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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11화)
5장 선도위원회(1)
한 달 만에 찾은 강의실은 낯설었다. 뭐 깊게 따지고 들자면 익숙했던 적도 없었지만…….
나는 플린과 함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쪽이 여러모로 편했다.
“또 구석이구나.”
세실이 다시 환한 미소로 나를 환영했다.
“이곳이 편하고 좋으니까.”
“그래도 수업은 잘 안 들릴 텐데?”
“난 귀가 좋으니까 괜찮아.”
“호오, 그래?”
두 사람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누군가 외쳤다.
“온다!”
학생들이 재빨리 자리에 앉으면서 책을 펼쳤다. 나와 세실도 예외가 아니었다.
나는 책을 펼치면서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자, 시작해 볼까?”
정면의 문이 열리고 교수가 강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앞을 향했다.
사람들은 우연과 필연을 구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이것은 아마도 보는 관점에 따라 우연으로 보일 수도 있고 필연으로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이건 진짜 우연이었다.
나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페트리 교수를 보면서 옅은 숨을 내뱉었다.
나는 어제 읽은 책 한 구절을 외웠다.
“처음과 시작은 같으니, 그대는 나의 모든 것이니라……. 처음과 시작이 같다. 내게 해당 되는 이야기였나?”
내 복귀 첫 강의는 다름 아닌 페트리 교수의 강의였던 것이다. 다시 말해 복귀 전과 복귀 후 강의가 같았던 것이다.
페트리 교수가 점잖게 나를 향해 말했다.
“루비오 군, 환영하네.”
나는 일어서서 그에게 인사했다.
“걱정을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페트리 교수가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괜찮네. 자네가 건강하게 돌아왔다는 것으로도 나는 만족하네. 자, 그럼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지.”
나는 마법과 마나에 대해서 알게 된 뒤로 그에 대한 감정을 지워 버렸다. 모두 내 오해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페트리 교수는 내공이니 운기조식이니 하는 말 자체를 몰랐다. 그러니 주화입마란 개념도 알 리가 없었다. 그는 그저 내가 마나를 제대로 모으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세계의 마법은 마나를 몸이 아닌 지팡이나 마도구에 모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내가 자리에 앉자, 페트리 교수가 특유의 느릿한 어조로 강의를 시작했다.
“어제에 이어서 정령 연동에 대해서 배워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에너지로의 환원이었다.
나는 강의에 집중했다. 마법도 무공과 같아서 알면 알수록 유용했다.
페트리 교수는 짧은 설명을 마치고는 자신이 직접 마법봉을 들어 시범을 보였다.
“얼음을 만들어 내는 주문은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예를 들어 무더운 여름, 열사병에 쓰러진 환자를 위해 얼음을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성 마법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마법도 충분히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페트리 교수가 주문을 외우자 마법봉에 마나가 모여들었다. 그의 마법봉에 모여든 마나는 강의실 안을 흐르고 있던 정기였다.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건 용맥이 아니다.”
마법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용맥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정말로 아카데미에는 용맥이 흐르는 걸까? 그 때문에 내 무공이 전과 달리 빠르게 늘어나는 것일까?
나는 페트리 교수의 마법을 보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아카데미에는 물론 이 세계 어디에도 용맥은 존재하지 않았다. 대신 이 세계에는 내가 살던 중원보다 훨씬 풍부한 정기, 즉 마나가 존재했다.
이 세계 사람들은 마나, 즉 정기가 풍부했기 때문에 중원에서처럼 단전에 내력을 쌓아 두는 법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재능이 뛰어난 자라면 언제든 정기를 모아 마법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쉽게 말해 기술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중원의 내공 심법 쪽이 훨씬 진보한 것이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그럴 필요를 느끼지 못해 내공 심법을 발전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목마른 이가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정기가 부족한 중원 사람들은 자연으로부터 최대의 효과를 끌어내기 위해 내공 심법과 토납법을 만들었고, 나는 그것을 익혔기 때문에 이 세계의 사람들과는 달리 효율적으로 정기를 모을 수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내 예상대로라면 나는 대마법사도 소드 마스터도 될 수 있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과 달리 모든 힘의 근원인 마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내 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지만…….
페트리 교수가 나를 보면서 말했다. 그는 언제 마법을 끝냈는지 마법봉을 한쪽에 치워 두고 있었다.
“루비오 군, 자네는 여전히 내 강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교수님의 강의를 감명 깊게 듣고 있습니다.”
페트리 교수가 약간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인가?”
“그렇습니다.”
“흠…….”
그는 전처럼 나를 앞으로 불러내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정신을 잃고 쓰러진 것은 그에게도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닐 것이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선 뒤 지팡이를 들었다.
“제가 교수님께 배운 것을 한번 흉내내 보겠습니다. 맞게 했는지 봐주셨으면 합니다.”
페트리 교수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
“가능하겠나?”
“한번 도전해 보는 것입니다.”
내가 말을 하자마자 세실과 플린이 나를 말렸다.
“루비오, 위험하지 않겠어?”
“지난 번에도 실패했잖아.”
이전의 나는 마법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마법과 마나에 대한 기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두 사람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괜찮아.”
내가 앞으로 나오자 페트리 교수가 걱정된다는 얼굴로 말했다.
“무리할 필요는 없네.”
“아닙니다. 위험하다고, 잘하지 못한다고 계속 도망쳐서는 훌륭한 마법사가 될 수 없습니다. 전 피하지 않을 것입니다.”
페트리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건, 자네 말이 맞네. 좋아. 그럼 한번 해 보도록 하게.”
“감사합니다.”
나는 지팡이를 양손으로 들었다. 그러고는 정신을 집중해서 주변의 정기를 모았다. 페트리 교수가 마법을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의실 안의 마나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 세계는 정말로 풍부한 마나를 품고 있었다. 마나는 써도 써도 줄지 않는 화수분 같았다.
나는 토납법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낸 주문을 통해 마나를 모았다.
“대지의 기운이여, 바람의 흐름이여. 내 손에 모여 빛이 되어라.”
몇몇 마법 입문서는 주문이란 사실 크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적고 있었다.
즉, 흑마법의 마법을 제외한 모든 마법의 주문은 정기를 모으기 위한 하나의 의식에 불과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맞는 주문을 만들어 냈다.
내가 주문을 외우자 지팡이의 수정구가 밝게 빛났다. 마나가 모인 것이다.
나는 그것을 들고는 외쳤다.
“얼음이 되어라!”
페트리 교수의 눈이 커졌다. 내가 정말로 마나를 모을 줄 몰랐던 것이다.
나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휘저었다.
“루비오의 지팡이에 마나가 모였어!”
“루비오가 마법을 쓰는 거야?”
나는 얼음이 만들어지리라 믿어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모은 마나는 한 덩어리 빛에서 끝이 났다. 기대했던 얼음은 어디에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지?”
“마나가 멈췄어.”
“저건 마나구야?”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내가 읽은 책의 내용대로라면 마나구는 얼음 덩어리가 되었어야 했다.
내 정신이 흐트러지자 마나구가 파란빛을 내며 사라졌다.
“마나가 사라졌다.”
“실패한 건가?”
페트리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루비오 군, 마나를 모으는 것까지는 괜찮았지만, 주문과 마법 컨트롤에 기술적인 문제가 있는 것 같군. 하지만 노멀 클래스에서는 보기 드문 시범이었네. 실력이 늘었군. 축하하네.”
축하한다고? 실패했는데도? 아니다. 나는 축하 받을 만한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그의 조언이 마음에 걸렸다. 주문과 마법 컨트롤에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책에는 그 이상의 것이 쓰여 있지 않았다.
그 이상의 것이…….
역시 전문적인 지식이 담기지 않은 책을 읽은 탓일까?
나는 미간을 좁혔다.
“죄송합니다. 이것이 제 한계인 것 같습니다.”
페트리 교수가 말했다.
“아닐세. 자네가 처음부터 잘했다면 내 강의를 들을 필요가 없겠지.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노력하는 학생을 탓할 생각이 없네. 내가 싫어하는 것은 노력하지 않는 학생이라네.”
그는 제자의 성장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 했다. 처음으로 시도한 마법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내가 자리에 앉자 페트리 교수가 몇 가지 기술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내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내 실패를 용납할 수 없었다.
나는 초보가 아니었다. 예문의 경지에 들어선 소드 익스퍼트였다. 기술적인 부분이 부족하다고 해도 그것을 만회할 충분한 힘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이란 생각과 달리 냉혹했다. 나는 실패했고, 의기소침해졌다.
강의가 끝난 후, 세실과 플린은 내 이런 마음을 모르고, 내 마법에 대해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나는 그들의 칭찬을 시큰둥하게 받아 넘기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러자 세실이 물었다.
“루비오, 어디 몸이 좋지 않은 거야?”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니까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점차 나아질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점심을 먹는 중에도 마법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포크를 내리찍으면서 중얼거렸다.
“내일은 성공을 시킨다. 내일은 반드시.”
그러고는 접시에 잔뜩 쌓여 있는 양배추를 한번에 입에 넣었다.
“여어, 이게 누군가? 이렇게 찾아와 내 앞에 앉을 줄은 정말 몰랐네?”
아자크 왕자?
나는 그가 날 부를 때까지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마법에 정신이 쏠린 나머지 주변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어느새 십수 명의 소년들이 나를 둘러쌌다. 이들에게서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졌다. 나는 이 이질적인 공간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때가 너무 늦고 말았다. 그들이 나를 겹겹으로 포위한 것이다.
아자크 왕자가 나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안녕? 그간 잘 지냈나?”
“…….”
내가 독방에서 나온 지 한 달.
한 달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 다시 시비를 건단 말인가? 그렇게 속이 좁은 남자였나? 아자크는? 아니면 한 달 동안 힘이라도 키운 건가?
아자크가 내게 말했다.
“루비오, 내가 입원해 있는 동안 편하게 지냈다면서?”
음……. 그랬군. 한 달 동안 힘을 키운 게 아니라 입원해 있었던 거군.
나는 아자크를 신경 쓰지 않고 빵을 들었다.
그러자 아자크가 식탁을 세게 치면서 말했다.
“이봐! 감히 본 왕자를 무시하는 건가? 스웨인의 공작 위가 그리 대단하단 말인가? 아크바스의 왕자를 무시할 정도로?”
나는 손을 멈췄다.
“그때 일은 내가 심했다. 서로 하나씩 잘못을 저질렀으니, 이쯤에서 끝내는 것이 어때? 아크바스의 왕자라면 그 정도 아량은 있을 텐데?”
아자크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 한마디에 열을 받았단 말인가? 나는 나름 감정을 억제한 것인데…….
“그따위 말을 하려고 날 찾아온 거냐?”
“사람들이 많이 보고 있어. 조금 침착하는 것이 어때?”
아자크의 주먹이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이 자식이! 상급생에게 뭐가 어째?”
아자크의 주먹을 맞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예문의 경지를 넘어섰다. 가볍게 뒤로 몸을 움직여 아자크의 주먹을 피해 냈다.
“아자크, 지금은 싸우고 싶지 않다.”
주먹으로 허공을 친 아자크가 주춤거렸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것을 그 스스로도 깨달은 것이다.
“이 녀석이…….”
그러나 그는 곧 자세를 가다듬고는 더 크게 화를 냈다. 자신의 뒤에 있는 많은 이들에게 실망을 안겨 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운이 좋아 한 번 이겼다고 우쭐대지 마라!”
나는 식판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자 전하, 적당히 해 둬. 이번에는 정말로 자숙이나 독방으로 끝나지 않는단 말이야.”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방에서 주먹이 날아왔다.
“루비오 자식! 건방지잖아!”
“선배를 뭘로 아는 거야?”
“그 콧대를 꺾어 주마.”
“우린 징계 따위는 두렵지 않다.”
그래, 너희는 징계 따위는 두렵지 않겠지. 본국으로 돌아가면 호화로운 저택에서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난 아니다.
“몰아붙여!”
“틈을 주지 마!”
“누가 가서 망을 봐!”
상급생들은 수가 많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의 손과 발을 피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바보 같은 녀석들.”
그러고는 식판에서 손을 뗀 뒤 주먹을 쥐었다.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할 수 없지.”
내 말을 들은 아자크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 녀석 팔다리를 잡아! 아예 손발을 움직이지 못하게 해!”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생각처럼 잘 될까?”
상급생들의 인해전술은 투박했다.
나는 사방으로 주먹을 날리면서 기합을 넣었다.
“여래팔권!”
일순간 십여 명이 넘는 상급생이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에 맞았는지도 모를 것이다. 그것을 알 만한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덤비지도 않았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