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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빌 엠페러 1(15화)
6장 암살자(3)
세실이 몸을 일으키면서 말했다.
“난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죽이는 것만 배웠어. 어떻게 검을 쓰고 어떻게 급소를 찌르는지. 그런 것밖에는 배우지 못했지. 내겐 다른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 없었어.”
살수로 키워지는 아이들.
강호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실력 좋은 무림인이 몰락해 살수가 되는 경우는 드물었기에 어린아이들을 키워 여러 해 동안 교육시켜 살수로 키웠다.
“암살자로 키워진 거군.”
“그래, 내 가족은 전부 암살자야. 사람을 죽여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지. 그것도 꽤 유명한…….”
“가족이라고 해도 진짜 가족은 아니잖아.”
세실이 고개를 흔들었다.
“친 부모는 날 버렸어. 내게는 그들이 가족이야.”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들은 가족이 아니야. 단지 세실을 이용하려는 자들이지. 그 누가 자신의 딸에게 살인을 의뢰하겠어? 나라면 못 해. 절대로.”
세실이 고개를 들었다.
“우린 그렇게…… 그렇게 살아왔어. 그렇게 살아왔다고. 내가 먹고 입고 마신 모든 것이 다른 사람의 피에서 나온 거야. 알겠어? 우리는…….”
나는 그녀의 어깨를 다독이면서 말했다.
“세실은 그렇게 살 수 없잖아.”
세실이 내 손을 뿌리쳤다. 그녀는 앞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렇게 살 수 없다고? 왜 안 되는데?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단 말이야.”
“세실은 사람을 죽일 수 없어. 혹 죽인다고 해도 스스로를 잃게 될 거야. 세실도 알고 있잖아. 자신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세실이 어둠을 향해 걸어가면서 말했다.
“루비오, 미안해.”
“미안하다는 말은 그만…….”
그 순간 세실의 팔이 움직였다. 어디서 꺼냈는지 손가락보다 짧은 비수가 그녀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들어 자신의 목을 찌르려 했다.
팔을 뻗을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난 손가락을 튕겼다.
내 손끝에서 떠난 내력이 그녀의 비수를 향했다.
탄지신공.
무극의 경지에 올랐기에 가능한 신기였지만, 아직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는 수법이었다.
무당산을 내려온 뒤 나는 종종 탄지신공을 쏘았다. 하지만 그 명중률은 높지 않았다. 열 번 쏘아 두세 번 맞추면 훌륭한 정도였다.
제발! 제발 맞아라! 앞으로 계속 빗나가도 좋다. 제발 이번에는 맞아라!
맞았다!
팍!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비수가 부러졌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그녀의 행동을 막을 수 없었다. 부러진 비수가 그녀의 새하얀 살을 파고들었다.
나는 다시 한 번 일지를 날려 그녀의 팔을 막았다. 그러고는 급히 앞으로 뛰었다.
그녀의 목에서 홍매화보다 더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바보같이!”
나는 급히 그녀의 상처를 지혈하면서 말했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세실이 고개를 저었다.
“실패는…… 실패는 죽음이니까. 나…… 가족들의 명예를…… 명예를 지키지…… 지키지 못했어.”
“암살자들의 명예 따위 알게 뭐야!”
나는 그녀의 목에 있는 혈도를 찍은 뒤 그녀를 안아 들었다.
그녀의 의식이 점점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세실, 정신 차려!”
이것만으로는 그녀를 살릴 수 없었다. 지금 당장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야 했다.
지하실에서 나온 뒤 있는 힘을 다해 경공을 전개했다.
내가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간 곳은 교수들의 숙소가 있는 타이라스였다.
내가 타이라스 입구에 이르자 관리인이 앞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이곳은 학생들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네.”
나는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세실이 죽을 것 같아! 어서 유피아나 선생님께 안내해!”
관리인이 내 박력에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는 뒤로 물러선 뒤에야 내 품에 안겨 있는 세실이 중상을 입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아! 여학생이 다쳤군. 나를 따라오게.”
그는 급히 뛴다고 뛰었지만 움직임이 매우 굼떴다.
나는 목소리를 바꿔 물었다.
“어딘지 말을 해 주세요.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관리인이 동쪽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건물 삼 층에 유피아나 선생님의 방이 있네. 303호일세.”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나는 관리인이 두 눈을 깜빡일 정도로 빨리 뛰었다. 무당파의 경공을 전개한 것이다. 하지만 난 내 다리가 느리게만 느껴졌다. 이대로라면 세실을 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세실을 죽게 할 수는 없어.”
나는 속으로 외쳤다.
두 다리야 조금만 더 힘을 내 다오.
***
유피아나 선생이 내 앞에 놓인 찻잔을 반쯤 채우면서 말했다.
“어떻게 된 거야?”
나는 초조한 얼굴로 두 손을 감싸 쥐고 있었다.
“괜찮은 겁니까?”
“다행히 기도를 빗나갔어. 하지만 위험했어. 조금만 더 옆으로 갔더라도 살릴 수 없을 뻔했으니까.”
유피아나 선생은 최고급 신성 마법을 사용하는 치유 마법사였다. 그녀의 신성 마법이 아니었다면 세실은 죽었을 것이다.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어?”
나는 그녀를 속일 수 없었다. 목에 난 칼자국이 이미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난 유피아나 선생이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된 거로군.”
나는 찻잔을 노려보며 말했다.
“전 세실을 암살자로 만든 녀석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아닙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그럴 수 없는 사람입니다.”
유피아나 선생이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아마…… 범인은 라인스 암살단일 거야.”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두 눈을 응시했다.
“라인스 암살단이요?”
“그래, 라인스 암살단은 대륙에서 가장 악명이 높은 암살단이지. 대부호나 기사단장은 물론 왕족이라 해도 그들의 손길을 피해갈 수 없다고 하지. 그들의 좌우명은 ‘실패는 죽음’. 세실의 행동으로 볼 때, 그녀는 라인스 암살단에 속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나는 두 손을 모으며 말했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유피아나 선생이 자신의 찻잔을 채우면서 말했다.
“누굴 용서할 수 없는 거지? 세실을 지키지 못한 자기 자신? 아니면 루비오 군을 죽이려 한 사람? 그도 아니면 라인스 암살단?”
“셋 다 용서할 수 없습니다.”
유피아나가 잔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오늘 꽤 놀랐어.”
“죄송합니다. 유피아나 선생님을 놀라게 해 드려서.”
“라인스 암살단의 솜씨는 정평이 나 있어. 세실의 솜씨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실패했다면 루비오 쪽이 더 강했다는 말인데…….”
나는 그녀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진심으로 손을 쓰지 못했습니다. 절 친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손에 사정을 두었던 것입니다.”
유피아나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실패한 원인 중에 하나였겠지. 하지만 루비오 군의 실력이 그녀를 앞선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겠지. 학장님께서 말씀해 주셨어. 루비오는 정말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넬슨 영감이 유피아나 선생에게 모든 것을 말했다고? 그녀가 그런 비밀을 알 만큼 높은 위치에 있었던 건가?
나는 유피아나 선생에게 물었다.
“전 어떻게 하면 좋죠?”
“무엇을 말이야?”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그녀는 또 죽으려고 할 겁니다.”
유피아나 선생이 말했다.
“루비오는 그녀를 살리고 싶다는 말이지?”
“네.”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세실을 사들여.”
“무엇으로 그녀를 사들인단 말입니까?”
“암살단이 원하는 것은 골드. 다시 말해 사람을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골드에 달렸단 말이야. 그들이 원하는 만큼의 골드를 준다면 그녀를 살리는 건 크게 어렵지 않을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제겐 그런 엄청난 돈이 없습니다.”
유피아나가 말했다.
“돈을 가진 사람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루비오는 공작가의 차남이잖아.”
“돈을 가진 사람이라고요?”
“그래. 돈을 가진 사람.”
***
나는 삼 년 전 암향문과 사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암향문의 살수들은 대부분 스무 살이 되지 않은 소년들이었다.
어린 소년들을 키웠기 때문에 어린 살수들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소년은 언젠가 청년이 되고 청년은 언젠가 노인이 되었다.
하지만 암향문의 살수는 노인이 될 수 없었다. 실패는 곧 죽음이었고, 아무리 뛰어난 살수라도 열 번 연속 살수행을 성공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소년들만 남아 있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살수가 아닌 살수단의 두목이 되어 소년들을 키웠다. 살수로서는 그 누구도 십 년을 넘길 수 없었다.
세실도 이런 식으로 키워진 아이 중 하나였다. 그녀는 평생 살인을 배웠으며, 어떠한 경우에도 그것을 성공시키도록 교육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자신을 키워준 두목과 같이 자린 살수들이 가족이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에게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 사람을 살인 도구로 생각하는 이가 어떻게 부모나 가족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세실을 꾸짖었다. 세실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것이 그르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과 머리는 항상 같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직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세실에게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나면 진짜 가족을 찾아 주겠어.”
이 말은 진심이었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내 나쁜 버릇이 또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해 난 아직 악이 되기에는 이른 것 같았다.
“할 수 없지.”
세실은 아직도 유피아나 선생의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유피아나 선생이 비밀을 지켜 줬기 때문에 나와 세실의 이야기는 밖으로 퍼져 나가지 않았다.
지금에서야 알 게 된 일인데, 세실은 나와 플린을 제외하고는 친구가 없었다. 그녀는 나 못지않게 외로웠던 것이다.
플린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세실 말이야. 유피아나 선생님께서는 전염병이라 말씀하시면서 문병도 못 하게 하는데. 괜찮을까?”
나는 낮게 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유피아나 선생님께서 같이 있으니 괜찮을 거야.”
“그건 그렇지만…….”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 라인스 암살단의 본거지를 찾아내 박살 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유피아나 선생님께 가 볼게.”
플린이 나를 따라나섰다.
“나도 같이 가.”
나는 손을 내저으면서 말했다.
“플린은 선도위원회 회의가 있지 않아?”
“하루쯤은 빠져도…….”
“하루쯤이 아니잖아. 어차피 가도 세실을 만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회의에 참석하는 게 좋아.”
플린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루비오가 그렇게 말한다면…….”
세실이 다친 뒤 플린은 풀이 완전히 죽고 말았다. 얼굴이 아자크 왕자와 싸웠을 때보다도 안 좋았다.
플린은 세실을 좋아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세실은 남자 아이들이라면 한 번쯤 머리에 그려 보았을 만한 귀여운 아이였다. 어쩌면 플린에게 그녀는 선망의 대상이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본관을 벗어나 유피아나 선생의 숙소로 향했다.
요 며칠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들렀기에 관리인도 내 얼굴을 알고 있었다.
“또 찾아왔군.”
“네.”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은 뒤 계단을 뛰어올랐다.
똑똑똑!
문을 두드렸지만 방 안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