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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 1권(22화)
5. 두 번째 충돌(2)
“다들 이야기는 들으셨으리라 생각됩니다.”
문 대위는 자신을 쳐다보는 200명 정도의 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기억하겠다는 듯 주민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뒤를 돌아보십시오. 보이십니까? 여러분 눈에 비치는 마을은 저희와 여러분이 힘을 합하여 이룬 결과물입니다. 전 여러분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문무혁 대위의 말에 따라 뒤를 쳐다보았다.
몰라보게 달라진 하츠 마을이 눈앞에 펼쳐졌다.
하츠 마을은 가을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의 시행 착오를 거쳐 완공된 제재소는 엄청난 양의 목재를 쏟아내고 있었고, 그 목재들은 우선적으로 마을의 환경을 개선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오물투성이의 마을은 깨끗하게 정비되었고, 집집마다의 마당에는 산에게 캐온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아름다움을 뽐냈다.
“저희도 싸우겠습니다, 대장님! 이곳을 버리고 갈 수는 없습니다! 도망은 치지 않겠습니다!”
문 대위 일행과 가장 먼저 접촉했고, 3번 올빼미를 거쳐서 이젠 어엿한 자치대장이 된 요르크가 외쳤다.
그의 뒤에는 허리에 검은색 띠를 두른 20여 명의 남자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채명훈 하사의 지도하에 태권도 1단을 딴 마을 남자들이었다.
“그렇습니다.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이 마을은 여러분의 마을이지만 저희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충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습니다. 싸워서 내 마을을 지킬 것입니다.”
문무혁 대위는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첫 살인을 하고 나서 그는 며칠을 잠을 못자는 후유증에 시달렸다. 하지만 역시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조금씩 희미해져 갔고, 살인의 충격을 극복했던 경험은 오늘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요르크는 입이 튀어 나왔다.
“아니, 채 하사님. 저희는 안 싸운다고요? 지금까지 얼마나 열심히 훈련을 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희도 싸울 겁니다.”
“얌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어. 너희가 뭐로 싸울래? 칼? 창? 활? 뭐로 싸울 건데?”
일행은 마을 사람들에게 총기를 나누어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만일을 대비해서 목총을 만들어 총검술을 가르치고 있기는 했지만, 실총을 주고 실탄을 준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다른 일이었다.
아마도 일행이 총기를 나누어 줄 시기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이들을 완벽하게 믿을 수 있을 때가 되어야 할 터였다.
총이라는 것은 그냥 들고 쏘면 그 총알이 어디로 튈 줄 모르는 물건이었다. 앙심을 품은 일인이 자신들에게 총을 난사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쓸데없는 말하지 말고 너희는 따로 할 일이 있어. 명령을 명심하고 그대로 시행해야 돼. 너희들이 명령을 얼마나 잘 이행하느냐에 따라 목숨 몇 개가 왔다 갔다 하니까.”
채명훈 하사는 검은 띠 일동에게 작전을 설명했다.
‘왔다 갔다 하는 목숨이 비록 적의 것이지만, 많이 죽이면 꿈자리가 사납거든.’
채 하사는 진심으로 문 대위의 작전이 들어맞아 최소한의 적의 피해로 사태가 마무리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는 그 자신이 아군의 피해는 전혀 고려조차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 * *
드보아 헨켈이 이끄는 레겐스부르크 영지군은 하츠 마을로 서서히 행군하고 있었다.
경험 많은 드보아의 통솔과 더불어 5명의 기사의 용병술이 어우러져 군기의 엄정함은 군터가 이끌었던 첫 번째 토벌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지난번 토벌에서 마지막으로 야영했던 공터 주변은 깨끗합니다.”
정찰을 목적으로 선두의 앞장을 섰던 경기병 한 기가 돌아와 보고했다.
드보아는 10여 기의 경기병을 전초로 내보내 행렬의 앞을 정찰하게 하고 있었다.
“그래. 그럼 우리도 역시 그곳에서 야영을 해야겠군. 디이터 경 준비를 해 주게.”
드보아는 중갑기마대를 맡고 있는 디이터에게 야영 준비를 명했다.
군터가 야영했던 곳에서 야영하는 것이 탐탁지 않았지만, 그곳을 빼놓고는 600여 명이 넘는 인원이 야영할 공터가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밤중에 하츠 마을을 공격할 수도 없는지라 다른 선택의 여지를 찾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흥! 자기는 별 수 있나? 패배가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렇게 설명을 해도 듣는 척도 하지 않더니 결국 여기서 야영이야?”
군터는 정말로 이 원정을 따라오는 것이 싫었다. 지금도 자신의 눈앞에서 터져 나가던 말머리의 모습이 선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공자님. 드보아 경이라고 별 수 있겠습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 제가 이달로니 왕국의 와인을 구해 왔으니 한잔하시지요.”
부르터는 로펜과 마법 무구 이야기를 군터가 못하게 설득하느라 고생했던 생각을 하면 와인이 아니라 돼지 오줌을 군터의 입에 처넣고 싶었으나, 겉으로는 웃으면서 군터의 비위를 맞추었다.
“오! 그 귀한 이달로니 왕국산 와인이라고? 거참 역시 부르터밖에는 없구먼. 어디 한잔 맛을 볼까?”
“그럼요, 공자님. 어서 군막으로 드시지요. 식사도 준비가 됐을 겁니다.”
두 사람은 영지병들이 야영지를 만드느라 부산한 것을 본체만체 군터의 군막에 들어가 술판을 벌리기 시작했다.
드보아는 군터의 군막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의 군막을 치게 했다.
그는 부르터의 해명을 들었지만, 이자르의 죽음에 군터의 책임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군터의 도박 중독이 아들 죽음의 원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제 하룻밤만 지나면 아들의 원수는 갚을 수 있을 터였고,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군터도 혼잡한 전투의 와중에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울리히 힘멘도르크는 수많은 말들의 머리를 손만 들어서 터트렸다는 어둠의 숲 마법사에게 커다란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젊었을 적 많은 전장을 전투 마법사로 종군해 마법 대전을 펼쳤던 그에게도 어둠의 숲의 마법사가 했다는 마법은 생소하기 그지없었다.
더군다나 마법사가 직접 나타난 것도 아니고 가디언들의 대장이라는 자가 저지른 일이라 하니 그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구나. 너희 둘은 내일 상황을 잘 보고 대처를 해야 될 것이다.”
울리히 힘멘도르크는 자신의 두 제자인 유겐과 우줄라에게 당부를 했다.
마법사들은 자질을 타고난다. 그 체질이 발현되면 그가 마법사가 되던지, 안 되던지 상관없이 약간의 예지 능력이 생기는데 지금 울리히는 평생 몇 번 느껴보지 못한 불안한 예감을 느끼고 있었다.
“걱정 마십시오. 스승님.”
“알겠어요. 스승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3서클 유저인 유겐과 3서클 비기너인 우줄라는 오늘따라 걱정이 많아 보이는 자신들의 스승을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산골 출신의 비천한 두 사람의 자질을 발견하고 마탑에 데려가 그들을 마법사로 키워 준 그들의 스승은 스승이라는 말보다는 부모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그들에게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들 스승의 부드러운 모습을 볼 때마다 드보아 경이 피에 미친 마법사가 개과천선했다고 놀려댔지만 단 한 번도 두 사람에게는 엄한 꾸지람 한마디하지 않던 인자한 스승인지라 그들은 드보아 경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 말이 옳다면 얼마나 좋겠느냐. 제발 내일 별일이 없어야 할 텐데.”
울리히는 자신을 안심시키려 노력하는 사랑스러운 두 제자를 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지우려 노력했다.
“멈춰라!”
드보아 헨켈은 소리에 마나를 담아 외쳤다.
웅장한 그의 목소리가 뒤를 따르던 영지군 행렬에 울려 퍼졌다.
“이제 저 계곡만 지나가면 하츠 마을이 나오는 것이 확실하렷다?”
“네, 그렇습니다, 드보아 경. 저 계곡을 지나면 바로 하츠 마을의 목책이 보일 것입니다.”
드보아의 질문에 부르터가 냉큼 대답을 했다.
드보아의 눈앞에 펼쳐진 지형은 폭이 40m 정도의 평지에 양쪽으로 나지막한 야산이 있는 곳이었다.
“흠. 습격을 하려면 이곳이 적지이다. 정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네. 드보아 경의 말씀대로입니다. 보고에 의하면 야산 양편의 숲의 나무들이 바람도 없는데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상당한 숫자의 인원이 매복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디이터의 대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의 대화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계곡으로 대열이 들어섰다면, 아마도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생각되는 지형이었다.
“울리히 경. 경이 조금 도와줘야겠소. 숲 양편에 매복한 적의 병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아봐 주시오.”
드보아는 무작정 상대의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는 체 병력을 진군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찰을 하려 해도 숲이 우거져 있어서 병사를 올려 보내기도 힘들었다. 별수 없이 그는 마법사인 울리히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평소 드보아라면 하츠 마을에 살고 있으리라 여겨지는 가디언 몇 명과 화전민 200여 명 정도를 겁내 이렇게 신중한 행보를 하지는 않았을 테지만, 군터의 실패 원인을 듣고 나서는 지나치리 만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걱정 말게. 내 알아보지.”
울리히는 흔쾌히 드보아의 말에 동의하고 플라이 마법을 시전해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 천천히 숲 쪽으로 날아갔다.
* * *
“저놈 잡습니까?”
채 하사는 문 대위에게 조용히 물었다.
“아니, 아직은 아니야. 일단 저들이 방심해서 계곡을 통과한 다음 자네는 뒤에서 마법사들과 지휘관을 저격하면 되네. 마법사가 3명이라니 절대 실수하면 안 되네.”
채명훈 하사의 질문에 문무혁 대위의 대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야산 꼭대기에 비트를 파 놓고 은신해 있는 상황이었다.
망원경으로 천천히 날아오는 마법사를 관찰하던 채 하사는 감탄을 했다.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대단하네요. 사람이 하늘을 훨훨 날다니. 정 상병도 마법을 배우면 저렇게 날아다니겠지요? 정말 부럽습니다.”
“흐흐. 나나 자네는 꿈도 못 꿀 일이지. 하여튼 정 상병은 능력도 좋아. 떡하니 자작 딸내미를 물다니. 거기다 대접 좋다는 마법사도 될 수 있고. 부럽긴 부럽네 그려.”
“저는 나중에 엘프랑 결혼할 거니까 괜찮습니다. 자작 딸내미 정도는 끼지도 못하지요. 크크.”
문 대위도 채명훈 하사를 비롯한 삼총사들이 엘프와 결혼하기 모임을 결성했다는 이야기를 익히 알고 있는지라 함께 빙긋 웃고 말았다.
“자, 마법사가 돌아간다. 이제 자치대는 발각되었을 테니 후퇴시켜야겠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채 하사, 네가 실수하면 인명 피해가 너무 많아져.”
“걱정 마십시오. 대위님이나 몸조심하십시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문 대위는 급히 옆에 놓여 있는 줄을 당겼다.
아직도 멋모르고 나뭇가지를 묶어서 열심히 흔들고 있을 자치대에 보내는 신호였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근거리 통신용 헤드셋 일체형 무전기의 방전이 아쉽게만 느껴지는 문 대위였다.
분대원이 지니고 있던 무전기는 태양열 충전 키트와 호환이 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사용 건전지가 충전식이 아니라서 이미 방전되어 사용 중지된 지 오래였다.
문 대위는 줄의 반대쪽에서 알았다는 신호가 오자 채 하사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 주고 계곡의 끝, 하츠 마을 목책 앞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