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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7화)
3장 암살자(4)
청년이 뒤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학장님, 지금부터 흑마법사의 각인을 찾겠습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자, 청년이 내게 말했다.
“절대 반항해서는 안 된다.”
청년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자, 넬슨이 나와 주변에 선 사내들을 향해 말했다.
“루비오 군, 반항하지 말게. 제네르, 아이반. 루비오가 반항하면 망설이지 말고 손을 쓰게. 최악의 경우 그를 죽여도 상관하지 않겠네.”
날 죽여도 상관없다고?
흑마법사란 존재가 그렇게도 증오할 만한 존재인 것인가?
나는 예전에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물론 무당파 사형제들이 의심한 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그들은 한 제자를 마교의 첩자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는 마교의 첩자가 아니라 화산파와 무당파에 동시에 적을 두려는 욕심 많은 사내에 불과했다.
물론 두 문파에 동시에 적을 두는 것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불가능했다. 그래서 무당 장문인은 그를 문파에서 제명하는 것으로 일을 마무리했다.
흠……. 그렇단 말은……. 내가 뭔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아카데미에서 쫓겨날 수도 있단 말인가?
그래서는 안 된다. 내겐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이 세계에 적응할 시간이.
청년이 내 백회혈을 향해 손을 뻗었다.
설마 백회혈을 누르려는 것은 아니겠지?
나는 내공을 운기해서 백회혈을 방어하려 했다. 백회혈은 대혈 중의 대혈이며, 급소 중에 급소였다.
그러나 나는 곧 그것을 그만두었다. 내공을 운기해서 방어하려는 행동 자체가 저항으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청년의 손이 조심스럽게 내 머리카락 사이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흑마법사란 것을 찾는 작업이란 말인가?
나는 숨을 죽인 채 사방을 주시했다. 이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넬슨의 냉정한 눈과 곁에 선 사내들의 걱정스러운 눈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다.
나는 고개를 숙인 뒤 한숨을 내쉬었다.
“후…….”
그러자 청년이 말했다.
“루비오, 우린 네가 흑마법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도위원들의 말을 무시할 수는 없단다. 우리는 아카데미의 마법사이고, 아카데미의 마법사는 흑마법사에 대한 것이라면 티끌만 한 가능성이라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단다.”
나는 낮게 대답했다.
“철저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4장 흑마법사(1)
이들이 두려워하는 흑마법사는…… 흡사 마교와 같았다.
마교는 정파에서 백안시하는 존재였다. 마교 인물들은 사악한 무공을 익히고 그것을 사용함에 있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공을 모르는 약자에게도 거침없이 손을 썼다. 그들에게 무림의 법도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악을 행했다. 내게 치명상을 입힌 자도 마교의 고수 중 하나였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청년의 손이 내 머리에서 멀어졌다.
“왼쪽에는 없습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받았다.
“좋아. 오른쪽을 살펴보게.”
그는 무엇을 찾고 있는 것일까? 흑마법사는 머리카락 속에 보통 사람과 다른 무엇이 있단 말인가?
무림의 몇몇 문파는 자신들의 옷에 특이한 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자신들을 알렸다.
예를 들어 매화교는 소매 끝에 세 송이의 매화꽃을 그렸고, 삼천방은 옷깃에 내 천 자를 수놓았다.
흑마법사란 자들도 그들만의 표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단지 약간 다른 점은 그들은 세밀하게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머리카락 안에 그것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른쪽에도 없습니다.”
넬슨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 루비오 군이 흑마법사일 리가 없지. 자네들은 나가서 선도위원들에게 제대로 된 진술을 확보하게.”
“알겠습니다.”
사내들은 재빨리 독방을 빠져나갔다.
이제 독방에 남은 것은 나와 넬슨뿐이었다.
넬슨이 낮은 음성으로 말했다.
“루비오 군, 여태까지 자네는 자기 자신을 감추고 있었던 건가? 아니, 감출 수밖에 없었던 것이겠지.”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던 것이다.
넬슨은 계속해서 말했다.
“자네는 형과 아버지 때문에 마법사가 되겠다고 말한 건가?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올랐으면서도……. 자네의 운명은 기구하군.”
소드 익스퍼트?
일단 다행이었다. 넬슨은 내가 이제껏 자신의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가 말한 소드 익스퍼트란 아마도 예문의 경지를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정확하지는 않았다. 흑마법사란 말도, 소드 익스퍼트란 말도 어디까지나 내 추측에 불과했다. 정확히 모르는 것을 단정 짓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었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넬슨은 내 대답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자네가 두 소년에게 사용한 것은…… 아마 진공검의 일종이겠지? 그 녀석들은…… 그 녀석들은 자네의 실력을 전혀 몰랐기에 자네에게 겁을 주려 했던 것이겠지. 흠……. 정정하겠네. 겁이 아니라 자네를 혼내 주려고 했던 것이겠지. 같은 동급생인 아자크 왕자가 자네에게 당했으니까.”
넬슨은 마치 상황을 본 것처럼 이야기했다.
“자네는 선도위원이라는 명함만 믿고 날뛰는 그들이 한심해 보였겠지. 그래서 진공검으로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줬겠지? 소드 익스퍼트의 힘으로 말이야. 안 그런가?”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두 사람이 먼저 살수를 썼습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수라……. 그럴 수도 있겠군. 그들은 자기들이 최고라고 자부하고 있으니까. 몇몇 어리석은 귀족들은 무엇이든 저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지. 한심한 일이야. 무엇이든 저질러도 괜찮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야.”
중원에서도 그런 자들이 종종 있었다. 명문대파의 자제나 고위 관리의 자식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루비오 군. 나는 자네가 손에 사정을 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네. 그들 두 사람은…… 어리석고, 가진 실력이 형편없다 해도 일단은 명문 귀족일세. 자네가 두 사람을 죽였다면, 아카데미도 여러모로 힘들었을 걸세. 루비오 군, 자네도 알다시피 우리 아카데미는 여러 나라의 지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나. 그런데 귀족의 자녀가 아카데미에서 죽었다고 생각해 보게.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지.”
지원금이라……. 그 두 사람은 무당파의 속가 제자 같은 것인가? 실력이나 재능이 아닌 돈 때문에 받아들인 제자?
넬슨이 표정을 바꾸었다. 그는 몹시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루비오 군, 자네는 언제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나?”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방금 전이었다.
“그런가? 하긴 자네가 일찍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면 같은 소드 익스퍼트인 루비오 공작이 발견하지 못했을 리가 없지. 그런데 왜 아버지에게 말하지 않은 건가? 루비오 공작은 자네가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정말 좋아할 텐데 말이야.”
넬슨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군. 아니군. 내가 생각이 짧았네. 자네가 소드 익스퍼트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네의 계모가 가만있지 않겠지. 그녀의 시기심은 나도 잘 알고 있네. 루비오 군, 자네는 참 힘든 입장에 처해 있군. 자네가 내게 처음 했던 말을 기억하나?”
마드라므가 말했었다. 영혼을 바꾼 것이니 기억은 전해 줄 수 없었다고. 기억이 없는 고로, 나는 넬슨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넬슨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는 이렇게 말했지. 왕국으로 돌아가 공작이 되지 않고 아카데미에서 평생 마법을 연구하고 싶다고…….”
돌아가지 않겠다고? 후계자 싸움에 휘말리느니 차라리 이곳을 선택하겠다는 말이군. 속세를 등지고 산에 올라 중이 된 왕야 같은 건가?
“안타까운 일이야. 형제간에 작위를 노리고 싸움을 벌이다니. 후후후. 이거 내 말이 지나쳤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하지만 루비오 군, 하나만은 말해 두겠네. 자네도 나도, 우리 인간은 언제까지나 운명을 피할 수만은 없네. 루비오 군, 언젠가 자네도 선택해야 할 때가 올 걸세. 그때 현명한 판단을 해 주었으면 하네.”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맞는 말이다. 운명은 피하려 하면 할수록 더 매섭게 다가올 뿐이다.
넬슨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루비오 군, 오늘 일은 비밀로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네. 당분간은 자네가 소드 익스퍼트인 것도 우리 두 사람만이 아는 비밀로 해 두지. 두 선도위원의 입은 내가 막아 두겠네.”
비밀로 해 둔다. 나도 이쪽이 편했다. 갑자기 고수가 되어서는 곤란했다.
나는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넬슨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독방 문은 그만 부셨으면 하네. 고치는 것도 일이거든.”
“죄송합니다.”
넬슨이 이번에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몇 년 전인가, 자네처럼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른 신입생이 있었지. 그는 마검사가 되기 위해 아카데미에 들어왔다고 당당히 자신을 밝혔다네. 자네는 어떤가? 마검사가 될 생각인가?”
마검사? 소드 익스퍼트의 경지 이상의 경지인 건가? 그렇다면 예문을 넘어선 무극의 경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도달해 보고 싶습니다.”
넬슨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도 이런 방면에는 욕심이 있군. 좋아! 독방을 나오면 자네에게 기회를 주지. 그때까지는 불편해도 참고 기다리게. 그리고…… 아자크 왕자의 일은 어쩔 수 없었네. 신분에 고하를 두지 않는 아카데미이지만…… 왕족은 다른 귀족들과 달리 배려할 수밖에 없으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 손이 지나쳤던 겁니다. 가볍게 혼내 주는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넬슨이 마지막으로 말했다.
“음……. 그렇게 생각해 주면 고마운 일이지. 자네가 편히 있을 수 있도록 선도위원을 바꿔 주겠네.”
나는 고개를 숙였다.
“학장님께서 여러 모로 마음을 써 주시니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할 따름입니다.”
“후후, 마음에 없는 소리 말게. 나는 자네를 독방에 가둔 사람일세. 자네가 나를 원망하지나 않았으면 좋겠군.”
넬슨이 이곳을 떠나기 위해 등을 돌린 순간 나는 무심결에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가 몸을 돌렸다.
“질문?”
나는 아차 싶었다. 그를 불러 세우는 것은 아니었는데. 하지만 불러 세운 이상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얼굴 표정을 가다듬고 말했다.
“흑마법사에 관한 것입니다.”
“흑마법사?”
“그들은 정말로 위험한 존재입니까?”
넬슨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루비오 군. 자네 강의 시간에 졸은 모양이군. 흑마법사의 포악함은 굳이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전 그들의…… 그들의 강함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얼마나 강한지…….”
넬슨이 표정을 굳혔다.
“소드 익스퍼트인 자네와 비교해서 어떤가 알고 싶단 말인가? 그렇다면 말을 해 주지. 최고의 경지라 불리는 소드 마스터조차 뛰어난 흑마법사 앞에서는 무력하다네. 그러니 자네가 상대할 수 있는 흑마법사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그렇게까지 강한 존재입니까?”
“흑마법사는 세상을…… 인간을 멸망시키려 했던 존재일세. 그들을 가볍게 보지 말게. 국경을 초월해 우리 아카데미가 성립할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을 막고자 하는 강한 의지 때문이었지.”
“강한 의지?”
넬슨이 고개를 저었다.
“자네를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군. 강한 의지가 아니라 두려움일세. 그들에게 멸망당하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 그래서 사람들은 힘을 모아 이 아카데미를 만들었지.”
흑마법사.
세상을 멸망시키려 하다니……. 대체 이들은 얼마나 강한 자들이란 말인가?
그들의 실력은 마교 이상인 것 같았다.
넬슨이 깊은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이제 됐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는 내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고 있었다. 나는 이런 자상함을 좋아했다.
넬슨은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빙긋이 웃었다.
“루비오 군, 만약에…… 만약에라도 자네가 공작이 되면 아카데미에 원조를 아끼지 말게.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리해 주었으면 좋겠군.”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그리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만약입니다.”
“그 말 기억하고 있겠네.”
그는 작별 인사 대신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독방을 나갔다.
넬슨이 사라진 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후……. 흑마법사라……. 엄청나게 강한 존재. 과연 그들에게는 세계를 멸망시킬 힘이 있을까? 멸망시킬 힘이 있다면 혹시 다시 일으켜 세울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연공을 시작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마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