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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 못 쳐 1(18화)
Chap 6 목줄을 맨 고양이의 심정(3)


새파랗게 질린 내 표정이 마음에 들었던지 예나스는 킥킥거리며 웃으며 목을 둘러 감은 손을 풀어 주었다. 그러면서 내 등을 가볍게 치며 말했다.
“임무다.”
아니, 이번엔 또 웬 임무?
“일단 점심 식사를 하고 비가 그치면 시내로 나가서…….”
예나스는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임무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말이지, 보통 장보기 같은 심부름은 임무라고 부르지 않잖아? 게다가 이런 게 임무라면 아까 전에 했던 설거지도 임무라고 해야 하지 않겠어?
아침에 내리던 비는 오후쯤이 되자 그쳤지만 아직 길은 온통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에는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두두두두!
으악, 방금 지나간 저 마차! 너무 운전이 난폭하잖아! 하마터면 흙탕물이 제복에 튈 뻔했잖아! 이럴 줄 알았으면 나오기 전에 전의 옷으로 갈아입을걸!
에휴, 처량한 내 신세. 어쩌다가 팔자에도 없던 기사단의 잡일꾼이 되어 버린 거지?
“시안! 이거도 사자!”
그것도 이런 혹 덩어리 하나 매달고서!
“그런데 너 설마, 달콤한 것만 잔뜩 살 생각은 아니겠지?”
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렌이 멈춰 선 곳은 슈크림을 파는 가판대 앞이었다. 윽, 냄새만 맡아도 단내가 확 올라오는(?) 것 같아. 으윽.
“응? 그게 어때서? 단 걸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잖아. 넉넉히 사서 나눠 먹자!”
어이, 지금 우리는 간식을 사러 나온 게 아니거든? 게다가 단원들에게 주려는 게 아니라 네가 먹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은데? 나를 천진난만하게 쳐다보는 렌을 보자니 그저 한숨만 나온다.
“됐으니까 고기나 사러 가자.”

야채와 곡물류는 오는 길의 상점에서 구매를 끝마쳤다. 물론 다섯 명이 며칠 동안 먹을 식료품이다 보니 양이 꽤 많아서 작은 손수레까지 끌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내가 상점에 통신기로 주문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니 예나스가 한다는 말이,
‘자고로 음식을 만드는 재료를 사는 것은 신중해야 돼. 직접 가서 보고 물건을 구매하는 것이 가장 믿음직하다고.’
으으, 그렇게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 직접 와서 보고 사란 말이야.
에휴, 투덜거려 봐야 나오는 것도 없으니 빨리 남은 식료품이나 주문하고 돌아가서 한숨 푹 자야겠어. 어디 보자, 남은 것은 돼지고기와 닭고기인가?
정육점을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데 내 옷자락을 잡아당기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조금은 풀이 죽은 얼굴의 렌이 내 셔츠자락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왜 그래?”
내가 영문을 몰라서 묻자 렌은 힘없는 목소리로 칭얼거렸다.
“배고파, 우…….”
그리고 뒤따르는 꼬르륵 이라는 소리. 대체 이 녀석의 소화 능력은 얼마나 되는 거야? 연비가 나빠도 너무 나쁘다고! 마치 며칠 동안 굶은 듯한 표정이잖아!
이거 참 애를 돌보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내가 이런 일이나 하려고 자엘 룬에 온 건 아니라고.
그냥 이 길로 달아나 버릴까? 생각해 보면 횡령이니 배임이니 해도, 렌이 내게 수배를 내리게 만들지는 않을 테니까. 조금 실망하거나 하기는 하겠지만 대신 갚아 주거나 어떻게든 무마해 주지 않겠어?
후후…… 마침 적당한 핑계거리도 눈앞에 있겠다, 좋아!
“렌, 슈크림 먹고 싶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렌은 눈을 번뜩거리며 언제 힘없어 했냐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결국 원하던 대로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쳐 놓은 것 같은 커다란 슈크림을 산 렌은 행복하다는 듯 웃었다.
“그럼 나는 정육점에 가서 고기를 주문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 말에도 슈크림을 먹는 것에 정신이 팔린 렌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녀와∼”
후후후, 다녀오라고? 미안하지만 거짓말이다! 렌도 떨어트려 놨으니 나는 이대로 자엘 룬을 빠져나가서 아무 곳에나 가 버리면 되는 거야! 게다가 식료품 값으로 받은 돈도 조금 남았으니 여비로 감사히 써 주겠어!
그렇게 콧노래를 부르며 성문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는데 어쩐지 뒤통수가 간질거렸다.
설마 내 정체를 눈치챈 누군가가 나를 노리는 건가? 그러나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눈에 띄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요즘 들어 너무 황당한 일이 많다보니 신경이 예민해져서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앗, 이러다가 날이 저물어서 성문을 닫아 버리겠는걸.”
일단은 일국의 수도이다 보니 치안이나 경계 및 기타 이유로 해가 지면 성문을 닫아 버린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이상 허가 없이는 지나갈 수가 없는 거지.
물론 평민에 불과한 나로서는 해가 진 이후에 성문을 지나가려고 했다간 성문을 지키는 경비병들에게 금방 제지를 당할 게 분명하다. 게다가 덤으로 유치장에 구류시켜 버릴지도 모르지.
네 개의 성문 중에서 가장 가까운 성문에 도착할 때쯤 해가 기웃기웃 조금씩 하늘 아래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자, 슬슬 성문을 닫아라!”
뭐, 뭣? 잠깐만! 오늘 안에 자엘 룬을 빠져나가지 못했다간 수상한 낌새를 느낀 렌을 비롯해서 예나스 등등이 찾아낼지도 모른다고!
나 말고도 성문을 나서려던 사람들의 걸음이 점점 빨라지더니 금세 뜀박질로 변했다. 하지만, 그 노력도 성문이 닫혀 버리자 허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으으, 이걸 어쩐다. 오늘 안에 자엘 룬을 나서야 일정을 맞출 수가 있는데. 경비병 양반, 오늘 한 번만 봐주시면 안 되겠소? 거래처에서 늦장을 피워서 늦은 거란 말이오.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니 이번만 봐주시구려, 응?”
등에 짐을 잔뜩 짊어진 중년의 사내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애원하자 경비병은 혀를 쯧쯧 차더니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거, 안 된다는 거 알면서 그러쇼. 정 급하면 내일 아침 일찍 성문이 열리는 걸 기다렸다가 출발하시오.”
“아, 글쎄, 그렇게 되면 일정이 늦는다니까 그러네! 어휴, 이걸 어쩐다.”
으으, 이제 끝장이야. 보아하니 친분이 있는 상인인데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거절하는 걸 봐서는 나 같은 건 의심스러운 녀석이라고 구류해 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구류를 당한다면 렌이 꺼내 주러 와서는 몹시 실망할지도. 아니, 어쩌면 예나스가 와서는 엄청 음흉한 웃음을 지으면서 ‘이런 녀석 따위는 몰라요.’라고 해 버릴지도! 아니지, 그전에 도망치려 했으니 배임과 횡령죄로 구속해 버릴 거야!
으으, 그건 안 되지.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자리를 뜨려는데 경비병이 내 쪽을 쳐다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 계신 분! 잠깐 이리로 오시겠습니까?
뭐야, 혹시 나? 내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으악, 대체 뭐야. 왜 나를 부르는 건데? 혹시 나를 구류시켜 버리려고? 아니면 설마 예나스 그 여자가 벌써 내가 도망치려는 걸 알고 수배령을 내렸다거나?!
일단은 침착하자. 여차하면 스크롤을 찢어서 도망가 버리면 그만이야. 도주용 마법 스크롤은 내 품에…… 어, 없잖아?!
아차, 옷을 갈아입으면서 스크롤도 원래 옷에 넣어 둔 채였어!
내가 멍하니 서 있자 경비병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도, 도망칠까? 오히려 도망치면 수상하게 여길 텐데.
“혹시 붉은 장미 기사단의 마법사님이십니까?”
……어라? 아, 그러고 보니 나 지금 붉은 장미 기사단의 제복을 입고 있지. 성문의 경비병이라면 각 기사단의 제복들쯤이야 기본으로 외우고 있을 테고.
“아, 예에.”
내가 엉거주춤하게 대답하자 그가 바짝 군기가 든 태도로 경례를 했다.
“충성! 무슨 용건으로 자엘 룬을 나가시려는 겁니까.”
“그, 그건 비밀입니다!”
기사단에서 도망치기 위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 잔뜩 굳은 내가 기겁하듯 소리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길을 비키며 외쳤다.
“문을 열어라.”
어? 나가게 해 주는 건가?
“저…… 나가도 되는 겁니까? 해가 지면 왕족과 귀족을 제외하면 나갈 수 없다고 알고 있는데.”
“물론입니다. 기사단의 임무라면 방해할 수 없지 않습니까.”
내 물음에 경비병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뭐야. 그런 거였어? 좋았어! 이대로 자엘 룬을 나서서 제 갈 길을 가면 되는 거야! 물론 이 제복은 빨리 처분하고 새 옷으로 입어야겠지.
경비병의 말이 끝나자 커다란 성문의 옆으로 나 있는 쪽문이 활짝 열렸다.
후후, 이제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어. 예나스 그 여자가 내가 도망친 걸 알면 꽤 배 아파 하겠지.
그런데 어쩐지 뒤숭숭하단 말이지. 내 마음 한쪽에 자리 잡은 알 수 없는 찝찝함에 뒤를 돌아 자엘 룬 시내를 쳐다보았다.
내가 뭔가 잊어버린 것 같은데…… 그게 뭐지? 에라, 모르겠다. 일단 도망치면서 생각하자.
결정을 내리고 걸음을 한걸음 옮겼을 때, 내가 잊어버린 것에 대해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니, 그 녀석은 사람이 부탁을 하면 정말로 해 버리는 녀석이었어!”
어릴 때, 내가 장난삼아 렌에게 동네 불량배의 정강이를 차고 오라고 말해 본 적이 있다. 결과를 말하자면 정말로 해 버렸다! 흠씬 두들겨 맞아서 쌍코피를 흘리면서도 내게 와서는 헤헤 하고 웃었지! 물론 그게 들통 나서 나는 양측 부모님한테 그거의 두 배 정도로 얻어맞았지만.
으음, 그래도 렌이 늦게 오면 예나스나 다른 사람들이 찾으러 오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 젠장.
“뭔가 잊어버린 것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내가 쪽문 근처에서 자꾸 멈칫거리자 나에게 말을 걸었던 경비병이 다가와 물었다.
“예…… 아주 엄청 귀찮게 하는 녀석을 잃어버리고 왔네요.”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뒤돌아섰다. 무슨 일인지 몰라 멀뚱히 서 있는 경비병을 뒤로한 채로 나는 렌을 두고 온 장소로 되돌아갔다.
으아! 내가 정말 미쳤지. 어쩌자고 이런 말도 안 되는 판단을 내린 거야?
내가 상점가로 돌아가니 이미 날이 저물어 상인들은 다 철수하고 없었다. 슈크림을 팔던 가판대가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렌이 앉아 있었다.
잔뜩 풀이 죽은 표정으로 앉아선 다리를 허공에 흔들고 있던 렌은 내가 다가가자 환하게 웃으며 일어섰다.
“정육점에 다녀왔어?”
왜 늦었냐는 말도 안 하는 거냐? 으으, 이런 바보가 친구라니. 대체 내 인생은…….
“고기는 다음에 사고, 일단은 돌아가자. 늦었다고 혼나겠어.”
“앗! 그러네! 빨리 가자!”
혼나겠다는 말에 렌은 내 팔을 붙잡더니 빠른 걸음을 옮겼다. 에휴, 예나스 그 여자가 또 한바탕 잔소리를 하겠군.
어쩐지 두려운 감정을 마음속에 품은 채 기사단으로 돌아가니 건물 전체에 불이 꺼져 있었다.
“다들 어디 간 건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건물의 모습에 내가 의아해하며 중얼거리자 아직도 팔을 붙잡고 있던 렌이 문을 열며 들어섰다.
“단장? 예나스 언니? 파르마콘……?”
렌이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갔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 이젠 좀 팔을 놓아줘도 되지 않냐.
뭔가 불안한 기분에 눈을 찌푸릴 때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더니 불이 환하게 켜졌다.
갑작스런 조명에 눈을 잠시 감았다 뜨자 보인 것은 [시안 환영회!] 라고 적힌 현수막이었다.
그리고 팡! 하는 소리와 함께 폭죽을 터트리며 숨어 있던 세 사람이 튀어나왔다.
“다시 한 번 우리 가족이 된 걸 축하해.”
폭죽 하나를 내 머리 위로 터트리며 걸어온 알카네가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보다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야? 기다리다 지치는 줄 알았잖아.”
어느새 등 뒤로 다가온 예나스가 내 등을 세게 치며 물었다. 윽, 어찌나 세게 때렸는지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게 어쩌다보니……”
내가 애써 변명거리를 생각하고 있는데 예나스가 또 다시 내 등을 세차게 치며 웃었다.
응? 그런데 어디선가 술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뭐,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이람! 마시자!”
어째서 댁의 손에 이미 술병이 들려 있는 거요? 게다가 어째서 반 이상이 비어 있는 건데?! 환영회의 주인공인 내가 오기도 전부터 이미 마시고 있었던 거야? 혹시 애초에 나를 진심으로 환영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놀고 먹으려고 환영회를 연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기도 전에 예나스가 들고 있던 술병이 내 입을 틀어막았다.
“욱! 우욱!”
“와하하하! 마셔라 마셔!”
으윽! 수, 숨이 막힌다!
“어, 언니!”
당황한 렌이 예나스를 막으려 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파르마콘이 그녀를 붙잡았다.
“헤헤, 그러지 말고 언니도 한잔하세요.”
한 잔 정도가 아니라 병째잖아! 게다가 예나스야 그렇다 쳐도 어째서 파르마콘까지 취한 건데?!
단장인 알카네는 말릴 생각도 없는지 키득키득 웃으며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모두들 웃고 떠들기에 여념이 없었…… 아니, 그러니까 이게 무슨 환영회냐고! 그냥 댁들이 술 먹고 싶어서 그런 것 같은데!

으으, 눈앞이 핑핑 돈다. 이미 파르마콘과 렌은 술에 완전히 취해선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남은 거라고는 나와 예나스, 알카네 정도였다.
나도 처음에 예나스가 억지로 먹인 것이 타격이 컸던지라 소파에 앉아 간신히 정신줄을 붙잡고 있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웅, 시안. 나 속이 울렁거려어…….”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엄청나게 마시라고 했냐? 나처럼 그리 독하지 않은 술이나 홀짝거리면 될 것을. 아무리 달다고 해도 과실주를 물처럼 마시니까 그렇게 된 거 아냐. 과실주가 달기는 하지만 생각보다는 독하다고?
잔뜩 취해서 비틀거리며 다가온 렌은 내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그대로 쓰러져선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잠이 들어 버렸다.
자, 잠깐. 이러면 내가 자러 갈 수가 없잖아?
내가 렌의 머리를 치우기 위해 낑낑거리고 있는데 예나스가 술병을 든 채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자마자 그녀는 내게 술병을 내밀더니 나직하게 말했다.
“마셔.”
“아뇨, 전 이미 많이 마셔서…….”
애써 웃으며 거절하려고 하자 그녀는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다급히 손에서 술병을 받아 들고 마시자 그제야 예나스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아까 전에 선택 제대로 한 거야.”
응? 무슨 선택? 내가 영문을 몰라 쳐다보자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던 그녀가 무표정하게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아까 자엘 룬을 나서지 않은 것 말이야.”
“따, 딸꾹!”
내가 너무 놀라서 딸꾹질을 터트리자 그녀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내게서 술병을 받아 갔다.
뭐, 뭐지! 감시하고 있었다는 건가? 설마 아까 전에 내 뒤통수를 간질였던 시선은 예나스가 붙여 놓은 감시자의 것이었나!
“너는 아무리 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단 말이야. 남들은 다 좋다고 하는 기사단의 마법사 자리를 어째서 마다하려 드는 걸까? 그것도 모자라 도망치려고 하고.”
히에에엑! 다 눈치채고 있었잖아! 내가 긴장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무튼, 삼 개월이 지나면 떠난다고 해도 말리지는 않을 테니까, 그동안은 우리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해 주길 바란다.”
“……예.”
잔뜩 굳은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그녀는 가볍게 한 번 웃더니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물론 렌을 울려 버리면 너는 피눈물을 흘리게 될 거라는 거 알지?”
아니, 그런 말은 웃으면서 할 말이 전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암, 나도 이만 피곤하니 자러 가야겠다.”
예나스가 자러 가자 그제야 긴장이 풀린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감시하고 있었을 줄이야. 만약에 내가 그길로 자엘 룬을 벗어났다면…… 으으, 위험해!
“딸꾹! 딸꾹!”
그보다 딸꾹질이 멈추지를 않는데. 내 몸이 딸꾹질 때문에 흔들리자 내 허벅지를 베개 삼아 자고 있던 렌이 꿈틀거렸다. 그러고는…….
“우웩!”
조금 전까지 먹었던 것을 나에게 보여 주었다. 오, 신이시여, 제발!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했다고!
“푸하하하!”
계단을 올라가던 예나스가 이 모습을 보고 미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쪽에서 조용히 술을 마시던 알카네도 이 처참한 모습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젠장, 두 사람 다 보고 있지만 말고 이 녀석 좀 어떻게 해 달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