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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천 1권(18화)
第六章 후예(2)


“식성은 여전하시군요.”
대찰영은 혀를 차며 담천을 바라봤다. 그릇에 아예 코를 박고 음식을 빨아들이는 그의 식성에 혀를 내둘렀다.
“저 계집애 같은 놈이 워낙 요리를 잘해야지 말이지. 내 저놈 때문에 살이 안 찔 수가 없단 말이다.”
그는 자신이 살이 찌는 이유를 다른 이에게 돌렸다.
대찰영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담천이 말한 사내를 바라봤다.
정말이지 마인곡 밖으로 나가 사람들과 부대낀다면 눈에 띄는 용모를 가진 이였다.
허리까지 길게 기른 머리카락의 색이 가장 특이했다. 순결을 상징하는 새하얀 백색이었다. 신선이 따로 없는 묘한 분위기였다.
게다가 복장 또한 하얀 무복이었다.
삼십 대 중반이라고 보기에는 꽤나 어려 보이고 앳돼 보이는 외모였다.
백검천마(白劍天魔) 사군악(査君惡).
그의 머리색이 하얗게 변색된 건 사군악이 익힌 빙백투살공(氷白透殺功)이라는 내공 때문이었다.
현재 마인곡 안에 머무는 이들 중 마존 다음으로 강한 무공 성취를 이루었다 말할 정도로 강자였다.
“그냥 주는 대로 처먹어라.”
날카롭게 찢어진 눈매를 하고 있는데다 평소 말투까지 거친 사군악이었다.
대찰영은 슬쩍 눈을 내리깔고는 밥을 먹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있는 와중에 사우가 터벅터벅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말도 없이 어딜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저 사람입니다.”
대찰영이 조용한 목소리로 사군악에게 말했다.
사군악이 다가오는 사우를 쳐다봤다. 눈빛으로도 그가 사우라는 존재를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대찰영은 살짝 긴장을 하면서 담천의 상태를 살폈다.
가장 먼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설 것 같던 그는 웬일인지 아무런 움직임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희한한 일임에는 틀림없었다. 바로 어제 그런 모욕을 당한 걸 참고 있단 말인가?
대찰영은 마른침을 삼키고는 사우와 무섭게 그를 노려보는 사군악을 번갈아 바라봤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게 바로 지금을 말하는 것만 같았다.
“마인곡이 개나 소나 다 기어들어 오는 곳인 줄 아나?”
먼저 선공을 날린 건 사군악이었다. 역시나 말투에는 냉기가 풀풀 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사우는 특유의 무표정을 유지한 채 사군악의 옆에 앉았다.
“후우. 네놈은 백검천마 마혁(馬赫) 숙부의 제자구나.”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자신의 말을 무시한 채 알아들을 수 없는 말만 해 대자 사군악이 일갈을 토해 냈다.
평소 다혈질인 그의 성품을 잘 알고 있는 담천과 대찰영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빙백투살공을 익힌 것 같은데 그럼 마혁이라는 이름은 들어 봤을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얼굴도 모르는 그 마혁이라는 자식의 제자라 이건가?”
“…….”
“난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그 백검천마라는 놈의 무공을 익혔을 뿐이다. 누구의 제자나 되려고 무공을 익힌 게 아니라는 말이지.”
사우는 피식 웃었다.
“웃기는군. 겨우 머리색만이 바뀌었을 뿐인데 네놈이 강해졌다고 믿는 것이냐.”
사우의 그 말은 사군악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결과 사군악의 손이 낮고 빠르게 사우의 급소를 향해 파고들어 왔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다고 하더라도 사우가 쉽게 당할 리는 없었다.
팍, 팍.
손을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휘둘러 사군악의 공격을 막아 내었고 그 반대 손의 공격도 가볍게 막아 냈다.
“대찰영이 그러던데…… 네놈이 마존의 친구라고 말이야.”
“그런데?”
두 사람은 허공에 각자 공격한 손과 방어한 손을 대치시켜 놓은 상태에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네놈에게 보여 주지.”
“무엇을?”
“네가 약하다는 걸 말이다.”
“키키킥!”
사우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입술까지 비틀어 가며 비웃기 시작했다.
사군악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찰영, 가서 그놈을 가지고 와라.”
대찰영은 사군악이 말한 그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인곡에서는 살생을……!”
“그 개 같은 마존의 명령은 그놈이 있을 적에만 따르는 것이 좋을 게다.”
사군악이 으르렁거리자 대찰영은 어쩔 수 없이 어딘가로 몸을 움직였다.
“다시는 그 망할 주둥이로 웃음소리를 내지 못하게 해 주겠다.”
“얼마든지.”
그래도 사우는 웃었다.

대찰영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고생깨나 하고 있었다.
백검천마 사군악이 자신의 애병인 빙백마혼검(氷白魔魂劍)을 쥐고 있는 모습은 그가 마인곡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봤기 때문이다.
사군악과 그나마 친하다는 벗 담천의 말을 빌리면 그가 검을 든 건 살생을 할 때가 아니면 없다고 했다.
그렇다는 것은 사우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겠다는 의지가 없이는 안 되었다.
첫 만남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에 대해 대찰영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철천지원수도 아닌 이상 이런 전개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군악이 들고 있는 검은 녹지 않는 얼음, 눈이 그치지 않는 설산 깊숙한 곳에서만 구할 수 있는 얼음을 깎아 만들었다는 검이다.
대찰영과 담천은 멀찌감치 떨어져 나와 두 사람을 응시했다. 만약 이 사실을 마존이 안다면 사군악이 어떤 형벌을 당하게 될지 몰랐다.
마인곡이라는 곳을 한 번 들어온 이상, 그리고 마존이 준 무공을 익힌 직후 마존의 명령은 곧 하나의 법이었다.
그게 바로 마인곡에 머무는 이들에게 무공비급을 전수해 준 그와의 약속이기도 했다.
헌데 사군악은 지금 그것을 깨려고 했다.
평소 거칠고 까칠한 성품을 가진 그였지만 한 번도 마인곡에 머무는 이들과 이렇게까지 싸움을 벌인 적이 없었다.
“저 녀석이 왜 저러는지 아냐.”
“잘 모르겠습니다.”
“사군악 저놈은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거든. 그리고 지가 세상에서 가장 강한 놈인 줄 알지. 게다가 그런 행동을 할 만큼 막강한 힘을 가지고도 있거든. 그런데 문제는 저 녀석이 얻은 그 힘이 단기간에 그것도 생판 얼굴도 모르는 자가 만들어 낸 걸 따라 했다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야, 사우라는 저 사내의 짧은 대화 속에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니. 저놈에게 자존심은 제 목숨이야.”
“조용히 해라, 담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이 고스란히 사군악의 귀에 들어갔고 이내 싸늘한 그의 음성에 조용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자, 그럼 어디 한바탕 놀아 볼까.”
사군악이 빠르게 몸을 움직이며 사우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무기가 없지만 그런 건 상관하지 않았다. 기도만으로 벌써 무기를 이용하지 않더라도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상대는 마존보다 더 강한 자였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마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저 사내가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어차피 같은 인간인 이상 붙어 봐야 승패는 알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빙살참륙검식(氷煞斬戮劍式) 제삼식, 빙룡섬(氷龍閃)!
사군악이 들고 있는 검선에서 냉기가 어리더니 엄청난 한파를 동반한 채 사우에게로 그 기운이 덮쳐들어 왔다.
콰콰콰쾅!
온 땅을 얼려 버릴 듯한 기세였지만 정작 사우는 그 자리에서 몸을 비킨 지 오래였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사우는 사군악의 등 뒤에 서 있었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푸른 빛이 서려 있었다.
대찰영과 담천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두 사람 모두 그 빛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저 장법이 무엇일까.”
담천이 혼자 중얼거렸다.
사우의 두 손에서는 푸른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마치 불꽃처럼 말이다.
그러곤 사군악의 검과 그의 두 주먹이 맞붙었다.
도저히 검과 인간의 주먹이 맞부딪치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엄청난 굉음이었다.
내공이 약한 자들이 들었다면 고막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소음이었다.
특히나 이들 중 가장 내공이 약한 대찰영은 이를 악물고 그 고통을 이겨 내야만 했다.
사우는 사군악의 검법이 변화무쌍하고 예측하기가 힘이 들어 꽤나 애를 먹고 있는 중이었다.
“겨우 그 정도냐!”
사우는 배를 향해 들어오는 그의 빙검을 주먹을 이용해 바깥쪽으로 방향을 틀자마자 놀고 있는 왼손으로 사군악의 턱을 대각선에서 내리찍어 내렸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군악의 몸이 땅바닥에 처박혔다.
사실 사우의 이런 방어법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청살귀주장(靑殺鬼蛛掌)을 극성까지 익히게 되면 푸른 빛이 일렁거리는 것이 특성이었다. 위력은 웬만한 돌이나 쇳덩이는 무 베듯 가를 수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사군악이 휘두르는 검에도 그와 비슷한 검기가 서려 있었다. 그럴 경우 상대의 검과는 맞부딪치는 걸 피해야만 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손이 통째로 날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우가 냉철하게 행동하지 않은 것은 같잖기 때문이었다.
담천은 물론 사군악은 철궁마와 백검천마라는 별호와 무공을 이어받은 자들이었다.
그 전에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을 견식한 바 있는 사우로서는 그다지 강하지도 않은 이들이 너무 같잖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절대적인 위력을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형을 죽인 놈들을 혼자서 찾기는 너무나 버거웠다. 이들의 힘이 필요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의 실력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쿨럭!
사군악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다행히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대신 이빨 몇 개가 으스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입안에는 비린내 나는 핏물을 머금었을 테고.
사우는 씩 웃었다.
대찰영이나 담천처럼 한 방에 기절하지 않아 기특하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보여 주지. 나와 네놈의 차이를.”
서슬 퍼런 기세가 사우의 몸 주변을 감싸고 그 기도는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듯했다.

“대체 얼마나 두들겨 맞으면 이리 되는 것인지.”
초호진은 침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내려다보는 곳에는 사군악이 시체마냥 누워 있었다.
온몸에는 붕대를 감고서 말이다.
“대체 그 사우라는 자는 이 자식과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리 만들어 놓은 것이야.”
초호진은 대찰영과 담천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걸 듣고 난 초호진은 더 어처구니없는 얼굴이었다.
“그자…… 괴물이었습니다.”
대찰영은 멍한 눈길로 사군악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와 사우가 싸우는 모습을 본 이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등골이 오싹할 지경이었다.
“도대체 그런 자가 왜 마인곡을 방문한 것인지.”
담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군악 형님은 괜찮으시겠지요?”
“모르겠구나. 몸도 만신창이지만 일단 정신을 차리지 못하니 나도 장담은 하지 못하겠구나.”
“후우.”
육안으로 살펴도 사군악의 상태는 이루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어디 상상이나 했겠는가. 마인곡에서 마존 다음으로 강한 그가 이 지경이 될 것을.
세상 밖으로 나간다 하더라도 웬만한 고수들과 다퉈도 뒤지지 않을 그라고 생각했던 이들 세 사람은 허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혈룡 그 자식은 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
대찰영과 사우가 마인곡에 온 이후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이를 대찰영이 찾았다.
“원체 남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는 녀석이지 않느냐. 어디선가 홀로 제 무공을 다듬고 있겠지.”
“가만…… 그러고 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구나.”
물끄러미 사군악을 보던 담천이 말했다.
“열흘 남았습니다.”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알고 있는 초호진이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누구보다 그가 폐관수련에서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벌써 그리되었습니까.”
“벌써라니. 너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는 지난 시간을 마존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약속하지 않았느냐. 자신이 폐관에서 나오면 밖으로 나가겠노라고. 그래서 우리들의 피맺힌 원수를 갚는 데 앞장서겠노라 말이다.”
마존과 사우를 제외하고 마인곡에서 머무는 이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그들이 마인곡으로 들어온 이유는 다름 아닌 복수를 위함이다. 그래서 강해지기 위해 이곳으로 들어온 것이다.
각자의 사정과 각자의 복수 대상자는 다르지만 이들은 한 몸과도 같이 움직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통제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마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