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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6화)
3장 암살자(3)
나는 현음지맥을 따라 내력을 움직인 뒤 오른손에 십이성의 공력을 모았다. 전력을 다한 일격으로 지금의 경지를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
기합과 함께 독방의 문을 향해 일 장을 날렸다.
“건룡재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강철로 만든 문이 날아갔다.
문이 날아가자 복도의 빛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놀라운 일이었다. 단 일격에 문이 날아가다니.
물론 강철로 만든 문은 관통되지 않았다. 예문의 경지라 해도 손으로 강철을 꿰뚫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을 지탱하던 경첩은 모두 부러뜨릴 수 있었다.
경첩이 부러졌기에 문이 밖으로 날아간 것이었다.
“확실히…… 이것은 예문의 경지다.”
나는 잠시 넋을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지난 생에 갖은 고생을 해서 얻었던 것을 지금은 너무나 쉽게 얻은 것이다.
“이건 너무 빠르다.”
너무 빨랐기에 뿌듯함보다는 허탈함이 느껴졌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을 때였다. 천장을 타고 소리가 스며들었다.
타닥! 타닥!
누군가 지하실로 내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밖을 지키고 있던 선도위원들일 것이다. 경첩이 부러질 만큼 큰 타격이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빨라졌다.
나는 재빨리 생각을 정리했다. 그들에게 뭐라고 변명을 해야 한단 말인가?
후…….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변명부터 생각해야 한다는 건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들었을 때 선도위원들이 독방 입구에 이르렀다.
그들은 부서진 문을 보자마자 외쳤다.
“저기다!”
“저긴?”
“루비오의 방이다!”
“루비오라고? 루비오가 탈주한 건가?”
“맞아! 루비오가 탈주한 거야!”
나는 낮은 음성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누가 탈주했단 말입니까?”
그들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루비오?”
“아직 있는 건가?”
두 선도위원은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내가 무슨 마귀라도 되는 것처럼 거리를 두고 있었다.
“루비오?”
“루비오, 너…… 도망치지 않은 거냐?”
나는 그들을 보며 냉소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도망친단 말입니까?”
그들은 부서진 문을 보면서 말했다.
“루비오, 네가 도망치기 위해 문을 부순 게 아니란 말이지?”
왼쪽에 선 선도위원이 바닥에 쓰러진 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대체 어떤 마법을 사용한 거지? 이 문에는 2레벨의 안티 매직이 걸려 있는데 말이야.”
나는 바닥에 앉으면서 말했다.
“경첩이 녹슬어 부러진 것 같습니다. 방금 전 난 소리는 문이 쓰러지면서 난 것입니다. 제가 그런 것이 아니란 말이죠.”
난 변명을 늘어놓는 대신에 딱 잡아떼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다. 두 사람은 의혹에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이거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건가?”
“루비오! 안티 매직이 걸린 강철 문이 낡아서 떨어져 나갔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우리도 아카데미에서 마법을 배우는 마법사다!”
역시나 잡아떼는 것은 별 소득이 없군.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제가 뭐라고 말하길 기대하시는 겁니까? 탈주를 위해 문을 부셨다?”
“그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지.”
“전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지 않습니까? 두 분께서는 혹시 문의 수리비가 필요하신 겁니까?”
두 사람이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말했다.
“수리비? 우리가? 독방에 갇힌 녀석 치고는 꽤나 건방진데? 어이, 이거 우리를 놀리는 건가?”
“아아, 그런 것 같아. 이 녀석 상급생들한테 아주 버릇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하더군.”
“흠, 그럼 이참에 아자크 왕자의 복수를 해 줄까?”
이들은 아자크와 같은 학년에 속하는 사람들인가? 그나저나 말하는 것을 들어 보니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 것 같군.
두 사람은 나를 상관하지 않고 계속해서 자기들끼리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이 아자크를 덮친 녀석이지?”
“맞아. 스웨인에서 좀 나가는 가문이라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모양인데, 손을 좀 봐줄 필요가 있겠어. 여긴 스웨인이 아니란 말이야.”
“루비오, 하급생이 상급생을 몰라보는 것은 정신이 썩었기 때문이야. 내가 오늘 그 썩어 빠진 정신을 말끔히 정화해 주겠다.”
나는 두 사람의 눈빛이 바뀌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사기(邪氣)가 가득 차 있었다.
나를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설마 죽이려는 것은 아니겠지?
두 사람은 허리에 찬 목봉을 꺼내 들었다.
“루비오, 네가 어떤 마법을 써서 문을 날려 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이 목봉에는 통하지 않아.”
“평범한 목봉 같지만 사실은 안티 매직 3레벨이 걸려 있지. 네 녀석이 날려 버린 문은 2레벨밖에 되지 않아.”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독방 안으로 들어섰다.
“독방이 그저 편히 있다가 가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지.”
“여기서는 밖으로 비명 소리도 새어 나가지 않는다지? 크크크…….”
비명 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는다.
그것참 좋군.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게 정말입니까?”
두 사람이 목봉을 흔들면서 말했다.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이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잖아. 바닥에 쓰러진 뒤에야 알게 되겠지. 상급생을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지 말이야.”
어깨를 향해서 목봉이 떨어졌다.
나는 내력을 어깨로 끌어올렸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목봉이 튀어 올랐다. 내 반탄지기에 날아간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나를 내려친 선도위원이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손이! 손이…….”
십중팔구 손바닥이 찢어졌을 것이다. 예문의 경지를 가볍게 보아서는 곤란했다.
무당파의 중수는 삼류문파의 일류였다. 목봉술을 조금 익힌 선도위원이 상대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었다.
반대편에 선 선도위원은 고개를 두리번거리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로이드, 어떻게 된 거야? 손을 삔 거야?”
나는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되는 건 그쪽인 것 같군.”
그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이 녀석이! 로이드 어떻게 된 거야?”
“모르겠어! 손을 다쳤어. 손이…… 손이 부러진 것 같아.”
부러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십이성의 공력을 모두 사용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로이드라는 선도위원이 주저앉자, 뒤에 있던 상급생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로이드의 복수를 해 주마!”
그는 내 머리를 향해 목봉을 날렸다.
이것은 위험했다. 목봉은 정확히 내 정수리, 즉 백회혈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내가 무공을 익히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십중팔구 목봉에 정통으로 맞고 말았을 것이다.
그다음은…… 피를 흘리면서 신음을 내뱉다가 정신을 잃게 되었겠지. 운이 없다면 그것으로 영영 눈을 뜨지 못할 테고…….
기분 내키는 대로 살수를 쓰다니. 아자크 왕자보다 못한 녀석들이었다.
나는 내력을 끌어올렸다.
목봉이 내 백회열에 닿는 순간 나는 전력을 다해 내력을 발출했다.
목봉이 튕겨져 올라가면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악!”
이번에는 십이성의 공력을 모두 사용했다. 상대가 살수를 쓴 만큼 강하게 상대한 것이다.
비명 소리는 처참할 정도였다. 손아귀가 찢어진 것은 물론 뼈까지 산산이 부서졌을 것이다.
사람을 죽이려 한 자에게 이 정도 처분은 가벼운 것일지도 몰랐다.
“함부로 남을 해하려 하면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가 노려보자 선도위원들이 피에 젖은 손을 감싸면서 말했다.
“흑마법사다.”
“맞아. 저 녀석은 캐스팅도 없이 마법을 사용했어. 오직 흑마법사만이 캐스팅 없이 마법을 사용할 수 있어.”
“로이드, 도망쳐야 해!”
“그래, 저 녀석 우릴…… 우릴 죽일 거야.”
“어서 도망쳐!”
흑마법사? 예문의 경지를 알아보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경지를 말하는 건가?
두 사람은 비틀거리면서 감옥 밖으로 도망쳤다.
나는 그들을 쫓지 않았다.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한심한 녀석들…….”
***
선도위원들이 떠난 이후 나는 다시 고요를 되찾았다. 내 수련을 방해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정좌한 뒤 내력을 끌어모았다. 그러자 마음먹은 대로 내력이 흘러갔다.
허탈했던 기분도 잠시 나는 연공의 재미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얼마나 연마를 했을까? 서늘한 기운이 몸 안을 맴돌았다. 단전에 모인 내력이 한음지기로 바뀐 것이다. 이 한음지기를 다시 순양지기로 바꿀 수 있으면 예문의 경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무당산에서 나는 십 년 만에 예문의 경지를 넘어섰다. 그것도 뛰어난 스승과 몇 가지 내단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겨우 이틀 만에 예문의 경지를 넘을 징조가 보인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현경이나 생사경도 꿈이 아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나는 연공을 멈춰야 했다. 누군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또각! 또각! 또각!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한 명이 아니었다. 전처럼 두 명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수가 좀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연공을 중지하고 내력을 단전으로 거둬들였다.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 것이다.
잠시 뒤, 은발의 노인이 독방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학장인 넬슨이었다.
“루비오 군.”
넬슨이 얼굴을 굳히면서 말했다. 그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누가 죽기라도 한 건가?
설마 아자크 왕자가 갑자기 죽은 것은 아니겠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넬슨이 말했다.
“자네 무슨 마법을 쓴 것인가?”
다행히 누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무슨 마법을 쓰다니요?”
“선도위원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내게 말하더군. 루비오 군이 흑마법을 썼다고 말이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제게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힘을 약간 쓴 것뿐입니다. 흑마법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 모릅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렇군. 나는 처음부터 자네가 흑마법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네. 다만 자네가 저항한다면 나는 자네가 흑마법사라고 단정할 수밖에 없을 걸세.”
저항? 왜 내가 저항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리고 흑마법사란 게 대체 뭘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일단 흑마법은 예문의 경지가 아닌 것 같았다. 이건 무공을 알아보려는 반응이 아니었다. 뭔가 부정적이면서, 적대적인 그런 느낌이 들었다. 흑마법사란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전 흑마법사가 아닙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의 뒤에는 오륙 명의 사내들이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항하지 말게. 우리는 자네가 흑마법사인지 아닌지 확인을 해야겠네.”
넬슨은 그들을 이용해 내가 흑마법사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려는 것 같았다.
얼굴이 희고 창백한 청년이 다가와 말했다.
“루비오, 저항하면 안 된다.”
털이 덥수룩한 사내가 그의 말을 받았다.
“흑마법사는 아카데미의 적이다.”
흑마법사란 아카데미의 적? 그렇군. 그래서 심각한 얼굴이었군.
저항하면 안 된다라……. 좋아 내가 저항할 필요는 없겠지. 넬슨은 장문인이고 그의 뒤에 선 사람들은 일대 제자쯤 되는 사형제들일 테니까.
나는 두 손을 들어 그들에게 항복을 표시했다. 넬슨과 청년들의 얼굴은 그래도 풀리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의 청년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귀신을 쫓는 듯 주문을 외웠다.
흑마법사는 인간이 아닌 마귀인 것인가? 어째서 주문을 외운단 말인가?
그러나 곧 나는 두 청년의 손에 정기가 모이는 것을 깨달았다. 청년은 주문을 외움으로써 정기를 모으고 있었다.
이윽고 독방 안이 대낮처럼 밝아졌다. 그의 손에서 나온 밝은 빛이 방 안을 밝힌 것이다.
이건…… 제법 쓸 만한 수법이었다. 토납법으로 어둠을 내쫓을 수 있는 빛을 만들어 내다니! 무당산에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