런가.”
초웅천은 오랜만에 나오는 외출임에도 불구하고 얼굴빛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왜 그랬을 것 같으냐.”
긴 행렬의 길이는 상당히 길었다.
족히 육칠백 정도의 인원이었다. 그 선두에는 초웅천과 투호 손평, 그리고 한 사내가 이동을 이끌고 있었다.
“뭔가…… 수왕을 뒤에서 지휘하는 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하얀 백색 무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사내의 말이었다. 무복과도 어울리게 피부색이 남자치고는 뽀얗고 인상적인 외모를 꼽자면 코 모양이 매부리코라는 것이었다.
설호(雪虎) 신도명(申屠明). 삼십 대 초반으로 오호장 중 한 명이었다. 신도명은 투호 손평보다는 나이가 어렸고 하욱보다는 많았다.
오호장에서 서열은 둘째였다.
그는 머리가 비상하여 초웅천이 아끼는 수하 중 하나였다.
“만약 있다면 그자는 실로 무서운 자이다.”
“하지만 현재 본련과 적대시할 만한 무림 단체는 존재치 않습니다.”
신도명의 말에 초웅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내 딸아이를 노리는 일을 벌일 정도면 웬만한 자들은 아닐 터. 게다가 수왕을 이용할 정도면.”
초웅천은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십 년 만에 본채를 떠나 그것도 이 정도의 인원을 데리고 출사를 한 적은 처음이었다. 지금 그는 딸아이를 만나러 가는 중이었다.
하욱과 그 주변에 있는 수하들로부터 만날 약속 장소를 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채를 출발하여 나뉜 행렬은 오호장 중 셋째인 마호(魔虎)가 팔백 명이라는 인원을 이끌고 수왕의 본채를 치기 위하여 떨어져 나갔다.
용수채가 전멸했다. 녹림지존의 딸을 건드린 대가로 말이다. 하지만 사실 초미의 주변에 있던 두 사내 때문이라고 들었다.
덕분에 딸아이는 무사했지만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은 전쟁이 불가피하게 된 상황이었다. 앞뒤 사정을 모르지만 녹림은 수왕을 용서하지 못한다.
지존의 딸을 납치하려 한 것은 전쟁의 선전포고와도 다르지 않았다.
전면전은 불가피하게 된 상황이란 말이었다.
딸아이를 무사히 품에 안으면 바로 전쟁을 벌일 작정이었다. 초웅천의 눈빛에는 결연함마저 보였다.
믿었던 의동생의 배신은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었다. 비록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꼈던 동생이 바로 원상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초웅천과 투호, 설호가 선두에 서 있는 무리는 강서성 남창이라는 도시를 목적지로 잡고 있었다.
사우 일행은 강서성 남창에 이틀째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마른 체격과는 다르게 무지막지하게 입안으로 음식물을 집어넣는 사우. 그리고 그의 맞은편에서 마찬가지로 걸신들린 듯이 접시를 비우는 대찰영의 모습은 묘하게 비슷했다. 그리고 잘 어울렸다.
초미는 입맛이 없는지 젓가락질 몇 번을 하고는 말았다. 하욱도 마음이 불편한지 얼굴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안 먹을 거냐.”
사우가 옆에 앉은 초미의 음식을 눈독 들였다.
초미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거리자 사우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식을 빼앗아 가 버렸다.
‘후우.’
하욱의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가뜩이나 끼니를 자주 걸러 초췌해져 가는 초미였는데 그걸 빼앗아 가니 울화통이 치민다.
“그래도 좀 드셔야 합니다.”
“됐어. 괜찮으니 하욱이나 많이 먹어.”
며칠째 힘없는 모습의 연속이었다.
대찰영은 소면의 국물을 후루룩 마시며 두 사람을 곁눈질로 살폈다.
“정말 녹림지존이 소녀의 부친이십니까?”
대찰영은 바로 어제 그녀의 친아비가 초웅천이라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꽤나 놀라웠기에 아직도 믿기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왜 무섭냐. 사실 얘가 귀가가 늦어진 건 너 때문이잖아.”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네가 남의 물건을 훔쳐 갔으니까 쟤가 집으로 못 돌아간 거 아니야.”
“비약이 너무 심하십니다.”
사우는 대답 대신 잘 소화되었다는 증거로 트림을 입 밖으로 뱉어 내었다.
‘한 놈도 아니고…… 스무 명 정도 되나.’
사우는 물을 입으로 밀어 넣으며 주변을 탐색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대도시에서 유독 자신들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숨기려 하는 자들이었다.
‘몇 명은 대찰영 때문이고, 몇 명은 녹림, 또 몇 명은 수왕의 수하들.’
대충 그렇게 세 종류의 인간들이 며칠 전부터 주변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미행을 당하고 있는 것은 사우로서 참기 힘든 일이었다. 자존심이 상하고 배알이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며칠 두고는 봤지만 더 이상은 용납하고 싶지가 않았다.
‘소화 좀 시키고 올까.’
“조용히 그냥 따라 나와라.”
대찰영에게 전음을 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디 가십니까?”
“별일 아니니까 쉬고 있어. 쥐새끼들 좀 처리하려고.”
“……!”
현상금 사냥꾼으로 이름을 알린 지 벌써 십오 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북곽(北郭)의 나이는 올해 마흔이 되었다. 처음 무공이라는 걸 배운 곳은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동네에서는 유명한 곳이었다.
재능이 있는 덕분에 그곳이 문을 닫은 후에 홀로 무공을 수련했음에도 실력이 일취월장하였다. 삼류는 벗어날 정도로 말이다.
딱히 별호는 없지만 도를 주 무기로 사용하고 있어 스스로를 도귀(刀鬼)라 칭하고 있었다.
그는 강서성에 혈귀도마라는 자가 나타났다고 한 같은 직업을 가진 이들 다섯 명과 그 일행을 뒤쫓고 있었다. 혈귀도마라고 해서 어느 정도 긴장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을 멀리서나마 보니 어느새 그 긴장감이 사라져 버렸다.
그는 유심히 혈귀도마와 함께 있는 일행들을 살피는 중이었다. 낮이었지만 건물들 사이에 가려진 그늘 사이로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
그런데 창가에 앉아서 밥을 먹던 혈귀도마가 일행 중 한 사내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귀는 맞은편 골목에 있던 일행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냈다.
도귀의 눈빛을 본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골목에서 나와 거리로 나섰다.
그 순간 도귀도 움직였다.
그런데 앞에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낯선 사내는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의아한 눈길로 위를 올려다봤다.
어디서 봤더라?
얼굴을 올려다보니 낯설지 않았다.
“아……!”
혈귀도마라는 도귀 자신이 잡으려 했던 사냥감의 얼굴이었다.
“커헉!”
거친 손이 목젖을 움켜쥐자 숨이 턱 막혀 버렸다.
게다가 워낙 힘이 좋은지라 그 상태에서 발끝이 땅으로부터 일 장이나 떠올랐다.
그렇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자 도귀의 명줄은 끊겨 버렸다. 너무나 허망하게 말이다.
“바로 다음 놈들 처리한다, 실시!”
빌어먹을 사우의 음성이 들리자 대찰영은 속으로 쌍욕을 내뱉으며 몸을 움직였다.
거리 곳곳에 숨어든 관찰자들의 목숨은 파리만도 못했다. 일격필살도 필요치 않았다. 그저 한 번의 손짓과 발짓으로 그들의 급소를 노렸다. 사우와 대찰영에게는 그들의 숨을 거두는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사우가 불쾌하게 여기던 쥐새끼들이 어느 정도 처리가 될 즈음 사우는 길을 가던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오고 가는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는 자였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얼굴만으로는 구별해 내기가 힘이 들었다. 하지만 분명 복장은 남성이 입는, 그것도 무인들이 즐겨 입는 무복이었다.
눈처럼 하얀 무복에 붉은 테두리가 인상적인 부채를 한 손에 쥔 그는 웃고 있었다.
사내의 눈은 분명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그와 눈을 마주하고 있자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
“반갑습니다.”
분명 그의 입술이 조그맣게 움직였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전음을 보낸 이가 저자임에 틀림없었다.
“네놈…… 누구냐.”
사우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가지고 있는 힘의 비해서 작은 양이었지만 중원에 나와 이 정도로 힘을 쓰려고 한 적은 없었다.
“당신을 죽이러 온 하제량이라 합니다.”
보는 눈이 많은 도시를 벗어났다.
갑자기 경공을 발휘해 도망치는 사우를 대찰영이 뒤쫓았다. 자신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도망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볼품없는 잡초들만이 즐비한 장소에 도착했다.
사우가 움직임을 멈추고 대찰영을 뒤돌아봤다.
“뭐 하러 쫓아온 거냐. 귀찮게.”
“설마 나와의 약속을 깰 참은 아니겠지?”
존대에서 어느새 하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답지 않게 진심으로 분노를 내고 있는 것이다.
“멍청한 놈.”
사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대찰영을 쳐다봤다.
그때 대찰영은 갑자기 급변한 공기와 분위기에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급작스럽게 주변을 바꿔 놓은 이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강하다.’
천천히 여유롭게 나타나는 무리의 강한 기운으로 인해 숨이 차올랐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데도 말이다.
“정확히 스물다섯.”
사우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대찰영은 그 숫자를 듣고 나서 믿기지 않는 얼굴이 되었다.
분명 감싸고 도는 기운은 그 백배의 숫자라 할지라도 턱없이 부족했으니까 말이다.
넓은 평지에는 서서히 검은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찰영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이토록 강한 자들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왔는지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슬쩍 곁눈질로 사우의 상태를 살폈다.
‘미, 미친놈!’
웃고 있었다. 두려운 나머지 미친 것이리라.
대찰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저렇게 즐거운 얼굴을 하고 있는 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네 몸은 알아서 챙겨라. 거치적거리지 않게 말이다.”
저게 며칠을 동행하며 동고동락한 자에게 내뱉을 수 있는 말이냔 말이다.
“당신이…… 사우라는 자인가요?”
도시에서 마주쳤던 자가 무리들 가운데서 흘러나왔다.
“하조천의 손자가 네놈이냐.”
“제 조부께 들으신 겁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지. 그런데 말이야. 네놈에게는 할배가 되는 자의 생명을 구해 준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치고는 거창하지 않아?”
하제량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조잡한 변명을 하시는군요. 본인의 목숨이 그리도 아까우신가요.”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는데. 설마 네놈 조부가 죽은 것에 내가 직접적으로 개입되어 있는 걸로 착각하는 건가? 천기원이 겨우 그 정도밖에 되지 않나 보군.”
“닥치십시오.”
진득한 살기가 하제량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곱상하게 생긴 얼굴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긴장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천기원의 흑혈대는 강하니까 말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 오는듯했다. 그리고 이내 폭발적인 탄력으로 그들이 덤벼들었다.
“병신같이.”
사우는 앞뒤 재지 않고 논리적이지 못한 하제량의 모습이 못마땅했다. 하조천이 칭찬하던 그 손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물다섯이라고는 하지만, 이백오십 명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어찌하지는 못할 것이다.
이 정도의 무인들을 키워 내는 건 분명 시간과 엄청난 황금이 든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경솔하게 자신을 판단하여 적으로 돌린 하제량의 그릇은 형편없었다.
사우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알아서 피해라.”
대찰영은 사우의 두 손가락에서 엄청난 기운이 모이는 것을 느끼고는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사이 검은 복면을 한 자들이 몰리고 있었다.
‘뭐, 어쩔 수 없는 일. 네놈이 냉철하지 못한 것을 원망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