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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 1권(7화)
1. 도래(渡來)(7)


피성기 선교사는 아버지, 할아버지가 모두 목사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신문지상에서 흔히 나오는 타락한 목사가 아니라 정말 사회에서도 존경받는 보기 드문 진실한 성직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삶은 절제와 헌신 두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만큼 올발랐다.
순탄하게 고등학교를 거쳐 군대와 신학대학을 마친 그는 아버지의 친우인 한 목사의 사역을 돕기 위하여 전라도의 섬으로 내려갔다가 그 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파견하는 선교사에 지원했다.
지원 이유는 단 한 가지. 도피의 목적이었다.
종교에 대한 도피가 아니라 부모와 가족에 대한 도피.
삶의 모든 것을 신에게 바친 삶이란 사실 보통 사람으로는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어렸을 때는 철모르고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던 삶이 그가 일반병으로 군대에 입대하면서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종교에 억매이지 않고 부모의 간섭도 받지 않고 사는 삶이 얼마나 편안한 삶인지 피성기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아 버린 것이다. 군대는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 주었다.
물론 마음 한편으로 자신이 부도덕하지 않나 하는 걱정을 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으나, 자신의 신에 대한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는 걸로 위안을 삼았다.
그렇게 군대를 마치고 입학한 신학대학은 군 시절 자유로웠던 피성기를 다시 한 번 정신적으로 옭아매는 족쇄가 되었다.
신학대학이 힘든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닥친 가장 비참한 현실은 신학대학과 자신의 집과의 거리였다.
그 거리는 걸어서 단 5분이었다.
피성기의 대학 4년은 악몽 그 자체였다.
대학 4학년을 마치고 그가 사역을 목적으로 교회를 알아보고 있을 때, 자신의 교회에서 사역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바로 집과의 거리였다.
무조건 멀기 만 하면 됐다. 무조건!
거의 피성기의 강박관념이었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전라도의 섬. 그는 그곳에서 무한한 자유를 느꼈고 마음속으로 사모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피성기의 부모는 그의 경험이 어느 정도 찼다고 생각하고 부모의 교회로 돌아오길 바랐다. 물론 교회 세습이니 하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의 부모님들은 완벽한 목사며 사모님이었다, 모든 면에서.
그 모든 면이라는 점이 그를 옭매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자신의 부모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피성기가 돌파구로 삼은 곳은 아프가니스탄이었다. 그가 사역하고 있던 교회가 속한 교단에서 선교사를 파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사모하던 여인과의 이별도 감수한 채 무작정 지원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그리고 3년, 그는 군대 시절보다 더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떨어진 이곳.
신의 뜻이 무엇인지 확실히는 몰랐다.
하지만 그는 어렴풋하게 확신할 수 있었다.
그가 무엇을 확신하였는지는 아직까지는 피성기 그만의 비밀이었다.

일행이 벌써 한 달여를 살고 있는 오크 마을은 어둠의 숲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상당이 안전한 곳이었다.
마을이 등지고 있는 돌산이 험준해서 그쪽으로는 몬스터나 동물들이 접근하기 힘들었고 나머지 삼면은 마을을 감싸면서 돌아 흐르고 있는 형산강의 물줄기가 보호해 주는 형상이었기 때문에 일행이 지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지형이었다. 역시 인간을 납치해서 부릴 정도로 영리한 오크들이 살던 마을다웠다.
한 달여 동안 분대원들과 민간인들은 마을을 다시 정리했다. 동굴을 창고로 쓰기로 하고 나무를 벌목해서 마인즈의 지휘하에 아주 튼튼한 문을 달았다.
동굴 속에는 그들의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탈레반들의 비트였던 그곳에는 상당한 양의 무기와 발전기 등의 장비와 연료인 휘발유 그리고 비상식량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일행들에게 가장 중요한 곳이었다.
“상태는 어떻습니까, 김 중사님?”
동굴에서 탄약과 얼마 남지 않은 식량과 장비들을 살펴보던 김준성 중사에게 문무혁 대위가 다가왔다.
“다행히 동굴에 습기가 많지 않고, 탈레반 놈들이 밀봉을 잘해 놔서 별탈은 없습니다. 다만 식료품이 걱정이 됩니다. 다행히 소금은 몇 십 포대 쌓여 있어서 넉넉하고, 젓갈로도 담고 있으니 걱정이 조금 덜한데 밀가루는 이제 얼마 못 갈 것 같습니다.”
동굴 안은 정리해 놓은 총기류, 탄약류 등과 김 중사가 잡아서 훈제해 놓은 물고기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마인즈 말로는 지금이 10월이라 합니다. 이곳의 겨울은 빨리 찾아오고 길다고 하니 식량 수급에 걱정이 많습니다.”
“지금 땔감도 열심히 모으고 있고, 송 상병이 만든 움집에서 시험 삼아 키워 본 상추가 잘 자라고 있습니다. 곧 씨도 받을 수 있을 테고요.”
문무혁 대위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일행의 생존이었다. 민유라 간호사에게까지 귀중한 실탄을 사용해서 사격 훈련을 시킬 정도로 그는 일행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곳에 떨어지고 한 달. 처음에는 우왕좌왕하던 일행들은 이곳에 인간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구의 중세와 르네상스시대가 합해진 것 같은 문명 수준으로, 계급 간의 격차가 심하고 거의 완벽한 봉건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의 문화는 일행들에게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이곳 숲을 벗어나 이곳의 유력 국가에 의탁하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하지만 문무혁 대위의 반대로 곧 그 의견은 각하되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문무혁 대위의 입장에서는 멋모르고 가끔 가다 형산강을 넘어 오는 몬스터들은 전혀 두렵지 않았다. 그 숫자도 적을 뿐더러 아직까지는 이 마을이 오크의 영역으로 알려져 있어서인지 몬스터들을 구경하기는 힘들었다. 설령 한두 마리가 형산강을 넘어오더라도 우수한 화력으로 헤드 샷을 날리면 그걸로 끝이었다.
군인이 아닌 김성한 박사도 몬스터를 우습게 보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종류도 다양한 이곳의 몬스터들을 해부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그 장면을 본 마인즈가 김 박사를 흑마법사로 오해해서 한동안 근처에도 못 가는 촌극이 벌어질 정도로 이곳의 몬스터는 약간의 주의만 기울인다면 문 대위 일행에게 위협이 될 수 없었다.

문 대위가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이었다.
마인즈의 손, 발짓 설명으로 알게 된 이곳은 지구의 중세와 르네상스의 혼합 문명 정도로 보였고, 마인즈가 집을 짓는 것으로 보아도 상당한 정도의 문명 수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 더 고도의 문명과 무기를 가지고 떨어진 그들을 발견한 이곳의 귀족들의 반응은 한 가지로 귀결될 뿐이었다. 무력의 이용!
물론, 몽고의 쿠빌라이칸 같은 깨어 있는 군주를 만난다면, 잘 먹고 잘살 수야 있겠지만 중세 유럽 영주들의 수준이 동양과는 천지 차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문무혁 대위로서는 그런 위험 부담을 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문무혁 대위는 고립되어 있는 어둠의 숲의 환경을 이용해서 충분한 시간을 가지길 원했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어둠의 숲의 환경이 악마의 땅으로 여겨질 정도로 험악하게 보일 테지만, 문무혁 대위의 눈에는 상당히 훌륭한 환경으로 보였다. 몬스터만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풍부한 사슴류와 토끼들, 그리고 멧돼지들이 널려 있는 곳이 이곳 어둠의 숲이었다.
식생과 지형 탐색을 위한 정찰에서 가끔 채명훈 하사가 잡아오는 사슴이나, 멧돼지들로 인해 일행들의 단백질 섭취도 늘어 가고 있었고, 형산강의 물고기도 거의 물 반, 고기 반이었다.
땅도 지력이 좋아서 송채민 상병이 키우는 채소들의 성장 상태도 좋았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곡식들이었는데 어느 정도 이곳 말에 익숙해지면, 남작령으로 나가 그동안 꾸준히 모아 놓고 있는 몬스터들의 부산물과의 물물 교환을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처음 오크의 가죽이나 이빨 등이 비싸게 팔린다는 것을 마인즈에게 알게 된 일행은 이미 묻어 버린 오크들의 시체를 파헤치려고 했었다.
하지만 RPG―7에 박살나 버린 와이번의 시체만 하더라도 엄청난 값어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는 다 썩어버린 오크 시체를 다시 파헤치는 불상사만은 겨우 피할 수 있었다. 다행히 김성한 박사의 강력한 주장으로 인해서 와이번 시체의 골격과 가죽은 버리지 않고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어둠의 숲이란 곳은 이곳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 인간이 살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거의 완벽하게 버려져 있는 땅이었다. 넓이가 한반도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광활한 넓이의 숲에는 이곳 학자들도 알지 못하는 몬스터들이 우글우글거렸다.
그렇지만 문 대위의 생각은 달랐다. 그의 생각으로는 이곳 사람들이 느끼는 몬스터들의 위협의 강도와 일행이 느끼는 위협의 강도가 다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숲에서 만나는 가장 작은 몬스터이고 무리 생활을 하는 고블린을 예로 들자면 그나마 제일 약한 고블린을 일반 성인 남자 혼자서 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운동 능력에 있었다.
지구의 예를 들자면 침팬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 성장한 침팬지의 크기는 초등학생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그 운동 능력은 성인 남자의 4배 정도다. 그 악력이며 힘은 보통의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유로핀 대륙의 직립형 몬스터들은 부족의 개념이 있고 인간을 납치해서 이용할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으니, 인간이 일대일로 쉽게 잡을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물론 완전 무장한 병력의 토벌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으나 이 세상은 빈 땅이 천지인 곳이라 이런 곳을 개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구의 미국 서부시대를 보더라도 인간의 숫자에 비해 땅이 너무 넓어 먼저 말뚝 박으면 내 땅 하는 식 아니었던가.
이곳도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유로핀 대륙의 국가라는 것은 잦은 전쟁과 병으로 인하여 인구 증가율이 미미했다. 그래서 땅은 남아도는 구조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 문 대위 일행이 어둠의 숲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교묘했다.
어둠의 숲 외각을 주서식지로 삼고 있는 하위 몬스터인 고블린, 코볼트, 오크 등의 영역이 분명한 가운데 오크 부족 한 개를 전멸시키다시피 한 문 대위 일행은 별다른 충돌 없이 기존의 몬스터들이 정해 놓은 영역 한 곳을 차지하고 들어온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다툼을 원하지 않는 문 대위 일행으로서는 행운일 수밖에 없었다.

문무혁 대위는 일행의 무장 상태에 대하여 상당한 수준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과장된 자신감이 아닌 것이 아프가니스탄 파병으로 인해 강화된 수색분대의 무장 수준은 가공할 만했다. 더불어 운 좋게 피신해 들어간 탈레반들의 비트인 동굴에 저장되어 있는 무장과 탄약의 양도 무시 못할 만큼 많았다.
지금 일행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살펴보면 일반 보병 분대원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강화된 해병대 수색 분대원들답게 20mm 공중 폭발 유탄과 5.56mm 소총탄을 함께 사용하는 K11 복합 소총 2자루에 K3 분대기관총 1자루, K―201 40mm 유탄 발사기가 장착된 K2 소총 2자루. 거기다 해병대 저격수 훈련을 마친 채명훈 하사가 가지고 있던 MSG―90 저격 소총 1자루, K2 소총 2자루. 문무혁 대위와 김준성 중사가 가지고 있던 K5 권총 2자루로 무장되어 있었고 더군다나 그 장비들이 아프가니스탄 파병군의 장비답게 전 무기가 레일시스템으로 액세서리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놈들이었으니 문무혁 대위의 자신감이 결코 근거 없는 것은 아닐 터였다.
그밖에 분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장비로는 지금은 원래의 용도를 잃어 버리고 분대원들의 무료함을 달래 주는 뮤직플레이어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는 GPS 수신기들과 근거리 헤드셋 일체형 무전기 8대, 통신용 위성 전화기 1대, K―413 수류탄 32발, 시계 몇 개, 분대원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범용 태양열 충전 키트 5세트가 있었다. 사실 분대원들은 이 충전 키트로 GPS 수신기를 충전하여 음악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위에 언급한 장비 이외에도 KM20 쌍안경 한 개와 열 영상 광학 장비를 별도로 갖추고 있는 K11과 MSG―90 저격총 사수를 제외한 5명의 분대원이 소총에 장착해서 가지고 있는 PVS―04K 단안형 야간투시경이 있었다.
문무혁 대위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실탄이었다. 일반 보병보다는 상당한 양의 실탄을 휴대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분대원 개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탄의 숫자는 한계가 있었다. 문무혁 대위는 공용으로 쓰이는 K2용 실탄 전부를 분대 공용화기인 K3에 할당했다. 그래도 모아 놓으니 그 수량이 근 2,000여 발에 달했다. 5.56mm 실탄을 전부 K3에 배정한 문무혁 대위는 동굴에 탈레반들이 보관 중이던 AK―47 소총으로 분대원들을 무장시켰다.
탈레반이 사용하는 AK―47은 5.56mm 나토탄을 사용하는 한국군과는 달리 7.62mm 탄환을 사용함으로 호환성은 없었지만, 구경이 큰 만큼 펀치력이 강해서 이곳 몬스터용으로는 K2보다 우수했다.
동굴에서 약 200자루의 AK―47 소총과 10만 발 정도의 7.62mm 탄환이 발견되었을 때 문무혁 대위와 김준성 중사가 서로 껴안고 엉엉 울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이 무기들은 일행의 목숨 줄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알라신의 요술 방망이라 불리는 만능(?)의 무기인 RPG―7이 발사기 10자루에 탄두가 약 200발 정도 있었다. 탄두가 그냥 폭발하는 고폭탄이 아니고 성형작약탄이라 불리는 관통용의 HEAT탄이어서 약간은 불만이었지만, 중세시대에 로켓 무기라니 이준혁 상병 말을 빌자면 먼치킨이 따로 없었다.
더불어 IED(급조 폭발물)용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폭약인 C―4 500kg 정도와 전기식, 비전기식 뇌관, 볼 베어링들도 보관되어 있었다. 1kg이면 반경 2∼30m를 날릴 수 있는 C―4의 존재도 일행에게는 든든한 점이었다.
탄약보다도 문무혁 대위를 안심시킨 것은 바로 10드럼의 휘발유와 발전기 그리고 탁상 선반과 탁상 밀링, 전기 드릴 등의 공구였다.
탈레반들이 총기를 수리하거나 사제 총기 또는 사제 폭탄을 만들 때 사용하던 것으로 보이는 이 장비들은 비록 중국산의 형편없는 물건들이었지만 이곳에서 필요한 물품을 만들어내는 데 더없이 요긴한 물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