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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 1권(9화)
2. 접촉(2)


“어∼ 춥다!”
간밤에 소복하게 내린 눈을 밟으며, 요르크는 이틀 전에 놓은 덫을 살펴보기 위해 마을에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숲으로 향했다.
그는 며칠 동안을 허탕을 쳤는지라 오늘은 운이 좋게 토끼라도 한 마리 걸려 있기를 소망했다.
농부인 요르크가 비록 사냥에 능숙한 것은 아니었지만, 겨울에 덫을 놓아서 산짐승을 잡아 살코기는 식량에 보태고 가죽을 파는 것은 화전민 마을 사람들로서는 늘 있는 일이어서 덫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거침이 없었다.
몇 개의 덫을 허탕치고, 마지막 덫으로 향하던 요르크의 귀에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헛! 사슴이다!”
횡재 중의 횡재였다. 활을 능숙하게 다룰 줄 모르는 요르크가 사슴을 잡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불가능이었다. 그런데 그가 놓은 덫 중 마지막 덫에 사슴이 걸려 있는 것이아닌가?
“미리엄 여신님 감사합니다.”
요르크는 얼른 성호를 그어 대지의 여신에게 감사를 올렸다.
“오늘은 복받은 날이구먼. 토끼도 아니고 사슴이라니. 후후후.”
저녁에 먹을 노릿한 사슴 고기와 스튜 생각에 절로 입맛을 다시며 요르크는 능숙한 솜씨로 덫에 걸려 몸부림치는 사슴의 목을 따고는 가지고 있던 밧줄로 뒷다리를 묶어 나무에 걸쳐 매달았다.
“후후. 사슴은 피를 잘 빼야 고기에서 피 냄새가 안 나는 법이지. 아무렴, 아무렴.”
요르크는 능숙하게 사슴의 피를 뺐다. 사실 그는 사슴을 처음 잡아 보는 것이었으나 화전민 생활 10년에 듣고 배운 것이 많아 사슴의 뒤처리 정도는 식은 죽 먹기였다.
피가 빠지는 것을 기다리며 요르크는 대중 주변의 나무 가지들을 쳐서 끌고 갈 수 있는 허름한 썰매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슴의 크기가 상당해서 그가 혼자서 들고 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에 썰매에 실어 끌고 가려는 생각이었다.
크르르르르릉.
크릉.
그르르릉.
요르크가 정신없이 썰매를 밧줄로 엮고 있을 때 그의 등 뒤에서 으르렁대는 짐승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화전민들이 몬스터 다음으로 무서워하는 짐승인 늑대가 나타난 것이다.
한겨울의 늑대란 정말 무서운 짐승이다, 부족한 사냥감 때문에 겨울 늑대는 오우거에게도 달려든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흉포해지게 마련이었다.
굶주림에 지쳐 배는 등에 달라붙고 피골이 상접한 늑대들은 바로 요르크에게 달려들었다.
본능적으로 두 팔을 들어 자신을 방어하던 요르크는 순간 두 눈을 의심했다.
그에게 달려들며 뛰어오르던 세 마리의 늑대가 허공에서 무언가에게 두드려 맞은 것처럼 머리에 피를 쏟으며 땅에 떨어진 것이다.
캥!
컹!
케갱!
곧이어 요르크의 귀에는 세 번의 천둥소리가 들렸다.
쾅!
쾅!
쾅!
뜻밖의 상황에 놀란 요르크는 두 다리가 풀려 그대로 눈 바닥에 주저앉았다.

“나이스 샷! 채 하사님!”
“멋지십니다. 전부 헤드 샷이시네요!”
송채민 상병과 이준혁 상병이 채명훈 하사의 솜씨에 감탄을 했다.
“나쁘진 않구만. 하하하!”
채명훈 하사가 그가 조금 전에 발사한 MSG―90 저격 소총을 어루만졌다.
분대가 속해 있던 대대에서도 최고의 사격 솜씨를 가진 채명훈 하사에게 50m도 안 떨어진 곳의 표적을 맞추는 것은 누워서 숨 쉬기보다 쉬운 일이었다.
채명훈 하사를 비롯한 세 사람이 덫을 발견한 것은 한 시간쯤 전이었다.
그들은 사슴이 올가미에 다리가 걸려 있는 모습을 보고 여기서 기다리면 인간과 접촉할 수 있으리라는 예상을 하고 덫으로부터 50m 정도 떨어진 구릉에 잠복했었다.
세 사람은 주위를 경계하며 늑대에게 습격을 받던 인간에게 다가갔다. 이 세상에 와서 마인즈를 제외하고 처음 조우하는 인간이었다.
채명훈 하사와 이준혁 상병이 주변을 경계하는 동안, 일행 중 가장 유로어에 능숙한 송채민 상병이 원주민에게 말을 걸었다.
원주민은 눈밭에 주저앉아 벌벌 떨고 있는 폼이 오줌이라도 지린 듯싶었다.
“괜찮으십니까? 다치신 데는 없으시죠?”
요르크는 송채민 상병의 물음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감사를 표시했다. 늑대가 왜 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고로 숲에서 만나는 인간이 맹수보다도 더 무서운 법이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런데 늑대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전부 사… 아니, 죽였습니다. 몇 마리는 도망갔구요. 이제 안심하셔도 됩니다.”
송채민 상병은 사살했다고 말하려다 사살이라는 말을 이 남자가 이해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에 죽였다고 정정했다.
“아! 늑대를 물리쳐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요르크는 감사 인사를 하다가 문득 사슴이 매달려 있는 나무를 보았다.
자신을 구해 줬다고 스스로를 소개한 누더기를 둘러쓴 세 사람 중 한 사람이 손에 든 검은 쇠막대기로 사슴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사슴은 이렇게 처리하는 거군요. 이걸 몰라서 피 냄새 나는 고기를 겨울 내내 먹었으니.”
“그러게나 말이다. 하여튼 사람이 머리가 나쁘면 손발이 고생하는 겨.”
두 사람이 사슴 이야기를 하자 요르크는 겁이 번쩍 났다. 자기를 구해 줬다고 말은 하지만 세 사람의 몰골을 보자면 솔직히 믿기 힘들었다.
검은 가죽 신발을 신고 온몸에 가죽을 둘둘 말아서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 둥근 모자를 쓰고, 모자위에는 마른 나뭇가지니, 풀 따위를 듬뿍 꽂아서 머리에 조그마한 마른 풀숲을 지고 다니는 형상이었다.
‘산적들일 거야.’
요르크는 몇 년 만의 행운인 사슴이 미워졌다. 사슴을 집으로 가져가면 좋아할 힐데와 두 자녀들의 생각도 어느덧 머리에서 사라졌다. 그저 목숨만 살려 마을로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만이 머리를 맴돌았다.
“살려 주세요!”
요르크는 머리를 눈밭에 처박았다.
“헛! 왜 이러십니까?”
당황하는 송채민 상병을 본 채명훈 하사와 이준혁 상병이 한마디씩 했다.
“송 상병. 아무래도 우리 몰골을 보고 저분이 오해하신 것 같다. 설명을 해, 설명을”
“거 있잖아요. 여기 나오기 전에 상의한 거 설명하세요, 설명.”
유로핀 대륙의 인간과 접촉하기 위해서 겨울 내내 일행은 많은 토의를 했다. 문무혁 대위가 배운 민사 작전에 대한 내용과 근 3년여를 아프가니스탄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보낸 피성기 선교사의 경험을 합하여 첫 접촉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많은 의견이 오갔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결론은 ‘뺨 때리고 어르기’였다. 그저 저자세로 다가가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게 강압적인 환경을 만들고, 그 환경을 해결해 줌으로서 신뢰를 얻자는 이야기였다.
강제로 어려운 환경에 처하게 한다는 계획을 들은 민유라 간호사가 거세게 반발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문무혁 대위가 지금 일행이 가진 월등한 무력의 정도와 그 한계를 설명하고 일행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이곳 사람들에게 나약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자 곧 민유라도 수긍을 했다.
더군다나 어설픈 접촉은 이곳 사람들에게 중세시대의 마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는 문무혁 대위의 설명이 이어지자 오히려 어떻게 하면 처음 접촉할 마을을 어렵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토론에 가장 성실하게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일행이 가질 신분에 대한 걱정은 애초에 우려했던 것보다는 쉽게 풀렸다.
마인즈의 설명에 의하면 유로핀 대륙에는 피부가 하얀 유로인, 피부가 검은 니골인, 그리고 피부가 일행처럼 노란빛이 도는 오리엔탈인이 섞여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대다수의 귀족은 유로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골인 귀족, 오리엔탈 귀족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는 일행의 걱정을 덜어 주었다.
언제부터 유로인, 니골인, 오리엔탈인으로 불리웠는지는 그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으나 어쨌든 지금의 유로핀 대륙에서는 인종의 차별은 거의 없는 편이라는 이야기였다.
“진정하십시오. 겁먹지 않으셔도 됩니다.”
송채민 상병은 눈밭에 머리를 처박고 연신 살려달라는 말을 하는 요르크를 안아 일으켰다.
“저희는 산적이 아닙니다. 몰골은 조금 험하지만 어둠의 숲에서 오랜 시간 살다 보니 꼴이 이런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요르크는 다정히 들려오는 송채민 상병의 말에 고개를 살짝 들었다.
입은 옷은 어떻게 봐도 산적이지만 얼굴은 깨끗했고, 자신을 다정하게 바라보는 눈빛이 따스했다.
“정말 산적 아니십니까?”
“네. 절대 산적이 아닙니다. 저희는 어둠의 숲에서 연구를 하시는 마법사님의 가디언들입니다. 식량을 조금 구하려고 숲 밖으로 나오다…….”
송채민 상병은 상대의 이름을 몰라 잠시 말을 멈췄다.
“요르크입니다. 하츠 마을의.”
“아! 요르크 씨군요. 늑대에게 습격을 받는 요르크 씨를 발견하고 저희가 해치우게 된 겁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덕분에 목숨을 구했습니다.”
요르크는 자신들이 어둠의 숲에서 연구를 하는 마법사의 가디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키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보였고, 손에 들고 있는 쇠막대기도 정교하고 반짝이는 것이 보통 물건은 아니게 보였다.
“혹시 살고 계신 하츠 마을에 식량이 여유가 있으시면, 저희에게 파실 수는 없으신지요. 물론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제가 결정을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구요. 마을 촌장님께 의논해 보아야 합니다.”
“그럼 일단 저 사슴과 늑대들을 마을로 옮기시지요. 늑대들은 요르크 님께 드리겠습니다.”
송채민 상병은 크게 인심 쓰듯이 늑대를 요르크에게 양도했다.
“저희는 여기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외부인이 갑자기 나타나면 마을 분들이 놀라시겠지요.”
요르크는 이들이 보통 신중하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자신들을 마을로 데려가는 것에 대하여 망설이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먼저 여기서 기다린다고 말했다.
사실 그들이 강제로 마을로 가자고 해도 자신이 거부할 방법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웃는 낯으로 반겨 주지도 않을 것이었다.
마을 자체가 갖가지 사정으로 영지를 도망쳐 나온 사람들로 이루어진 터이라 외부인들에 대한 경계심이 무척이나 강한 편이었다.
“휴∼ 잘됐네요. 이렇게 쉽게 접촉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그래. 일이 잘 풀리려고 딱 맞춰서 늑대가 나타나 주었다. 그래도 앞으로의 일이 중요하다. 주변을 살피는 것을 게을리 하면 안 된다.”
“네, 걱정 마십시오. 채 하사님!”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