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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15화)
第五章 마인곡(1)


섬서성(陝西省) 서안에는 남북천맹의 한 축을 담당하는 북천맹(北天盟)의 총타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남북천맹은 두 개의 거대 세력의 연합이었다.
북천맹과 남천맹(南天盟)으로 말이다.
물론 남북천맹의 맹주는 율천세였고, 부맹주의 자리에 있는 자가 관리하는 남천맹은 안휘성(安徽省) 합비(合肥)에 위치해 있었다.
중원 무림을 지배하는 거대한 무림 단체, 남북천맹 중 북천맹 총타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총타에만 머무는 무인들의 숫자가 무려 이만 명이 넘었다.
그리고 그들을 수발드는 자들까지 수용하려면 엄청난 비용과 면적이 필요함은 당연한 일이다.
곳곳에 세워진 전각들의 숫자 또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건물들도 웅장하고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그중에서 북천맹의 실세들, 즉 맹주를 비롯해 북천맹의 각 기관들을 대표하는 자들이 머무는 장소는 총타의 정중앙에 자리하고 있었다.
핵심적인 인물들이 기거하고 있기에 그 주변은 절정의 무인들이 철통과도 같은 경계 체제를 취하고 있었다.
특히나 맹주가 기거하는 거처인 천성각(天星閣) 바로 옆에 위치하는 건물에서 일남 일녀가 천천히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내와 여인 외모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출중했다. 게다가 그들이 나온 건물에서 나왔다는 것만으로도 두 사람의 신분은 평범하지 않았다.
율무천(律武川), 율미금(律美擒) 남매가 바로 그들이었다.
남북천맹의 맹주인 율천세의 금지옥엽과도 같은 존재들이 바로 두 사람이었다.
그들의 뒤로는 열 명의 시비들이 따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대단한 사내의 자식답게 풍기는 분위기는 절도가 있었고, 위엄스러운 모습마저도 보였다.
“오랜만에 밖을 나오니 좋네요.”
청명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율미금이 상쾌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렇구나. 나도 요즘 무공서적에만 집중하다 보니 바깥 공기를 마셔 보지 못했구나.”
율무천의 나이는 기껏해야 이십 대 후반이었지만 눈빛이 날카롭고 움직일 때마다 흘러나오는 기도는 절대자의 자식다웠다.
“참, 그 이야기를 들었느냐?”
“무림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율천세는 사내아이인 율무천에게만큼은 혹독하게 무공을 가르쳤지만 율미금에게는 그러지 않았다. 본인의 거부 의사가 확실한 탓도 있었겠지만 율무천을 비롯해 그에게는 많은 제자들이 있었기에 필히 가르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율미금은 무공을 익히지 않았지만 무림의 일에는 관심이 많았었다.
“그렇지. 꽤나 놀랄 만한 일이란다.”
건물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율무천은 앞으로 남북천맹을 이끌어 갈 사내였다. 무림정세에 관해서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의 귀로 정보들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그런 그에게 며칠 전 흥미로운 이야기가 들려왔다.
“수적들과 산짐승들이 전쟁을 벌인다는구나.”
“장강수로십팔채와 녹림이 말인가요?”
영특한 동생은 자신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율미금은 진심으로 놀란 눈으로 그에게 반문했다.
“그렇다는구나.”
무림사를 깊게 알고 있지 않는 율미금이었지만 그 두 세력이 전쟁을 벌이게 되었다는 소식은 믿기 힘들었다.
“녹림의 초웅천과 장강의 원상은 그 친분이 깊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처음 그 소식을 듣고는 적잖이 놀랐단다.”
장강의 수왕인 원상이 과거 유명하던 다섯 명의 살인귀들에게 수하들을 잃고 며칠을 쫓긴 적이 있었다. 그때 그 소식을 듣고 초웅천이 홀로 원상을 살리기 위해 그들을 상대했다는 일화는 유명했다.
사실 당시 초웅천의 실력으로는 그들 다섯을 이기기가 힘이 들었다는 것을 상기했을 때 굉장히 어려운 선택이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친분은 깊은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벌인다고 해서 본맹에게 피해가 오지는 않을 게 확실하겠죠?”
율무천이 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모르는 일이란다. 몇 십 년 만에 무림에서 거대 세력이 전쟁을 벌이는 일이다. 직접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본맹의 속해 있는 문파들에게는 피해가 갈 수도 있겠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율미금은 진작 물어봤어야 할 질문을 꺼내었다.
“헌데, 왜 그토록 친하던 두 사람이 전쟁을 벌이는 건가요?”
“그것은……!”
말을 이어 가던 율무천의 걸음이 멈췄다.
두 사람은 바깥바람을 쐴 겸 오랜만에 부친을 만나기 위해 천성각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는 천성각을 향해 부리나케 뛰어 들어가는 부친의 모습이 보였다.
항상 위엄과 맹주로서의 권위만을 보여 주셨던 아버지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얼핏 보기에는 그분의 눈빛에서 불안감과 초조함마저 보이기도 했기에 더욱더 놀라웠다.

천성각, 내실.
“사부님!”
화려한 수실로 커다란 용이 가운데 그려진 복장을 하고 있는 중년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북천맹의 수장이자 현 무림을 좌지우지하는 엄청난 자리에 있는 사내치고는 꽤나 경박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차원이 다른 모습임에는 틀림없었다.
자신을 찾아왔다고 하는 노인이 그런 그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결정적인 인물이었다.
허겁지겁 실내로 들어온 율천세를 바라보던 노인이 혀를 찼다.
“네놈이 그래도 이 사부를 알아보기는 하는구나.”
제자라고 있는 인간이 수년 동안 연락이 되지 않는 자신을 찾지 않는 것이 괘씸하여 한 소리였다.
“도대체 어디 계셨던 겁니까.”
“세상 구경 좀 하였다.”
“못난 제자가 얼마나 사부님의 행방을 찾아다녔는지 아십니까?”
오랜만에 본 사부였지만 그동안 찾아 헤매고 다닌 기억이 나자 서운함과 야속함이 들었다.
실제로 그는 칠 년 전 갑자기 사라진 사부를 찾기 위해 중원 곳곳에 수하들을 뿌려 그의 행방을 수도 없이 찾아 헤매었다.
정녕 사부는 그런 제자의 진심 어린 노력을 몰라주고 있더란 말인가.
늙은 사부가 씩 웃었다. 누런 이가 모습을 드러냈지만 보기 흉하지는 않았다.
사실 그도 알고 있었다. 남북천맹의 맹주가 된 제자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떠났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찾는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피해 다니곤 했다.
그걸 알면서도 그저 오랜만에 제자를 보니 예전처럼 면박을 줘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만 앉아라.”
그때까지도 너무 놀란 나머지 서성이고 있던 율천세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누구입니까.”
율천세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부의 옆에 있는 자신과 같은 연배로 보이는 사내를 보며 물었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식으로 인사드립니다, 사형.”
“……!”
태어나 사부라고는 단 한 분뿐이었다.
그리고 그에게 제자라고는 자신 하나라고 알고 있었다.
“인사하거라. 네 사제이니라. 이름은 원상이라고 한다.”
수하들 앞에서는 철혈의 군주라고 불리기까지 하는 율천세였다. 그만큼 냉정한 그가 지금은 놀라움과 충격에 얼굴 표정으로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어 버렸다.
“아, 이 아이를 사람들은 수왕 원상이라고 부르더구나.”
“……!”
설마 했던 일이 사부의 입을 통해 사실로 밝혀지자 율천세는 충격에 휩싸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사제가 생긴 것도 황당한데 그가 장강의 수장인 수왕 원상이라는 말에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다.
“농을 건네시는 건 아니시겠죠?”
“하하하! 천하의 야수마황 여곤이 제자 놈에게 실없는 농이나 건네겠느냐.”
야수마황 여곤, 남북천맹의 맹주 율천세에게 무공을 가르쳐 준 것은 물론 그를 맹주로 만들어 준 장본인이 지금 이 노인이었다.
율천세에게 있어서 여곤은 사부 이전에 친아버지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허망한 미소가 그의 입가에 그려졌다.
그런 존재에게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몇 살 때 제자로 받아들이신 겁니까.”
“음…… 그러니까, 저 아이가…….”
“열세 살 때였습니다.”
“아, 그런가? 벌써 그렇게 되었구나.”
그렇다면 자신이 한참 사부에게서 무공 수련을 배울 때가 아니던가.
“그때 천세 이 아이를 열성적으로 가르칠 때였지.”
여곤이 따뜻한 눈빛으로 율천세를 바라보았지만 그의 눈은 원망 어린 빛을 띠고 있었다.
“그리 볼 필요 없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그때 이 아이를 보고 한눈에 반했단다. 내 무공을 익히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았지.”
“저보다 더 말입니까.”
“아니지. 그건 아니었을 게다. 상아, 네가 지금 연화검법(燃花劍法)을 몇 성까지 끌어올렸지?”
“육성입니다.”
“들었느냐.”
“그렇군요.”
율천세는 여곤이 창안해 낸 연화검법을 팔성까지 익힌 상태였고 조만간 구성을 바라보는 경지였다.
피나는 노력으로 육성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경지로 올라서려면 천부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만. 이제 이 아이에 대해서는 그만 이야기 하자꾸나.”
율천세는 화제를 돌리려는 사부를 보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늘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지금까지 다른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직접 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너에게 부탁을 하러 왔단다.”
“부탁…… 말씀이십니까?”
언제 사부가 자신에게 신세를 지려 했던 적이 있었을까?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율천세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가 무슨 부탁을 한다 하더라도 들어줄 의향이 있었다. 사부가 아닌 아버지의 부탁이라 생각하고 말이다.
“녹림과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 아이의 세력이 말이다.”
율천세는 원상에게 슬쩍 시선을 두었다 대답했다.
“남북천맹이 이 아이에게 힘을 실어 주려무나.”
“그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그 이유가 궁금할 뿐이지요.”
사제라는 걸 몰랐다면 모를까 안 이상 원상의 일은 곧 자신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손녀를 찾았단다.”
“잃어버렸다던 그 손녀를 말입니까!”
마치 자신의 손녀를 찾은 듯이 율천세는 기뻐했다.
“그렇게 되었구나. 헌데 그 아이가 녹림으로 흘러갔더구나.”
여곤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아이를 찾아오려다 녹림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졌어.”
“제 불찰입니다.”
원상이 고개를 숙였다.
“아니다. 내 부탁을 들어주느라 넌 친형과도 같은 사람과 피를 보게 되었고, 형제를 잃지 않았느냐. 내가 더 미안하구나.”
“설마…….”
“초웅천의 딸 초미라는 아이가 내 손녀더구나. 그 아이를 찾는 데 도움을 주겠느냐?”

***

오후의 햇볕이 쨍쨍한 날씨의 연속이었다.
점심이 지나면 모두가 나와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커다란 도시와는 달리 작은 시골의 객잔은 형편없을 정도로 낡고 보잘것없었다.
“도대체 무엇으로 만들었기에 이리도 맛이 비리단 말입니까!”
커다란 사기그릇에 있던 내용물을 한 번에 비운 대찰영의 외침이었다. 눈썹은 진한 내 천 자를 그리고 있었고 눈가는 파르르 떨리는 것이 엄청 고통스러운 얼굴이었다.
“말하면 네가 아냐. 그냥 주는 대로 먹어라. 그게 다 네 몸을 위한 거야.”
정말이지 진심으로 괴로워하는 대찰영의 얼굴을 쳐다도 보지 않은 채 사우는 배 속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대찰영이 들이켠 것은 사우가 손수 직접 제조한 약이었다. 사우는 어린 시절 무공에만 전념한 것이 아니라 의술, 서예, 그림에까지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 왔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그릇을 키워 온 사우는 대찰영에게 제멋대로 마성이 터짐을 방지해 줄 약을 지어 준 것이다.
그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지난 열흘 동안 강서성 일대의 산이란 산은 모조리 다 찾아 헤매었다. 그 결과로 만들어진 약이었지만 대찰영은 도저히 못 먹겠다는 표정을 유지했다.
“난 너에게 한 약속을 지켰다.”
그러니 너도 나에게 약속을 지켜라, 는 뜻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대찰영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직, 효과를 보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뭘 또 그렇게 험악하게 노려보십니까.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지요. 서두르지 마시라는 뜻입니다.”
갑자기 싸늘한 눈빛으로 변한 사우의 눈을 마주하자 대찰영은 손사래를 치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손님을 데려가게 되면 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습니다.”
“변하지 않았군, 그 율법.”
“율법에 대해서 아십니까?”
거창하게 율법이라고는 했지만 쉽게 말해 마인곡은 그들이 택하지 않은 자들은 들이지 않는 성지였다. 그걸 어겼을 경우 같은 식구라도 엄청난 형벌에 처하는 게 바로 그 율법이었다.
“나라면 괜찮으니까, 제대로 안내하기나 해.”
“도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겁니까.”
“마인곡이…… 남쪽에 있었던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시선마저 돌린 채 엉뚱한 말을 내뱉는 그를 보며 대찰영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끔, 아니 자주 남의 말을 무시하는 경향이 큰 이 사내의 얼굴을 때려 주고 싶었다.
그런 충동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대찰영은 자신의 무력함을 탓해야만 했다.
“헌데…….”
사우가 한 말을 곱씹어 보던 대찰영의 동공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기 시작했다.
“마인곡을 가 봤던 적이 있는 건 아니겠죠?”
“가 봤는데, 어렸을 적에.”
“거짓말 마십시오.”
대찰영은 절대로 믿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다.
“오래된 벗이 거기 있어.”
“설마 당신 마인곡 출신인 겁니까?”
“뭐, 그렇다고 해 두지.”
이도저도 아닌 대답에 대찰영은 속이 뒤집혔다.
“그럼 그 벗이라는 자가 누구입니까.”
“마존.”
“당신…… 사기꾼 아닙니까?”
대찰영은 코웃음을 치며 사우의 말을 부정했다.
단순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인곡을 들락거릴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마존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또 그의 말이 진실일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대찰영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의 의심은 이로울 것이 없었다. 그는 마인곡으로 가는 게 목적이었다. 그 길을 아는 사람은 현재 자신뿐이었다.
그리고 사우는 자신에게 마성을 멈추게 해 줄 약을 제공해 준다. 빌어먹을 마존에게서 얻은 무공 비급으로 인해 어울리지도 않는 살인마 소리를 듣는 판이었다.
물론 강해짐을 원한 건 자신의 선택이었지만 그 후유증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대찰영은 강한 마성으로 인해 이성을 잃었고 결국 마인곡에서 뛰쳐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자신을 말리지는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자들은 오로지 자기 수련 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들이었다. 대찰영으로서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인 것이다.
낯선 이를 데리고 왔다고 해서 자신에게 뭐라고 한다면 반박하여 대들 작정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이판사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